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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을 실패케하는 마음 가짐 (딤후 0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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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에는 자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무한한 자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러나 이 마음을 잘못 사용하면 끝없는 파괴를 일으키는 무서운 시한 폭탄이 되고 맙 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 잠 4:23)"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 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고 우리의 삶을 실패케 하는 폭탄이 있으면 폭탄의 뇌관을 뽑음으로 자신과 가정과 친구와 이웃과 나라를 파괴하는 요소를 제거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파괴하고 생활을 파괴하는 부정적인 감정 중 에 가장 무서운 감정은 무엇일까요

<본론>

1.미움과 분노는 무서운 시한 폭탄입니다.

1)미움과 분노의 결과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미움과 분노는 우리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상대방을 파괴합니다. 우리 가 마음 속에 미움과 분노를 폭팔하면 자연히 신세한탄을 합니다. 그래서, 미워하고 분노하고 난 다음에는 누구나 `왜 나는 이와같이 되었는가 왜 우리 가정은 이렇게 되었는가 왜 우리 이웃은 이렇게 되었는가 왜 나는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 이러한 운명에 부딪쳐야만 하는가'라고 탄식합니다. 이렇게 탄식하게 되면 곧 우울증에 걸 려 부정적인 삶을 살게 되고 결국은 불행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미워하고 분노하는 사람치고 우울증에 짓눌려 부정적이고 파괴적이 되지 않은 사 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미움과 분노는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파괴하고 자기 생애 속에 그나마 남아 있는 조그마한 행복까지 빼앗고, 가정과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파괴합 니다. 더구나 심한 우울증과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차게 되면 마귀가 귀신을 통하여 얼마든지 마음을 도적질하고 파괴시키게 그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파괴적인 마음이 가득한 심령에 마음과 정신을 분열시켜 마음과 육신까지 귀신으로 점령해 버리는 무서운 마귀의 전략을 알아야 합니다.

 술에 중독이 되다시피하여 한번씩 술에 입을 대기만하면 몸이 망가지도록 마시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이 번번히 술로 몸을 망가뜨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등 수차례 소동을 피우는 바람에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얼마전에 또 다시 술에 미혹을 받아 병원에 입원을 하여 치료를 받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이제 간 경화 초기니 정신을 차려서 절대 술은 입에도 대지 마시오 ! 하면서 의사가 주의를 줍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계속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입원한 병원 앞쪽에 누나 한 분이 사셨는데 동생의 방탕하고 파괴적인 생활에 염 증을 느껴 얄미운 나머지 입원한 동생을 한 번도 찾아와 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얼 마나 술을 가까이 하다가는 온전한 대접도 못받고 인간 구실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하여 얼굴도 보러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주변에서 자 꾸 책망을 해대는 데다가, 간 경화 초기라는 충격적인 말에 누나까지 얼굴도 비치지 않고 박대하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이 될 결심이 일어나기 보다 더욱더 파괴적인 생각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병원을 퇴원하던 날, 이 청년은 절대로 입에 대지 말라는 술을 싫컫 마시고는 `내가 빨리 술을 더 많이 먹아 피를 토하고 저 누나네 집 현관 앞에서 팍 쓰러져 죽어버리는 것이 고소하겠지...'그래 내가 그 소원을 들어주지, 하면서 술로 또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지 몇 시 간 만에 그의 파괴적인 마음에 귀신은 완전히 그의 마음과 육신을 점령하고 말았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같이 마귀에게 점령을 당하는 지경에 까지 몰고가는 미움과 분 노를 이겨내야 합니다.

 2)미움을 이기는 길

그러면 미움과 분노를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미움과 분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용서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이 없이는 아무리 미 운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해도 안되고 마음 속의 분노를 제거해도 안됩니다. 오직 용서만이 우리 마음 속의 분노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과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은 자만이 남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더럽 고 추하며 위선자입니까 그러나 우리같이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자도 하나님 께서 당신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시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죄과를 다 갚아주시 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은 우리들이 다른 사람 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받은 용서를 스스로 취소하는 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 6:14-15)"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 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 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도 (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체험한 우리들은 내가 용서받은 것처럼 남도 용 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는 용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1)코리텐 붐 여사의 용서

