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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안의 봉사부터먼저 (롬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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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은혜 받았던 내용을 잠시 생각해 보겠씁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았으면 그 사람의 삶도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 면 인격이 구원을 받았으면 그 사람의 생활도 구원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하면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 몸으로 뛰는 전생활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의 일만이 아니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전 부를 통틀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 되게 하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서 우리는 주님께 영적제사를 드릴수 있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영적제사는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섬김의 생활,즉 봉사의 생활이라고 함께 생 각했습니다. 이와같이 섬김의 생활을 바로 할려면 시간시간마다 말씀을 통 해서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 늘 살피고 기도를 통해서 확인한 다음에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몸으로 뛰는 전생활권이 다 하나님께 제사드릴수 있는 제단 이요, 또 우리의 생활전부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된다면, 구체적으 로 어떤 것인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3절 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부터 우리의 몸을 하나님 앞에 산제사 로 드려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3-13절까지는 교회안에서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산제 사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부터 14장 끝까지는 세상에 나가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산제사드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니까 순서적으로 볼 때에 교회 안 에서 먼저 하나님을 위하고, 형제를 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봉사의 우선 순위가 교회 쪽에 먼저 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믿는 교회 사람들에게 제대로 못하는 봉사를 세상에 나가서 잘할수 있다는 것은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설교는 이것에 근거해서 교회 안에서 하는 봉사-이것이 왜 우선 되어야 하는가를 자세하게 말씀 드릴려고 합니다.

한세가지로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는 우리의 몸이요,또 우리는 그 몸의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체라고 합 니다.

말을 바꾸면 우리가 그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몸 입니다. 내 몸입니다. 5절을 봅니다.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지체가 되었느니라 이것을 보면 교회는 몸이라는 것을 금방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대원칙을 하나 세워 주셨는데, 그것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보세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려고 한다면,네 이웃은 네 몸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교회를 놓고, 내 몸이라고 생각하고,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할 때에 이것은 훨씬 차원이 달라집니다.

교회에서 다른 형제를 섬겨라하면,그 것은 네 몸과 같이 섬겨라 하는 것보 다도 더 농도가 짙다는 것입니다.무엇을 섬기라는 말입니까 네 몸을 사랑 하라! 네 몸을 섬기라는 말과 같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내 몸처럼 사랑하고 섬기라고 했습니 다. 그러니까 내 몸을 앞세워야지요.

이런의미에서 교회의 봉사는 어느것보다도 우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 기 몸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 섬긴다고 나가서 큰소리 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교회 안에서 내 몸이라고 할수 있는 다른 형제들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사랑을 실천하고, 이웃을 위해 서 봉사한다. 이것은 헛소립니다. 먼저 할 일이 있어요.

 두번째로는 우리 모두가 교회에서는 몸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체라는 말은 몸에 붙어 있는 모든 기능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 리 역활을 할수 있고, 어떤 사람은 손의 역할을 합니다. 지체가 되었다는 말은 섬겨야 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4절을 봅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몸은 하나 밖에 없지 않아요. 그러나 그 몸에 붙 어 있는 여러가지 기능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기서 직분이라는 것은 교회의 직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의 기능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체가 똑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 습니다. 손은 손대로,눈은 눈대로, 발은 발대로 다 각각 기능이 다릅니다.

왜 지체마다 기능을 갖고 있습니까 몸을 섬겨야 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렇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많지만 똑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6절을 볼까요!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그랬습니 다.

황목사가 받은 은사가 다르고, 이 교회에서 해야 할 책임이 다릅니다.여러 분들 개개인이 똑 같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똑 같이 믿어서, 똑 같이 예배드리고, 똑 같이 헌금하고,똑 같이 교회에서 시키는 일을 하고 다 같지 않느냐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만 사실 엄밀하게 따져보면 사람사람 따라 서 그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일을 하도록 성령이 그 사람에 게만 주신 특별한 재능이 있어요.재간이 있어요. 능력이 있어요. 이것을 일 컬어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은사라고 합니다.

몸된 교회를 잘 섬기라고, 우리에게 사람따라 믿음따라 이런저런 은사를 주님께서 다 주셨습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다 주신 것이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6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은사를 못받았다면 지체가 아닐 것입니다. 지체라면 반드시 그 지체의 역할을 하도 록 은사를 반드시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은사를 받았으면 몸을 위해서 일해 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라고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묻어 두고 있으면, 그 사람은 나중에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주님을 통해서 굉장한 꾸중을 들을수 있습니다.

 그 은사는 첫째는 예언이고, 둘째는 섬기 것이고, 가르치는 것,권위하는 것는 것,구제하는 것, 다스리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 이렇게 여섯가집니 다.

