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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첫째 편지를 공부하면서 거의 마지막에 가까아왔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쓰는 글을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을 쓰고 있는 것이 본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좋은 교회는 치료하는 공동체의 교회요, 또 좋은 교회가 될려면 지도자와 성도들 간의 관계가 은혜 안에서 아름답게 이루어져야 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 개인이 어떤 면에서 덕을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하는가를 앞부분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가 좋은 교회, 좋은 인간관계, 또 좋은 德 하는 것을 교회에서 강조한다고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中心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는 사실을 오늘 밤에 특별히 생각을 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자기 교회 안에서 자기의 뜻을 밝히십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 사이의 치료하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중요성을 바울도 데살로니가 전서를 마무리 짓기 전에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뿌리가 없으면 다른 면에서 아무리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그 교회는 나중에 가서 병들고 맙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해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곧 말씀이 함께 하시는 것임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된다해서 예수님께서는 항상 말씀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교회답게 하기 위해서 교회 안에 항상 내주 하시는 성령은 말씀을 떠나서는 일하지 아니합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교회에서 성령이 일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오늘의 본문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19-22절까지는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기록된 말씀입니다. 즉 한 단원입니다. 이 단원의 주제는 예언의 은사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두루마리에 기록된 아주 값비싸고 희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회당에서나, 성전에서나, 돈 많은 사람들이나 가지고 있었지, 일반 사람들이 두루마리를 가지고 읽기는 불가능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사람들에게는 성경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입니다.
게다가 신약성경은 그 당시 기록되지도 않은 초창기였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의 몸된 교회를 진리로 먹이려고 할 때에, 기록된 성경이 없기 때문에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예언합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 성령은 예언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기록된 말씀이 없기 때문에 좀 독특한 방법을 통해서 성령이 교회에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점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것을 일컬어서 예언의 은사 라 그렇게 우리는 이름을 붙입니다.

19-22절이 전부 예언이라는 것과 연관되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제 19절부터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불을 끄지 말라 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뷸에다가 비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성령을 불에 비유할까 아마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실 때에 불의 모양으로 임하신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령 하면, 항상 불로 우리는 연상을 합니다. 그래서 불에다가 비유를 하다보니까, 불을 확 끄듯이 성령의 어떤 뜻을 짓 눌러 버린다든지, 거부한다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암시하고 있습니다. 불은 잘못 다루면 쉽게 꺼져 버립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고 우리 안에서 떠나지 않고 계시지만, 우리의 육체적인 연약성 때문에 항상 제제를 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도 인간 이상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성령이 넘치고, 아무리 은사가 많고, 아무리 거룩하고, 아무리 성자지만, 육신을 입고 사는 이상, 인간 이상일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은 성령의 역사가 인간이라는 제한성을 받으면서 일하는 분이지, 인간이라는 것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일하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지만,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약점이 있고, 인간의 냄새가 계속 날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연약성이 있다가 보니까, 우리 안에서 성령이 아무리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면서 생명력있는 역사를 하신다 하더라도 우리 육신의 연약을 가지고 그 성령의 뜻을 꺾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방해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순종하지 않으므로 성령의 뜻을 완전히 무효로 돌릴 수도 있는 요인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마치 불을 확 꺼버리듯이 성령의 역사를 꺼 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주의 할 것은 성령 자체를 불끄듯이 꺼버린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은 인격입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불끄듯이 꺼버립니까 절대 그것은 있을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이단에서 해석하듯이 물질이나,기운으로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령은 물질이나 기운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 자신을 불끄듯이 꺼버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이 하고자 하는 것을 막는 것, 혹은 순종하지 않는 것, 방해 하는 것-이것을 일컬어서 성령을 소멸한다 고 할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예언의 문제와 관계 시켜 볼 때에 성령을 소멸시키기는 쉽습니다.
자, 이렇습니다. 성령이 갑자기 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도록 무엇인가 신비스러운 힘으로 나에게 충동을 줍니다.(예언의 은사를 받을 경우를 말합니다) 전혀 몰랐던 이야기,또 그렇게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이야긴데 갑자기 성령께서 말씀을 주시면서 말하지 아니하면 안되도록 내 마음에서 강하게 일하시는 충동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그 성령의 뜻을 따를려면 입을 열어야 합니다. 오순절 때에 120문도가 입을 열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큰 일을 모든 사람이 듣도록 외친 것처럼 말해야 합니다. 이 것이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삽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성령이 말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을 꽉 다물고 말하기 싫어서 말을 안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는 성령을 소멸한다 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예레미야에게 이와같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20장 7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꾸 말씀을 하게 하시고,또 하나님은 나 보다도 훨씬 강하시기 때문에 내가 말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 말하게 하시는대로 말을 했더니,그 말이 전부다 백성에 대한 저주요, 백성에 대한 심판이요, 백성에 대한 회개하라는 채찍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죄에 깊이 빠져 있는 유대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듣기 싫어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다하면 사방에서 욕이요,비난이요,그리고 그를 못 살게 굽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성령이 말씀을 하게 하시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자꾸 말을 합니다. 말을 하면 사람들이 들을 때, 가슴이 아프고,가책을 받고, 고통스럽습니다. 나라가 자꾸 망한다고 외치니까 사람들이 좋아 할리가 없지요. 바벨론이 조금 있으면 침범한다고 하니까 듣기 좋아 할리가 없지요.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니까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도무지 희망적인 말을 한마디도 안하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죄 값으로 이 성을 심판하니, 너희들은 바벨론에 항복하고,하나님이 그 다음에 주시는 은혜를 기다리라고 하니 들을리가 없습니다.
