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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가사의 한 일 (눅 12: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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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이집트의 모래벌판에는 1개에 몇천킬로씩 하는 돌덩이들을 산처럼 쌓아 올려놓은 스핑크스라는 왕의 돌무덤들이 있다. 도대체 그것들을 어디서 구해다가 어떻게 쌓아올렸을까 관광객들과 고고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해도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일컬어 “불가사의”라고 말한다.

2.세상에는 숱하게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있다. 그래서 세계7대 불가사의니, 10대 불가사의니 하는 말들을 쓴다.

3.우리 신자들에게는 더 불가사의한 일들이 있다. 바로 믿음의 길이다. 믿음의 길에는 숱하게 많은 불가사의의 벽을 넘어야 한다.

4.최근에 잠실에서 통일교의 국제합동 결혼식이 있었다. 거기에 참여한 사람중에 일본의 유명한 두 여자가 있었다고 메스컴이 요란하게 떠든적이 있었다. 더군다나 당사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모두를 아리송하게 하는 말들이었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요, 나쁘게 말하면 미친사람들이다.

5.신앙의 길은 이렇게 불가사의의 벽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미쳤다는 말도 들어야 한다. 적어도 사이비 종교에만 빠지지말고 말이다. 우리의 믿음이 바로된 것이라면 무슨 소리를 들어도 좋다. 아니 오히려 영광이다.6.본문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 나온다. 우리의 상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듯한 말씀이다. “나는 세상을 불화하게 하려고 왔다” 아니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하심”이라고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런데 “불화”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

I.본문 관찰
A.나는 불을 던지러 왔다.

1.정확히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 나는 불이 이미 붙어있기를 얼마나 원했는지 모른다. 내 앞에는 무서운 세례가 가로놓여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할는지 모른다. 그러니 내 마음이 오죽 답답하겠느냐”(49-50.)

2.주께서 던지기 원하신 “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우리로 하여금 깊은 묵상을 요구하는 말씀이다. 또한 함부로 해석할수 없는 어려운 내용이기도 하다.

3.정확한 해석은 원어의 의미를 살피는 길일 것이다. 헬라어에서 사용된 본문의 단어는 “불화, 분쟁, 재난”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4.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50절의 “세례”라는 용어와 연결시켜서 혹시 성령세례를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할수 있지만 이렇게 원문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B.평화가 아니라 분열이다(51-53).

1.성경은 주님을 일컬어 평황의 왕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정 반대가 아닌가

2.주님은 3:5의 비율을 말씀하셨다. 과반수 이거나 그 이하라는 말씀이다. 신앙생활이 어렵겠지만 결코 외롭지는 않다는 말씀이다.

3.그러나 문제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신앙 때문에 반목하고, 어머니와 딸이 반목해야 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갈등을 겪어야만 한다.

4.윤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서양속담에 “성경을 읽기 위해서 양촉를 훔친다”는 말과 비슷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비윤리적이니 말이다.

II.본문의 교훈
A.인간은 진리를 거부한다.

1.주님이 오셨기 때문에 불화가 온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불화를 주기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주님이 세상의 불화를 원하시는 것도 아니다.

2.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의 진심이 주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마치 사기꾼이 동사무소의 “정화위원”을 맡고 “바르게살기 위원”이 되듯이 말이다.

3.언젠가 남대문 경찰서의 선도위원이라는 남대문시장 장사꾼이 밀수를 하다가 덜미가 잡혔다. 얼마나 뻔뻔 스러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의 현주소다.
B.갈등과 분쟁은 불가피하다.

1.인간이 복음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 사탄에게 속해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는 복음을 받아들일수가 없다. 그래서 갈등과 분열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2.복음에 의한 분리는 악한 인간에게 양심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선”에 대한 죽었던 의식을 살려 주었다. 우리는 몇가지 원리를 발견한다.1)복음의 부흥은 분쟁과 쓰라린 마음의 상처를 동반한다.
2)인간은 복음을 배척하든지 아니면 복음의 편에 서든지 양자 택일을 해야만 한다.
3)하나님께서는 악을 묵인하시지는 않지만 그러나 악을 탈피하기 위해 빚어지는 분쟁은 용납하신다.
C.반드시 주님의 죽음이 필요하다.

1.주님은 자신의 죽음의 불가피성을 알고 계셨다. 그 죽음에 대하여 주님은 답답함을 느끼셨다.

2.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만 했다. 죽음의 고통을 통과해야만 영생이 주어진다.
D.무조건 평화가 아니다.

1.복음은 악과 싸워야 한다.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바로 선한 싸움이다. 평화하기 위해서 유혹과 타협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2.복음은 혈육보다 우선이다. 영적인 관계가 육적인 관계를 앞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3.구원은 믿음이지 혈육관계가 아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사랑은 줄수 있지만 구원은 줄수 없다.

4.지금 이땅에는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영적인 전쟁을 치루고 있는가 믿음의 자녀와 불신앙의 아버지가 자녀의 진학문제를 놓고 싸운다. 취업문제를 놓고 싸운다. 믿음의 어머니와 불신앙의 딸이 인간적인 적성을 앞세워 서로 싸운다. 반대로 믿음의 딸과 불신앙의 어머니가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자녀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싸운다.

5.당연히 싸워야 한다. 그러나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된다. 선과 악은 서로 동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6.세상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주님이 불을 던지셨다. 이미 그 불은 붙었다. 우리가 주님의 불을 끌수 없다. 우리는 믿음의 양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
E.고난은 영광이다.

1.고생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의 원리다.

2.숱한 유대출신의 제자들은 그들의 동족들로 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들은 지금도 동족들로 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

3.믿음때문에 가족이 깨어졌다면 복음의 승리다. 복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다.

4.윤리를 앞세우다가 심판을 받을수는 없는 것이다. 체면만을 중시하다가 사탄의 종이 된다면 결국 자신의 손해다.

결 론

1.오해를 풀자.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예수믿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환상이다. 분열과 갈등을 겪어야 한다. 분열을 겪지 않고는 승리가 없다. 분열을 통하여 하나의 밀알이 심겨지면 그 한알의 밀알이 수천배 수만배의 결실을 맺어 모두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2.복음을 위해 고난당하고 핍박을 받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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