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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안에서는 이렇게 봉사하라 (롬 1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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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 맥을 잘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영혼만의 구원이 아 니고 우리의 몸까지도 구원 받았다고 했습니다. 몸이 구원 받았으니까 몸이 활동하는 활동영역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수 있는 제단이 되어야 하고,제사의 영역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산제사를 드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 하는 봉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디서부터 봉사할 것입니까 교회 안에서부 터 봉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인 동시에 우리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까운 형제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지 아니하면 세상에서 섬긴다는 말은 거짓말이 되기 쉽 습니다.

이 일을 하게하기 위해서 성령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다양한 은사를 한두가지 씩 은사를 주셨습니다. 형제를 섬기고 교회를 봉사하기에 필요한 재능도 주셨 고 능력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자기 받은 은사대로 겸손하게 형제를 섬겨야 합니다.형제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시간까지 제가 말씀드린 요집니다.

 그러면 이시간에는 교회 안에서부터 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 가 꼭 따라야 될 네가지 법칙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본적인 원리라고 해도 좋습니다.

 봉사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봉사라고 해서 다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운동장에서 뛴다고 다 경기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법칙대로 해야 경기가 되듯이,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하고 주님을 위하고 열 심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봉사한다고 해서 다 봉사가 아니라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가르쳐준 법칙대로 원리대로 봉사해야 비로소 봉사가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교회마다 크고작은 시험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사람의 힘으로 수습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자주 당하는 것을 봅니다.그런 교회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교회 안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렇게 어려워지는가 그것이 아니드라는 말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은 교회마다 다 있어요.

수가 적고 많고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형제들을 위해서 뛰고, 재물 바치 고,시간 바치고 정력 바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있는데 교회가 왜 어려움을 당합니까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원리대로 봉사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 다.

어떤 교회를 보니까 너무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이 몇 10명 있는데 이 사람 들이 어떻게 텃세를 많이 하는지 다른 사람이 붙을 수가 없어요.

몇사람은 신이나서 좋은데 새사람들이 들어 오지를 못해요. 심지어는 교역자 까지도 몇년 견디지를 못하고 자꾸만 쫑겨 나가요. 텃세를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조그만하고 교역자는 자꾸만 갈리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 다. 여러분 이것이 봉삽니까 그 사람들이 걸리는 돌이 되고, 쓴뿌리가 되어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가지고 헤치는지 ... 통탄할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법칙대로 봉사해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봉사가 되고 교회와 형제에게 유 익을 주는 아름다운 봉사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 봉사하기 위해서 꼭 명심하고 지켜야 될 원 리를 몇가지 이야기 합니다.

하나하나 뜯어 보면 12가지 정도가 나옵니다만 그것을 간결학게 요약하면 4가 지로 말할수 있습니다.

 1. 사랑으로 봉사하라.

 2. 열심으로 봉사하라.

 3. 어려워도 봉사하라.

 4. 나누면서 봉사하라.

 1. 사랑으로 봉사하라.9-10절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사랑은 진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연극을 하듯이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선반 사랑이라는 말들어 보셨습니까-선반 위에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을 내 손에 넣기 위해서는 아양을 떨기 도 하고,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합니다.

무엇인가 나에게 유익이 있겠다,또 무엇인가 나에게 돌아올 것이 있겠다하는 계산을 하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위선잡니다.거짓된 사랑입니다.

 또 진실한 사랑은 악을 미워합니다.

내 마음에 악을 가지고 형제를 대하면 반드시 그 것은 해하게 되어있습니다.

악한 마음은 다른데 가지 않습니다. 마음에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듯이 말하고 행동을 하면 겉으로 금방드러나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 의 악이 언제인가는 형제를 해치게 되고 형제를 잘못된 곳으로 끌고 가게 됩 니다.

그러므로 악을 미워하고 형제를 해칠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미워해야 합니 다.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형제에게 유익이 되는 선이라고 하면 나 자신을 희생하고라고 그 것을 따를려 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선에 속하라 하는 말은 더 적극적으로 해석을 하면 선에 매달리라 하는 말입니다.

선한의도 선한 감정 선한 목적 선한 동기가 없이는 진실로 사랑할 수가 없습 니다.