예레미야를 드디어는 잡아다가 가두고, 때리면서 심지어 죽이려고 까지 했습니다. 여기에 예레미야가 지쳐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아예 나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말하라고 하셔도 나는 이제 말을 안할 것입니다. 하고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성령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뜻이 있는 줄을 알면서도 순종 하지 않고 입을 다물면 예레미야의 심정처럼 됩니다. 20장 7절 부터 보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며 견딜수 없는지라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성령께서 예언하라는 것을 처음에는 순종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가도, 결국은 자기가 답답하고 견디지 못해서 나중에는 입을 열고 외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이렇게 타고나지 못한 평범한 성도들은 얼마든지 성령을 소멸할 수가 있습니다.
이 일을 우리가 얼마나 쉽게 저지르는가를 고린도전서 14장을 놓고 살펴 볼려고 합니다. 29절부터 봅니다. 고린도교회가 정한 시간에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에, 그 예배 드리는 사람들 가운데서 예언하는 자들이 둘이나 셋이 생길수가 있었습니다. 왜그런고 하면,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데다가 그 당시에는 잘 훈련된 교사도 그렇게 흔하지 않았습니다. 또 교리적인 체계가 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2-30명 앉았다고 생각하면 누가 설교를 할 것이며,무엇을 놓고 설교를 할 것이며, 어디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것인가를 한번 상상해 보세요. 한마디로 눈 앞이 캄캄합니다.
그러니까, 예배드리러 온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서 기도를 하고는 멍하고 앉아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찬송은 유대인식의 찬송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무엇에 근거해서 말합니까 그러니까 성령께서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아무에게나 예언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마음에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 무엇인가 성령께서 말하지 아니하면 안되게 역사 하시는 것을 느낍니다.그러면 제가 지금 성령께서 주시는 계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시간에 말씀을 드려도 좋습니까 하면, 예 말씀하십시요. 하면 그 사람이 일어 나서 말을 시작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들으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하나 정도 있으면 좋은데, 한꺼번에 2-3세 사람이 생길수가 있습니다. 왜 성령께서 그렇게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이럴 때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 하면, 33절에 보면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제를 받나니, 무슨 뜻입니까 예언하는 사람들끼리 조정하고,견제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견제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30절에 보면,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예언하든 자는 잠잠할 것이요. 그러면 누가 우선권이 있습니까 항상 새롭게 받은 사람이 예언에 있어서는 권위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배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눈을 감고 잘 생각해 보세요. 재미 있엇을 것입니다. 물론 그 후에는 교회에 목회자가 있고, 지도자가 있어서 규모있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즈음에 예언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일들이 그대로 이루진다고 믿는 착각입니다. 분명히 지금은 고린도교회나, 에베소교회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4장을 보면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지요. 예언이라고 해서 전부다 옳은 것은 아니다-왜 그런고 하면,29절에 보면, 예언하는 자들이 둘이나,셋이나, 다섯이나 있어서 그들이 서로 견제하면서 순서적으로 말할수는 있고, 또 말하는 것이 정당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들어야 한다고 그랬습니까 분변한다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지요. 이 말은 데살로니가 전서와 비교를 해 보겠습니다. 5장 22절에 있습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이 말씀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평소에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19절부터 연속된 말씀으로 볼 때에, 이것은 예언과 관계되는 말씀 입니다. 그러면 예언의 말씀을 다 듣지만, 헤아릴 필요가 있다(분변한다-은행의 출납 직원이 진짜 돈인지,위조폐인지를 날카롭게 식별해 내는 예리한 눈) 고 했습니다. 옳은 예언과 잘 거짓 예언을 공정하게 찾아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세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1절,모든 예언의 말씀을 다 듣되, 헤아려 가면서 들으라. 그래서 옳은 것은 받아 들이고, 옳지 않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이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1-22절의 말씀을 고린도전서에서는 분변한다.는 한마디로 요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 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일을 하는 경우에, 성령의 은사에는 사탄이 자주자주 가라지를 뿌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언을 하지요 그러면 A 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러나 A-1라는 사람이 비슷한 말씀을 전하지만, 성령에 의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 의해서 거짓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방언도 성령의 방언이 있는가 하면, 마귀의 방언이 있지 않습니까
