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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진단과 처방 (롬 01: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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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기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가 병원에 가는 일입니다. 의사 앞에 몸을 보이고 지시 받는 게 싫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싫은 일이 병원 가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병원에 자주 간 편은 아니지만 아주 안간 편도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병원에 가는 만큼은 저도 병원 출입을 한 사람입니다. 남에게 스스로 진단 받는 사실이 왜 그렇게 싫은지요. 여러분도 아마 싫을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장로님 한 분은 일평생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연세가 78세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저 분은 복 받은 분이구나’ 생각했는데 저는 아직 그런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살기 위해서 그렇게 가기 싫은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그렇게 만나기 싫은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부인들도 남 앞에 몸 내놓기를 그렇게 부끄러워 하면서도 살기 위해서 의사 앞에서는 ‘마음대로 하시오’ 하고 내놓습니다. 그걸 보면 부인들도 염치도 없습니다. 그만큼 산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신뢰하는 의사를 찾아갑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돌려서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 오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진단 받는 것을 죽어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빛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싫어합니다. 내가 만약에 완전무결한 건강을 가지고 있어서 전혀 흠잡힐 만한 것이 없다는 자신만 있다면 병원에 안 가도 됩니다. 의사 앞에 나를 보이지 않아도 됩니다. 가봐야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종합진단을 받으라는 말을 아주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행여나 뭔가 하나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싫어합니까 완전무결한 사람 같으면 싫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가면 자신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왜 싫어합니까 뭔가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 본 바탕에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싫어하는 본능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별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 제가 그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살고 싶습니까 찾아가야 합니다. 안 찾아가면 죽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만이 나를 완전하게 진단해 주실 수 있는 권위자요,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람의 한길 마음 속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진단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부가 20,30년을 함께 살아도 남편이 부인의 마음을 모르고 삽니다. 부인 입장에서도 남편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오리무중입니다. 그렇죠 우리집사람 있으면 말해봐요. 옥 목사의 마음을 알 수 있나요 모른다고요. 몰라요. 사람 마음을 몰라요. 그래서 동상이몽을 천번해도 몰라요. 사람이 사람을 진단 못합니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권위자 앞에 가야 하는데 우리 인간을 진단할 수 있는 권위자는 한 분뿐입니다. 누굽니까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분만이 내가 누군가를 정확하게 보십니다.
여러분, 그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1900년도 초반기에 자동차가 갓 나왔을 때 어떤 돈 있는 사람이 자동차를 사가지고 신기해서 저 미시간 들판을 몰고 가다가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한참 뜯어고치는데 아무리 고쳐도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문제점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지나가는 차가 고장난 차를 보고는 섰습니다. 거기에 어떤 사람이 내려서 고치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더니 “젊은이 잠깐 기다려요. 내가 해줄 테니” 하더니 뭐하나 슬쩍 만지니 엔진이 시동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신기해서 “선생님, 언제 그 기술을 익히셨습니까 감사합니다” 했더니 “예, 내가 헨리 포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죠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만들었으니 얼마나 정확하게 압니까 소리를 들어도 알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금방 알아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이십니다. 모든 인간을 만드신 분이요, 특히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여성들을 너무 아름답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좀 특별히 인물이 아름다운 민족들이 있습니다. 특히 중동의 여성들은 아름답습니다. 미국인 가운데서도 특별히 아름다운 계열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여성들은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미국 여성들보다 못한 것 같은데 하나씩 이런 데 와서 말하는 걸 쳐다보면 그렇게 예쁩니다. 참 우아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드신 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이죠. 남성들도 가만히 보면 남성들은 그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사람씩 뜯어보면 여자보다 훨씬 멋있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참 기가 막히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그렇게 정확하게 만드시고 우리 내부를 깊이 알고 계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나가야 내가 누군지를 압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넌센스요. 이것은 넌센스입니다. 이 성경을 읽을 때 이것은 진리구나 받아들였다면 여러분은 이미 천국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보아도 이상한 일입니다. 누가 한 이야기입니까 다윗이 한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초라한 목장 한 구석에 앉아 이런 말을 했다면 돌았구나 할텐데 왕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이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일인자입니다. 모든 면에서 일인자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다윗의 의견이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이 하고 싶은 말씀을 다윗의 표현으로 말한 것뿐입니다. 그럼 바꾸어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너는 누군고 하면 죄악 속에서 난 놈이야” 그 말입니다. 바꾸면 “내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하는 말은 “너는 누군고 하면 네 엄마가 널 밸 때 죄악 중에서 밴거야. 그러니 씨가 그렇고 그래” 이말입니다. 누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다윗의 입을 통해 인간이 무엇이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진단하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별 거 아니야. 잉태할 때부터 너는 죄 속에서 잉태했고, 날 때는 의인의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못했어. 죄인의 몸에서 났고,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너는 죄인이야. 근본적으로 너는 죄인이야.”
