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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마음 (롬 0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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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과 십자가

오늘 본문 8절을 보십시요."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됨이로다"고 하 였습니다. 또 15절에서는 그러므로 나는 할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이 복음은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증거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이 복음을 부끄러 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왜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을 썼겠습니까 그저 쉽게 말 하면 복음과 십자가를 떼어 놓고 생각할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말하면 의례히 주님의 고난을 연상하게 되고, 주님 의 영광의 부활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종탑에는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있고,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장식 한 십자가가 성도들의 가정과 교회와 책과 가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 리는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십자가를 장식품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 당시만 하더라도 십자가는 부끄러움과 저주의 상징이었습니 다. 흉악범을 처형하는 사형틀이었습니다.

문화와 철학이 발달해서 인생의 쾌락을 추구하는데 열심인 헬라 사람들에게 있 어서 십자가는 입에 올리기 조차 역겹고 추한 것이었습니다.

 즐겁게 놀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죽은 사람의 이야기나,송장의 이야기,사형 장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눈총을 받고, 욕을 얻 어 먹기에 알맞은 사람일 것입니다.

바로 바울이 하는 십자가의 이야기는 인생살이의 흥에 겨워 사는 로마인이나 헬 라인에게는 잔칫자리에서 송장이야기 하는 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더럽고, 천하고, 무서운 십자가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철학과 지식으로는 선을 많이 행하고,덕을 쌓아야 구원을 얻지 어떻게 복음을 믿어서, 더군다나 그 복음이라는 것이 형틀인 십자가라면 그것이 구원을 가져다 줄수 있겠느냐고 비웃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고전1:18에서는 "십자가가 멸망하는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구원을 얻는 우리 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울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고, 천하게 여기는 것 을 할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할수 있습니까 십자가는 열십자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끄럽고,수치스러운 것을 말 하는 것입니다. 장식되고 아름답게 꾸민 것은 진정한 십자가가 아닙니다.

 지금의 많은 교인들은 초대교회의 예수님이 지셨던 고난과 수치의 십자가를 모 릅니다. 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해보고, 수치를 당해 보았습니까 죽음의 자 리에 까지 나아가 보았습니까 단지 화려함과 달콤한 것을 찾아서 따라온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그 수치스러운 십자가가 어떻게 구원의 복음이 됩니까 1)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죄를 벌하십니다. 그 벌은 세상에서 주는 어떠한 벌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또 이 벌을 면할 길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하나 님이 내리시는 벌이기 때문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저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벌거벗고 매달리신 주님의 십자가가 보여주는 의미입니다.

 죄지은 인생은 누구나 이처럼 죽어갈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병들어 죽고,교 통사고를 당해서 죽고, 늙어서 죽는다고 안타까워합니다만, 그러나 죄지은 인생에 게는 누구에게나 십자가의 형벌이 있습니다.아니 그보다 더한 지옥의 유황불의 형 벌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만 하면 모든 인생을 다 벌해야 합니다.그러나 인생을 사랑하시 는 하나님은 인생이 지은 죄만 생각해서 다 죽일수는 없으셨습니다.그래서 독생자 를 대신 보내셔서 죄인들이 당해야 할 죽음을 죽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대속의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숨을 죄인들의 목숨과 바꾸신 것입니다.

 이 두가지의 의미를 생각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바울은 그 십자가가 부끄러울 수 없었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은 십자가의 복음 밖에는 없습니 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깨끗게 하는 능력은 오직 십자가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랑스럽게 여겼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 가운데 굳게 서기를 바랍 니다.

 2.복음과 바울

본문에는 바울의 로마 교회를 향한 사도적 심정이 잘 나타나있습니다.바울의 마 음은 언제나 복음으로 꽉차 있었습니다.자나 깨나,혹 어디를 가든지, 생각과 관심 은 오로지 복음에만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복음만 생각하고, 복음 만 말하고, 복음을 실천하며,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바울 의 생애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특별히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하는 바울의 뜨거운 마음이 우리를 감동시키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일생을 사는 동안에 많은 일들을 하고 갑니다. 이 많은 일들 중에서 제일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입니 다.바울은 바로 복음을 자기의 일생의 목적 가운데서 제일 우선권을 두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인생의 제일 목적과 우선권(first prioity)으로 가지는 관심인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겉으로는 아무리 위장하려고 해도 자신이 제일 많이 생 각하고 관심을 가지는 일은 무의식적으로 언제인가는 나타납니다.

