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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울 왕가의 말로 (삼상 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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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은 사울과 그의 일가의 비참한 말로다. 신의 감동으로 선택 되어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 초대 임금이 되었던 사울이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마감함은 비극중의 비극이다.

 1. 사울 왕의 전사 1-7 블레셋인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인들이 길보아산에서 도망하다가 죽음을 당 한 자가 부지기수다.

이길 보아산은 이스라엘 평야 동쪽 끝에 있고 벧산으로부터 서쪽으로 10km 정도에 위치하며 산 북쪽에는 모래 언덕이 있다. 높이는 해발 579m이며 석 회석암질로 되어 있는 산이다.

사울은 죽을 때까지 할례 없는 놈들의 손에 죽기를 원치 아니하여 중상을 입은 그의 몸을 병기든 자 즉 호위장에게 죽여주기를 원했으나 심히 두려워 하여 못함으로 사울은 결국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며 자살하니 병기든 자도 뒤따라 자결하매 곧 왕과 함께 순사(殉死)한 셈이다.

사울왕의 왕자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 등 삼형제도 불행하게 그날에 함께 전사하였다.

의인 요나단이 이렇게 죽게 된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받게 된다.1) 부조(父祖)의 죄악 때문에 자손들이 곤욕을 받는다는 원리다.

2) 의인의 분깃은 반드시 이 세상에만 국한되지 않는 원리를 보여준다. 잠 14:32에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요나단은 그 부 왕의 악행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그 부친을 거역하지 않고 끝까지 도왔으니 그것이 그의 효도심이다.

이런 입장에서 부친에 대한 효도와 친구에 대한 의리와 하나님께 대한 신 앙을 겸하여 유지하기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2. 블레셋인의 전승보고 8-10 벧산은 이스르엘 동방 요단강 서쪽 9km 지점에 소재하는 성읍인데 적들은 사울의 갑옷을 전리품으로 가져다가 저의 국신(國神)인 아스다롯의 신당에 두 고 사울왕의 머리는 블레셋 사람의 땅에 두루 보내어 구경거리를 삼았고 그 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목 박으며 왕래하는 자들에게 구경거리로 삼았다.

참으로 비참한 최후 죽음이요, 너무나 참혹한 사후 처단을 당하였다.

이로써 사울의 집에 쌓였던 많은 죄악이 청산된 셈이다.

"의는 나라를 흉하게 하고 죄는 백성의 수치가 된다"는 진리를 사울의 역 사 중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3. 야베스인들이 사울을 매장함 11-13 야베스인들은 그래도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라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운반해다가 장사를 지내고 7일을 금식하여 애통해 주었다.

일찌기 길르앗 야베스인들이 암몬이 악독한 침략을 당하였을 때에 사울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준 일이 있었다(11:1-11) 사울이 역사 중 좋은 일을 한 것이란 이 야베스인들은 도와 준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 선행은 결국 죽어서 갚음이 되었다. 선행의 보상은 반드 시 있는 일이다.

 결 론:사울의 멸망한 원인을 따져 볼때 대상 10:13-14에 보면 특별히 그 가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접신녀를 찾아다닌 죄라고 하였다(28:8-14).

결국 하나님께 대한 모든 불순종, 불신앙이 가장 큰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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