 그리고 10절에 가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라 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성도들은 한 형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분이나,이제 갓들어온 분이나 안면이 있는 분이나, 없는 분 이나 가리지를 말고 일단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산돌교회에 소속이 되었으면 우리는 한형제 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을 할수가 있습니다.

 동시에 형제들을 대할 때마다 인간적인 조건을 가지고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이런 교훈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들 중에 8-90%는 사람을 대할 때에 먼저 인간적인 조건을 가지고 구별을 합니다. 자기보다도 인간적으로 조금만 뒤떨어졌다면 무조건 얕잡아 볼려고 합니다.

얼마나 인간의 마음이 고약한지 생각만 하면 끔찍할 정도입니다.뭐가 잘났다 고 그런 생각들을 가지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인간적인 조건 가지고 멸시하지 말고 누구든지 남을 나보다 높게 여기고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사랑이 빠져 버리면 하나님 앞에 남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시한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굉장한 은사를 받아서 방언을 합니다.

굉장한 은사를 받아서 성경을 풀어서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굉장한 은사를 받아서 재물을 털어서 사람들을 구제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은 손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사랑없이는 무엇인가 할려고 하는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왜 해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해봐야 아무 가치도 없으니까 해 봐야 하나님 이 받지도 않으시니까

사랑은 주님이 주신 새 계명입니다.

요 13:3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사랑하라.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사랑하라.

옛 계명은 무엇입니까-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차이를 아시나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자기 몸을 본능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도 없습니다.자기 몸은 누구나 다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옛 계명의 그 사랑은 뿌리가 본능에 있는지 모릅니다."네가 본능적으로 네 몸을 참 사랑하지. 네 이웃을 그 정도는 사랑해야지.세상사람을 다 그렇게 사랑하지는 못한다하더라 도 교회 안에서만은 옆에 있는 형제를 그 정도는 사랑해야지" 그러나 주님은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새 계명의 뿌리는 하 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얼마나 다릅니까 네가 구원 받았다고 기뻐하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자랑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버지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예수님이 너를 사랑한 것처럼 이 사랑 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우리의 가슴이 떨립니 까 왜! 정말 우리가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지 조차도 상상할수 없을 만큼 우리는 연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준은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한 것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높은 차원의 사랑을 하나님이 요구 하 시기 때문에 그 기준에 미달 되어 버리면 하나님은 무시해 버립니다. 무슨일 을 해도 그 사랑이 빠져 있으면 하나님은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얼마나 우리 가 무거운 위치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지 않습니까

또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구원 받았다고 말할수 있는가 하는 의문 을 한번 제기해 볼수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사랑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가 라고 말하실 분 이 있습니다.

물론 옳은 말입니다.

자 어떤 분에게 당신은 구원에 받았습니까 예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믿음으로요.

그래요.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까/ 예 하나님의 말씀 어디에 보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러므로 제가 예수를 믿는 이상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또 하나 질문을 합니다.

당신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무엇을 가지고 증명을 할수가 있습니까 /제 믿 음을 가지고 증명을 할수 있습니다.

말이 됩니까 왜 믿음을 가지고 증명할수 있습니까/성경에 보니까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수 있습니까/성경에 그랬습니다.

성경에 무엇이라고 그랬는데요/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 구원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성경에 그렇게 말했으니까 여러분 어떻습니까 말이야 옳은 말이지-그러나 그것은 50점 밖에 안됩니다.

야고보가 분명히 말한 것처럼 네 믿음이 진짜 믿음인가를 증거를 보여라.할 때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행함이라고 했지요. 그것을 좀더 구체화 시킵시 다.

 구원 받았다고 하는 확신을 성경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옳겼다-이 말이 성경에 꼭 두번 나옵니다.

요 5: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노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말씀의 골자는 믿으면 구원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자는 사 망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생명의 영역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믿으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는 말 씀이 또 한군데서 나오는데..

요1서 3:14절입니다. 참무서운 말씀이 나옵니다. 들으세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 간줄을 알거니와 사 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여기는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리 네가 구원 받았다고 떠들어도 네가 사랑치 아니하면 너는 구원받은자 가 아니고 아직도 사망의 자리에 그대로 있는 사람이다.