병고치는 은사도 성령께서 하시는 이적기사가 있는가 하면, 마귀가 하는 이적기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언에는 마귀의 역사가 강했습니다. 무엇을 보고 알수 있느냐 하면, 여러분 구약의 예언시대를 죽 보고 생각해 봅시다. 위대한 선지자들인 이사야 때로부터 더듬어 보자는 말입니다. 그러면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으면, 반드시 거짓 선지자가 항상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렇습니까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예레미야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이 얼마나 예레미야를 괴롭혔습니까 미가야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이 얼마나 그를 괴롭혔습니까 에스겔 시대에 거짓선지자들이 얼마나 에스겔을 반박하고,모함했습니까 꼭 위대한 선지자 옆에는 거짓선지자들이 따라 붙입니다.왜그런고하면 마귀가 그렇게 시키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전달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지 못하도록 가라지를 뿌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도 기록된 말씀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들도 없는 전혀 없는 지역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려고 하는데,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니 성령이 주시는 그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김집사라는 사람이 일어나서 예언합니다. 또 오집사라는 사람이 일어나서 예언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교회의 감독이 일어나서 예언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듣습니다. 그 기회를 이용해서 마귀도 역사합니다. 이 집사의 입을 통해서 거짓된 예언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분변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도 관계가 됩니다. 성도들이 모인 자리요,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자리요,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받으시는 예배 자리니까 마귀가 저 대문에도 들어 오지 못하고, 밖에서 벌벌 떨고 있을 것 같지요
분명히 아세요! 이 자리에 마귀도 있을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얼마든지 예배 보는 자의 마음을 흩트려 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되게 전하도록 설교자를 엉뚱한 데로 끌고 갈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때에 얼마나 赤裸裸하게 기록합니까 너희들이 예언이라고 해서,정신없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들으면 안 된다. 정신차려서 분별해라. 돈을 세는 사람이 위조지폐가 있나, 없나 눈을 빤짝이면서 살피듯이 잘 듣고 분별해라!
그래서 자연히 초대교회에서 예언의 말씀을 들을 때는 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갈등이 많았습니다. 왜그런고하면, 예언하는 사람들이 여럿이 있는데, 저 중에도 마귀가 시켜서 예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불신감을 갖고 대하면 아예 예언을 하지 못하도록 제제를 가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을 소멸할 위험이 있습니다.
또 그렇지 않고, 아, 예언하는 사람은 다 성령께서 주신 것이니까 다 겸손히 듣고 받아 들여야 된다 해 버리면, 마귀의 거짓된 예언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딜레마에요.

이런 경우에는 예언의 은사를 제가 보기에는 예언하는 은사를 한사람에게 주시면 나머지 사람에게는 분별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즉 듣는 은사! 듣는 귀를 주신다고 봅니다. 만약에 듣는 귀를 주시지 않고 분별하라는 법이 어디있어요 성령께서 듣는 자에게 진리와 비진리를 가릴 만한 마음의 준비, 자세, 밝은 빛을 주시지 않고, 진리를 분별하라고 하는 법이 어디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한가지 감사하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너나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이것이 영의 양식이냐 아니면 먹으면 독약이 된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기초는 돼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기초가 전혀 돼 있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께서 전혀 역사 하시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 1서 2장에 보면, 너희는 기름 부음을 받았으므로 모든 것을 아느니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진리를 분별 할 수 있는 기본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아마 제가 기록된 말씀에 의해서 바로 전하니까 전혀 의심하지 않고 듣지요,만약에 이것 제쳐 놓고 약간 이상한 말씀을 하면,여러분의 마음에 걸리고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됩니다. 반드시 됩니다. 성령께서 그것은 역사합니다.
그래서 예언하는 성령과 분별하게 하는 성령은 둘입니까 하납니까 하납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어색하지 않도록 진리를 전합니다.
바른 진리를 전합니까 바로 듣습니다. 성령 모신 사람은요. 그러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바로 듣지 못합니다.
이런 관계를 여러분이 이해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 우리가 고린도전서에서 한가지 주의 하고 넘어갈 것은 예언이라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기를 예언이라고 해서 글자 그대로 항상 미래사를 이야기 하는 것을 해석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성경이 없을 때, 성도들이 모여서 예언하는 은사를 받고,예언하는 것은 물론 미래에 관한 것도 가끔씩 있을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가르치면서 성도들을 영적으로 키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증명해 드리지요.
