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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율법의 의미(III) (마 05: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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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출애굽기 21:22-25, 레위기 24:20,신명기 19:21등에 기록한 말이다.

이상의 말이 율법에 기록되기 전에는, 창세기 34장에 시므온과 레위 두형제가 자기 오누이(디나)에게 욕을 보인 세겜 사람들에게 행한 보복 기사와 사사기 16징에서 역사 삼손이 다곤 신전에 모인 블레셋 사람들을 몰살시킨 보복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보복을 동족 가운데서 또는 다른 민족과의 사이에서 행하지 못하도록 만든법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는 법이다. 다시 말하면 율법이 복수의 한계를 정하여 命한 것이다. 즉 눈을 뺀 자에게는 눈을 빼고 그 이상의 가해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통하여 복수의 원한을 가진 자들의 감정과 행동을 제한했다.

 39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1.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예레미야는 악한 자에 대한 정의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2:19)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를 악한 자로 규정 한다면 악한 자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이며 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이다. 이 악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자이다. 그러므로 이 악한 자는 대항하여 싸워야할 싸움의 상대자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고 전도하여 구원받도록 해야 할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은 눈으로(5:1) 악한 자를 보셨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악한 자와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셨다 (마1:21) 예수께서는 이러한 이유에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하였다. 만약 악한 자를 대적한다면 율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며 복음에 이를 수 없는 자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을 때에 악한 자들을 대적하거나 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 드렸다.(눅23:34)

2.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으로 돌려 대며 악한 자가 핍박을 가하며 빰을 치거나 더 큰 환난을 가중 시킬 수도 있다. 이때 예수의 제자들은 도망칠 수도 있고 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악하고 핍박하는 자들의 횡포를 피하거나 대적지 말고 그대로 당하며 받으라고 한다. 곧 무저항적 신앙을 강조한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과 동일한 신앙의 행위를 빌립보지방에서 실천했다(행16:16-40)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 빌립보옥의 옥문이 열렸고 전도의 문이 열렸다.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믿음으로 실천할 때에 거기에는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는 기적이 생산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태내게 한다.

바울은 빌립보지역에서 체험한 신령한 은혜로 인하여 영적 군위가 더욱 높아졌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4:14)고 증거했다. 세상 사람 눈으로 볼 때 복음을 증거하다 뺨을 맞으면서도 다른 빰을 돌려 대준다면 정신 이상자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하다 핍박을 받는 성도의 위에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계셔서 여러 차원의 이적과 표적을 일으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 내는 모토가 되게 한다.

 40절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옷을 빼앗기 위해서 거짓 송사하는 사람에 대하여 우리는 그의 가난에서 비롯되는 욕심을 가볍게 여기고 겉옷까지 주는 것도 망설이지 말라 하였다. 이 악한 자는 영의 눈이 어두워서 신령한 영의 옷을(계19:8)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예배되어 있다.

그러므로 옷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대적하지 말라 주라했다. 그리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마6:33) 한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렇게 살면 더 좋은 속옷과 겉옷 그리고 신령한 옷을 주시리라.

 41절 또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리를 가게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세상의 어느 누구의 요구라 해도 예수의 사람은 범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만족과 충족을 주어야 한다. 예수의 사람은 마음과 정신적 생활에 또는 영적생활에서 여유를 갖고 누구의 요구에도 그 이상의 것으로 채워주어서 은혜와 덕을 끼쳐주어야 할 것을 가르쳐 준다.

 42절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예수의 제자들과 따른 자들은 타인들이 요구할 정도로 모든 것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요구하며 구하는 자들에게 줄 수 있는 물질과 사랑과 은혜가 있어야 한다. 누가복음 11:5-8의 말씀에서 처럼, 내게 없더라도 하나님께 구하여 요구하는 자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신앙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영혼과 육신생활에 받아야 한다.

아무리 물질의 축복을 받았어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 은혜가 없다면 신앙인이라기 보다는 단지 물질에 붙잡힌 자가 되고 말 것이다.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누리고 있으면서도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는 자는 축복과 상관없는 불행한 자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람은 많이 소유할 수 있는 지혜와 줄 수 있는 신령한 손이 있어야 한다.

예수게서 7:12 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였듯이 이것이 곧 율법의 완성이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피와 생명을 주었으며 일생을 잘 살려는 자들에게 믿음 안에서 영원한 날까지 살게 하셨다.

그리고 또한 물질로써 만족하려는 자들에게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 를 알게 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였다. 이것이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주님이 대접하고 구하는 자에게 채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다.

 43절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 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라는 말은 레위기 19:18에 기록된 말이다.

그러나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말은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음으로도 예수께서 이 말씀의 근원을 어디에서 인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네 이웃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동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원수는 이방민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방인을 마태복음 16:26에서 가나안 이방민족으로부터 외침을 받아왔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원수로 대하는 민족적 감정이 있다.

 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1.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예수의 원수에 대한 자기 이론이다. 이는 또한 복음이며 율법의 완성 에 해당하는 말이다. 원수를 미움으로 대접해서는 안되며,오히려 원수를 사 랑으로 대접하는 것이 율법을 완성하는 은혜의 삶이다. 원수는 미워하고 대 적하여 이기려 하면 스스로가 약해지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된다.

그러나 원수는 사랑할수록 약해지며 힘을 잃되 중심권을 상실한 태풍처럼 되고 만다. 사랑은 원수를 이기는 능력과 지혜가 되기에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 함으로 원수를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할 것을 교훈하셨다.