네가 구원 받은 사실을 증거하고 싶으냐 그러면 사랑하라! 그러면 너는 사망 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5:24절하고,요한1서3:14을 한데 묶어놓고 생각을 해야 합니 다. 한가지만 알면 안됩니다.

예수를 믿는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동시에 그와같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은 반드시 구원 받았기 때문에 그 증거로 사랑합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을까 " 충분히 의문을 가질수가 있습니다.

이만큼 사랑이 중요합니다.

 흔히들 구원 문제를 이야기 하면 영원히 사는 것 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문제를 가지고 무조건 구원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 이야기 가 됩니다. 영원히 사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만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도 영원히 삽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에 있는 무덤을 깨고 자는 사람들이 다 부활하면 그 사람들은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질이 다르지요.

영원의 질적인 특질이 무엇인 줄 아세요. 시간인 줄 아세요. 시간으로 따지면 둘 다 영원에요. 시간가지고는 말할수 없어요.

영원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영원히 산다고 할 때에 그 것이 축복이 되는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형제들의 사랑 싸여서 영원토록 살수 있기 때문에 그것 이 복이요, 영광이요,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옥은 영원이기는 영원이지만, 사랑이 없어요.사랑이 없는데서 영 원토록 살아야 하는 것. 얼마나 무서운 저줍니까 그러므로 구원 받았다 하면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를 교회에서 열심히 합니다만, 그들 때문에 교회가 피해를 얼마나 당하는지 모릅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랑, 형제의식이 없는 사랑, 악을 미워하지 못하는 사랑, 멸시하는 사랑, 등등...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마음에 질문을 하시고 나는 그 질문에 귀를 귀를 기울이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형제여! 구원 받았느뇨 구원 받았다면 구원 받은 증거를 무엇으로 보여 줄수 있느뇨 에 주님 나는 형제를 사랑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대답할수 있기를 바랍니다.-주님이 그것을 원합니다.

 2. 열심으로 봉사해야 합니다.11절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여기서 열심을 품고라는 말은 가슴에 불을 품고 라른 말입니다.

좀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성령이 충만하여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뼈 속에 불을 가진사람이라고 표현한 사람이 있습니다.

뜨거운 열정은 은혜 받은 사람의 특징이요, 또 뜨거운 열심은 기독교의 빼놓 을수 없는 공통된 특징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교회에 미지근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열심을 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틀림없 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열심을 내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열심이 식어지면 은혜에서 떨어진 사람입 니다.

그런의미에서 어떤 신학자는 기독교는 열심의 종교라고 정의한 것도 옳은 말 입니다.

열심을 빼버리면 기독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열심이 식어 버리면 그 교회는 부흥하지를 않습니다.건물이 아름다워도 그 교 회는 죽어 버립니다.

그런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미지근 한 것을 지독하게 싫어 하십니다.

계 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 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열심을 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 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미지근한 사람아 내가 너를 토하여 내겠다.

열심이 없는 살람아 교회를 다녀도 나는 너를 싫어 한다.

열심히 없는 사람아 네가 아무리 기도해도 내가 안 듣겠다.

열심이 없는 사람아 네가 아무리 아름답게 불러도 나는 그 찬송이 마음에 안 들어!-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얼마나 주님이 열심이 없는 것을 싫어 하는지! 이것보다 충격적인 말씀이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불행히도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열심을 가지고 주를 섬길려고 하고 열 심히 봉사할려고 하는 사람을 멸시하는 경향이 교회들마다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유식한 사람들,세상적으로 갖출 것을 갖춘 사람들이 열심을 좀 경시하 는 경향이 있고 비판합니다.

물론 잘못된 열심이 있습니다.

이단에 빠진 열심도 있습니다. 가정도 팽개치고 교회에만 와서 살려고 하는 잘못된 열심도 있습니다. 이것은 병든 열심입니다.

여기서는 병든 열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열심이 있어요.

 교회를 다니지만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 동참 을 못하고 계시는 분들있지요.물론 남모르는 부분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요.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지 못하시는분 다른데서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교회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하시는 분 이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이 한마디의 책임 추궁을 받을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와같은 주님의 추궁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자신의 게으 름을 합리화 시킬 근거가 있는지 이시간 돌이켜 보십시요.