이 말씀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했습니까 얼마나 반발을 했습니까 교회에 나왔다가 죄인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얼굴이 파래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사랑이시다」하면 좋겠는데 한번씩 가다가 기분 나쁜 소리를 섞습니다. 그 말이 뭐요 “죄인이니까 회개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 말을 참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단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의사 앞에 가서 “당신 아무래도 장기치료를 해야 하겠습니다” 하면 그 말만큼 듣기 싫은 소리도 없지만 수긍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사의 권위 때문입니다.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렇게 진단할 때에 우리는 말합니다. “그래요. 나는 지금까지 성선설을 믿어 왔는데요. 하나님, 나는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믿었는데요.” 하나님이 “누가 그러더냐” “글쎄요, 맹자가 말을 해서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믿어 왔어요.” “그래, 자신 있느냐 나하고 한번 토론 해볼까” “아니요. 자신은 없어요. 그렇게 믿었다는 것 뿐이에요.” “그러면 너는 내 말을 믿어야돼. 인간은 성악설을 믿어야돼. 본래부터 악한 존재야.”
여러분, 솔직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내 마음에는 왜 그렇게 악한 생각이 많이 일어납니까 뭔가 질이 안 좋아서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러 번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악한 생각을 종이에 한번 적어 보시래요.
목사라도 악한 생각이 일어나는데 목사 아닌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맞죠 어느 정도입니까 가만히 있어도 밑에서 올라오는 생각들, 밑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을 테스트 해보세요. 선한 것이 몇 가지나 됩니까 조금만 자기가 불편해도 미움이 나오고, 조금만 손해가 간다고 생각하면 참지 못하는 미움이 무럭무럭 피어오릅니다. 무엇인가 질이 나쁠 것입니다. 자기를 낳은 부모를 미워하는 것도 시간문제이고, 그렇게 몸을 섞어가면서 일생을 살겠다고 약속한 부부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원수가 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 아닙니까 인간이 본래부터 선하다고요 천만에요. 우리 인간은 바탕이 나쁩니다. 악합니다.
10평짜리 아파트 살 때에는 내가 40평짜리 아파트에 살면 모든 소원이 다 풀리겠다 했습니다. 그럼 40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하니까 악이 없어졌나요 자동차를 샀습니다. 자동차가 없을 때는 내가 자가용 몰고 다녔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자동차를 샀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신나게 자동차 탈만 했습니다. 그 다음에 악이 없어졌나요
인간은 별거 아닙니다. 잘살면 잘사는 대로 악은 더 발달하고 생각은 더 간교해지고 욕심이 채워질수록 더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너는 죄악 중에 태어났어. 네 엄마가 너를 잉태할 때도 죄 속에서 잉태했어. 그러므로 너는 질이 죄인이야.”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그렇습니다. 내가 나를 봐도 부인하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물어보세요. 하나님, 별로 걱정스러운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불안한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네 속에 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요, 하나님, 가을이 되었는데 허무감 같은 것이 더 드네요. 하나님의 심정도 그러시나요” 하나님이 뭐라 그래요 “인생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허무감이 찾아오는 거란다.” 모든 바닥이 다 잘못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진단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유전적으로 죄인이요, 우선적으로는 바탕이 악하게 태어났습니다. 믿습니까 당신은 뭐가 그렇게 선해서 하나님을 안 받아들입니까 자기 기만을 어지간히 하시라고요. 하나님 앞에 가서 자신이 선하면 얼마나 선하겠어요. 자, 이렇게 본질이 악하니까 발병이 되지요. 증세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 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4)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압니다. 여러분이 절간에 가는 이유는 신이 있다고 믿으니까 가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본능적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안다고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있어요. 이것은 부인하지 못해요. 하나님이 오죽 잘 알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너희들이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좀 알지만 그렇게 알면서도 그 다음에 뭐요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이 자리에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 교회만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분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시겠다 그러면 이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모시겠다,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자. 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대우해 드린 분이 있나요 기껏해야 자기가 답답하니까 “뭐 해주세요. 뭐해 주시오. 어떻게 되겠습니까” 했지요. 하나님으로 대우해 드린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탕이 죄인이니까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감사치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오히려 어떻게 합니까 그 생각이 허망하여져서 마음이 미련하게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자칭 자기는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지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자기가 자기를 바보라고 생각은 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스스로 지혜 있다는 것이고, 자칭 지혜자라고 하는 것뿐이지 사실은 우둔한 사람이요, 우준하게 되어서 기껏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모습 우상으로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본래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조금 찾으니까 무슨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격하시켜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끌어내려서 돌멩이를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어떤 형상을 세워 놓던지, 아니면 자기가 생각할 때 ‘이런 것이 하나님이겠다’ 하는 식으로 만들어 가지고는 앞에 세워놓고 절하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을 격하시켜 버렸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절에 가서 부처에게 절을 왜 합니까 거기 가서 절하며 복을 받겠다는 마음은 도대체 무슨 마음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대로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악한 데서 나오는 발병증세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8-31)
또한 저희가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아무도 인간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얼마나 거부반응이 심한지요.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 그대로 내어버려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디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해봐라 했더니 하는 짓이 무엇입니까
곧 모든 불의, 추악한 것, 탐욕한 것,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조금 있는 것이 아니라 가득합니다. 또 뭐합니까 수근구슨 잘합니다. 남 비방 잘합니다. 나중에는 그것이 더 발전해 가지고 뭐해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이 되고, 탐욕하고, 그러면서도 제 잘난 맛으로 교만하고, 그것도 모자라 제 자랑하고, 악을 도모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우매하고, 야속하고, 마음 바꾸는 배악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전부 몇 가지입니까 22가지입니다.
