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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본능과 구별된 사랑3 (창 13:1-13, 고전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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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묻힌 사랑이란 보석을 캐내기 위해 파헤쳐야 할 거친 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파 내려 갈수록 더 큰 돌들이 가로 막고 있어 점점 더 힘들어지고 그래서 사랑을 향한 모험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괴롭다 하더라도 이 장애물들을 파헤치지 아니하고는 사랑이라는 보석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 속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거친 돌들이 무엇인가 살펴보고 이것들을 들어내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까지는 우리가 네 개의 큰 돌들을 들어냈습니다.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아마도 가장 큰 거친 돌들을 들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기심과 분노라는 두개의 돌들이 우리 속에 너무 크게 자리잡고 있어 이것을 제거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것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반석처럼 자리잡고 있어 그것을 깨고 내려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기심(利己心)과 자존심(自尊心)은 우리 존재의 근본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도달하기 위하여서 제거하지 않으면 안될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예수께서 일찌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곧 자기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기심과 자존심을 버린다는 것은곧 자기 부인(否認)을 뜻하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죽어야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사람들은 주저하게 되고 망설이게 되며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사랑이 아무리 좋아도 자기의 죽음을 통해서 얻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사랑이란 값진 것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I.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읽으면 "저 자신의 것들을 구하지 않으며"입니다. "저 자신의 것들"이란 강력한 소유욕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한다"는 단어는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현재형의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인간은 계속하여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구한다는 말입니다. "구한다"는 단어는 "애쓴다" "찾아 다닌다"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명예롭게 한다든가 자기에게 이익이 온다든가 아니면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맹렬하게 추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중병은 나의 고뿔만큼도 중히 여겨지지 않은 것이 우리의 이기심입니다. 나를 위한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은 지독한 이기심의 발로라고 하겠습니다. 내 일이 아니면 상관하고 싶지도 않고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미움은 이웃을 너로 취급하지만 무관심은 이웃을 사물로 취급하는 것"(죠셉 플레쳐)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1980년 죠지 크리스티라는 한 남자가 글라스고우의 시내버스 2층 칸에서 갑자기 병이 났습니다. 그가 자리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동안 버스는 그를 실은 채 운행노선을 다섯 번이나 왕복했으며, 그 후에야 경찰이 호출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실제로 그는 뇌출혈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승객들이 쓰러져 있는 그를 신고했으나 3시간 뒤에야 경찰에 인계되었고, 경찰은 다시 그를 7시간 동안 감금하여 결국 승객 신고후 10시간 이상 지난 뒤에야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음 날 병원에서 숨졌습니다.
모두 자기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모르고 지내는 것이 현대인들입니다. 이 지독한 이기심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아니한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매마른 사회가 되어 썩은 냄새로 뒤덮이고 말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식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입학시키겠다고 하여 막대한 돈을 쓰는 부모들이나 대학의 권위는 생각지 아니하고 그런 돈을 받아 쓰는 교수나 국회의 권위나 체면 따위는 아랑곳 없이 아무 돈이나 마구 받아쓰는 국회의원들, 이 모두가 이기주의의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이 이기심은 에덴 동산에서 때부터 있었습니다.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은 후 하나님의 추궁을 받자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와는 뱀때문에 먹었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 다 지독한 이기주의자였습니다. 이 이기심은 부부관계를 파괴시키며 공동체를 파괴시킵니다. 이기심은 사회를 좀 먹는 악의 요소입니다. 전체를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생각할 때 사회질서는 깨어지고 윤리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 그보다 훨씬 작은 성인 아이성을 공격하다가 실패하게 되었을 때 그 원인이 바로 아간이라는 이기주의자 때문이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져서는 안되는 전리품들을 몰래 숨겨 놓았던 것입니다. 아간은 자기 유익만을 추구한 결과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간은 그 가족과 더불어 돌에 맞아 죽었던 것입니다.

이기심은 다른사람을 파멸케 함과 동시에 결국은 자신도 파멸케 하는 무서운 독소입니다. 아간을 제거함으로 아이성에서 다시 승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속에 있는 이기심을 제거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3-4)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5장에서는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2-3)라고 하였습니다.
