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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의 부흥 (느 0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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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절과 6절을 다시한번 읽어봅시다.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광대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 에스라서를 읽다 보면 1장에서 6장까지는 총독 느헤미아가 중심인물 도 등장하여 예루살렘성을 중건하는데 숯한 어려움 가운데서 완성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8장에 들어오면서 중심 인물이 바 꾸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아에서 학사겸 제사자인 에스라 로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느헤미아는 예루살렘성을 재건했다면 에스라 는 허물어진 심령을 재건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폐허가 되었던 예루살 렘성에 성전과 적의 침략을 막기위하여 성은 쌓았지만 그 성안에 사 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의 재건 없이는 영적인 재건과 부흥이 없 이는 그 나라가 건재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풍요한 생 활을 누린다고 할지라도 국민들의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무장이 없이는 나라의 안녕과 번영의 미래가 보장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더나아가서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할 줄 믿습니 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앞 광장에서 새벽부 터 정오까지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뜨거운 열정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폐허가된 자리에서 어떻게 나라를 재건 할 수 있었는가의 원인을 볼것 같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뜨거운 사 모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1. 부흥의 원동력을 말씀에 대한 열망입니다.

 1절과 2절에 볼것 같으면백성들이 7월 1일에 수문앞 광자에 모여 남여 노소를 막론하고 말을 알 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모여서 학사 에스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와서 들려주기를 청했 던 것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과 아울러 그말씀의 참뜻을 알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이 참으로 바라 는 것은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는 교양 강좌나 철학적인 가르침이나 시사해석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의 말 씀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5:6에 산상보훈을 통하여 주신말씀이 "의에 주리고 목마 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의를 위한 갈증. 생명 의 양식에 대한 갈증을 가진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는 증거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비극은 말씀에 굶주려 있으면서도 굼주린 사실을 모르고 말씀을 구하지 않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문앞 광장에 모여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들 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므로 덕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으로 살아야함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시119:131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라고 한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던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벽 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재미있는 예화를 들어가면서 하는 설교가 아니라 율 법의 말씀을 그냥 낭독 하는데도 그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오정까지 여섯시간동안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여섯시간 동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그들에게 영적부흥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뿐만아니라 13절을 보면 그들에게 여섯시간은 오히려 부족했던 것 입니다. 이틋날 다시 모여 학사 에스라의 말씀을을 들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부흥은 목사 한 사람의 열정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의 열정이 있어야 될줄 믿습니다. 하 나님의 제사장 말씀을 바로 들려주는 제사장 에스라와 아울러 평신 도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재건에 열정을 쏟은 총독 느헤미아와 말씀을 사모하는 백성과 족장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과 동 시에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할때 부흥은 당연한 것입니다. 유대 역사상 진정한 부흥은 바로 이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말씀을 받는 자세

5절 말씀을 보면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위에 서서 저희 목전 에서 책을 펴니 펼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기립은 존경과 경 의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또한 6절에 보면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 할때 백서이 손을들고 아멘 아멘합니다. 아멘은 진리에 대한 동의를 뜻합니다.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뿐만아니라 몸을 굽혀 얼 굴을 땅에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씀의 권위는 말 씀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 말씀하신 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말씀의 인격 앞에 머리를 숙여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두고 말하기를 ' 그 사 람은 믿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못믿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 을 줄 앎니다. 왜냐하면 그사람의 인격은 하는 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때문인 것입니다. 어떤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으면 그 사람의 인격또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진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면 아멘합시다. 하나님은 한번도 약속을 변개시키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뿐 만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은 진리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사 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 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면 하나님의 말씀또한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 앞에 한번도 무릎꿇어 본적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말씀에 대한 복종이 없는 사람 은 진정한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는데 하 나님이 하신 말씀을 못믿는 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왜 여기 모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함인줄 믿습니 다. 아울러 하나님을 경외하며 에배하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좋은 강의나 도덕적이 교훈이나 철학적이 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생 명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인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 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시고 그 말씀대로 살 아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하여 종교개혁이나 부흥운동의 출발은 바로 이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돌아가는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 말씀의 권세는 우리의 영혼을 소성시키며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는 능력있는 있습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깨트리며 굴복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영적인 부흥인 것압니다.

 3. 말씀에 대한 반응 1) 말씀에 대한 깨달음 (7,8)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중에 깨달음이 큰 은혜인 것입니다. 에스라는 성경을 읽고 그것을 해석했 으며 해석한 말씀을 듣고 말씀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각성과 깨달음이 있은 곳에 교회의 부흥이 이루어질줄 믿습니다.

 2) 애통하며 슬퍼하며 근심했슴니다.(9절)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우리의 심령을 찔러 쪼갬니다.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선생들아 우리가 어 찌할꼬 가슴아파합니다. 우리는 말슴을 대할때 마가다 말씀이 우리를 고발하고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한 나를 책망합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 앞에 눈물로 고백합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 다. 눈물은 우리의 어두운 영혼의 창을 닦아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죄때문에 눈물을 흘리거나 그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애통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애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권고하 신다고 했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하 나님의 더 큰 은혜를 맛보게 될줄 믿습니다.

 3) 크게 즐거워했습니다.(12)

말씀을 통하여 참된 위로와 소망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에 즐거 워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 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고 믿고 의지할때 힘을 얻을 수 있으며 용기와 소망을 가질수 있기 때 문에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 볼때는 소망이 없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게될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능력을 의지함으로서 가지게 되는 기쁨이 야말로 성도의 참된 힘이되는 것입니다.

 4) 말씀을 더 밝히 알고자하는 욕구가 생겼습니다.(13절)

알면 알수록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더 깊이 알고자 했던 것입니 다. 믿음은 들음으로서 나기 때문에 말씀을 더 깊이 알수록 믿음도 그만큼 더 커갈 수 있는 것입니다.

 5) 말씀을 행동으로 옮깁니다.(14-18)

율법을 읽다가 칠월에는 나팔절과 초막절을 지켜야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율법외에 다른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아도 기록된 말씀이 이미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고 그명령에 따라 초막절 을 짖기시작합니다.

 결론:말씀을 따라 사는파 생활이 어떤 생활이겠습니까 (17) 큰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그 말씀대로 살아드린 다는 기쁨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 이후에 처음으로 맛보는 큰 즐거움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중심의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말씀으로 살아드릴때 기쁨과 즐거움이 가 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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