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인류안에 거하신 성령 하나님 (행 02:1-36)

첨부 1


구약시대 율법아래에 있던 옛언약백성들이 년중 7대 절기중에 초실절(이 절기는 신약시대에 부활의 첫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됨)후 50일째에 지키는 오순절(칠칠절,맥추절)이 있었습니다.

 율법아래의 이 절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신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함으로 성취되어졌습니다.

 이 후로 초대교회는 율법아래에 매여 있었을 때처럼 절기들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이지 아니하 고 어디에서든지 그리스도인이 모인곳에서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제 진리의 기둥과 터위에 세워져 있는 오늘날의 주님의 몸된 교회도 율법아래 있을 때 처럼 구약적(율법적) 맥추절을 지키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성령강림을 기념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구원을 감사하고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개혁교회는 성령강림절과 부활절을 기독교의 2대 명절로 지정하고 오늘날까지 이를 기념 해 왔습니다.

 이 두 날이 얼마나 큰 의의를 가진 기쁨의 날이냐 하면 1).부활절은 죽음의 법칙이 폐지된 날이요, 2).성령강림절은 하나님이 친히 사람에게 찾아 오셔서 우리의 몸을 자기 거처로 삼으셔서 연합이 이루어 진 날이요, 또한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에게 흘러 넘쳐서 생명의 강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넘실거리게 된 날입니다.

 11절에 있는 말씀처럼 이 날은 “하나님의 큰 일”이 일어난 날이요,“하나님의 큰 날”인데도 사람들이 이 날을 경축하지 못하고, 오히려 놀라며, 의혹하며, 심지어 어떤이는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까지 하고 있습니다.

 부활과 성령강림 이 두 사건이 다 “주의 날”에 일어났기 때문에 주의날 모이는 교회는 더욱 큰 의의를 가집니다.

 주의날에 교회가 모여 예배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었는데, 오늘 하나 더 추가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강림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에 오심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위에 세워지게 되었고,교회가 성령으로 동행하며 성령으로 사는 새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1, 성령오심의 근거

성령오심의 근거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있습니다.

이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세상이 존재하는 모든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통으로 생명을 누릴 수 있었고,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교통을 끊어버렸고,하나님과 분리하여 대적하는 원수로 서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22절에 있는 말씀처럼 막혀있는 죄의 담이 무너지기 전에는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창3:15은 이 죄의 담을 무너뜨리고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 하셨습니다.

 이 후로 구약의 모든 역사가 이 구원을 위하여 예비되고 진행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가 차서 그 아들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위에서 속죄의 사역을 이루신 후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그가 이루신 희생제사를 하나님께 보고드렸을 때(히9:24) 하나님께서 그 보고를 승인하시고 기쁘게 받으신 표가 오순절 성령강림이었다고 베드로가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행2:32-33).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성령이 오셨고 그 증표가 사도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방언과 이적과 기사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에 있는 것입니다.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성령강림의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신 희생의 공로가 없이는 성령이 오시는, 혹은 성령을 받는 어떤 다른 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식하고,철야기도 많이하면 성령을 받는다고 하는 이런 가르침은 전혀 반성경적 가르침입니다.

성령이 기도의 수고와 노력으로 오시고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리석음입니다.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성령오심의 약속

창6:1-4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다시는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라 그 이유는 사람이 혈육(육체)이 되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에게 오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서면 모세가 자기 얼굴을 가리운 것 차럼(출3;1-6),

이사야가 “화로다 내가 부정한 자로서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으니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사6:1-5).라고 탄식하였던 것처럼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1) 그런데도 하나님의 구원은 다시 인간과 화목하는 것이어서 구약시대에 사사들이나 선지자,제사장,왕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구약에 이처럼 백성을 대표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신이 강림한 것은 그 대표자 아래 모든 백성이 다 참예한 셈이었고,

또한 장차 때가 되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할 것을 대표원리로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2) 이 약속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요엘이 성령을 받아 외치기를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위에 부어주시리니 남종,여종,늙은자,어린이에게니라고 약속하였습니다(욜2:28-32).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요엘 선지자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그 약속이 이제 이루어 졌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3) 우리 주님께서도 땅위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번 보혜사를 보내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요14:16-18,16;1-24,행1:6-11).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 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지금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열렬한 신앙의 의지와 간구와 노력에 의하여 그 응답으로 성령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약속에 의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주권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구원과 함께 죄인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았듯이 또한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 믿음이 구원받음이듯이 예수 믿음이 성령받음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주님의 희생에 근거하여 오시기 때문입니다.

