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여 기도하라 (마 26:36-43)

첨부 1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내용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길 `시험에 들지 않게 깨여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와 제자들은 깨여 기도하지 못하고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잠을 자다가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치는 무서운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또 주기도문에도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깨여 기도하므로 시험에 들지 말고 시험에 빠지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늘 시험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시험이 끝나면 저 시험에 빠지고 저 시험이 끝나면 또 다른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 안에 머물0 러 사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시험에 빠져서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린 도전서 10장 13절를 보면 시험이 전혀 없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늘 시험이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이지 감 당할 수 없는 시험을 허락하시는 일이 없으며 만일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피할 길을 내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시험에 들만 한것 때문에 시험에 든다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이 해할 수도 있으나 별것도 아닌 것 때문에 시험에 드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지 나놓고 보면 별것도 아닌 일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니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 낄 때가 있으며, 그까짓 일 때문에 화를 내고, 낙심하고, 좌절하다니, 믿음이 겨 우 그것 밖에 안된다 말인가 하며 자신을 반성해 볼 때가 있는 것입니다. 시험 들 만한 것에 시험들면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 이겨야 되겠지반 별것도 아닌 시시한것 때문에 시험에 드는 믿음이 약한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시험을 주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흔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시험에 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가 족, 부모, 자식, 아내, 남편 등이 내게 시험을 주었다. 또 어떤 사람은 목사님, 교구장,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조장, 구역장, 순장들이 내게 시험을 주었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과연 옳은 말이냐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결코 가족, 목사 님, 성도, 친척, 직장동료들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올 바른 인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시험을 주셨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옳은 것인가, 과연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시험을 주시는가 하는 것 입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 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 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경우도 더러는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고,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하셨으나 그것은 극히 드문 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았으나 밤낮 시험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가 독자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를 알아보시려고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평생에 한번 허락한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또 빌립도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여러번 시험을 받은 것이 아니며 요한복음 6장 6절에 보면 빌립의 믿음을 저울질 해보시 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빌립을 딱 한번 시험에 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에 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밤낮 시험하시거나 계속해서 시험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를 시험하느냐 마귀가 시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마귀를 가리켜서 시험하는 자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아담과 이브를 시험 했고 욥을 시험했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렇다고 마귀가 수십번, 수백번 성 도들을 시험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는데 예수 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11절에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나시자 마귀가 깜짝 놀라서 예수님 곁을 떠나가 버리고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을 수종들었던 것입니다.

그후 예수님의 생애에 몇번 다시 나타나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에서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였을 때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하셨습 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죽어야 한다는 수난을 예고하시자 베드로가 깜짝 놀라며 "주여 그런 일이 절대로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여 그런 일을 멸하소서"하며 예수님을 위해 주는 말을 했습니다. 그순간 예수님께서 영안을 떠 서 보시니까 마귀가 베드로 속에 쏙 들어가서 달콤한 말로 예수님을 미혹하여 쓰 러뜨리려고 하는 사실을 아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 다"하시며 마귀를 쫓아 내신 것입니다. 마귀가 이렇게 몇번 예수님을 쓰러뜨리고 넘어뜨리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마귀가 항상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쓰러뜨리고 넘 어뜨리려고 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생동안 항상 우리를 붙어 다니면서 시험하고 미 혹하는 것은 아닙니다다. 물론 우리가 시험에 들도록 마귀가 조정하는 역할을 합 니다. 그렇다고 마귀가 항상 우리에게 시험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시험에 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받는 90% 이상의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자 기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리인 것입니 다.

예수님의 정신은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인데 섬김을 받고, 영광을 받고, 제 일인자가 되어야 되겠다. 그런 명예욕, 탐욕, 정욕 때문에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시험의 대부분은 자기 욕심 때문에 받는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 게 욕심때문에 시험을 받고서도 그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며 하나님이 나를 시험 하셨다. 또 마귀에게 전가하며 마귀가 나를 시험했다고 합니다.