이것을 가만히 보면 이것이 무슨 은사냐, 어디 가르치는 사람이 한두명이 냐,섬기는 일을 다 해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섬긴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은사를 받은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있어요. 독특한 사람이 있어요.

우리 교회에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은사를 우리 성도들에게 많이 주셨으 면 좋겠어요.

가르치는 은사도 마찬가집니다. 교회학교 교사나 속장을 하면 다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러나 막연히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가르 쳐도 그 중에서 별나게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사람이 있습니다.그러므로 그 사람 밑에서 배웠다 하면 사람이 훽훽 달라지는 거예요. 생활이 바뀌어요.

놀라운 능력이 따라와요. 그 사람은 은사 받은 사람이에요.

다스리는 것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면 다스리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다 리더쉽이 있는 것 아닙니다. 아무리 목사가 되어도 리더쉽이 없는 사람 이 있어요.

그런데 유난히 사람을 잘 끌어가는 리더쉽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이런 것 들을 이야기 합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특별히 구제 사업에 사명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돈 많다고 다 구제를 합니까 돈이 별로 없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남을 위해서 쓰기를 좋아 하는지 그 것 받은 은사가 달라서 그래요.

권위하는 은사가 있지요.-권위하는 일은, 남을 격려하고 남을 붙들어 세 우고,위로하는 상담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귀한 은삽니다.

한 사람에게 세사람이 가서 권면하고 위로 하는 데, 두 사람은 그를 감동 시키지 못했어요. 그러나 그 중의 한사람은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는 데, 그 사람 때문에 주저 앉았던 사람이 용기를 얻어서 일어 납니다. 그러 면 세 사람이 똑같이 했는데 한 사람이 그와같은 놀라운 열매를 맺느냐 은 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래요.

이런 여섯가지 은사가 있는데 이 여섯가지 가운데 여러분들이 특별이 알았 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있지요 무엇입니까 야, 예언 좀 할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래서 우리 시어머니 나이가 들어 서 망령을 부리는데 언제 돌아 가실지 탁 알아 봤으면 ....아마 그런 생각 을 하실지 모르겠어요. 나를 달달 볶아대는 상관이 있는데 그 사람이 어떻 게 될까 내가 좀 알수 있었으면 통쾌할 텐데.

예언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이런 흥미있는 상상을 불러 일으킬수 있는 매력 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울은 예언을 참 높이 평가를 했습니다. 고전 13장에 들어가서 보면, 특 별히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언과 방언을 비교해 가지고 는 방언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고,유익을 주지 못하지만,예언은 알 아 듣는 말을 가지고 하는 것이니까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고 권위하고 또 사람들을 안위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참으로 예 언이 좋은 은삽니다.

 그러면 예언이 무엇이냐 이 예언에 대해서 두가지 아주 대립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 말씀을 많은 사람에게 가르쳐 주 고,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꿈을 이야기 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해석합니 다.그것 빼놓고 나머지는 절대로 인정을 안 하는 입장을 말합니다. 특별히 성경이 66권으로 완성이 된 다음에는 예언이라는 은사-즉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예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까지 말합니다.

제가 볼때에는 가장 건전한 해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가르치고 교회를 지도하는 목사는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평신도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히 깊이 깨닫고 신령한 지혜의 말을 할수 있는 사람들은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미리 파악하고 그 뜻을 이야기하는 자를 가리켜서 구약에서 는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뜻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아뢰는 사람을 제사장이라 고 합니다.그러면 예언은 어느쪽에 속하는 것입니까 선지자의 편입니다.

그러며 오늘날 신약시대의 모든 성령 받은 사람들은 성령이 임하므로 너희 의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요,꿈을 꿀 것이요,환상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예언과 꿈과 환상은 전부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깊 고 오묘한 복음을 들어 내는 것이고,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꿈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 받은 우리는 모두다 예언하 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예언을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좀 더 특별하게 은혜 받고,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야기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해석으로 예언을 보면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일각에서는 그 해석을 받아 들이지를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 다.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지요.

글자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언이 있다. 사람의 장래에 대해 서,그 사람의 신수에 대해서, 사업이 잘 될 것이냐 못될 것이냐를 놓고 계시를 받아서 예언을 할수 있다. 그 일례로 행 11:28절에 보면 아가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지요.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계시를 받았어요. 얼마 지 나지 아니하면 저 소아시아 지역 전체가 큰 흉년이 들것이라는 계시를 받았 습니다. 교회 앞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글라디오스 황제 때 에 진짜 흉년이 들었어요. 그런 예언이 오늘날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견해를 놓고 어떻게 판단하고 받아 들일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제가 볼 때에는 이런 해석을 전적으로 틀렸다고 하면 안됩니다.

왜 그런고 하면 전진전능하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필요하면 이와같은 예언을 할수 있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 주실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있을수 있 습니다.