나는 코리텐 붐 여사의 이야기를 읽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화란이 낳은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입니다. 그녀는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아버지와 언니 베치와 함께, 도망치는 유대인들을 집에 숨겨 무사히 도망하게 도와 주다가 독일 헌병대에 발각되어 그녀와 언니 베치는 라벤스부르크 강제 노동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 수용소는 여자만 수용하는 수용소인데 여기에서 그녀 와 언니 베치는 온갖 고통을 다 당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매 금요일마다 치욕적인 건 강 진단이 있었는데 죄수들이 모두 옷을 벗고 양손을 옆에 붙이고 몸을 꼿꼿이 하여 경비원 앞을 지나갔습니다. 경비원들은 발가벗고 지나가는 죄수들을 바라보고 킬킬 거리고 웃으며 놀렸습니다. 그녀는 언니 베치가 피골이 상접한 나체로 남자들의 앞 을 지나가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면서 처참한 비극을 느꼈습니다. 얼마후 언니 베 치는 그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과 영양실조로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독일이 패전하고 코리텐 붐 여사는 기적적으로 생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코리텐 붐 여사는 뜨겁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더구나 코리텐 붐 여사는 독일에 건너가 전쟁을 일으킨 독일 국민에게 "회개하라! 하나님께서 당신 들을 용서해 주신다"라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코리텐 붐 여사가 독일의 뮌헨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는 설교를 통해 `전쟁을 일으킨 여러분의 죄악도 주님께서 용서해 주 신다'고 말했습니다. 예배가 필한 후에 코리텐 붐 여사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왔습니 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코리텐 붐 여사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습 니다. 그 사람은 라벤스부르크의 수용소에서 가장 잔인한 간수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코리텐 붐 여사는 머리 위에서 거친 불빛이 내리비취던 그 방, 발 가벗고 이 남자 앞을 지나갈 때의 부끄러우므 가냘픈 언니 베치의 모습이 떠오르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물론 그 간수는 수많은 여자와 죄수를 다루었기 때문에 코리텐 붐 여사를 잘 몰랐지만 코리텐 붐 여사는 수용소 안에서 잔인하게 굴던 간수 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허리에 매달려 흔들거리던 가죽 채찍 이 생각났습니다.

어느새 그 간수는 코리텐 붐 여사의 여사에게 손을 내밀고 말했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 여사의 설교를 들으니까 라스벤부르크 수용소에 있었다지요 나도 그 수용 소에 간수로 있었습니다. 그 때 나는 몹시 악한 일을 많이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지긋지긋합니다. 그러나 나는 전쟁이 끝난 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수용 소에 있었던 당신으로부터 직접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가" 코리텐 붐 여사는 그 순간 손을 내 밀 수가 없었습니다. 베치 언니가 많은 고통을 받으며 서서히 죽어간 것을 잊어버릴 수 없는 코리텐 붐 여사는 그를 용서할 수 없 었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의 손을 잡기 보다는 수첩 안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용서할 수 없다. 내가 열 두번 죽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우리를 짓밟은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 줄 수 있느냐'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나에게 침뱉고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를 향하여 온갖 모욕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용서해 주었다. 네가 나의 제자라면 이 사람을 용서해 주어라!" 그래서 코리텐 붐 여사는 얼른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 아무렴요. 당신을 용서하고 말고요. 당신은 우리를 비참하게 짓밟고 수많은 여성들 을 원한을 품은채 죽게 하였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 용서할 수 있습 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해 주셨으니 난들 어떻게 당신을 용서해 주지 않겠습 니까 나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코리텐 붐 여사가 이렇게 그 사람을 용서하고 악수를 하자 갑자기 코리텐 붐 여사 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코리텐 붐 여사는 미움과 분노 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평안과 기쁨이 강물처럼 온 영혼에 출렁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코리텐 붐 여사는 환란에서 독일 사람에게 고통당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 수 용소를 개설했습니다. 많은 정신병 환자들, 많은 육체적 환자들이 이 병원에서 치료 를 받고 나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독일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매를 맞고 짓밟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리텐 붐 여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미움과 분노를 없앨 수 있는데도 불고하고 그 수용소에서 끝까지 용서해 주지 못하고 분노를 가진 사람은 정신 병에서, 육체의 불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 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용서해 주고 원수를 위해 기도해 준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신병에서 고침을 받고, 육체적인 불구에서 치료를 받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용서와 사랑은 위대한 심리적인 치료와 육체적인 치료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미움과 분노는 끝까지 우리를 파괴하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 의 순단이 됩니다. 그 때문에 우리들는 우리들의 삶을 파괴시키는 이 무서운 미움과 분노를 용서로써 다 청산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사는 이상, 미움과 분노를 끊임없이 갖게 됩디다. 이러므로 우리 는 끊임없이 마음을 살펴보고 미움과 분노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미리 씻어버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이 나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용서해 주고 그것을 예수님의 피로 씻어야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불안과 공포가 우리의 삶을 실패케 만듭니다.