아마 말한마디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참으로 열심히 자기의 맡겨진 부서에서 남이 알아 주든지 안 알아 주든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저는 그들은 생각할 때마다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교회가 몇명이 모이느냐가 문제 가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는 형제들 때문에 저는 목회할 맛이 나는 것입니다.

알아 주지 않아서 집사도 시켜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열심이 있어서 봉사하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기억하지 못하고, 성도들이 칭찬하지 않아도 주님 바라보고 기쁨으 로 헌신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때때로 용기 가 생기고 하나님을 위해서 더 충성하겠다고 다짐을 하곤 합니다. 나는 지금 까지 목회를 하면서 내 교인들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자랑을 합니다.

또 그렇게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그렇지 못한 교인들도 있지요. 그러나 열심이 있고, 알아 주던 지 안 알아 주던지 묵묵히 일하는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기뻐서 자 랑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3. 어려워도 봉사하라.

 12절을 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현실적으로 보아서 기대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이제는 앞에 있는 어떤 목표를 놓고 소망하면서 즐거워 할수 있는 환경이 어떤 환경입니까 굉장히 어려워진 환경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난 중에 참으며-무엇인가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는 상황은 굉장히 짊어지고 어려운 십자가를 지고 있는 고통의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환난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평소에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를 열심히 힘을 써서 해야 하고, 문 을 두드리듯이 쾅쾅 두들기면서 기도해야 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처지 에 빠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12절 말씀을 종합적으로 말하면 교회 안에서 봉사를 하기는 하되 굉 장히 어려운 처지에 지금 놓여서 봉사하기가 어려운 경우를 전제하고 하는 교 훈입니다.

교회에서 형제를 위해서 봉사하고 주님을 위해서 뛰는 것 얼마나 아름답습니 까 이렇게 봉사를 하면 주님께서 매일매일 형통만 주시고, 어려운 일이 없이 태평세월 만 주실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봉사를 하 고, 육신을 입고 봉사를 하기 때문에 자주 자주 어려움이 일어 날수 있습니 다.

어떤 때는 내 건강이 상합니다.

어떤 때는 시간에 쫑기다가 보면 하던 일이 정상적으로 안돌아 갈 때도 있습 니다.

어떤 때는 우환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남에게 욕을 먹기도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땝니다.

그러면 이러한 때, 이 어려 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럴 때일수록 기뻐하면서 봉사하고, 그럴 때일수록, 인내하면서 봉사하고,그 럴 때일수록 기도를 더 힘쓰면서 봉사하라고 말합니다.

중단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물론 건강이 나빠지면 쉬어야 합니다.

가정에 특별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그것들 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얼마든지 이길수 있는 핑계를 가지고, 너무 힘드니까,남에게 좋은 말 못들으니까,그것 때문에 마음에 힘드니까 하던 일 그만두는 어리석은 짓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바보같은 짓입니다.

어려워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시작한 일은 중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고 해도, 환경이 어떻게 변해도, 어떠한 괴로운 일이 있어도 끝까지 견뎌 내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어떤 것도 주님 앞에는 핑계가 될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주님 앞에 내어 놓을 수 없는, 핑계가 되지 못하는 사소한 것을 가지고 교사를 하느니 못하느니, 성가대를 하느니 못하느니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4. 나누면서 봉사하라고 말합니다.

 13절에-성도들의 쓸것을 공급하며, 손대접하기를 힘쓰라.

 이 로마서를 쓸 당시만 하더라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극빈자였다 고 합니다. 얼마나 생활이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어릴 때 교회에 다닐 당시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가난했어요.그러므로 가난하니까 물질적인 면에서는 늘 여유가 없습 니다. 쫑깁니다. 그런데 갑자기 손님들이 찾아와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낯선 곳에 여행을 하면서 찾아 갈 곳이 교인들 가정 밖에 없습니다.

<아. 저는 어느 교회에 다니는 데요. 오늘밤 여기서 좀 잘수 없을까요>하고 들어 옵니다.호텔,장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였는지 모릅니다.

이것 때문에 시험을 받고 뒤로 넘어진 사람들도 꽤 많았을 것입니다.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자기들이 먹어야 할 것을 함께 먹어야 하고, 잠자리를 함 께 해야 합니다. 이부자리를 내어 주어야 합니다.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사흘이 멀다하고 사람들이 찾 아 오는데, 이런 상황에서 진정 형제를 위하고 주님을 위할려고 하면 얼굴 찡 그리지 말고 자기 가진 것을 나누어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에야 믿는 다고 해서 폐를 끼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원칙은 마찬가집니다.