이것도 전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만 뽑아 놓았습니다. 자, 여러분, 이 가운데 연필을 들고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들을 뽑아 보세요. 있어요 몇 개나 됩니까 성경 앞에 아니 하나님 앞에 나와 성경을 펴놓고 보아야만이 내가 누구라는 것을 정확하게 압니다.
오, 불쌍한 형제 자매들이여.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아니하니까 다 의로운 것처럼 보이죠 여러분, 이 불빛을 다 꺼버리면 캄캄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 화장을 한번 해보세요. 자신 있습니까 화장품 좋은 것 다 갖다 줄 테니까 해봐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지 해봐요. 그 중에서 화장하고 나는 굉장히 예쁘고 참 얼굴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래요. 어둠 속에서는 제맘대로 화장하고 스스로 만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번 불을 켜 볼까요 여러분 얼굴 한번 보실래요. 하나님 앞에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전부 잘났나이다. 다 의롭다, 선하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 앞에 서서 여러분 자신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누가 감히 얼굴을 들 수 있습니까
그 다음에 읽은 부분을 계속합니다. 22가지가 나왔지요. 그 다음에 또 가소로운 것이 있어요. 저희가 이와 같은 22가지 일을 행하면 당연히 죽어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그 다음에 뭐요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당연히 죽어야 할 줄을 알면서 그 일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자는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입니까 이런 죄인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진단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자,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지 모르지요. 물질적으로 잘 살고 건강하면 80, 100살까지도 살 거예요. 그러나 한 가지 근본적으로 악한 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지 않으면 갈 곳이 한군 데 있습니다. 어딘지 아십니까 다 같이 읽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심판 받는 자리에 갑니다. 그곳을 성경에서는 지옥이라고 합니다. 영원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할 때에 여러분 마음이 컬컬하니까 믿으세요 하는 것은 전부 사이드에 속하는 한 마디로 말하면 사소한 문제입니다. 예수 믿고 불안이 없어지고, 예수 믿고 갈등이 없어지고, 감사가 넘치는 것은 당연히 돌아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50% 세일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으면 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 앞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맞아요. 누가 50% 세일을 사기 위해 백화점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쩌다가 만나면 싼값에 얻는 것입니다. 마음 편하라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받고, 자녀도 잘되고, 그 다음에 병이 낫는 것은 예수 믿고 내 문제 해결 받았을 때 하나님이 덤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뭡니까 오늘 저녁이라도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면 두 길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가는 길이 있든지 심판 받는 길로 가는 길이 있는데 당신이 숨이 끊어질 때 당신이 어느 길로 가라고 손가락질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데 ‘옥 목사 말은 거짓말이다’ 반박할 자신이 있어요
저는 성경을 근거로 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의존해서 반박합니까 두 길이 있습니다. 여기는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곳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고, 심판 받는 자리에 가면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다시는 돌아 나오지 못합니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는 뒷걸음질치지 못합니다. 이 두 길이 있기에 우리 앞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는 근본이 죄인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해야 만이 내 앞에 올 수 있다. 만약에 해결하지 않으면 심판의 자리로 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러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합니까 하나님의 처방을 봅시다. 하나님이 약을 하나 주셨어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이 말씀은 피를 흘리지 아니하면 내 근본적인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를 가지고라야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결과가 뭐라고요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죽음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생명과 동등한 값을 가진 피가 흐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어떤 피입니까 죄가 없는 피라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이 죄의 문제는 피를 통해서만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러분이여, 어디서 이 피를 구할 수 있습니까
남편에게 가서 “여보, 내가 죄인이라는데 내 죄가 용서받으려면 피가 필요한데 당신의 피 좀 주세요” 하면 뭐랄까요 부인보고 “여보, 내가 지옥가게 생겼는데 마지막 소원이요, 내 대신 피를 흘려주시오” 하면 피를 흘려줄까요 세상에 그런 남편이 어디 있고, 그런 아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애지중지 기르던 막내놈 앉혀 놓고 “애야, 엄마가 죄를 용서받기 위해 피가 필요한데 네가 좀 흘려주지 않겠니” 하면 아들이 줄 것 같아요 듣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 똑같이 죄 속에서 태어난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의 피는 죄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별 수 없어요. 사람은 아무 것도 별 수 없습니다. 결혼하기 전의 사랑이 진짜 뜨거운 사랑이 아닙니까 연애하는 젊은이들의 사랑은 기가 막힌 사랑 아닙니까