 우리를 실패케 하는 마음 가짐은 불안과 공포입니다. 불안과 공포는 마음을 얼어 붙게 만드는 마귀적인 억압입니다. 불안과 공포를 체험한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파 괴적인 요소인가를 깊이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의 축복받은 신실한 욥

바로 여기에 대한 증거자는 욥기에 기록된 `욥'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받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 에서 떠난 자가 욥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아들이 일곱이요, 딸이 셋이었습니다. 또한 재산으로는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 암 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은,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요, 권세있는 사람이었습 니다.

 2)욥에게 다가온 불안과 공포의 결과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살던 욥이 그만 마 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불안과 공포를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니 분명히 마귀가 하나님께 욥을 참소한 후 부정적인 생각으로 공격했습 니다. 마귀가 욥을 공격할 때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이 욥 마음의 불안과 공포였습니 다.

그의 마음 속에 갑자기 폭풍우처럼 불안과 공포가 휘몰아쳐 왔습니다. `나의 자녀 들이 모두 다 죽고,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게 되며, 나는 병이 들어 비참하게 되고 아내는 도망가며 패가망신할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욥의 생각을 주야로 공격 해 왔습니다.

욥이 만일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었더라면 이 마귀의 생각을 물리칠 수 있 었을 것인데 욥은 그만 마귀의 생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안에 떨고 초 초에 떨고 공포에 떨며 갈팡질팡하였습니다.

불안과 공포는 마귀가 초청하는 초청장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불안과 공포에 짓 눌려서 얼어붙은 마음같이 되어버리고 무기력하게 되어버리면 마귀가 이를 통해 여 러분을 휘어잡고 하나님에게 여러분을 참소하며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 키게 되는 것입니다. 욥이 바로 불안과 공포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욥 은 하나님 앞에서 보호받을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사람이 아무리 윤리 도덕적으로 온 전하다고 하더라도 믿음의 세계를 떠나서 불안과 공포에 빠지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가 되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 으면 불안과 공포에서 놓여나게 됩니다. 이러므로 아무리 우리가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이라고 할지라도 불안과 공포에 빠지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되며 마 귀의 세력에 점령 당합니다. 욥이 바로 이 비극을 당했습니다. 그 때문에 욥의 자녀 들은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있다가 대풍을 만나 집이 무너짐으로 다 죽임을 당했습 니다. 또한 천재지변으로 양떼들이 몰사했고, 갈대아 사람들의 침입으로 약대를 잃 는 등 패가망신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비 난하면서 떠나 버렸고 욥은 전신에 종기가 생겨 집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잿더미 위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처참한 상황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욥은 ( 욥 3:25)"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몸에 미 쳤구나"하며 탄식했던 것입니다.

욥이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혔을 때는 무수한 고통에 바졌지만 나중에 다시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회복하고 불안과 공포를 쫓아내자 하나님께서 다시 욥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3)두려움과 형벌

(요일4: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 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 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릅니다. 세상에 죄를 지어야만 형벌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만큼 형벌이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망할 것을 두려워 합니까 그러 면 망하는 형벌이 따릅니다. 늘 질병을 두려워하면 질병의 형벌이 따릅니다. 늘 실 패할 것을 두려워하면 실패의 형벌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을 내어 쫓아야 합니다. 성경은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 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두 려워하는 마음은 마귀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갖다 준 마음입니 다.

그러면 두려움을 어떻게 내어 쫓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분명히 `온전한 사랑에는 두려움을 내어쫓는다'라고 하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 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 경은 ( 롬 5:5)"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들이고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하 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기 때문에 두려움은 다 사라지고 사랑과 능력과 근신하는 마 음으로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능력과 근신하는 마음, 이것은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감으로 마귀의 두려움을 내어 쫓고 활기찬 생활과 건전한 마음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보냉 수 있는 것입니다.

 3.탐욕이 우리의 삶을 실패케 만듭니다.