지금도 우리가 진정 교회 안에서 형제를 위해서 봉사하려면 내가 가진 물질-나누어주면서 해야 합니다.

<아이고 배고프시겠네요 오늘 저녁에 가서 많이 드세요> <아이고 날씨가 참 좋네요. 집에 가시면 에어콘이나 선풍기라도 좀 틀지요> <아이고 요즘 건강이 왜 그리 안좋으세요. 약이 얼마나 좋고, 건강식품이 얼 마나 많이 나오는데> 여러분 말만 그렇게 해보세요 그게 얼마나 빛 좋은 개살굽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8공주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느 아파트 수위를 하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서 봉제공장에 나가 서 손이 굳은살이 밖힐 정도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딸 둘이 시집을 가고 여 섯이 남았는데, 이 애들이 똑똑해 가지고 공부를 계속하려고 하니까, 다 아르 바이트를 하느라고 학교 다니고-직장 다니랴 빠듯빠듯한 생활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 것인지-이렇게 열심히 살면서 먹을 것 안먹으면서 어떻 게 한 100만원 만들어 놓으면 주인은 200만원 전세를 올려 달라고 합니다.그 러니 가난한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살아 가겠습니까

이런 기사가 교회에서 발행하는 주보에 나가니까 순식간에 헌금이 들어와서 그 가정을 도울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기사를 읽고, <그집 참 안됐다!> 말한마디 하고는 잊어 버린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겠습니까 내 주머니는 꼭 싸매어 두고, 남을 섬긴다. 봉사한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 을 어떻게 합니까 교회 안에서 그런 식으로 살면서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될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벤다이크라는 사람이 쓴 대저택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떤 큰 갑부가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고 천당에를 갔습니다. 들어가서 천사 가 인도하는대로 자기집을 찾아 갔습니다. 아주 조그만 오두막이었습니다. 지 붕도 제대로 덮히지 않은 오두막에 갔더니 <여기가 당신이 살아야 할 집입니 다.> 했습니다.

이 부자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여기서 내가 살아야 합니까> <예 여기가 당 신의 집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집니 초라해요> <아 그거야 당연하지요 당신 몰라요 > <모르겠습니다.> <저 옆을 보세요> 그 옆을 보니까 천사들이 망치를 들고 뚱땅뚱땅 집을 짓는 데 아주 큰 맨션을 짓고 있습니다. 자기 집은 변소간 만도 못해요.

<아 저집은 누구집인데요> <아 그 주인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요. 천국에 오면 줄려고 짓는 중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데요> <당신 동네에 조그만 병원 하나 차리고 있는 의사있지요 그 의사집입니다.> <왜 저 사람은 그렇게 큰 집을 지어주고 나는 이렇게 초라한 집을 줍니까> <몰라도 정말 너무 모르네. 자 보세요.저 사람은 자기에게 돈이 들어 오면, 자기가 쓸만큼 만 남겨 놓고는 전부 남을 위해서 썼어요.이렇게 남을 위해서 쓴 돈은 전부 천국 은행에 저금이 되거든요 우리는 지금 그 돈 찾아 가지고 집을 짓는 거에요 그 사람은 지금도 계속 저금을 하니까 밑천이 안 딸이지요.

그러니까 자꾸만 큰 집을 짓지요 그런데 당신요! 당신은 지금까지 저금한 것이 얼마 있소!! 고작해야 이건데 이거 지붕도 제대로 못 덮고 있잖아요 뭐 저금을 해야 지붕 을 덮지!>

소설의 이야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슴에 무엇인가 와 닿는 것이 있어요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 니다.

 첫째는 사랑하면서 봉사하고, 둘째는 열심히 봉사하고, 셋째는 어려워도 봉사하고 넷째는 나누면서 봉사해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와같은 봉사를 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주님의 자녀로서 의 바른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몸을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 로 드리기를 원합니까 교회 안에서부터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원리대로 봉사 하자 그 말입니다.그러면 우리의 몸이 우리의 삶이 날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제사가 될수 있을 것입니다.

 할수 있다하신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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