 2.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핍박은 신앙의 차원에서 비신앙인과 반신앙인으로부터 가해지는 신앙 의 행위를 저해 하는 것이다. 신앙인은 이런 자들에 대하여 대항할 수 있으 며 반항할 수도 있으며 죽일 수도 있다. 이처럼 여러가지 형태로 보복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위하여 오히려 기도하라고 가르친 다. 이것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와 상반된 가르침이다. 예수는 핍박을 받는 자가 불쌍한 자가 아니며 핍박을 가하는 자가 불쌍한 자이기 때문에 위해서 기도하라 하였다. 이 기도는 저주의 기도가 아니며 멸망을 위한 기 도도 아니다. 오히려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한 기도이며 또 알지 못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깨우쳐 주기 위한 기도이다. 이 핍박자들은 하나님의 무자 비한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핍박자를 위한 기도를 하는 사람은 신 령한 눈을 뜬 자이며 하나님의 뜻을 성령으로 이해한 성숙한 신앙인이다.

당시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관원들은 예수와 그의 공동체 를 핍박했다. 그러므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과 은혜와 능력은 없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을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 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라고 하였다. 스데반 집 사도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르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 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7:60) 하였다.

 45절 이와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 이니라

1.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같이 한즉"이라는 말은 44절에서 말한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과 성령의 빛 아래에 거하지 않고는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신령한 신앙인은 주님의 영광스런 빛(고후 4:6)에 의하여 핍박하는 자들의 심판의 종말을 신령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핍박하는 자가위대학 핍박받는 자가 가련하고 불쌍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핍박을 가하는 자가 가련하고 불쌍하며 핍박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있음을(벧전 4:13-14) 알아야 한다. 이와같은 사실은 예수게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불쌍하고 가련했으나 삼일 후에 부활의 영광 중에 나타나셨고 예수를 죽이며 모욕하던 자들은 멸망 받을 죄인들고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6:25-40의 내용에서도 , 바울이 억울하게 핍박받았으나 핍박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옥문이 열리는 기적과 전도의 문이 열리는 영광의 은총을 입었다. 그리고 핍박자들의 영접을 받고 높임을 받았다.

원소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장소와 일과 인력과 신앙에는 사람 이 이해랄 수 없는 기적과 이적이 예수의 부활과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아들됨을 인정하는 신령한 사건들을 현실에서 보여 주신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된 교회와 믿음의 사람들은 바울이 말한 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 (고전11:1) 한 말씀의 실천자가 되기 위하여 성령의 밝은 빛을 받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12:2)

2. 이는 그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 이니라.

예수께서는,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룩한 신앙의 행위는 마치 하나님께서 해를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구별없이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그 일을 본받는 행위이다.

즉 예수의 제자들과 따르는 자들은 악인과 선인, 의인과 불의한 자를 구별이나 차별없이 사랑과 은혜로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루는 일을 실현하여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46절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 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1.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칭찬이나 상급을 받을 수 없는 일이나 그러나 유대의 랍비들은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상좌를 택했다. 이들은 또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지도 아니 하며 대접하지도 않는 영적으로 말하면 사해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에수의 사람들은 이권적이며 상업적인 사랑의 차원을 뛰어 넘어서 희생적 이며 구원의 은총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의사랑을 생활화하여야 한다.

 2. 세리도 이같이 아니 하느냐 즉 세리들과 랍비들과 사랑의 세계에 있어서 차이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람들은 세리나 랍비들이 사랑의 차원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사랑의 세계에 이르러야 할 것을 가르쳐 말했다(요1서3:16).

 47절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 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었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1.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 형제에게만'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을 자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을 가르쳐 한 말씀이다. 유대인築은 이방인들과 상종하지 않았으며(행 10:2-3, 갈 2:12) 하나님의 선택 밖에 있는 저주와 부정한 백성으로 알고 짐승처럼 대하였다(마 15:26).여기에서 발생하는 유대인들의 사상은 철저하게 이방인들을 배격하며 하나님의 선택에 감사함 으로 자기들끼리만 문안하여 안녕과 평강과 은혜가 있기를 바라며 서로를 돌보며 문안 하였다. 이 가르침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한 말과 같다. 땅끝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과 따르는 자들은 유대주의적 사고방식을 떠나야 한다는 예수의 명령 앞에 언제나 서있다.

 2. 이방인 들도 이같이 아니 하는냐 이 말은 46절의 "세리도 이같이 아니 하느냐"와 같은 말이라 하겠다.

만약에 형제의 안녕을 위해서 문안하는 생활은 이방인들도 행하는 일로써 이방인과 선민 이스라엘과 차이점이 없으나 예수의 사람들은 이들과 같은 행위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차별없는 사랑으로 해의 빛을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고 비를 의인과 불의한 삶들에게 내려 주시듯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람들은 계층과 만족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의 삶을 살며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영원한 사랑의 법칙을 가르쳤다.

 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게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 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께서는 앞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에 대하여 소개했다.

 1>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44) 2>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4) 3> 너희 끼리만 문안하지 말고 차별없는 문안을 하라(47) 이상과 같은 하나님의 온전을 예수의 제자들과 따르는 자들이 실천함 으로써 유대의 랍비들과 구별되어 하나님을 본 받는 자들이 인류 구원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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