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악한 통치자와 선한 통치자 (왕상 15:1-34)

첨부 1


유다와 이스라엘의 초기 왕들이 각각 소개되고 있다. 남쪽 유다왕과 북쪽 이스라엘 왕을 각기 두 명씩 소개하여 악정과 선정을 알리고 있다. 아비얌 왕은 악하여 통치 기간이 짧았고, 아사는 선하여 통치 기간도 매우 길었다. 하나님 앞에서 악한 자와 선한 자의 통치기간이 비교되고 있다.

1. 악한 통치자 아비얌(1-8)

(왕상15:3)“아비얌이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나”
하나님은 다윗 왕조를 특별히 보호하셔서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 도시를 특별한 섭리 가운데 지켜 주셨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그 말년에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졌고, 그 뒤를 이은 르호보암과 아비얌 역시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다윗가의 왕위 계승이 수많은 죄악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350년간 지속됨으로 200년동안 수많은 왕조가 뒤바뀐 북 이스라엘 왕국과 대조를 이룬다.
1) 아비얌은 아비 르호보암의 악한 행위를 본받았다

아비얌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합당하게 행하였던 다윗을 본받지 않고, 악한 길로 달음질한 자기 아비를 본받아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다.
본받아야 할 좋은 것은 부지런히 배우되 악한 것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도록 해야한다. 성도가 본받아야 할 유일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신앙이 숭배의 대상이 되거나 모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2)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사 유다를 견고케 하셨다.

본서 기자는 악한 왕들이 다윗가에서 왕위를 계속 지켜 나갈 수 있었던 원인을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한 이행에 있다고 파악하였다. 다윗의 의로운 통치와 신앙을 회상하여 역대 유다 왕들을 비교 평가하고 있다. 다윗 왕이 이후의 왕들을 비교하는 기준이 된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그 자녀손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3) 사는 날동안에 여로보암과 전쟁이 있었다.

죄인들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그와 그의 나라에 전쟁이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원한다면 그분을 완전히 순종하도록 힘써야 한다. 평강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축복이다.

2. 선한 통치자 아사왕(9-24)

(왕상15:11)“아사가 그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아사왕의 통치기간은 41년이다. 이는 유대 역대 왕 중에서 세번째로 장기 통치자에 속하는데,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는 왕의 통치는 그 기간이 길었음을 열왕기 전체에서 보여준다. 유다의 제 3대 왕 아사는 왕국 분열 이후 처음으로 종교개혁을 행한 인물이다.
아사는 태후의 위를 폐위시키는 등 강력한 개혁 의지를 실천하였다. 사사로운 혈통의 정에 얽메이지 않고, 우상숭배를 금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단호히 고쳐 나간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악한 왕 아비얌의 기사를 간단히 언급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한 왕 아사에 대해서는 3개 장에 걸쳐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1) 아사왕의 개혁방법

첫째, 육적, 영적인 죄악의 원인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우상숭배는 영적인 죄악의 원인이었고, 남색하는 자등 도덕적 타락은 육적 죄악의 원인이었다.
둘째, 인정을 통해 오는 죄악의 원인을 끊었다. 아무리 우상을 세운 태후라고 할지라도 모자지간의 정을 끊을 것을 각오하고 개혁하였다. 인정에 얽메이게 되면 신앙의 개혁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셋째, 물질로 오는 악의 원인을 제거하였다(15). 이전 왕들은 물질로 범죄하였으나 오히려 아사 왕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물질을 드림으로 물질로부터 승리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신앙 양심을 속이는 적당한 타협적 자세를 버리고 신앙개혁의 모험을 단행해야 하겠다. 안전제일주의, 무사안일주의로 나가다가는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 없다.

2) 아사 왕의 실수(16-22)

(고전10: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바울은 말하였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신앙 개혁을 이룩하였떤 아사왕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1) 아사 왕의 실수-북왕조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와 이스라엘 중간의 요충지에 라마를 침략하고 요새화하여 남북 교류를 중지시켰다. 이것은 아사 왕의 신앙 개혁정책으로 이스라엘의 경건한 자들이 예배와 경제의 안정으로 남쪽으로 이주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대처하는 아사 왕의 처신은 비 신앙적인 행동이었다.
아사 왕은 왕궁의 은금과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렸던 물질까지 동원하여 아람 왕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 결과 바아사는 퇴각하고 아사는 두 요새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함으로 모든 일이 잘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신앙을 버린 아사의 행위는 하나님의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게 되었고, 아사 왕은 악을 더 행하여 선지자와 경건한 자를 학대하기에 이르렀다(대하16:10).
그 결과 발에 병이 들어 죽게 된다.

3. 여로보암 가문의 멸망(23-34)

여로보암 가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말씀을 배반하므로 그 가문이 멸망 당하고 말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결국 잇사갈 족속인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를 들으셔서 여로보암 가문을 완전히 멸절시키고 말았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