혼수상태에서 하는말,술이 취해서 하는 말,꿈을 꾸면서 하는 헛소리가 어떤 면 에서는 그 사람의 가장 진실한 말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세상을 떠날 때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하는 말이 그의 일생 중에서 가장 진실한 말이 됩니다. 그래서 죽을 때에 보면 그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알게 됩니 다.

 제가 이천에서 목회를 할 때에 작촌교회라는 시골 교회로는 100여평이나 되는 아름다운 교회를 잘지어서 봉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양정학원 이사장인 김동옥 목사님이 1억여원을 내어 놓아서 자기의 아버지를 기념해서 지은 것인데, 봉헌예 배를 마친후에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동옥목사님의 아버지가 인근에서는 소문난 부자였습니다.그리고 일찌기 기독 교로 개종을 해서 자신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을 하고,자기의 재산을 드려서 교회 도 지었습니다.오래전에 장로가 되었는데 나이가 많아진 어느날 갑자기 정신이 돌 아버렸다고 합니다.그래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듣기에 민망한 말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확실히 회복되지 않고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 분이 구원은 받았을까라면서 물었습니다.

나도 알쏭달쏭해서 글쎄요 나중에 정신이 돌았을 때에 한 말이 진심이 아니었 을까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를 아들이 그의 이름으로 봉헌을 하고 많은 돈을 풀어서 여러 사 람을 대접하고 상패를 전달하며, 박수를 쳐도 뒤에서 사람들이 수근수근하며 미쳐 서 하나님을 욕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본에 예수를 잘 믿는 할머니가 있었는데,별명이 "감사할머니"였습니다. 언제 든지 무든 이야기를 해도 "감사합니다"하며 두손을 모았습니다.어떤 집아이가 병 들었다고 해도 "감사합니다" 아기가 입원을 했다고 해도 "감사합니다." 심지어는 그 아이가 죽었다고 해도 "감사합니다" 이래서 얻은 별명이 감사할머니였습니 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 저녁 교회에서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는데 갑자기 소방차가 요란하게 지나갔습니다.할머니는 혹시나 우리 집이 아닌가 반신반의 하면서 급히 뒤따라 가보니 자기 집 쪽이었습니다. "아이쿠! 우리 집에 불이 났구나! 나미아불 타불 !" 하고 주저 앉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할머니가 "감사합니다" 할 때에는 여유가 있고, 남의 일이 었을 때였습 니다.그러나 자기집에 다급한 일에 생기니까 생각도 없이 나미아불 타불이 나온 것입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복음적이었습니다. 복음에 관한 소식에만 관심이 있어서 사람 에게 병이 들었다,죽었다 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병들고, 사업이 실패하고,돈을 못벌고 친구를 잃어버려도, 믿음만 바로 가지고 있고, 복음에 사로잡혀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우리 성도들의 가정이 믿음 만 바로 가진 가정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3. 하나님의 뜻을 따름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 라(10)

바울의 기도는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었습니다.즉 절대로 무리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살아 오면서 또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왔고,앞 으로 되어질 일도 하나님의 뜻안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용한 가운데서 주의 뜻을 기다리는 겸손,이 신앙적인 자세,이런 인생 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무리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 은 억지로 해 놓은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떼를 쓰지는 않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임의대로 얼마든지 로마에 갈수 있었습니다. 그가 여러차례 선교 여행을 한 것을 보아도, 로마시민권을 가졌고, 로마에 친구들이 많았던 것을 보아 도 바울이 누구보다 로마 여행을 하기에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러나 그는 자기의 생각과 자신의 계획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주의 뜻이면 가기 를 원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를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교회안에서의 분쟁을 보면 서로가 하나님의 뜻을 내세우고, 서로가 성령의 인도 를 받고, 싸우는 양편이 다 하나님의 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누구도 하나님의 편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한국에 와본 외국인들은 한국에서는 기독과 예수가 싸운다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 거린다고 합니다.

기독이라는 말은 예수를 한문으로 표현한 것인데 똑 같은 말을 가지고 서로 옳 다고 주장하며 다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이처럼 로마에 가기를 원했던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라(11)"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은사는 각각 다릅니다. 다기능적입니다. 따라서 한사람이 많은 은 사를 다 차지하려는 것은 욕심이며,교만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게 주신 은사는 시시하게 여기며 남이 가진 은사를 욕심내서 자 꾸 구하면서 시간을 허비해 버리는 안타까운 경우를 보게 됩니다.

 나누어 주려 한다는 말씀을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은혜는 나 혼자 받고,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나누어 여러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니 다.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여러 성도들과 나누겠다는 바울이 태도가 얼마나 겸손합 니까 우리 모두가 이러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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