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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예배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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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과 함께 경험되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예배 드리는 자가 누구냐 하는, 예배행위자의 중요성으로부터 출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며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랑을 경험하는 개인의 차이는 바로 우리 스스로에게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을 살펴봄으로 예배속에 들어 있는 신앙의 고백을 발견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을 통한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야곱의 과거를 먼저 추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야곱의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이었으며,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는 생활에 익숙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장자의 축복을 실현하기 위해 어머니 리브가와 손을 잡고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여기에 분노한 에서는 야곱을 죽이고자 했으며 형의 분노를 피해 가족과 고향을 떠나 지금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초행의 여행을 진행중이었던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노숙을 하던 중 그는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갖게 됩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인 것입니다.

1. 야곱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창28:12-15)
성경의 많은 인물 가운데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험란하게 살아왔다고 고백한 사람은 야곱 한 사람 뿐인 것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야곱의 인생 항로가 얼마나 파란만장 했을까는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야곱은 가장 모범적인 신앙의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과의 경험 이전에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가치를 확인하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갖기 위해 생명을 건 모험을 시도합니다. 당시의 관습대로라면 장자의 실제적인 특권은 아버지의 모든 유산 상속의 기득권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일로 인하여 아버지의 재산은 하나도 상속받지 못하고 오히려 험란한 여정을 자신의 생활로 경험하게 되는 아픔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장자권의 축복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적으로 이해하여 조급했던 리브가와 야곱의 결단은 오히려 야곱의 인생을 험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형식과 가정의 습관속에 하나님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결코 야곱은 스스로 깨달은 하나님에 대해 예배하는 경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야곱은 이제 인생에 가장 고달픈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태중에서 야곱을 축복하시며 약속하신 장자의 특권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이제 가장 절박한 순간에 야곱을 찾아와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야곱은 처음으로 자신이 믿었던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인격적인 충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가 경험한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한 하나님이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처음으로 하나님에게 약속의 축복을 받는 순간의 야곱을 우리는 목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한 장자의 축복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이해하여 극단적인 행동을 한 야곱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 새로운 깨달음과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 사건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야곱이 하나님을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하나님으로 경험되는 최초의 사건이었다는데 신앙의 가치와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누군가를 통해 전수되고 교육되지만 그 신앙의 지식이 자신의 것으로 확인되는 것은 바로 스스로 하나님을 경험하며 결단하는 순간에 이루어 지는 것임을 야곱은 본문에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야곱의 예배(창28:16-22)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 야곱은 이제 하나님을 향한 종교적인 결단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 담담하게 있을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며 새로운 인생관으로서의 전환이기도 한것입니다. 야곱은 그런 동일한 경험을 고백하게 됩니다.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야곱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을 그는 인격적으로가 아닌 장소적으로 깨닫는 오류를 범합니다. 결국 야곱의 이 오해는 그의 인생을 험란하게 만든는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 야곱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리고 야곱은 비록 불완전한 예배지만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자신을 고백하는 순간을 갖게 됩니다. 아마도 이러한 예배의 형식은 가정에서 훈련된 신앙의 교육으로부터 기인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시인하는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갑니다. 처음 야곱이 고백한 것은 예배의 행동 이전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고백이었으며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다”는 그의 놀라움의 외침은 하나님의 실존을 고백하는 순간이었으며, “두렵다”는 야곱의 고백은 바로 인간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 고백의 증거로 이제 단을 쌓기 시작합니다.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벧엘을 번역하면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원래 이 곳의 고유 지명은 루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경험한 루스는 야곱에게 새로운 곳으로 기억되게 된 것입니다. 벧엘은 야곱의 영적인 출발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야곱은 예배의 클라이막스인 서언을 하게 됩니다. 그 서언의 내용이 22절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다분히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서언이지만 야곱은 하나님앞에 헌신의 형태로 자신의 일부를 드리겠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경험하면서도 완전한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아직 하나님의 경험이 어떻게 인생에 적용되는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조건적인 헌신을 고백합니다. 철저히 인간적이며 합리적인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는 야곱의 가치관은 온전히 변화되지 못한 그의 신앙적 자세로 결국은 스스로 바로 앞에서 험란한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초라한 노백의 모습을 보이게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경험한 최초의 야곱의 예배였다는데서 우리는 신앙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몇가지 진리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예배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고백하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예배의 행위는 결코 인간의 그 무엇을 위한 시간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존을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증거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신앙의 고백으로서 신앙인의 권리인 동시에 특권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는 무조건적인 순종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가르치는 진리는 예배는 예배자의 진실된 고백을 근거로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결코 형식만으로 그 가치를 경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배자의 고백을 형식이라는 종교적인 고유한 폼으로 우리는 나타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고백을 예배자의 도덕성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경험은 바로 이 예배자의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배자의 진실된 고백이 상실된 예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 본문은 예배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온전한 헌신은 아니었지만 야곱은 자신의 일부를 하나님을 위해 드리겠다고 고백합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결단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여 신앙을 고백한 형제 자매들은 이 헌신의 의미와 가치를 그리고 헌신의 타당성을 오해없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예배가 증거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나의 예배속에 나의 신앙은 얼마나 고백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예배의 고백을 통해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많은 약속들을 경험하는지 우리는 고백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은 우리의 사랑의 행위는 또하나의 교만이라는 시험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결코 우리의 노력과 의지의 반영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마나 나의 삶 속에 인정하느냐 하는 순종의 고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매주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 예배를 통해 습관적인 종교인으로 전락하는 잘못을 막아야 할 것이며 오히려 진정한 신앙을 누리고 고백하는 예배의 모습으로 증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이 임재되는 거룩한 시간으로서의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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