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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 01: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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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은 율법의 시대이고 신약은 믿음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신약을 믿음의 시대라는 말은 복음의 시대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복음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뿐만 아니라 모든 신약성경이 곧 복음입니다. 그러면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게론"으로서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인간이 주고 받는 기쁨의 차원보다 월씬 차원을 높이하는 기쁨입니다. 복음은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입니다. 즉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사실이 복음입니다. 이시간에는 본문을 중심으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단합하는 생활입니다.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27) 여기 본문의 일심, 한 뜻의 용어는 단결을 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지 아니하면 단결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난 축구선수로 팀을 이뤘다 할지라도 단결이 되지 않으면 그 팀은 좋은 팀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난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검은 돌풍을 일으켰던 카메룬이 좋은 성적을 거둔 1 .new 것은 뮐러와 같은 훌륭한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단결력 즉 팀웍이 좋았기 대문입니다. 하나님의 벡성이 된 우리들도 단합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단합하는 이유는 "복음적인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한마음의 운동체였습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어 모이고 배우고 떡을 떼고 흩어져서 선교했습니다. 성도는 서로 성격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가 되기가 어렵지만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 하나의 성경을 믿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을 다 같이 우리의 아버지로 믿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단합, 화해, 하나가 되게 하고 연합하게 하지만 사탄은 분열시키고 갈라지게 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민족성에 대하여 평하기를 "모래알과 같다"고 합니다.

모래알은 뭉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멘트 가루와 물을 섞어 굳히면 돌과 같이 견고해 집니다. 우리의 민족성이 모래알 같지만 예수님의 피로 섞으면 굳게 뭉쳐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우리교회는 예수님을 중심하여 단합함으로 우리의 이웃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하여야 하겠습니다.

 2.믿음에 굳게 서는 생활입니다. 신앙은 히브리어로 "에문"입니다.

에문은 버틴다는 뜻입니다. 내 인격과 시간과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버티는 것이 신앙입니다. 곧 신앙은 위탁하는 것으로서 내 모든 것을 예수님께 위탁하고 맡겨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신앙에 굳게 서야 합니까 1)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안에 있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에 관한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에 관해서 즉 동정녀의 탄생, 십자가의 부활, 승천, 재림 등에 대해서는 잘 믿으나 우리가 2 .new 에수님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헛되고 맙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관해서 믿어야 하지만 우리는 더우기 예수님안에 사는 신앙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2)말씀을 중심으로 한 신앙입니다.

신앙은 성경의 말씀이 중심이되고 성경이 신앙의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유명한 신학자인 칼 바르트, 키에르케고르, 무디, 어거스틴, 칼빈의 책이 신앙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저들의 사상과 말은 성경을 이해 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의 말이 우리의 신앙에 도움은 되지만 신앙의 표준과 모범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과 성경을 중심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신앙의 생활입니다.

 3.두려워하지 안흔 신앙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핍박을 당하고 욕을 얻어 먹는다고 해서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왜입니까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기를 갖고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시었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 죽음의 권세, 재물을 무서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에 합당한 신앙은 그 고난을 두려워 해서는 않됩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다.

3 .new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 1:29) 고난은 하나님이 불쾌해 하신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가지시는 관심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단순히 그것을 견디기만 한다면 그것은 별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으로 견디어야 합니다. 예화)번레이 근처의 한 마을에 어떤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그 소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때문에 집에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용감하게 투쟁하였으며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구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기뻐히였습니다. 그 투쟁은 그녀에게 너무나 힘에 겨운 것이었습니만 하나님은 그것을 그녀에게 원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고난은 끝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의 가련한 시신에서 옷을 벗기려고 하였을 때 그녀의 옷 안쪽에 꿰메어져 있는 종이 조각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도 괴로울떼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사53:7) 성도의 생활은 사우는 생활입니다.

세상과 싸우고, 비진리와 싸우고, 불의와 싸우고, 사탄과 싸우면서 싸우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는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두려워할 것은 하나도 없지만 꼭 한가지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죄를 부끄러워 하고 십자가만을 두려워하는 사람 10명만 있으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4 .new 두려워하지 않다가 즉사했다. 아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재물을 탐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수7:1)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금송아지를 숭배하다가 하루에 3000명씩 죽었습니다. (출32:1)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1)단합하는 생활 2)믿음에 굳게 서는 생활 3)두려워하지 않는 신앙 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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