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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몬의 십자가. (막 15: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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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회력으로 종려주일이며 수난주간이라고도 하는 고난주간입니다.

이 한 주간의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주일인 오늘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수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이여!” 하시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였습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성의 입성은 전쟁에서 승리한 승리자가 개선하는 모습과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한 행진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만 온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신 것입니다.

월요일에는 예루살렘으로 들어 오시다가 시장하셔서 길 가에 서 있는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얻기를 원하셨지만 이 무화과 나무는 입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매없는 나무를 저주하셨고 나무는 뿌리까지 말라 버렸습니다. 이는 열매 없는 우리들의 신앙을 책망하시는 뜻이 있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유월절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찾아옴으로 성전에서 정사하는 사람들로 시장을 이루었습니다. 성전 뜰에는 제물로 쓰이는 소나 양을 파는 사람들 포도주와 기름과 소금을 파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로마의 화페를 성전에서만 쓰이는 유대화페로 바꾸어 주는 사람들로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분노를 하시며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상을 엎으시며 “내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시며 그들을 내어 쫒으셨습니다.

회요일은 과부다 옆전 두님을 성전에 헌금을 하시는 것을 보시고 칭찬을 하셨으며, 유대인들의 잘못된 믿음을 책망하시며 그들과 논쟁을 벌이신 날입니다.

수요일에는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이나 나가는 값비싼 향유의 옥합을 깨서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붓고 그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으신 날입니다. 이에 가롯유다는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쓰지 않고 허비했다고 불평을 했지만 주님께서는 마리아가 주님의 죽음을 준비하였다고 하시며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인의 거룩한 헌신이 함께 전해질 것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목요일에는 제자들에게 최후의 만잔을 배설하시고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이는 나의 살과 피니라.” 하시며 “이를 행함으로 나를 영원히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서로 자신들이 높다고 다투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제자들에게 “너희들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만 데리고 갯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다가 배신자 가롯 유다가 끌고온 군병들에 의하여 잡혀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이리저리 끄려 다니시며 심문을 받으시고 조롱을 받으시며 수치를 당하셨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부터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산에 오르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무거워서 자꾸만 넘어지시니까 구경왔던 구레넷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했고 시몬은 주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날 아침에 골고산 산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하여 무덤에 장사지내게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란 로마인들이 흉악한 죄인을 사형시킬 때 쓰이는 도구입니다. 로만인들은 죄인들 중에서도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이지 않았고 다른 민족 즉 유대인이나 다른 나라사람들 중에 강도 살인자 반역자들을 십자가에서 처형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죄인이지만 자기 국민에게는만은 십자가 처형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십자가는 굉장히 무겁다고 합니다. 죄인은 사형선고를 받으면 벌거벗긴 모습으로 자신이 매달려야 할 십자가의 횡목을 등에 지고 처형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와 같은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벌거 벗긴 수치를 당하는 고통입니다.
또한 십자가의 고통은 십자가에 손과 발에 못박히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은 자기 체중에 의하여 못밖힌 손과 발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물과 피를 다 흘리는 고통이며, 뜨거운 햇빛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심한 목마름의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알몸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고통을 당해야 하고 밤에는 추위에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이 무서운 공포의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산에 오르실 때 잠시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구레넷사람 시몬입니다. 구레넷은 지금의 리비아 나라를 가르키는 곳으로 이 사람은 흑인이였지만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으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오게 되였고 예수님께서 처형당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구경하다가 군병들에 의하여 억지로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대신지고 골고다 산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몬이 진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왜 하필이면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3년간 따르던 제자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위하여 생명을 받칠 것이라고 결의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아무도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내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고난을 받을 때 너희들은 다 나를 버릴 것이다”라고 말 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 찌라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내 목슴을 주님을 위하여 버리겠나이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였습니다. 이 베드로가 자신있게 말한 것 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골고다 산에까지 올랐다면 그는 훌륭한 제자였고 과연 수제자 다웠다고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의 고난의 자리에 얼굴도 보이지 안고 숨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요한은 예수님의 고난의 자리에 와 있기는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눈물을 흘리기는 했지만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내가 대신 지겠다고 용기있게 나서지 못한 사람이였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한 형제로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하나는 죄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한 사람이였는데 주님의 고난의 자리에서는 좌우편에 있지를 못한 것이였습니다.

또한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살려준 나사로도 “지금 내가 사는 것은 주님의 은혜이며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주님께서 살려 주셔서 지금 살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이니 지금 주님과 함께 죽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져 주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나사로도 그러지를 못하였습니다.

3년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또한 예수님의 손길로 병고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으로 부터 말씀을 들으려고 따랐던 수많은 무리들, 기적과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 모두가 예수님을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한사람도 동참하지 못하고 멀리서서 구경을 하고 있던가 아니면 도망가서 숨어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린 제자들을 보시고 더욱 비참하셨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고 흩어지지라.” 에언을 하셨지만 그 고통스러운 고난의 자리에 한사람도 함께 하여 주지 않았다는 것은 비애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내가 주님과 함께 죽겠습니다.” 라고 나섰다면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기쁘시고 용기가 나고 힘이 솟았을 것입니다.

