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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민의 복음 (갈 01: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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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한 국민학교 선생님께서 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부산 동래구에 있는 안악국민학교에 안 선생님이란 분은 동사 무소를 빌려서 『무궁화 배움터』라는 교실을 만들고 학교에 가지 못한 학생들을 7년 동안이나 야학으로 가르쳤습니다.그 중에 30명은 검정고시에 합격해서 대학에 들어갔고 나머지 학생들도 떳떳한 사회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그는 교사의 모든 수입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썼기에 21년의 교사생활에도 아직 전세방을 못 면하고 있다고 합니다.참으로 좋은 상을 받아 마땅한 선생님으로 생각됩니다.
이 세상에 상 받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떤 사람에게 상을 줍니까.아무리 보잘것없는 상이라도 그 상을 받을 만한 어떤 자격이 있든지 실력이 있는지 조건을 갖추었든지해야 상을 받는 것입니다.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은 주지 않고 상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에게 상을 준다면 당연히 그것은 모순이며 잘못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복음의 말씀을 대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대하고 놀라운 복음의 선물은 세상의 원리와 같이 어떤 기준이나 행함에 따라 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바울의 말하기를 복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도, 받은 것도, 배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그 복음은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유대인의 율법에 관하여 배웠을 뿐 복음을 알지도 못했는데 주님께서 복음을 깨닫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복음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장 기쁜소식입니다. 죄와 허물로 영원한 멸망에 처한 인간에게 영원한 구원의 소식, 그 소식은 주님께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아무리 좋은 선물이 있다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이 복음의 선물만큼 값어치 있는 선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생각해 보십시다.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물질이, 명예가, 지식이, 좋은 별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입니다. 육체는 비록 얼마 후에 이 세상을 떠나지만 그의 영혼은 영원한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인기가 좋고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해도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지 못했다면 그는 결국 영원한 멸망의 불 속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고통과 형벌의 영원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그러나 세상에서 보잘것없이 산 사람일지라도 복음을 듣고 믿었다면 그는 영원한 안식이 있는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 13-17절을 보면 12절에 이어서 바울 자신이 이 놀라운 복음을 받게 된 경위를 구체적으로 간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즉 그렇다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닌 이 놀라운 복음,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이 놀랍고도 귀한 복음을 주님으로부터 받을 자격과 조건은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입니다.

자신의 과거 행위는 도저히 복음을 받을 만한 자격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13-14상반절을 보십시다. 자신이 고거에 행했던 부끄러운 일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그는 복음의 훼방자였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음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미 아담과 하와 때부터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복음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까지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이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12제자 외에도 많은 자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복음을 전하지 않고 고기를 잡는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당부하시고 마지막 승천하시기 전에도 주님은 여러 번 당부하셨습니다.“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그 만큼 복음을 전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복음만이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뜻인 복음을 전하는 것을 훼방하는 것은 얼마나 큰 죄란 말입니까 쉽게 말하면 경찰이 하는 일을 방해하면 무슨 죄입니까 공무집행 방해죄입니다. 국가가 만든 법을 집행하는 것을 방해했다는 죄입니다. 한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방해해도 큰 죄가 되는데 바울은 만 왕의 왕이요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과 일을 방해한 것이니 하나님 앞에서 이 얼마나 큰 죄가 되겠습니까 사람 에게 범죄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입니다.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방해한 것입니다.
둘째.그는 핍박자요 살인자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핍박하고 때리고 잡아갔습니다. 얼마나 그의 명성이 높았든지 처음에는 그를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변화를 받고 곧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회개함으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행9:29에 보니 사람들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고 신도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행위는 일종의 음모라고 여긴 것입니다. 3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기독교인들의 머리에서는 공포스럽고 무서웠던 사울의 기억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낙심해서 다소로 피신했던 것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행8:3을 현대성경을 이렇게 번역합니다.“사울은 야수처럼 날뛰면서 교회를 휩쓸고 다녔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신도들을 끌어내 감옥에 가두었다” 행22:4에 그 스스로가 말하기를 기독교를 핍박하여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했습니다. 스테반이 돌로 맞아 죽을 때도 그는 그 사건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울의 눈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는 이렇게 교회를 박해하고 사람들에게 아픈 기억을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그는 지나친 율법주의자 였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니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자기 동족 중에 자기의 열심을 따를 자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당시에는 십계명 외에 랍비들이 만든 613개의 율법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율법들을 지킨 사람입니다. 유대교란 무엇입니까 구약의 율법인 모세 오경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인정치 않고 오직 율법의 내용 하나 하나를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의 대부분은 유대교를 믿고 있습니다. 신약의 복음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으며 율법을 지키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위선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주님으로부터 많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자기의 나타내려고 그랬던 것이면 바울도 역시 자기의 열심을 보이려고 밤낮으로 뛰어다녔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그는 “기독교는 구원이 없다” “기독교를 없애야 한다”라고 말하는 기독교 계통의 이단 또는 타 종교의 우두머리격 혹은 총 행동대장인 셈입니다.
넷째, 그는 교만한 자였습니다. 그는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많은 실적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두려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랑으로 차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가말리엘이라는 정통 율법교사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로마의 시민권도 있었습니다.그는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말을 타고 다니면 여기저기 정보를 입수해서 감옥에 넣으면서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자만했던 사람입니다.하나님 앞에서 교만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는 지도 모르고 모든 유대교와 기독교인들 위에 자기를 나타내며 군림하려고 애썼던 사람입니다.
다섯째, 그는 세상의 영광을 쫓던 사람입니다. 행8장58에 보면 스테반 앞에 서 있던 사울은 청년이었습니다.훌륭한 가문에서 우수한 공부를 마친 젊은 청년에게 왜 꿈이 없었겠습니까. 행22장5을 보니 그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것은 단순히 유대교의 열심 때문은 아닙니다.