암에 걸린 형제가 1년 동안 치료를 받는데 마지막 고비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주사를 맞고 치료를 하다보니 머리는 다 빠지고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사랑을 하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와서 마지막 봉사를 합니다. 24시간 거의 붙어서 봉사를 합니다. 이 환자와 결혼하기 전인데 남자의 대소변까지 다 받아내면서 수발을 합니다. 제가 옆에서 가만히 지켜봤어요. 여자에게 남자가 “너 나 죽으면 같이 죽을래 죽기 전에 나하고 결혼하자.” 제가 옆에서 가만히 여자의 얼굴을 봤어요. 그렇게 봉사하는 걸 보면 무덤에까지 들어갈 것 같았어요.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자 장례식 날 까무라친 것 외에는 그후에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인간이라는 별거 아닙니다. 누가 나를 위해 피를 흘려줘요 누가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 감사할 일일 하나 있어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나를 위하여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요 그러므로 나를 심판 받는 자리에 보내지 않기 위하여, 나를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피를 씻는 의인의 피가 필요한 나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피흘리는 자리에 내 대신 내어주고 나를 대신 살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내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자동적으로 자기의 모든 죄, 어머니가 나를 잉태할 때부터 심어진 그 무서운 죄악의 씨까지 하나님이 전부 다 용서하시기로 작정해 놓으셨습니다. 예수 믿으면 십자가에서 의인의 피를 흘려주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한 순간에 하나님이 나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아멘!
제가 지금 이걸 전하려고 하는 겁니다. 제 기분은 이렇습니다. 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나 하나님의 기분은 무엇인지 아세요. 돌아오라! 저는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그러니 믿고 싶으면 믿고 싫으면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밑지지 제가 밑집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옥 목사가 상대가 안될 만큼 큰 사랑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지옥이라는 곳, 심판 받는 곳, 죄인이 가는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그곳에 가지 않도록 “어서 돌아와! 어서 돌아와! 어서 돌아와서 제발 예수 믿고 네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아라” 오늘도 여러분을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또 뭡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 사랑의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지 않습니까 같이 머리 숙이십시다. 눈감고 자기가 데리고 나온 사람의 손을 꼭 잡아주세요. 성령께서 이 시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형제 자매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하시고, 나를 위하여 피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겠다는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꼭 쥐고 함께 기도하고 나중에 끝나고 밖에 나가서 차를 마실 때 “너 예수 믿을래” 한번 물어 보세요. 아마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 기도 ▣
아버지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어머니가 잉태할 때부터 이미 죄인으로 잉태했고,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도 죄인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와서 말씀을 펴놓고 내가 누구인가를 진단 받을 때 나는 너무나 흉측하고 더럽고 악한 존재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오-하나님 아버지, 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나를 대신 위하여 피를 흘려줄 의인이 있어야 하는데 세상에 그 누구에게 가서 나 대신 피를 흘려 달라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은 그도 나와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입니다. 오-하나님, 우리가 구원받을 길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이 죄 없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의인의 피를 흘려주시고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붙들기만 하면 무조건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하나님이야말로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형제 자매들 중에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형제 자매가 있으면 주여, 이 시간 불러 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 주님의 품으로 불러 주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예수 믿고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영원한 생명, 하나님 앞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받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그래서 남은 여생 우리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생애들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예수 안 믿는 형제 자매들을 인도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주여 마음의 즐거움을 주시고 해산의 고통을 기쁨으로 감당하도록 해주옵소서. 데리고 온 형제 자매가 금방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계속 위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중보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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