좋은 예를 하나들지요.

우리 나라가 일본과 합방을 하고 나서 약 30년이 흘렀습니다. 일본은 전쟁 에서 점점 불리 해 지니까 자꾸 한국교회를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자들 을 잡아 가두고 강제로 일본 천황에게 신이라고 고백하고 절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거룩한 성도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아주 비상시기라는 말 입니다.

이 때에 하도 급하니까 하나님이 박관준장로님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셨습 니다.그 분은 의사였고 믿음이 아주 투철한 분이었습니다. 이 분에게 하나 님이 예언의 은사와 할 내용을 가르쳐 주셨는데가[일본에 가서 이렇게 일본 지도자들에게 예언하라] 일본이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유황불을 비같이 쏟아 내려서 이 나라를 멸망시키겠다 고 말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 다.-따지고 보면 어디에 있는 내용입니까 요나서에 있는 내용이지요. 하나 님이 요나에게 니느웨성에 가서 웨치라고 한 내용하고 똑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갈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본 말을 할 줄을 알아야 지요. 한국말로 아무리 웨쳐 보아야 그것은 방언이지 예언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일본 말 잘할수 있는 사람을 나에게 붙여 주세요. 나와 함께 가서 이 예언을 하고 죽을수 있는 사람을 나에게 붙여 주세요.그래서 박관준 장로님을 인도해서 일본의 지도자를 찾 아가게 한 사람이 안이숙여사였습니다. 그래서 안이숙 여사를 데리고 같이 일본 국회의사당에 가서 너희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리시는 유황 불에 망한다고 말하다가 둘다 붙잡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예언한 것입니 다. 6년 후에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원자폭탄을 맞은 세계의 유일한 나 라가 되지 않았습니까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유황불이 하늘에서 내린다고 예언하지는 못하 지요.

무언가 독특한 것을 보고 하나님이 예언을 하게 한 것이니까.

이런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경우, 하나님이 자기 교회를 위해서 무엇인가 미리 말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특별한 필요성이 있을 때,하나님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나 없이 다 예언을 한다고 야단입니다.산에 가서 기도 좀 하고,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조금 무엇을 본 것 같으면 그 다음부터는 예언 을 한다고 법석이네.세상에 이래서 문제가 됩니다. 왜 그런고 하면 예언에 대해서 너무 몰라서 그래요. 그런 사람을 마귀가 이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점을 칩니까 안 칩니까 얼마나 잘 칩니까. 9

9.999%의 확 률로 맞춥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이 있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점쳤다는 것 밖에는 다른 것이 아니지요. 사실은 마귀가 하는 짓을 교회 안에서 그대로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지 몰라요.

 어떤 사람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신령하다고 찾아 가서 사업을 할까요 말 까요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면 잘 될것이니까 시작을 하라. 돈을 잘 벌 면 얼마를 헌금을 해라. 말을 했습니다. 신이 나서 사업을 했는데, 가지고 있던 것까지 다 날렸어요.그래서 화가난 이 사람이 그 점을 쳐준 사람을 고 소를 했습니다. 그 예언을 해준 사람이 교회의 권사에요.

그러므로 가장 안전한 길을 무엇이냐 말씀 안에서 깨닫고 하나님 나라에 관계 되는 것,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 되는 것, 좀 깨달은 것 있으면 그것으 로 만족해야지 그 나머지 이상한 것 하면 안됩니다. 그런 사람의 말을 들어 서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대에 이런 은사를 받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 가시면서 보혜사 성령 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알려 주시죠. 또 성경을 통해서 다 보여 주셨는데, 무슨 예언자들이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까

