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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낙심하지 맙시다 (고후 0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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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저는 우리 교회에서 손님이 없는 결혼식을 조촐하게 주례한 일이 있습니다. 어느 고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상처를 하셨는데 혼자 사시는 젊은 집사님이 재혼을 하게 되어 주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약 2년간 꿈 처럼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제가 우연히 생각이 나서 교장 선생님께 전화를 했더니 그 분이 병원에서 협심증으로 심장 수술을 받고 의식이 깨어나지 않아서 중환자실에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병원을 심방했습니다. 그 분은 심장 수술할 때 뇌사 상태가 발생해서 식물 인간으로 중환자실에서 아무도 몰라보고 무의식 상태로 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 집사님은 저를 붙잡고 울면서 “내가 이럴 줄 알았다면 재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탄식하며 절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만일 자기의 남편인 교장선생님께서 별세한다면 자기는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펐던 일이 있습니다.

사람에겐 더하면 더할 수 록 좋은 것이 있고, 나쁜것 도 있습니다.

건강이나 성공, 기쁨과 행복은 더할 수 록 좋은 것들 입니다. 그러나 질병이나 실패, 아픔이나 고통은 더할 수 록 나쁜것들 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낙심”은 더할 수 록 나쁜 결과 밖엔 남는것이 없습니다.

히브리어로 낙심을 “마사스”(Masas)라고 합니다. 뜻은 “용해 시키다” 또는 “황폐케 하다” 입니다. 희랍어로 낙심을 “카코스”(Kakos)라고 합니다 그 뜻은 “무가치” 또는 “해로운것” 이라고 합니다. 낙심이란 인간의 영혼을 황폐케 하고, 무가치하고, 해로롭게 만든다 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낙심하지 않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사실상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많은 실망과 낙심되는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때 아덴에서 활동하면서 세운 교회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떠나 온 후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소식을 들을 때 많은 교인들이 다시 우상숭배를 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특별히 사도 바울에 대하여 비난을 하고 나선 것 입니다. 바울은 정말 사도가 아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듯 아펏지만 그는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낙심“이란 무가치한 것이요, 인간의 영혼과 육을 황폐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속에도 낙심되는 일들이 많은 줄 압니다.

뜻하지 않은 질병, 실패, 사고, 재난을 만나게 되어 낙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낙심이 더해지면 인간은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 합니다.

 첫째는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겉사람은 인간의 외적인 조건들 즉 육체, 물질, 명예, 권력, 지식 등을 가르킨 말씀입니다. 이런것들은 모두가 유한성을 지닌 허무한 것들 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사야서의 말씀(사40:6)을 인용하여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벧전1:24)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이러한 겉사람에 속한 것은 후패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무엇을 의지하고 살기를 원합니까 인간의 육신, 물질, 명예, 권력, 지식을 의지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것들이 무너지고 상실될 때 우리는 낙심하고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한한 존재에서 영원성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일 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인의 삶은 후패할 수 밖에 없는 겉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날로 속이 새로워 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희망이요,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희망이 넘치고 속 사람이 새로워지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어느 교회에 임원수련회를 인도하러 간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나와 앉으셨는데 맨 앞 좌석에 육군 참모총장을 지내신 장로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사성장군이요, 한 때 그 분이 거동하면 산천초목도 흔들릴 만큼 권세를 가졌던 분 입니다. 그런 분이 겸손한 자세로 박수치며 어린아이 같이 찬송 부르고, 열심히 말씀을 경청하고 계신데 그 모습이 얼마나 인자하고 어진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눈에는 군인의 살기 어린 눈빛이 아니라 영적인 광채가 영롱한 눈빛으로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속사람이 날로 새롭기 때문입니다 겉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속사람을 새롭게 합시다. 무너질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사모하십시다. 육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낙심하지 않는 삶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둘째로 환란은 잠깐이요 영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인생의 삶속에 환란과 고통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엔 길이와 무게의 차이가 있을 뿐 절망과 고통이 있고 슬픔과 울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환란은 잠시요 영광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알라바마주 엔터프라이즈 동네 한복판에 색다른 기념비 하나가 지금도 서 있다고 합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목화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동네 사람들은 큰 재난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목화 바구미가 날아와 광활한 목화밭의 목화를 모두 먹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해 농사는 말할 것 도 없고 다음 해 농사도 전혀 지을 수 없는 재난을 몰고 온 것입니다. 목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모두 망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실의와 낙망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굶어 죽을 수 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목화 밭에다가 땅콩 농사를 지어 봤습니다. 그 수확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목화 농사 보다 더 큰 수확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 토질이 땅콩 농사에 너무나 적절한 곳이었습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해가 거듭될 수 록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의논하기를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 준 목화 바구미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자고 해서 동네 한 복판에 그 기념비를 세웠다는 이야기 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말하기를 ”환란은 잠깐이요 영광은 영원함이니라“ 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현세에서 받는 환란은 잠시 뿐 이지만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은 영원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자세를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인생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역사관도 분명해야 합니다. 가치관도 분명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는 썩을 육신이나, 없어질 물질, 무너질 권세, 상실되어질 지식을 의지하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끝 까지 의지하고 믿는 사람임을 스스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환란과 시련, 낙심되는 일을 만나도 절망하지 않고 인내하고 싸우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사람임을 나타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한대로 ”질그릇 속에 보배(그리스도)를 간직했기 때문입니다.(고후4:7) 이런 사람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후4:8-9)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18절)고 했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힘을 줍니다. 무한한 희망을 갖게 합니다. 무한한 가치를 제공합니다. 무한한 영광을 안겨 줍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세계에서 만족하지 못하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겉사람에게 속하는 것에서 실패하고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절망하지 마십시다 믿는 자에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고로 저는 절망을 이기는 신앙적인 자세를 세 가지를 결론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요. 어떤 조건에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다. 현실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서 감사하십시다.

둘째는 앞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미래의 세계를 열어 주시는 영원성을 우리는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인생의 길이 되시는 분입니다 세째는 주님을 나의 삶 중심에 모시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나의 삶 중심에 계실 때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것 같이 우리도 승리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 외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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