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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과부를 돌아보는 엘리야 (왕상 17:8-16, 갈 01:11-24, 눅 0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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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장 전후에는 이스라엘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며 그들의 신앙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을 때 엘리야를 통해 그 땅에 기근을 알리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땅에 수년 동안 우로가 없을 것을 예언한 후 그릿 시냇가에 피하여 숨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아니하여 시내가 마르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보내어 거기 유하며 그곳 과부를 통하여 공케받게 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왕상17:9)

과부는 하나뿐인 자식과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는 순간에 엘리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엘리야를 공케하게 되자 여호와께서 비를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자주 과부에 대한 언급이 등장합니다.

( 출 22:22)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 신 24:17)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 사 1:17)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 약 1: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이와 비슷한 예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죽음에 개입하셨던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눅 7:12)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눅 7:13)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참된 경건은 과부와 고아를 돌아보는 것을 포함한다는 야고보의 해석은 목회적인 관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언급입니다.

오늘날 구제를 잊어버린 신앙인 들은 다시금 구제하는 마음으로 이 땅에서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11-24
( 갈 1:1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 갈 1: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 갈 1:13)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 갈 1:14)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 갈 1:15)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 갈 1:16)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 갈 1:17)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 갈 1:18)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새
( 갈 1:19)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 갈 1:20)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 갈 1:21)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 갈 1:22)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 갈 1:23)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 갈 1:24)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이 본문은 금주의 주제와 다른 교회력 성서 일과에 속해 본문은 바울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 연유를 밝혀 주며, 또 바울이 예루살렘과 수리아와 갈라디아 지방에 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감사하는 내용으로 묶어졌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체험 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먼저 사도된 자들에게 배우지 않고 직접 아라비아 광야로 들어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아라비아를 거친 후 전에 박해하던 그 믿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 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갈 1:23)

바울이 다메섹 체험과 이어진 아라비아 광야의 세월은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후서에서 그 체험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후12:1)
혹 이 체험이 그의 아라비아의 수련 기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울은 아주 독특하게 사도의 대열에 끼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신비주의 신앙의 원조 격입니다.
직접으로 인간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고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의 소명도 아주 독특하였습니다.
다메섹의 도상에서 그가 체험한 예수님의 음성과 강렬한 빛은 그의 일생을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바울은 학자적인 사역을 감당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성을 뛰어넘는 건전한 기독교 신비주의로 기초를 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은사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바울과 같은 학문과 영성을 겸비하는 것이 기독교 부흥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7:11-17
( 눅 7:11)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동행하더니
( 눅 7:12)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 눅 7:13)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 눅 7:14)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 눅 7:15)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 눅 7:16)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 보셨다 하더라
( 눅 7:17)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사렙다 과부가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마지막 남은 음식을 먹고 죽으려는 순간 엘리야의 도움을 입은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나인성 과부의 하나뿐인 아들이 죽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눅 7:13) 나인성은 나사렛 남동쪽 16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당일에 장사를 지내고 묘지는 성 바깥쪽에 두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이 예수님 생애 당시 몇 번 있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사건입니다.
구약에서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 엘리야가 살려낸 기사까지도 도합 세 번입니다.
(왕상17:17)이 일 후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왕상17:18)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왕상17:19)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 가서 자기 침상에 뉘이고
(왕상17:20)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왕상17:21)그 아이 위에 몸을 세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왕상17:22)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왕상17:23)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왕상17:24)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줄 아노라 하니라
예수님은 모든 죽은 자를 다 살리시지 않았고 육체의 영생을 바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죽은 자를 다 살리시지 않았고 육체의 영생을 바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슬프게 흐느끼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분이셨습니다.
과부만을 골라서 불쌍히 여기신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위로를 받아야 하나 특별히 의지할 데 없는 과부의 애통을 긍휼히 보신 것이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7)

“서론”
오늘의 한국 교회는 비교적 부유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문제로 인해 시험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질은 인간에게 중요하지만, 잘못 사용될 때 인간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교회의 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운영과 유지, 목회자 사례, 성전 건축, 교제 등에 쓰이는 물질은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물질은 교회 안에서 녹슬고 좀먹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합니다.

1.긍휼 사역을 위하여 쓰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제를 교훈 하셨습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3-4)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6:19-20)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교회의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물질을 땅에 쌓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주변 지역의 복지와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물질을 나누고 사랑을 표현할 때 그들은 교회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2.선교를 위해 쓰여야 합니다.

교회 유지와 친교를 위해 쓰이는 물질을 선교에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깨어서 복음 전파를 위해 필요한 선교를 물색하고 답사하며 복음을 전하는 현장과의 밀접한 관계를 위해서 교회가 내핍 생활에 들어가면,
그러한 교회는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시는 주의 신비한 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8)

이방 선교뿐 아니라 특수 선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문화 선교에 대한 교회 물질의 획기적인 투자도 21세기를 맞는 교회와 성도들과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3.신앙인을 양성하는 데 쓰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물질이나 과학적인 도구, 조직과 행정을 통해 일하시기 전에 사람을 통해먼저 역사 하십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행 13:22)

교회가 건물을 키우는 데 물질을 다 쓰려고 하지 말고 젊은일군을 키워야 합니다.

젊은이에 대해 관심이 없는 교회가 많습니다.

성인 숫자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을 향한 열렬한 투자가 모든 교회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듯이 내일의 기둥이 될 인재들을 일찍부터 심어야 합니다.
먼 미래를 보지 못하는 민족은 도태되고 맙니다.

한 시대는 가고 다음 한 세대가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모든 이 땅의 교회가 주님 주신 물질을 선용하게 하옵소서, 긍휼 사역을 위하여, 영혼 구원의 선교를 위하여, 미래의 신앙 인물 양육을 위하여 대담한 신앙적인 투자를 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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