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용서와 사랑 그리고 치유 (요 08:1-11)

첨부 1


전쟁의 포격으로 황폐해진 산천에도 세월이 지나면 아름다운 꽃들과 숲에 생겨납니다. 자연은 인간의 횡포를 용서하고 사랑의 손길로 상처난 곳을 치 유하는 것입니다. 산불이 스쳐간 곳, 홍수가 쓸어간 곳, 지진이 허물어뜨려 놓은 곳이라도 자연은 세월을 통해 용서하고 치료하여 새롭게 해놓스니다.

용서와 사랑과 치료가 없이는 인간과 자연은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과식으로 배탈이 났을 때, 과로로 몸져 누웠을 때, 병들어 고생할대, 혹은 상처를 입어 피 흘릴 때, 또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치유를 얻고 회복 합니다.

 용서와 사랑과 치유는 자연의 질서요 인생의 질서입니다. 용서와 사랑과 치유가 없이 가혹한 정죄와 심판과 형벌만 있는 곳에는 황폐와 파멸만 있을 뿐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용서와 사랑과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 원이십니다.

 1. 죄인에 대한 용서와 사랑과 치유의 예수님

요한복음 8장에는 예수님의 위대한 용서와 사랑과 치유의 사역이 나옵니 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성전에서 이른 아침에 말씀을 증거하시는데 대군중 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심취해 있을 때 갑자 기 일단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중에 잡힌 한 여인을 끌고 왔습니 다. 이 여인은 개처럼 질질 끌려 왔기에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은 찢겨져 나갔으며 얼굴을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여인을 예수님의 발 앞에 내동댕이치고 난 다 음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살기등등한 자세로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 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 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한복음 8:4-5)라고 말했습니다. 이들 이 이렇게 말하게 된 것은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얻게 위해서 였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두 말하지 아니하시고 허리를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적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한복음 8:7)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허리를 굽혀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의 어깨 너머로 바라보던 '정죄자'들은 갖바기 죄의 폭로에 대한 큰 양심의 가 책을 느기찌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그 들은 들고 있던 돌을 다시 다시 땅에 내려 놓고 슬금슬금 다 도망치고 말았 습니다.

 한참만에 예수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군중들이 다 사라진 현장엔 예수님 과 여인만이 있었습니다.살기등등한 분위가 사라지고 평화로운 정적이 흘렀 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의 어디 있느냐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 냐"(요한복음8:10)라고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주여 없나이다"(요한복음 8:11) 여자가 숨죽인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요한복음 8:11)고 예수님께서 용서와 사랑의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이 여인의 영혼엔 용서와 사랑과 치유의 은혜가 넘쳐났습니다. 그것은 일생의 체험 중 가장 감격스러운 체험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과 치유를 받았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남 은 인새을 참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정의롭게 살리라" 이 여인은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과 치유과 없었다면 이 여인은 율법의 정죄에 따라 처형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용서받고 사랑 받고 치유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정죄하여 형벌을 주기 이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를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악으로 찢긴 인생을 회복시키시는 위대한 사랑 의 구세주이십니다.

 2.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 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 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3:16-17).

 오늘날 예수님께서 무조건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 오신 것으로만 생각하 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값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 크나큰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오늘날 우 리는 갑없이 믿음으로 구원과 용서를 받지만 이 무한한 은혜가 이루시기까 지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희생을 치르셨던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 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 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 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야웨께서는 우 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5,6).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대속을 위한 속죄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크셨던지 예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 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27:46)라고 절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다 짊어 지시고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다 이루었다" 라고 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 가운데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탕자가 회개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따뜻하게 맞아주며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리라 그리고 살진 송아 지를 끌어다가 잡으라,우리가 먹고 즐기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비유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탕자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라면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탕자가 돌아왔다는 것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온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히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악의 누더기를 입고 있습니다. 이 누더기를 입고는 결코 아버지의 궁전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에게 옷을 입히시는데 두번째 좋은 옷 도 아니요, 세번째 좋은 옷도 아니요, 세번째 좋은 옷도 아닌 "제일 좋은 곳"을 입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마련하 신 옷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옷이요, 의의 옷인 것입니다.

 이 우주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가치있고 고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 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를 쏟으시고 생명을 버리심으로 의의 옷이 되셨습 니다. 이것을 우리는 값으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그 밖의 행위는 모두 누더기같은 옷입니다. 인간은 값을 주고 이 고귀한 옷을 살 수 가 없습니다.

