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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 (고전 0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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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이시간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도 어린아이와 장성한 사람이 있는데 어린아이는 사람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고, 장성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집을 그 리스도의 반석위에 세우되 천한 것으로 하지말고 금,은,보석 등 귀한 것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만 세웠다면 그 사람 은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은 완전한 것이다. 그리 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시고 고린도 교인들을 부르신 것은 파당을 짓 게 하려고 함이 아니요,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를 이루게 하시려 함이라는 사실로 결론을 지었다.

 이제 오늘은 바울이 복음 안에서 너희를 낳았다고 함으로 고린도 교인들에 대 해서 영적 아버지로서 책망하고 다스릴 권위가 있음을 주지시킨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치 말 것은 영적인 아비라고 했지 영의 아비라고 하지 않았다. 모든 영의 아 비는 오직 한분이시니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시고 목회자는 성도에게 있어서 영적 아 비와도 같은 것이다.

 1. 바울의 사도됨을 논증(1-5) / 그 때에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권위를 업신 여기며, 헐뜻기를 좋아했던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1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하 나님의 비밀을 맡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인정해야한다고 5장을 시작한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사실을 의 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어쩌면 하나님의 종들에게 있어서 기본적으로 가 져야할 태도라고 볼수 있다. 예수님 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친아들이라고 하심 으로 참람죄로 정죄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께서는 만일 너희의 핍박 연고 로 내가 아니라고 하면 나 역시 거짓말 하는 자가 될 것이다. 라고 하셨다. 이 같이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자신을 필요이상으로 지나치게 겸손히 낮춘다면 이는 외식하는 자요, 사람의 마음을 따라서 행함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종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 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자신을 인정하고 그와같은 자리에 있도록 힘써야 한다.

이것이 충성된 자세이다. ( 2 )

그러므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인 것이다. / 그러나 자신이 이와같이 하나님의 비밀 맡은 자임을 부인하거나 약화시키게되면 그 사람은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요, 결과적으로 충성할 수 없게 되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성하려면 자 신에게 주신 위치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역자의 충성은 그리스도 의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가르치고 인도 하는 것이다. 바울이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을 충성이라는 말로서 책망의 부분을 먼 저 시작하는 이유는 앞으로 말하는 모든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충성된 종으로서 고 린도 교인들에게 역시 충성된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2. 이제 주제는 판단에 대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3 ) /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바울과 그 일행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한 다. 그것이 내게는 심히 작은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나를 판단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판단은 비판을 말한다.

 그러면서 바울은 슬쩍 너희가 나를 판단하는 것은 비난에 불과한 것이지 근거 있는 것이 아님을 제시한다. ( 4 ) / 내가 스스로 판단해 봐도 자책할 아무것 도 깨닫지 못한다고 함으로서 너희의 판단이 참으로 어리석고 오해로 인한 것임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자신을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언 급함으로서 고린도 교인들의 판단은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을 대신한 월권임을 넌지 시 책망한 것이다. 이 판단이 자신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부드럽게 말을 한 것이지 만일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이었더라면 심히 책망을 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사람을 판단하실 때까 지 아무도 판단하지 말라 !! 함으로서 성도의 자세를 나타내 준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사람을 판단하시고 감추인 것들을 선악간에 드러내어 상급과 책망을 하 실 터인데 만일 내가 판단하고 비판했던 그 사람을 주님께서 칭찬하시고 상을 주신 다면 나는 얼마나 더 책망을 받을 것인가 또한 주님께서 책망하실 사람을 내가 추겨세웠다면 나는 그리스도 앞에서 위선자로 드러나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므로 바울은 판단하는 것은 성도가 할 일이 아님을 분명하게 언급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혼돈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이는 비판과 정당한 분별과 의 선이다. 그러나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분별의 의미로서 판단을 사용했을 때는 비진리와 진리, 진리의 영과 거짓 영, 하나님의 종이냐 사단의 앞잡이냐 하 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이것은 분변해서 거짓 형제(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술 취함과 음란과 도적질과 기타 분명한 악을 행함 )를 쫓아 내야 하며, 거짓 사 도(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든지 율법적인 부담을 주어 그래야 구원 받는다든지 윤리적인 타락을 용납한다든지 .. 좌우간 성경말씀을 떠난 다른 말을 가 르친다.)를 물리쳐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러한 거짓 형제를 너희중에서 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고 책망했으며, 주님께서는 요한 계시록 2장 에서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 당의 교훈을 쫓는 거짓 사도들을 쫓아 낸것을 칭찬하셨 다.