 우리의 생애를 파괴하는 감정은 탐욕입니다. 인간에게 정상적인 욕망은 큰 축복입 니다. 사람이 욕망을 잃어버리면 그 때부터 그 사람의 발전은 그칩니다. 공부를 잘 하겠다는 욕망을 잃어버린 학생은 끝내 낙제생으로만 남습니다. 실업가가 사업을 성 장 발전시키겠다는 욕망이 없으면 그 사업가는 그로서 끝장입니다. 목사가 교회 성 장에 대한 의욕이 없으면 그 목사는 기도하지 않고 게을러집니다.

하나님께 달란트를 적게 받은 사람은 적은대로,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대로 좋은 욕망을 갖고 하나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나쁜 욕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탐욕입니다. 탐욕은 자기 분수를 넘는 욕 심을 말합니다. 사람이 대개 탐욕의 포로가 되면 분별없이 행동하다가 결국은 패망 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행하지 아 니하고 자기 분수를 넘어선 탐욕을 가질 때에 문제가 생겨납니다.

1)콘웰 박사의 이야기

미국 템플 대학을 창설한 콘웰 박사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란 북부에서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수도승 한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이렇게 농사를 짓 고 밥만 먹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이 세상에는 다이아몬드라는 보석이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산 사이로 물이 흐르고 백사장이 있는 곳에 가면 캐낼 수 있는데 이 다이아몬드를 캐내면 자녀들을 일류 대학에 공부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큰 부 자가 될 수있다. 그러니 다이아몬드를 캐라!' 이 말을 들은 농부는 `나는 농사를 지 어서 이렇게 처자를 배불리 먹이고 편안하게 잘 사니 그러한 욕망은 갖고 싶지 않습 니다.'라고말하면서 그 수도승을 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그 만 이 농부의 마음 속에 탐욕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 농부는 삶에서 행 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삶이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두더지 같이 땅만 파고 배만 부르면 되겠는가 그 수도승이 말한 것처럼 다이아몬드를 발견해서 큰 부자가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이 농부는 농사짓는 일을 천직인줄 모르고 다이아몬드를 찾겠다고 생각 하고는 자기 집과 농토를 다 팔고 가족들은 친구에게 부탁하고는 돈을 챙겨 다이아 몬드를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이 농부는 탐욕을 갖고 영국을 다 돌고 구라파를 다 돌았습니다. 결국 이 농부는 노자를 다 써버리고 초췌한 모습으로 고향 땅에 돌아가 기 위해 이태리 나폴리 항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 농부는 나폴리 항에서 배고파 지친 몸으로 절망에 빠져 있다가 넘쳐오는 파도에 몸을 던져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 니다.

어언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 농부의 땅을 산 사람이 어느날 들에 나가게 되었 습니다. 그 농부가 있던 집은 바로 높은 산, 깊은 계곡의 물이 흐르는 강가 모래사 장 옆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로 부터 땅을 산 사람이 모래사장을 지나가다가 반 짝반짝 빛나는 검은 돌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돌을 주워 자기 집에 장식품으로 진열해 두었습니다. 몇년의 세워이 지나고 그 수도승이 또 다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집에 들어간 그 수도승은 번쩍번쩍 빛나는 다이아몬 드 원광석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전에 그 농부 가 이 다이아몬드를 캐러 갔다가 돌아왔습니까' `아니올시다. 소문에 의하면 죽었 다고 합니다.' `그럼, 이것은 어디서 캤습니까' `아, 네 앞뜰 모래 밭에 나갔다가 뭔가 발에 걸려 보니 번쩍번쩍 빛나 장식품으로 쓰려고 주워 왔습니다.' `이것은 장 식품이 아니라, 다이아몬드입니다!' 이 다이아몬드가 바로 후에 소련(러시아) 황제의 왕관에 박은 다이아몬드입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이 후에 벌어졌습니다. 바로 죽은 그 농부의 집터에서 아프리카 다음으로 큰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행복의 다이아몬드 광산은 다른 데 있는 거이 아닙니다. 바로 현 재 내가 맡고 있는 그 자리에서 착실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갈 때에 그곳이 바로 행보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탐욕을 갖고 괜히 끝없이 유랑하면서 요행만 바란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결론>

( 잠 16:32)"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우리를 실패케 만 드는 미움과 분노,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불길처럼 일어나는 탐욕을 과감히 물리쳐야 만 합니다. 물리치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갖고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 속에 성실과 근면과 인내로 가득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성실과 충성과 근면과 인내로 사는 사람은 어느 곳에 가나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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