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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물(돈,물질)에 대한 자세 (마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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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이들과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웠습니다. "아빠가 너만을 할 때는 쌀이 없어서 굶을 때가 있었단다." =쌀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지요= "라면이 있 어야 먹지" =라면없으면 빵먹으면 되잔아요= "빵이 있어야 먹지" =빵없으면 우 유마시면 되잔아요= "우유가 있어야 먹지" =우유없으면 과자나 과일 먹으면 되 지요= "과자나 과일이 있어야 먹지" 그랬더니 정말 없었어요 하고 묻는 것이였 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때는 없었던 것이 너무도 많았고, 지 금은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 을 믿게 된 동기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7살때 성탄절 전날 밤이였습 니다. 요즈음은 성탄절날에 선물을 줍니다. 그런데 그때는 선물을 받으려고 너 무 많은 아이들이 모이기 때문에 적당한 때에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때 선물이래야 옥수수튀밥에 건빵 몇개, 굴뚝과자 몇개를 섞은 것이였습니다. 그것도 선물이라고 받으려고 일년씩이나 기다렸습니다. 서로 먼저 받으려고 야단입니다. 제가 받으려고 할때 선생님 한 분이 저를 구석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왜그럴까 생각하며 따라갑니다. 그때 선 생님이 남모르게 신문지봉투의 선물이 아니라 굴뚝과자 한봉지는 뜯지도 않은채 주셨습니다. 5월짜리 과자였습니ㅏㄷ. 얼마나 기뻤느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는 것같습니다. 저는 그때 그 선생님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언제나 기억했습 니다. 이것이 늘 마음에 있었기에 교회를 찾게 되었고 오늘 목사가 되었습니다.

정말 어려운 시절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말 없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생활 은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풍요합니다. 20-30년전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부자아 닌 집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라디오 하나만 있어도 괜찬은 집이였고, 텔리비젼 있는 집은 정말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라디오나 텔리비젼 없는 집 없잔아 요. 그러니 다 부자입니다. 우리 시대는 정말 풍부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불행 하게도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데, 사람들은 더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 더 불행해지고 있습니다. 살겠다는 사람보다 못살겠다는 사람이 더 많은 것같습 니다. 배고파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식때문에, 돈때문에 못살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고독해지고 절망감에 휩싸여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되는대로 사 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흔드는데만 관심이 생기게 되고 그 래서 유흥업만 발전하고 있습니다. 정말 재미이쓴ㄴ 세상같으나 허무감이 팽배 한 세상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본문의 말씀은 인간의 삶에 진정한 풍요와 만족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줍니다. 이 시간에는 풍요로운 삶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의 진정한 풍요는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사 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말씀이 원문에는 "모든 죄악들의 뿌리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비 슷한 말씀이 딤전3:3"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즉 교회의 감독이나 지도자가 되려 면 돈을 사랑치 않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히13:5"돈을 사랑치 말 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이말씀은 물질을 대표하는 돈을 경시하거나 무 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모든 일에 돈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돈은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마음은 그렇지 않지 만 돈이 없어서 사람 구실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문제는 돈이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도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사 람들이 하나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신뢰하는 것이 물질 돈 아닙니까 이것을 갈파하신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 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리스도인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알고(히13:5)또한 돈을 사 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 가 된다는 것을 벵겔은 "모든 선의 뿌리가 되는 믿음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첫눈 에 돈을 사랑하는 것이 사치와 방종 등과 같은 많은 범죌르 일으킨다."고 그 이 유를 지적했습니다.

 J.Post는 돈의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1)돈에 대한 사랑은 영혼의 모든 행위와 열정을 오만하게 하고 편협하게 하며 돈 에만 집착하게 한다.

2)돈에 대한 사랑은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을 천박하게 한다. 모든 것이 돈의 가치에 따라 평가되며 이익과 관련하여 평가한다.

3)돈에 대한 사랑은 사람을 그의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이기적인 관계를 맺 게 한다.

4)돈에 대한 사랑은 사람의 성품을 완악하게 한다.

5)돈에 대한 사랑은 판단력과 양심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풍요로운 삶은 많은 재물,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화려한 지위에 오름으 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은 늘 권력을 지향해 왔으며 이것이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으 로 괴로움을 당한 사람은 있지만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무엇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까 봉독한 말씀은 "지 족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대 랍비의 교훈에 부자란 "자기의 운명에 만족하고 있는 자이다."라고 했습니 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더욱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탐욕이 항 상 가득차 있습니다. 집을 두 채이상 가진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가 구속되는 것을 얼마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인간이 욕망은 갖을수 록 더 갖으려는 탐심속에서 생겨납니다. 눅16:19-31절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의 잘못은 자신의 욕망를 채우려는 것에 있습니다. 즉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는 이기적 태고가 그를 지옥으로 가게 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 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으니라.(약1: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족하 는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이룹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자족하는 마음 을 가질 수 있습니까

1.가진 것으로 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 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즉 족한 줄로 알라" 고 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먹는 것은 음식을 말합니다. 입는 것은 몸가리 게나 피신처 또는 의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을족 한 줄로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생활이한 각 사람의 위치와 신분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과 위치에 과분한 생활을 아무런 죄책감없 이 즐기고 있습니다.(수입은 5000불, 생활수준은 20000불) 물론 기독교는 가난을 장려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축복의 종교입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또 한 미덕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잘살아야 합니다. 잠언의 기자는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 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 소 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8,9 진정한 행복은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몸부림친느 것이 아니라 적은 것이라도 기쁘 고 감사하게 주릴 줄 아는데 있습니다. 즉 감사와 기쁨은 하나님의 복주심에 대 한 인간의 응답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오직 지족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감사와 기 쁨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됩니다.

 2.풍요로운 삶은 성령이 함께 하실 때 이루어 집니다.

 우리의 진정한 풍요와 만족은 성령이 함께 할 때 이뤄집니다. 요엘 선지자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떼와 가믐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 성에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두 가지입니다. 1)물질적차 원=메뚜기떼를 소멸시키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밀가루가 가득하고 독에는 포두주가 가득케 한다고 하셨습니다. 물질적인 복입니 다. 2)영적인 차원=하나님의 신인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다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 하리 로다." 1)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다시 찬양할 것이다.

2)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27)"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3)모든 백성이 기뻐한다.(23)"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 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 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4)민족적인 수치로부터 구원받는다.(26)"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물질적 부족함이 없고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삶이 진정으로 복된 삶입니다. 풍요 로운 삶입니다.

 우리는 자족하는 생활을 합니다. 있는 것으로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이루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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