 그러나 판단이라고 할 때는 성격이 전혀다르다. 주님께서 이에 대해서 명백하 게 가르쳐 주셨다. 이는 형제의 허물을 보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허물을 보고 비난하는 사람은 그 허물있는 사람과 비교하여, 마치 눈에 대 들보가 들어간 사람이 티가 있는 사람을 보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서, 허물 이 티라면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들보와 같은 것으로 절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쳤다. 형제 상호간에도 그러할진대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주 고 양육해 준 주의 종 바울에 대한 것은 더울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자에대해 비판한 것은 그를 세우시고 파송하신 하나님을 비난한 것과 같은 죄이다. 만일 호리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 종에대해 비난 한 일이 있다면 회개 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에 주님께 서 그 사람을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이제 바울은 파당을 지어 왕노릇 하는 저희 고린도 교인들을 돌이키게 하 기 위하여 엄격한 책망보다 양심 가운데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기 위한 글을 쓴다. ( 6-14 ) 그 내용은 몇가지로 요약되어 있다.

1). 그같이 파당을 짓는 것은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 6 ) / 바울과 아볼로는 결코 이러한 파당을 일으키는 장난에 유혹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바울은 심는 역활 그리고 아볼로는 물을 주는 역활을 함으로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 러 가는 모본을 보여준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로 이 것을 배웠어야 했다. 그 러나 그들을 오히려 저들의 육적인 욕구를 부추키는 파당을 짓는 것을 거스리는 자 들로 부터 배웠던 것이다. 이는 인간이니까 그럴수도 있다는 이해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는 참으로 위험한 상태가 된 것이 다.

 2) 바울은 두번째로 고린도 교인들이 파당을 짓는 대의 명분으로 삼은 은 사들 혹은 지식들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서 저들이 얼마나 그릇되었는가를 지적한다. ( 7-8 ) / "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 " 네게 있는 것중에 받지 아 니한 것이 무었이뇨 " 진리의 말씀이 되었든지 은사가 되었든지 모두 받은 것이 아니냐 그런데 어찌 받지 않은 것같이 자랑하느냐 하므로서 고린도 교인들의 ( 특히 파당의 주체 세력들에 대해서..) 어리석음과 반역을 책망하는 것이다.

 3) 이제 바울은 저들이 왕노릇하는 모습과 자신들이 외적으로 비천한 모습 을 대조적으로 언급함으로서 고린도 교인들이 잘못 가고 있는 자신의 현 주소를 발 견하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참으로 복음을 위해서 산다고 하는 성도가 마 땅히 가져야 할 삶의 모습 , 다시 말해서 주님의 뒤를 따르는 십자가의 삶을 상기 시켜준다. ( 8-14 ). /

너희는 이미 부요하고 배부르며 왕노릇하고 있다.:그러나 하나님께 서는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다. 뿐만아니라 천사와 사 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 고;

우리는 약하되:너희는 강하다.

 너희는 존귀하되: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주리고 목마 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하며...

 후욕을 당한즉: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참고.. 비방을 당한즉:권면하니... 지금까지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자 이제 스스로 왕노릇 했던 고린도 교인들은 마땅히 사도들의 모본에서 바 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배워야 한다. 바울은 이 말을 하고 나서 그래도 고린도 교인 들이 마음에 상심할까해서 이것을 말한것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사랑하는 자녀와 같이 권면하려는 것이라고 함으로서 역시 고린도 교인의 비방에 대 해서 대조적으로 권면하는 온유한 모습을 보인다.( 14 )

그러나 바울은 바른 진리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 8 ) /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하기 원하노라 !! 이 말을 잘 해석 하면 다음과 같다.  너희가 육신으로 왕노릇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너희가 과연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우리와 함께 왕노릇하려면 이제 너희의 육신의 왕노릇하 는 것을 그치고 겸손히 우리에게 순종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는 그 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 인들의 왕노릇하기 원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나라에서 왕노릇하는 자는 세상에서 당을 지어 왕노릇하던 자가 아니요, 겸손하게 주님의 사역자들에게 순종함으로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는 자들이 다. 이는 주님의 말씀에  너희 중에 큰자가 되려거든 작은 자가 되어야하고 으뜸이 되려거든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 !  하셨던 것이다. 에베소서 2장 에 주님도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 어 종의 형상을 입어 죄인이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을 때 하나님께 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여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 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시인케 하셨다고 하셨다. 이는 천국 백성이 어떤 마음 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말씀이다. 바울의 말을 다시한번 되씹어보자. 너희가 우리와 함께 왕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하기를 원하노라 !!