물론 어떤 대상이 우리에게 섭섭한 이야기를 해서 시험을 받을 수 있으나 그 섭 섭함을 믿음으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 섭섭한 이야기를 한다고해서 시험에 드는 것은 내 욕심이 강하고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시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욕구가 달성되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섭섭하다 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나에게 왜 이런 시험이 다가왔느냐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하나님을 의심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밤낮으로 시험하시는 분 이 아니라는 것과 마귀도 늘 시험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시험의 대부 분은 자기 욕심 때문에 미혹을 받아 시험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모든 욕 심, 탐욕, 물욕, 정욕, 명예욕, 음란한 생각 등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시기를 바 랍니다. 그리하면 시험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왜 우리가 시험을 받게 되느냐 믿음이 약해서 시험을 받게 되는 것입니 다. 유행병이 만연해도 건강한 사람에게는 병균이 침입하지 못하지만 몸이 약한 사람에게는 병균이 침입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 감기가 유행할지라도 건강한 사 람에게는 면역성이 강해서 감기가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지만 몸이 약해서 면역성 이 약한 사람은 영락없이 유행성 감기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번 병원에 입원해 있을 적에 제 옆에 계시는 분이 입원해 계신지 오래 간만에 형제들이 면회를 왔습니다. 대구와 안동에서 올라오고, 또 어떤 사람은 비 행기를 타고 형님 병문안을 하러 왔는데 이 형님이 울면서 하는 말이 나에게 언제 형제가 있었더냐 하며 형제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내가 독신이지 무슨 형제가 있는 사람이냐 하며 먼 곳으로 부터 찾아온 동생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왜 이제 왔느냐는 식의 투정을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사람이 몸이 약해지면 마음이 약해져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 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신앙이 강할 때는 누가 섭섭한 이야기를 해도 시험 에 안들며 마귀가 아무리 미혹해도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약해 지면 별것 아닌 것에도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이단 마귀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과 믿음이 약해졌을 때를 노리는 것이며 믿음이 강할 때는 이단 마귀가 손대지 못하 고 미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해져 있을 때는 이단 마귀가 찾아 와서 솔깃한 말을 하면 그 말이 옳다고 귀담아 듣고 이단 마귀에게 넘어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믿음이 강한지 약해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체온이 36도 5부가 정상입니다. 그러나 병이 들게 되면 체온이 낮 아지든지 체온이 38도, 39도, 40도로 올라가게 되며 열이 심하면 헛소리를 하게 되고 헛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며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미 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식물계나 동물계에 돌연변이(돌연변이, mutation)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배 새끼에도 아롱이 다롱이가 있다는 말과 같이 옛날 어른들은 자식을 많이 낳았는데 7-8명이나 그 이상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자식들이 한결같이 효자일 수는 없으며 순수한 사람일 수는 없는 것이고 돌연변이가 한 두사람은 있을 수 있 는 것입니다. 한교회에 다닌다고 다 순수한 신앙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며 돌연변 이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교회 목사의 말은 우습게 여겨버리고 헛것을 보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의 말을 신기하게 여겨서 그 말을 곧이 듣고 쫑아 다니며 따라 다니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어젯밤에 사건 25시를 잠깐 보았는데 젊은 모자를 살해한 끔찍한 살인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살인죄를 지은 다음에 머리를 빡빡깍고, 승복을 입 고, 절간으로 돌아 다니면서 피신을 하고 있는데 아직 못잡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얼마나 중 흉내를 잘내고 기도를 많이 하던지 여자들이 줄줄 따 라 다니고 또 이 사람은 보살들을 많이 꾀어가지고 강간을 하고 성적인 범죄를 저 질렀으며 기도를 얼마나 잘하던지 기도 스님이라고 하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 줄 아십니까 40일 기도를 했다는 사람들, 또 말을 잘하는 부흥사들 가운데에 성도들을 미혹해서 자기를 따르게 만들고 여자들 에게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금품을 탈취하고 벼라별 짓을 하며 헛것을 보고 헛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따라 다 니고 그런 사람을 좋게 여기니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초대 교회사를 보면 교회는 많이 개척해서 세웠지만 목사님들이 매우 드물 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한분이 다섯교회도 맡고 열교회도 맡았으므로 목사님 한 분이 오늘 주일은 이 교회에서 다음 주일은 저교회에서 그 다음 주일은 다른 교회 에서 예배를 드리곤 하였으므로 시골 교회에서는 목사님 얼굴을 뵙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두달에 한번이나 일년에 한번 목사님 설교를 듣기도 했으며 나머지 주 일은 성도들끼리 모여서 찬송과 기도와 성경을 읽고, 그렇게 예배를 드렸으나 그 들의 신앙은 변치않고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고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어떻게 되어졌습니까 성도들의 신앙이 너무나도 세속화되 어졌고 사치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본교회 목사의 설교는 양이 안찬다고 생각해 서 이 기도원, 저 기도원, 이곳 저곳 쫑아 다니며 헛것을 보고 헛소리하는 사람들 의 소리나 귀담아 듣고 신기하다고 생각해서 쫑아 다니다가 이단에 미혹받아 넘어 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을 강하게 하여 절대로 이단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서는 안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에 굳게 서서 흔들림이 없게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왜 시험에 드느냐 하면 자기 욕심과 믿음이 약해서 시험에 드는데 시험에 들었을 때는 어떻게 시험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말씀에 굳게 서서 확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서 시험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어질 줄 로 믿습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세상을 이기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 라" 또 에베소서 6장 16절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라"고 하였습니다.

지난번 러시아 선교대회에 참여했을 때에 쌍 페트로스부르그에서 페트로스 대제 의 동상을 보았습니다. 말을 타고 바다를 향해 서서 뱀을 밟으며 바위로 된 언덕 을 올라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동남아시아에 가보면 용을 숭배하는 조각들이 많 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기독교 국가이었기 때문에 뱀을 마귀 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언덕을 올라가는 것은 만난을 극복함을 상징하고 뱀을 짓 밟는 것은 적국이나 사단을 짓밟는 것을 의미하며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희망을 상징합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사탄 마귀를 짓밟아 버리고 만난을 극복하며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시험에는 배후 세력이 있어서 조절하고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이 시험 에 들었다고 하면 그 가정을 조정하는 세력이 있는 것이지 남편이나 아내 때문이 아니며 그들을 조정하는 사탄 때문에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사탄의 역사가 아니 면 그보다 더 큰 문제도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인데 사탄이 역사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문제로 다투고,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며 또 파괴되고 불행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하고 역사하지 못하게 해야 되 겠습니다.

 둘째로 깨여 기도해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깨여 있어 기도해야 만이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깨여 있는 기도는 어떤 기도냐 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도, 눈물의 기도, 애통하 는 기도, 겸손한 기도,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 과 애통함과 겸손함이 없는 기도는 잠자는 기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육체로 마귀 의 시험을 이길 수 없는 것이며 오직 깨여 있는 기도를 통해서 만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체때문에 믿음이 약해서 시험에 드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시험에 들었을 경우에는 말씀에 굳게 서서 확신을 갖고 깨여 있 는 기도를 통해서 모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 되어지기시를 바랍니다. 회 개하며, 눈물흘리며, 애통하며, 겸손한 자세로 또 간절한 심정으로 부르짖어 능력 을 받아서 모든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어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을 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