자기종교의 열심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미워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살인까지 하며 조직적으로 계속 핍박하는 것은 어떤 조직이나 기관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당시의 지도자요 권력층이었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공문』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조직사회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젊은 그로서는 그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 곧 출세의 길이며 실적을 올리는 것이 자기가 인정받는 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과 아픔을 주면서 자신은 그 대가로 영광과 세상에서의 출세를 보장받으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사울입니다.
여러분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훼방한사람이요, 기독교인과 교회를 핍박하고 살인까지 한 사람이요, 율법에 빠진 위선자요, 교만한자요, 세상의 영광을 쫒떤 사람입니다.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자기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털어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슨 자랑 꺼리라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하나님의 복음은 과거에 어떤 복음을 받을 만한 의로운 행위를 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만일 복음을 받을 조건을 논한다면 나 같이 이런 엄청난 과거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에게도 복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과거가 훌륭함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복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의 과거 때문입니다.복음을 받고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내 과거가 이렇게 부끄러운데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까” “단순히 믿는다는 것으로 아무런 대가를 치루지 않고도 내 과거가 다 정리되는 것일까 그래도 최소한 십일조나 철야기도를 어느 정도 해야 구원받지 않을까하지 않을까” “내가 만일 이대로 죽는다면 최근에 한 행위로 보아서는 도저히 구원받을 자신이 없는데… ” 그러나 여러분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과거에 행했던 의를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바울 같이 엄청난 과거를 가진 사람도 은혜를 베프셔서 구원하셨다면 여러분과 저를 이 자리에 부르셔서 구원을 은총을 주신 것은 전혀 이상한 사건이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그는 15-17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은 이미 어머니 태부터 작정하시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연도 아니며, 살면서 우리의 의로운 행동 여부에 따라 결정하신 것도 아니며 중간에 계획하신 것도 아니면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나를 구원받은 자녀로 택하시고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엡1:4에는 창세전에 즉 이 세계가 만들어지기 전이 그 오래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 부분을 예정론이니 뮈니하면서 논쟁을 합니다.그러나 바울이 이 말씀을 쓸 때는 예정론을 논하라고 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와 행위 때문에 복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오래 전부터 작정과 계획 속에서 된 것이지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없었다면 어떻게 자신 같은 죄인이 복음을 알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그 많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 자신보다도 경건하고 의롭고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은 이미 자신이 태어나기 전 하나님의 작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오늘 여러분과 제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따라 된 것입니다.우리 주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우리보다 의롭고 경건하며 지식과 교양이 많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별로 보잘것없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어떤 사람들은 바로 그것 때문에 의아하게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정말 나 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따라 구원하시는 일은 이미 포기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특별한 은혜로만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제 겨우 기어다니는 아이에게 63빌딩을 계단으로 기어서 올라오라 한다면 얼마나 그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며 불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 아이는 1층도 올라가기 전이 다시 굴러 떨어질 것입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63빌딩 꼭대기에 힘 안들이고 쉽게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그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다 똑같은데 누구를 태운단 말입니까 “그 누구를 선택하는 것” 그것은 선택하는 사람의 일방적이 주권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은혜를 베풀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권한이며 주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주권으로 여러분과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사람에게서 난 것만을 알고 있는 우리를 부르셔서 하늘에서 난 복음을 알게 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그래서 엡2:8-9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는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도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왜입니까 우리의 행함이나, 혹 앞으로 행할 가능성이 있는 의로운 어떤 행위를 보시고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단지 완전히 빈손만을 들고 구원의 십자가를 붙든 것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말씀을 첨단의 지식과 지혜가 많은 세상사람들이 볼 때는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고 비 논리적이며 비 이성적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고전1:18,22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음으로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꺼리기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니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세상에서 배운 지혜와 지식으로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하기 때문입니다.바울 자신도 과거에는 그랬지만 이제 자신에게 이토록 놀라운 복음을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는 이 복음전하는 사도가 되기 위하여 지난 삶을 청산하고 아라비아로 가서 주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전 『열리는 영의 세계』라는 책을 샀는데 30여명의 간증이 기록되어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국창조과학회에 소속되어 있는 과학자와 교수들이었습니다. 모두다 한결같이 최고의 첨단 과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저는 처음이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비과학으로 가득한 성경을 믿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내용을 하나씩 읽어보면서 느낀 것은 그들도 역시 주님께서 바울에게 전해준 복음을 듣고 믿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 중에 지금 미국의 스틸연구소의 지원으로 있는 김용우박사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자신은 미국에 가서 결혼한 아내에게 거의 끌려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답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보면 비과학적인 말씀들 때문에 반감만 생겼답니다. 젊고 똑똑한 자신이 교회에 와서 앉아있다는 것이 동료들에게 창피하게 느껴졌습니다. 죽으면 끝나는 것이지 무슨 천국이 있느냐며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큰 수술을 받게 됩니다. 마취가 풀리면서 아픔과 고통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서 찬송이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410장이었습니다.“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수없도다” 그는 그 찬송을 따라 부르다 그만 한없이 울게 되었고 그제야 자신의 지식과 지혜가 아무것을 깨닫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자신같이 교만한 죄인에게도 값없이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그러기에 어떤 노력을 한다거나,선을 행한다거나,대가를 지불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여러분의 과거가 어떻든 현재의 삶이 어떻든 분명한 사실은, 마치 사도 바울의 그 부끄러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여 부르셨듯이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작정하시고 계획하셔서 이 자리에 부르시고 복음을 알고 구원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변할 수 없는 이 복음의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힘과 능력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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