삼년간 정성들여서 가르치신 말씀이 수포로 돌아 갔단 말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이 헛수고였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인덕이 없어서 사람들로 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까
제자들의 믿음이 아직까지 죽음의 고난에 동참할 만큼 자라지를 못하였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는 참으로 비참한 자리였습니다.
누구도 함께 해 주지 못하는 슬픈 자리였습니다.
만약 내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였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도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 처럼 숨어서 구경만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내가 저 십자가를 대신 지겠습니다. 하고 나설 수 있었을 까요
이렇게 예수님께서 고통스러워 하시고 어려워 하실 때 구레넷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져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주님을 필요로 할 때에는 매일 주님을 찾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다가도 주님께서 나를 필요로 할 때에는 주님을 버리고 주님을 외면하고 떠나는 이기주의적인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성숙한 신앙은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고 원하실 때 옆에 있는 신앙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주님께서 원하실 때 내 생명까지도 드리 수 있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새벽에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를 하고는 합니다. “주여! 이 셍명이 필요하시면 이 생명을 받으십시요” “주여 이 교회를 위하여 내 생명을 바칩니다. 나의 생명을 쓰십시요.!” 합니다. 그리고 “내 생명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고난의 자리에서 제자들처럼 외면하고 배신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해 주소서!” 그러나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장담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초대 부흥사인 김익두 목사님은 예수를 믿기 전에는 평양의 유명한 강패였습니다. 그는 평양의 선교사로 왔던 선교사의 뺨을 때리고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을 믿게 되였고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회 졸업생이 되였고 목사가 되여서 유명한 부흥사가 되여 일제 시대에 성령운동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회개 시키고 한국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6,25가 터지고 많은 사람들은 공산군이 불리하여 후퇴를 하는 중에 황해도 신천의 서북교회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분의 순교한 일화를 보면 새벽예배에 몇명의 교인들과 모여서 에배를 드리고 있었고 목사님의 설교는 “공산주의는 비단 보에 똥을 싸놓은 것과 같다. 이제 공산주의 자들은 망할 것이니 소망을 잃지 말라. 조금 있으면 유엔군이 들어올 것이고 이 나라는 공산당은 물러가고 통일이 된다” 라는 내용의 설교였습니다. 그 때 공산 당들은 김목사님을 잡아가려고 새벽에 몰래와서 지키고 있다가 공산당이 망할 것이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흥분하여 강대상에 서 계시는 목사님을 총으로 쏘았는데 맞추지 못하였고 다시 대검 찔러 죽이고만 것입니다. 그런데 김목사님은 순교의 자리에세 몸자세를 흩트리지 아니하고 공산당은 망할 것이다. 라는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순교를 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몇일 후에 국군이 올라오게 되여서 목사님을 장례를 지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몇일만 지켜주셨어도 김목사님은 순교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노 목사님을 순교를 당하게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김익두 목사님의 생명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내 생명을 원한다면 드리겠습니다. 라는 각오와 결단속에 이 고난 주간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2.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다는 문제를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억지로 라는 말은 자원한다의 반대말입니다. 시몬은 자원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단 산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원지는 않았지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억지로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로 첫째로는 일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억지로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겹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학교에가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대부분 억지로 하는 아이들입니다. 직장생활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신앙생활도 억지로 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시몬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깨달았다면 시몬은 억지로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졌을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중보의 십자가인데 내가 대신 지고 올라간다. 이 십자가는 나를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희생의 십자가 이며,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의 십자가다.” 이 비밀을 알았다면 그는 감격하고 기쁨으로 십자가를 졌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비밀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억지로 끌려가서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한 비밀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3. 그러나 우리는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이 늘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만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억지로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얼마나 힘들고 지겹습니까 그런데 억지로라도 해야 할 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을 가지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못한다면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온도계의 수은주와 같은 것이여서 신앙이 뜨겁게 올라갈 때도 있고 반대로 차갑게 식어서 내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루세끼 식사를 매일 하는데 열두달을 밥이 맛이 있어서만 먹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입맛을 잃고 밥맛이 쓰게 느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 건강이 유지 되는 것입니다. 밥맛을 잃었다고 몇일씩 굶어 보셔요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건강을 잃기 쉬운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교회에 나가기가 싫다고 몇번 쉬어보면 더 못나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힘들다고 기도를 쉬면 아에 기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억지로라도 열심이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이며 억지로라도 하나님게 엎드려 기도하게 되면 기도하다 은혜를 받고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목사의 설교를 매일 은혜받나요 일년 365일 52주 목사가 설교할 때 마다 은헤를 끼치고 은혜를 받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때로는 은헤가 안될 때도 있습니다. 또 설교를 들어도 다 기억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다. 집에가면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설교입니다. 그래도 열심이 듣고 있으면 은혜받을 때도 있고 다 잊어버리는 것 같아도 신앙은 점점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구레네 시몬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에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에 올라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시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의 비밀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헤에 감격하며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사는 초대교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된 것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는 바울을 도와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였고 시몬역시 안디옥교회에서 바울과 함게 복음을 전하는데 큰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시몬의 부인역시 믿음이 좋은 여인으로서 바울은 그를 가르켜서 “내 어머니.”라고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몬은 복음을 전하면서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진 것이 큰 간증이요 자랑거리였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쳤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하는 것이 때로는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가정 바람직한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성숙한 신앙일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일이 자원하여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 것 보다는 좋을리 없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힘이 들고 지루하고 때로는 지겹기까지 할 것이며 일에 능률도 없을 것입니다. 억지로 주일성수하고 억지로 십일조를 드리고 억지로 기도하고 억지로 성경을 본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신앙은 성숙한 신앙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고 억지로 하는 것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 뜨거움과 열정이 없습니다. 억지로 하는 기도는 응답이 없습니다. 억지로 드리는 예배는 감동이 없고, 억지로 하는 것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며. 억지로 하는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자원하여 기쁜마음으로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겠습니다.” 라고 할 만큼 도달하지 못하였다면 억지로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하다가 보면 어느단계에 도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스스로 자원하여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생겨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에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며 인내를 가지고 열심이 따라가게 되면 성숙한 신앙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십자가의 비밀에 대하여 잘 몰랐기 때문에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고난 주간에 우리의 신앙이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면 억지로라고 순종하고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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