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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달려온 길, 달려갈 길 (삼상 07:12-14, 딤후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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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 선생님은 신앙생활을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경주(육상경기)로 비유해서 그의 편지 속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그 당시 헬라지방에서는 운동장에서 뛰고 달리고 육상경기는 쉽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 자신을 훌륭한 경기자임을 자처해서 말하고 있습니다.(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기 때문에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면류관은 헬라에서 성행했던 올림픽 경기 마라톤에서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머리에 쓰는 관입니다. 믿음의 마라톤을 잘하여 우승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고전9:24-27) 신앙생활을 더 구체적으로 운동장에서 육상경기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상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뛰는 것처럼, 너희도 믿음의 상을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서 달음질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상 선수들은 썩어질 면류관을 위하여 그토록 절제하며, 자기와 싸우면서 피나는 연습과 훈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썩어 없어질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목표를 향하여 최선을 다하여 달음질합니다. 즉 신앙의 경주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전도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상을 얻기 위하여 목표를 향하여 끝임 없이 힘껏 달리는 경주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쫓아가노라" "쫓아간다"는 것은 "힘을 다하여 추격한다", 곧 앞서서 달리는 선수를 따라 잡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쫓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을 힘을 다해 뛰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 놓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같은 사도 바울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신앙의 경주자로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빌3:14) 과거에 매여 있으면 안됩니다. 운동선수가 뒤를 돌아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주 그렇게 하면 시합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앞만을 보고 달려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면서 과거에 집착할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인간들의 속성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를 거울로 삼아 잘못된 것을 반성하고, 고쳐나가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운전하시는 분들은 다 잘 아는 일입니다만, 자동차 운전석 앞에는 뒤를 돌아보는 거울이 붙어 있습니다. 운전석 앞좌석에 붙어 있는 거울인데, 이것은 뒤를 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거울을 '백미러'라고 부릅니다. 차 안에서 백미러를 보는 것은 자동차를 뒤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가기 위해서 보다 안전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 뒤를 돌아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뒤를 돌아보고 있으면, 그것은 위험 천만인 것입니다. 큰일날 일입니다.

내가 살아온 내 생의 지나간 날들을 뒤돌아보는 일은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나온 과거만 바라보고 있게 되면 결코 전진하거나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실패에 매여 있거나 지난 날의 성공에 도취되어 있다면 도무지 발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 압니다. 뒤만 돌아다보고 옛날이 좋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개인과 교회는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크게 낭패를 당한 민족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출애굽의 긴 여정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과거에 매달려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해서 어려운 시련이 닥칠 때마다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애굽시절이 좋았다. 애굽의 끓는 고기 가마를 생각하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을 향한 진군이 늦어진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난 일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실패의 경험도, 성공의 경험도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쓰라림과 분노와 증오, 다툼과 슬픔과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쓰라리고 아픈 실패의 경험과, 통쾌하고 신나는 성공의 경험들 모두를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런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까 지난날의 실패와 분노와 증오에 매여 있으면 그것들로 인한 아픈 상처 때문에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전진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지난 날의 성공이나 기쁨에만 도취되어 있다보면 그 교만심 때문에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여 보다 향상하고 발전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에 성공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 날에 실패로 쓴 잔을 마신 일이 있다면 그 실패를 거울로 삼아 새로운 내일을 도전할 수 있는 기회로 포착해야 합니다. 특히 입시생들과 부모님들이 그렇습니다. 위기는 곧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를 잊어버리는 일은 바로 과거를 청산하고 더 이상 그 과거에 매여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용어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죄의 짐을 ,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더 이상 심판이나 용서가 거론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잘못에 매여 있지 않고 자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를 위해 경건훈련을 해야합니다.(고전9:25-29) 운동선수들은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서 절제하며 자기 몸을 쳐서 자기와 싸우는 훈련을 합니다. 피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자도 훈련 없이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전9:25)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전9:27)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하기 위하여 영적훈련을 얼마나 했습니까 지난 365일 우리들에게 수많은 시간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 중 과연 얼만큼을 영적훈련에 사용했습니까 어떤 분이 일년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 일년 365일 24시간 = 8,760시간 중에서 ⒝ 2,200시간을 잠자는 시간 ⒞ 2,000시간은 육신의 입고 먹을 것을 위해 일했고 ⒟ 1,300시간은 식사하는 일에 허비했고 ⒠ 1,000시간은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했고 ⒡ 500시간은 신문을 보고 TV를 보는데 허비했고 ⒢ 400시간은 친구들과 잡담하느라고 허비했고 ⒣ 300시간은 전화를 붙들고 통화하는 일에 소비했고 ⒤ 300시간은 화장실 들락날락 허비했고 ⒥ 200시간은 샤워하고 세수하고 수염깍는데 허비했고 ⒦ 150시간은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데 허비했고 ⒧ 100시간은 애들에게 야단치고 꾸중하는 일에 허비했고 ⒨ 100시간은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에 허비했고 ⒩ 80시간은 담뱃불 붙이는데 소비했고, 등등
그러나 만일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시간 사용표를 만들면, 이것과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렇게 많은 차이는 없을 것이고 대소동이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일년을 살아보면서 신앙의 경주자로서 얼마나 영적인 훈련을 위해 시간을 내 놓았습니까 우리가 과연 몇 시간이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일에, 교회봉사를 하며, 이웃을 위해 시간을 사용했습니까 반성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 그리고 "깨어 있으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근신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경주자들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최선을 다해 달려가야 합니다.(빌3:12-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푯대는 결승지점이며 보고 달려가야할 목표입니다. 거기까지 가야 상을 얻습니다.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바로 그곳입니다. 푯대는 앞으로 달려가야 할 목표입니다. 아직도 남은 길, 달려가야할 길입니다. 앞으로 남은 길, 이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바울 선생님은 "푯대를 향하여, 상을 얻기 위하여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좇아간다는 것은 힘을 다하여 추격한다. 다시 말해 앞서서 달리는 선수를 따라잡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좇아간다는 말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달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진실로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경주했습니다.(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비장한 각오로 신앙의 경주를 해온 노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들의 본문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있습니다.(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나는 달려갈 길을 이제 다 끝냈다. 나는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 그러므로 이렇게 신앙의 경주를 마친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주실 것이다" 고 확신했습니다. 인생승리의 개가입니다. 후회 없는 인생입니다. 우리 모두 이같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80년대 지난 10년동안 다사다난의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오늘 80년대 마지막 해, 마지막 날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제 몇 시간 지나면 이 해도 저물고 새로운 해 90년과 대망의 90년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지금까지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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