 태양의 빛을 값주고 살 수있습니까 태양의 빛도 값주고 못 사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영생과 의를 어떻게 값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는 믿음 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고 제일 좋은 곳, 그 의의 옷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모든 죄를 다 고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값없이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년전에 우리의 죄, 불의, 추악을 짊어지고 고난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창에 찔리셨 습니다. 상처를 입으셨으며 고난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신을 위 해 고난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고난을 당하심으로 구원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의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죄 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 든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을 우리 주님께 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 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는 성령님 과 동행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은 사람은 '안에 거하시는 성령 의 역사'를 체험하며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말 씀을 읽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성결하게 하십니다. 이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누구든지 믿음을 가지면 이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됩니다. 예수님의고 난없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며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서 우리를 사랑하실 수 있는 것도 십자가의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지불한 용서와 사랑과 치유가 가치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십자 가 고난 이 대가야말로 용서와 사랑과 치유에 대한 가장 위대한 대가요 영 원한 가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안에서 받은 용서야말로 가장 값비싼 용서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받은사랑과 치유야말로 가장 값비싼 사랑과 치유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고귀하게 생각해서 늘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섬기 기위해 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3. 용서와 사랑과 치유의 응답

이렇게 영광스러운 용서와 사랑과 치유를 우리가 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 해야 합니다. 용서와 사랑과 치유는 회개로써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4:17)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란 원죄와 자범죄를 통회하는 것 뿐이 아니라 잘못의 현장에서 철저히 돌이키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자기 잘못을 늘어놓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한번 회개함으로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회개한 후 또 죄를 짓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고 통회자복해야 하는 것 입니다. 구원은 누구든지 믿음의 고백으로 단번에 받습니다.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끊임없이 회개하고 그 죄의 자리에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니 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 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긋케 하실 것이요"(요한1서1:9)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 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 님께서는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 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 라"(마 18:2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우리는 무한정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볼 수 있습 니다. 참으로 우리가 죄에 대해 애통하여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용 서하실 것입니다.그러나 애통하는 마음없이 습관적으로 죄를 짓고 형식적으 로 회개하는 사람을 향해 하나님께서 채찍을 드실 것입니다.

 성도는 회개할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 는 생각이 거룩하고 말이 거룩하고 행동이 거룩해야지 그렇지 않고 형식적 으로 기독교란 종교만 믿고 교회에 왔다갔다 하며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면 참다운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의 죄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위선자요 바리새인입니다. 이런 사람은 끝내 하나님께 버림 받고 말 것입니다.

 그러자면 우리는 성경말씀을 언제나 묵상해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 시록까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을 성결케 합니다. 아무리 교회 에 열심히 다닌다 해도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말씀을 가까이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출석교인'은 될지언정 참된 신앙인인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므로 성결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시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 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 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 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되게 하려하심이니라"(디도서 3:5-7).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가 자꾸 새로워집니다. 속사람이 날로 새로 원지는 비결,그것은 성령충만에 있습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은 힘으 로도 아니되고 능으로도 아니됩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입니 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 야 합니다. 성령님은 기름으로 묘사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물과 기름은 서껑지 않습니다. 즉 세상의 죄가 아무리 범람해도 성령충만한 사람은 죄가 아무리 범람해도 성령충만한 사람은 죄의 홍수에 물들지 않고 성결한 신앙 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분리되어 성결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절도있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지금 이 세상은 절도를 잃 고 혼돈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하나님보다 물질과 쾌 락을 더 사랑하며 소모품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하나님보다 물질과 쾌락을 더 사랑하며 소모품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런 때 신앙을 잘 지켜 절도있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성 도는 먼저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술꾼과 사귀는 사람은 술꾼이 안 될 수 없으며 강도와 사귀는 사람은 강도짓을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음란 한 사람과 사귀는 사람은 인생을 음행으로 더럽히고 노름꾼과 사귀는 사람 은 노름꾼이 되고 맙니다.

 인생과 분위기는 이처럼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용서받은 성도가 은혜의 분위기를 갖지못하면 세상으로 타락하고 맙니다. 아담과 하 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바라봄으로 그 분위기에 의해 타락하 고 말았습니다. 성도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은혜의 분위기에 젖어 살 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속에 젖어 살면 패망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처럼 타락이 극히 달한 때도 없습니다. 음란과 방탕을 조장하는 내 용의 매체가 매일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 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세상과 분리되 어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모신 우리는 성결을 추구하고 이웃에 이를 증거 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거룩해야 합니다. 이것이 용 서받고 사랑받고 치유받은 성도가 갖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성도는 이웃을 용서하고 이웃의 성공을 위해 살아야 합 니다. 성도가 용서를 받았다면 남을 정죄하지 말고 용서를 베풀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치유의 역사가 더 넘쳐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크신 인내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또 사랑하시며 치유하십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빗나가고 있으 며 하나님의 구원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이는 큰 비극입니다. 하나님을 가 까이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만나주시고 은총을 내려주십니다.

 이 시대만큼 용서와 사랑과 치유가 필요한 때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 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믿어야 하며 이웃에게 용서와 사랑 과 치유의 메시지를 증거해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