여러분의 은사가 무엇입니까 그 은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 다. 그리고 한사람도 제외 됨이 없이 사람마다 다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기 억하시기를 바랍니다.그러므로 은사가 있으면 섬겨야 됩니다.은사는 바로 소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3. 다른 봉사의 태도를 교회에서 배우고 훈련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남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해서 전부가 다 유익하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덕 을 끼치는 봉사가 있고 그렇지 못한 봉사가 있을수 있습니다. 무엇이 바르 게 하는 봉사인가를 알려면 교회에서부터 배우고 봉사하는 자로서의 옳바른 인격을 내가 먼저 터득한 다음에 세상에 나가서 봉사하는 자로서의 삶을 살 려고 해야지 그것을 배우지 못하고 갖추지 못하고 함부로 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옳바른 봉사를 할수 있는 훈련이 왜 필요하냐 무엇이 바르게 하는 봉사인가 하는 것이 3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 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 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꼭 분수에 맞는 은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가 봉사를 할 때에는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 분수 안에서 지혜 롭게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 아닙니까 그러므로 옳바르게 봉사하려면 겸손을 배워야 합니 다. 어떻게 겸손할 수 있습니까 우선 자기 분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그 래야 겸손합니다. 그 이상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황목사와 여러분의 믿음이 다릅니다. 옆에 앉아 있는 형제와 여러분의 믿 음이 다릅니다. 믿음의 양이 틀리고, 그릇이 틀려요. 누가 그것을 정확하 게 아시느냐 내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정확하게 아세요. 그러므로 그 사람 에게 꼭 맞는 분량의 은사를 주십니다. 지나치게 주시지 않아요. 너무지나 치면 옷이 커서 사람이 입고 다닐수 없는 것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똑같은 은사도 받은 것이 아니며, 똑 같은 것이라고 하더 라도 같은 양의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그러므로 내가 할수 있는 일을 곁에 있는 형제가 못할수도 있고, 곁에 있는 형제가 하는 일을 내가 못할수 도 있습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못 받은 은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 다.또 자기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다른 형제에게 내게 없는 은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 는 것입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가 내가 중요한 것처럼 다른 형제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교회에서 가끔 보면 굉장히 어려운 사람이 있어요. 남보다도 뜨거운 열심 을 가지고 섬기는 사람입니다.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를 위해서 봉사 한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뭐 좋게 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입 니다. 나 아니면 안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뛰니까 문제가 됩니다. 참 이 거 문제입니다. 얼마나 골치덩어리인 줄 몰라요.

이런 사람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거예요. 하 나님 다양한 은사를 주셨는데, 나 혼자 다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이것은 목사든,장로든 마찬가집니다. 혼자서 다 할수는 없는 것이에요.

 우리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해야 하는데, 정직하게 평가하는 눈이 없어졌어요.비록 자기가 받은 은사가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에 비해서 광이 않나는 은사일수도 있습니다.남이 알아 주지 않는 은사일수도 있습니다. 그 러나 겸손한 사람이 누구냐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줄 알고,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가지고 말없이 빛없이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의 미국의 힘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서 한 나라 를 위하는 통일성을 가질 때에 나오는 힘때문이 아닙니까 소련은 획일적으 로 하나 같이 만들어서 미국을 상대하다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민주당 후보로 나왔던 잭슨 목사는 듀카키스 후보에게 진후에 이렇게 명 연설을 했습니다.

[듀카키스 당신하고 나하고는 너무 다르다.

당신의 부모는 의사지만 나의 부모는 하인이었다.

당신은 미국에 올 때에 이민선을 타고 왔지만,우리 선조는 노예선을 타고 왔다.

당신은 백인이지만 나는 흑인이다. 다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한 배를 탄 사람으로서 이렇게 사는 것은 바로 미국을 위해 서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파워는 누비 이불과 같은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자기집이 너무 가난해서 어머니는 아이들을 덮어줄 이불을 만들려고, 털 헝겊이라든지,방수천이라든지,부대자루라든지,실크천 조각이라든지, 내 버 리는 모든 천조각은 닥치는대로 모아서 간신히 애들을 덮어 줄수 있는 누비 이불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미국의 힘은 바로 이 누비 이불의 문화에 있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이 아닙니까

우리 산돌교회에 한번 보세요.

사는 형태가 다르지요. 지식수준이 다르지요. 재능이 다르지요. 성격이 다 르지요. 특히 요즈음 새로 나오시는 성도들을 보면, 저런 분들이 우리 교회 에 어떻게 나왔을까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앞으로는 더 그럴 것입니다.

왜 이렇게 모아 놓았느냐 서로가 섬김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큰 일을 해 내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사람이 교만해집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는 몇가지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댓가지의 은사가 있어야 목사가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들이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뛰어나고 어떤 것은 그저 그렇고 어떤 것은 있기는 있는데 좀 신통치가 않아.

 하이벨 목사는 자기의 은사를 점검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리더쉽,둘째는 복음전하는 것,셋째는 가르치는 것,넷째는 행정,조 직 이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리더쉽과 복음 전하는 은사가 뛰어난데 그것을 활용하기 보다는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가 이렇게 다운이 되어서 허우적 거린다고 생각를 하고는 겸손하게 자기보다 훨씬 잘 가르치 는 목사를 초빙해다가 가르치는 일을 맡기고 자기는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 을 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지를 못해서 교회들이 문제가 생기지 않아요.

 여러분 저에게는 어떤 은사가 있다고 보십니까 가르치는 것, 복음 전하는 은사, 심방-권위하는 은사, 이것을 활용할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여러분 들은 어떤 은사가 있습니까 교회에서 섬기지 못하면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잘 할수가 없어요. 지금보 다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더 분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더 활 기차고 더 큰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할 것입니다.

 찬송 383장 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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