4. 이제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서 영적 아비가 됨을 전제로 해서 권면을 한다. 일만 스승과 아비의 차이 ( 15-21 ) /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다고 한다.( 15 ) 여기서 일만 스승이라함 은 말로만 가르치되 자신이 그리스도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참으로 고난으로 그 뒤 를 따르지 아니하는 많은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서는 특히 말로서만 잘난척하는 거 짓 사역자들을 말하는데, 특히 파당을 지어 교회와 성도를 미혹케하는 교만한 자들 을 말한다. 사실 그들은 스승도 아니지만은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스승으로 생각 하고 있었기에 일만 스승으로 비유한 것이다. ( 18 )

그러나 바울은 자신은 고린도 교인들을 복음으로 낳은 아비라고 말한다. 그러 므로 지금 권하는 말은 아비로서 자녀에게 권하는 것이고, 너희에게 충분히 권할 만한 자격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나를 본받는자 되라는 것이다.

이는 마땅한 것으로서 자녀가 되었으면 당연히 부모를 닮는 것과 일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면 하나님을 본받아야 하듯이...

 예) 주님께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우월감을 가지고 교만히 행하 는 유대인들에게 "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찌니라 !! " 하심으로 자녀된 증거는 부모를 닳은데에 있음을 말씀하셨다. ( 요 8:39 )

이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처럼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또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 살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먼저 디모데를 보낸다고 한다. / 그만큼 디 모데는 바울의 말 그대고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었다. 그 디모데가 가서 너희에 게 바울이 말한 것을 생각나게하고 그 행사를 다시한번 기억하게 한다고 한 것이 다. 디모데는 바울을 닮은 목회자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디나 자기 대신 디모 데를 보내면 안심하였다. 그러나 실은 바울이 닮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던 것이 다.

 두번째 바울은 친히 와서 그 교만한 자들을 부끄럽게 할 텐데 그 말을 알아 보지 아니하고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 이 아니요, 그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 있다면 세상에 말장이는 천국에 다 모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능력의 나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능력을 귀신을 쫓아 낸다든지 , 병을 고친다든지 하 는 어떤 외적인 힘으로만 이해해선 곤란하다. 그보다 신령과 진정상의 능력을 의 미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한다해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열번 사랑을 외치는 사람보다 한번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의 나라가 천국이다. 하나님은 유창한 말의 기도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요, 진실되고 거짓없는 세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역 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세가 가까와 올수록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러한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고 하신 것이다.

육신을 좇아 교만한 자들, 파당을 지어 분당을 일삼는 자들에게 경건의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과연 내게는 경건의 능력이 있습니까 다시한번 살펴보시고 주 님께 기도합시다. 주님 경건에 속한 능력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 이 저녁에 기 도의 제목을 삼읍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매를 가지고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랴 ! 하며 5장을 마무리 합니다. 마치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났다가 편지해서  개똥아! 엄마말씀 안들으면 아빠가 가서 혼내주고, 말 씀을 잘들으면 선물을 사가지고 갈께 .. 하는 식의 말씀을 듣는 것같다.

 결 언

그리스도 안에서 아비의 말은 참으로 중요한다. 요즘의 풍조가 지식을 좇아 교만을 키우는 못된 풍조가 교계에 만연되어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래서 분명히 성도는 많은데 아비가 없는 사생자가 많다. 아비라 함은 무엇과도 바 꿀수 없는 참되고 절대적인 가치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인들은 목자를 상품 고르 듯이 하려는 참으로 비극적이고 스스로 사생자로 여기는 풍조가 매우 안타깝다.

옛 부터 애비없는 호로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윤리의 상실은 결코 이러한 풍조와 무관하지 않는다.. 아비의 가치와 권위는 아비이기에 있는 것 이지 결코 외적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한 목회자 한 교회를 지조있 게 섬기는 귀한 풍조가 있어야 겠다. 그리고 이 말씀 중 기억해야 할 것은 다시 오 실 주님도 이같이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매를 가지고 나갈까 아니면 상을 가지고 나갈까  한사람도 벌받는 성도 없이 모두 상받고 칭찬받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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