 3, 제 3 위의 하나님 = 성령 하나님

성령에 관하여 “성령은 무엇입니까” 라는 문제와 “성령은 누구십니까”라는 문제중에 어느 것이 바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중에 특별히 성령을 간구할 때가 있습니다.

 (1) 신앙생활이 나태 해 졌을 때,마음의 뜨거움이 없을 때,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적인 능력이 필요하여 졌을 때 성령으로 충만하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성령이 무엇이냐 하면 모자라는 에너지를 보충(예;건전지의 전력이 다 소모되고 나면 새 것으로 교환하듯이)하듯이 피곤한 우리 마음을 보충하는 물질적인 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2) 어떤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서 도저히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는 낙심과 두려움이 있을 때 성령의 능력으로 해결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때의 성령은 무엇이냐 하면 내 가정의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입니다. (예:손오공의 손에 들고 있는 여의봉)

성령을 이렇게 알고 있는데 대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성령이 제3위의 하나님,인격적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하게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은 비인격적인 어떤 물질,하나님의 힘(에너지),하나님의능력(여의봉)으로 취급되어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고,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겨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에 관한 이런 견해는 아직도 신관(神觀)에 대하여 바른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에 관한 이런 견해가 이해 부족이 아니라 주의 (主義)로 나가게 되면 그 신학사상은 비성경적이됩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은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양적(量的)인 물질(物質)이 아닙니다.

그 분은 제3위의 하나님이시요,우리가 성부와 성자를 예배하듯이 그 분에게도 동일한 예배를 드려야 할 인격적(人格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성령 하나님께도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주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서 육체안에 오셨습니다. 내 영혼과 몸을 그가 거하실 성전으로 삼으시고,좌정(座定)하셔서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고전6:19-20).

 고전0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0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님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 한 번 오신 성령은 다시는 떠나 계시지 아니하고 영원히 함께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성령님이 지금 내 안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이 되었으니 내 영혼과 몸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고(롬8:15-17)

롬0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0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0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롬8:9).

 롬08:0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 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다 예수님를 믿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그 영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영은 거룩한 영이어서 신자들이 거룩하게 살도록 인격적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옛사람을 죽이지 아니 할 수 없고, 육신의 소욕을 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이란 무엇입니까 부족한 것을 채우는 양적인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좌정하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거룩하게 사는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안에서나 밖에서, 신자들에게나 외인들에게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윤리를 나타내는 삶입니다.

 하나님앞에서는 조심하면서도, 사람은 멸시하고, 신자들에게는 선하게 하면서, 외인들에게 미움과 복수심을 가지면 그것은 성령충만의 삶이 아닙니다. (선과 악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 것은 나를 성령님의 인도앞에 복종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몸이 거룩한 성령님의 전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죄를 이길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을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을 기념하면서 이 진리를 분명히 양심과 인격에 기록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오셔서 좌정하심으로 나와 하나가 되었다는 이 말씀입니다.

 그 분이 내 뜻대로 살도록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이 내 욕심대로 살도록 방치해 두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이) 주의 말씀이 증거될 때 그 분이 여러분의 양심을 자극하여 거룩하게 살도록 결심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이 증거될 때 말씀대로 순종하도록 권면하는 역사를 하십니다.

 성령님께 복종하십시오. 그리하면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롬8:1-8,갈5:16-24).

롬08:0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08:0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08:0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정하사 롬08:0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08:0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08:0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08:0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롬08:0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대로 살면 영혼의 탄식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움이 더할 것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의 사람은 육신으로 살면서 영혼의 탄식과 괴로운 짐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중생하여 거짓이 없는 믿음과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을 가진 성도들은 자기를 속이고 살면서도 결코 평안하다고 위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진리의 말씀이 생명의 축복과 사망의 심판을 선포함으로 가만히 있게 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이 선포될 때 마다 성령님께서 권면하시고, 인도하시려고 역사 하십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 아버지나라의 평강과 희락을 누리시기를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림니다.