축구나 야구같은 단체경기에서 선수들은 스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전체 팀을 위한 경기자가 될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특히 프로야구나 프로 축구의 경우 스타들의 자기 기록관리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에 팀보다는 자기 기록에 더 관심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많아도 팀이 우승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한것을 봅니다. 전체 팀보다는 스타로서의 자기 기록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는데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의 전체 역사를 살피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 없이 자기의 뜻만을 추구하고 기도하는 자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신자입니다. 사랑은 자기만을 생각하는데서 떠나 이웃의 아픔에 관심을 갖고 동참할때에 울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보다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거하였으나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싸우기때문에 부득불 따로 살지 않으면 안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 하리라"(창13:9)
아브라함이 만약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면 "나는 네 삼촌이니까 내가 먼저 선택한 다음 네가 어디로 가든지 가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므로 그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기심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조금씩 이기심의 반석을 깨어 나간다면 언젠가 그 덩어리들이 모두 깨어져 나오게 될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우리의 이기심을 깨어내도록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II.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

다음에 우리가 파헤쳐야 할 장애물은 "성냄"입니다. "성내다"로 번역된 희랍어는 "곁에" 라는 말과 "뾰족하게 하다"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다른 사람때문에 내 마음이 뾰족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발끈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때문에 발끈 성을 내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성내는 일은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나는 더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므로 불행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자란 막역한 친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클레토스라는 그의 친구는 알렉산더 대제의 휘하에서 장군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이 친구가 술에 취해 알렉산더의 많은 부하들 앞에서 대제를 모욕하는 말을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발끈한 알렉산더는 옆에 있던 병사의 창을 빼앗아서 클레토스에게 던졌습니다. 죽일 마음은 없었으나 불행하게도 그 창은 자기의 친구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크게 후회를 하고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다 옆의 사람들의 만류로 실패했다는 일화가 전해옵니다. 그는 전 세계를 정복했지만 자기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의사들의 연구에 의하면 성을 자주 내는 사람은 관상동맥에 영향을 주어 협심증을 일으키기 쉽다는 것입니다. 화를 낼 때면 심장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피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시뻘겋게 단 쇠꼬창이로 가슴을 찌르는 것같은 통증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적개심을 일으키는 힘은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데서 생깁니다. 불신은 실망을 자아내고 실망은 분노를 야기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화가 나게 되면, 아드레날린과 기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그 결과 뚜렷한 신체적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목소리는 고음으로 바뀌고 호홉의 속도가 빨라지고 심도가 깊어집니다. 심장은 더빨리 그리고 더 심하게 뛰며, 팔다리의 근육이 긴장이 됩니다. 이런상태가 조금만 더 계속되면 마침내 폭발하여 어떤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헐크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주 성을 내다보면 화를 내는 동안 분비되는 호르몬들의 누적된 효과로 관상동맥 질환이나 다른 질환이 생길 위험이 높아질 수있다고 합니다.(리더스 8910 P112) 다른 말로 말하면 화를 자주 내는사람은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잘못된 사물이나 상황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불의한 일을 보고도 의분(義憤)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비겁자이거나 무책임한 사람일 것입니다. 요즈음 계속 터져 나오는 비리들을 보면서 의분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잘못된 상황에 대해서는 우리가 화도 내고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과감한 행동을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 성을 내고 하찮은 일에도 발끈하는 것은 하나도 유익함이 없는 행동입니다.
바울은 처음에 바나바와 함께 전도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도에서 탈락한 마가를 두번째 여행에 함께 데리고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대립되어 서로 화를 내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져 각각 전도하였습니다. 하찮은 일로 이들은 화를 냈고 결국 그들은 함께 일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권투를 좋아하는 것은 화나는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컨 뚜들겨 주고 싶은 나를 대신해서 권투선수들이 마음껏 뚜들겨 주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하여도 성내지 아니하고 참고 이해하고 설득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심장병 환자들에게 화 내는 일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환자들이 이렇게 대답을 한답니다. "나는 과거에 화를 많이 냈지요. 그러나 심장발작이후 나를 화나게 했던 일들이 사실 화를 낼 만한 가치가 없는 하찮은 일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사랑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성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을 건드린다 하더라도 그 자존심이란 하나님 앞에서는 쓸데없는 것이기에 자존심 자체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자주 화를 내서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보다는 자존심을 버리고 건강하게 그리고 다른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어 주는 편이 훨씬 현명한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에베소서에 기록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4:26)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성내지 아니하는 훈련을쌓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파헤치기 어려운 큰 장애물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것들을 버리지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이 단축됨과 동시에 우리 가정과 사회를 파괴시키고 말 것입니다. 이기심과 자존심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섬김과 희생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서 사랑이 매말라 있는 까닭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이기심과 분노를 버리고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역사를 통찰하여 자신을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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