아 멘 복음의 증거 성경/행1:21-26 요일5:9-12,요17:6-19

누구는 동사 데이를 사용하였다.

한글 성경에서 여기에 해당되는 구절은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동사는 ‘필수적이다’로 번역되며 논리적 혹은 신학적인 필요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할 사람들의 자리 중 비어잇는 자리, 즉 유다의 자리를 채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주께서 세상을 다스리러 오실 때는 그들이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그리스도의 왕국을 다스릴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19:28)

요한이 세례 주던 때부터 예수님의 승천 때까지 줄곧 같이 다니던 사람 중에서 하나를 다시 뽑는다는 사실은 그의 부활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선택할 두 사람인 요셉과 맛디아를 사도들은 기도와 제비뽐기 두 가지로 행했습니다.(시139:1-6) 시139:0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시139:0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시139:0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139:0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139:05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시139:0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이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데 사용되었던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제비뽑기였습니다.(요2:25,4:29) 우선, 여기서는 도덕적인 문제는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히 똑같은 자격을 갖춘 두 사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제비뽑기의 결정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고 말하는 잠언 16장 33절에 근거했을 것입니다.

 요한일서 5:9-12 요일05:0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요일05: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요일0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0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19:15)“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사람들의 증거도 충분한 근거가 제시될 때 받아들일 수 있을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시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한은 이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 안에서 체득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삽입구적으로 언급하였습니다.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진리를 자기 안에 소유하고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믿지 아니 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는 것입니다.(요일1:10)

요한에게 있어서는 중간 지대가 없는 셈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증거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요일5:13,20)그 증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9-12절)

전체적으로 이 내용은 적그리스도들이 무슨 말을 하였을지라도 신자들은 진실로 영생을 소유하였다는 사실을 그의 자녀 들에게 확인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8-19 적은 무리의 제자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은 세상 중에서 구별되었습니다.

 이 구별은 예수 그리스도께 그 사도들을 선물로 주시려는 아버지의 선택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보존과 그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들의 창조주와 선택자이심에 의지하여 이러한 간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중보는 그들의 소중함과 그들에게 닥칠 위험을 상기하면서 계속됩니다.

 그 위험은 그들이 예수님과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들 자신을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것과 의미있는 접촉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성화 사역의 수단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명을 받은 존재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제자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거룩은 주님의 죽음으로서의 구별과 헌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죽음의 목적이 바로 우리에게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진리가 성화의 수단이 됨을 나타낸다고 보아집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은 모든 신자들을 하나님과 그 계획 속으로 구별시켜 헌신하도록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서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핵심적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 행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는 주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생명을 얻지 못한 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에 대한 증거는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정 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나 혹은 전하는 사람에 있어서나 같은 것입니다.

 그 증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요일5:13,20)

즉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생명이 있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확신은 언제나 하나님의 증거에 의거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보존과 성화를 위해 중보의 역활을 담당하셨습니다.

 믿는 이들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늘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의미있는 접촉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동기부여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는 타종교와 연합 가능성을 주장한다거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도 구원의 방법이 있는 듯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와 증거를 소홀히 여기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와 예수님의 증거에 대한 올바른 이해인 것입니다.

 방법론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죽으셨고, 그를 증거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성경에는 여기에 대한 분명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1).벧전 3:18 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의 죽으심은 죄를 인함이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2).요일 5:11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이러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3).어떻게 증거해야 하냐 하면 (사62:6,렘51:10) 렘51:10 “여호와께서 우리 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쉬지 않고 증거해야 합니다.(사62:0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말며”

.성령의 능력을 받음으로 증거해야 합니다(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 라”

.부끄러움과 두려움 없이 증거해야 합니다(딤후1: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 난을 받으라”

.증거를 위해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벧전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 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결 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기쁨으로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중거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시고 잘못 알고 있는 영혼들을 올바르게 인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