고린도전서 14장 3절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덕을 세운다.교회에 덕을 세운다 하는 말은 성도들을 신앙적으로 키워 준다. 교회를 신앙적으로 바로 세워 준다.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신앙을 세워 주고,잘 못된 것이 있을 때는 책망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하며,또 약한 자가 있으면 안위하고 붙들어 주는 것이 예언하는 자들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31절에 보면 사람들을 가르쳐 배우게 하고, 사람들을 권면해서 잘 못된 것은 고치게 하고, 깨닫지 못한 것은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오늘의 교회와 비교할 때에, 그 당시의 예언은 오늘날의 무엇과 같을 까요 설교나 성경공부나 거의 같은 것이었습니다.
성령이나, 은사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예언을 너무나 과장되게 광고를 하고 다닙니다.성경의 문맥에서 해석하려고 하지를 않고 단어, 문장 하나만 가지고 너무 일방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또 은사예언 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잘못 된 것은 성경을 주시기 전의 그 상황에서 말씀을 주시는 성령의 패턴과 성경이 기록된 다음에 말씀을 주시는 성령의 패턴을 혼돈하는데서 크게 잘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완성 되었기 이제 새삼스럽게 예배를 드리는 중간에 갑자기 어떤 사람에게 예언을 주실 이유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성령이 마음에 주시는 예언에 전적으로 의지했지만,이제 우리는 항상 무엇을 펴면 됩니까 성경을 펴면 되고, 그 성경을 깊이 묵상하는 사이에, 그 묵상하는 자의 마음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므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예언하신다.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 가운데, 특별히 직분을 맡긴 사람이 누굽니까 교회의 교역자들 아닙니까 예언의 은사는 다 받을 수가 있어요. 집사님도 평신도도 다 받을 수 있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은혜,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수 있는 은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떤 뜻을 분별하는 신령한 영성! 이것은 꼭 교역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평신도 에게도 있는데, 그 사람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그 것을 가지고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 가 누굽니까 그 사람이 교역자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예언이라는 것을 너무 과장되게 생각하셔서 자꾸 미래사를 점치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데,그 것은 근본적으로 잘 못 생각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론은 이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나, 데사로니가 교회에 성경이 기록되지 아니했을 때에, 성령께서 말씀을 가르치는 패턴이 예언의 은사였고, 오늘날은 그 패턴대로 하시지 않는다. 아시겠어요. 그러므로 요즈음에 예언 받았다. 계시 받았다 하면 일단은 접어 놓으세요. 우리가 경험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의 열매가 무엇인지 잘 알지 않아요. 간혹 가다가 참말도 있지만, 그 참말 조차도 어디서 온 것인지 알수 없어요. 그런 사람들을 무시해도 우리 신앙에 절대로 손해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데 기웃 거리는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고, 손해가 됩니다.

우리 교회에도 예언 한다고하면 귀가 솔깃해가지고, 엉덩이가 들썩 거리시는 분 있나요 중심을 잘 잡으세요.
저도 어려서부터 열심히 쫒아 다녀 보기도 하고, 제 막내 여동생은 부흥 강사로 온 분이 이름이 나쁘다고 이름을 갈아야 된다고 해서 한동안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이름인지 새로 이름을 받고-무엇인지 당시에는 힘겨운 선물을 한 것이 기억에 납니다.
우리가 성경을 깊이 공부하면 절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지난 2000년 동안 얼마나 분명하게 일하고 계십니까 그 이상 무엇을 기다리는 것입니까

퀘이커 교도들은 지금도, 초대교회 당시의 방식 그대로 예배를 드립니다. 같이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다가 어떤 사람이 계시를 받았다 하면 일어나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퀘이커 교도는 그들이고,그렇게 하는 그 교단이 성령대로 하는 것이고 정말 옳다면 부흥해야 하지 않습니까 세계의 역사를 주도해 나가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요. 그저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요. 우리 나라에서는 함석헌씨 같은 분이 퀘이커 교도에요. 정 그런 것이 옳다고 생각되면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아 가는 수 밖에 없지요.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확신합니다.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책망하시고, 교훈하시고, 바르게 하시고, 의로 교육하셔서 하님의 자녀들을 완전한 자로, 선한 일에 쓰임을 받기에 완전한 자로, 세우신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로 다시 넘어 갑니다.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하는데 이 예언을 멸시 하는 경우가 왜 생깁니까 조금 전에 그 당시에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사만을 이야기하는 이상한 점치는 것 같은 은사가 아니고, 교인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권하고,안위하고,책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예배 중에 어떤 사람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예언을 했다면 어떤 예언을 했을 것 같습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님이 당장 재림하시리라고 생각하고 생활이 전부 무너졌어요,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가정생활도 방치상태에 있고,사회생활도 이제는 손을 댈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져서 어떻게 보면, 규모없는 사람!으로 변질 되어 가는데,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진짜 예언을 했다면,무슨 말을 할까요 좋은 말을 할까요 나쁜 말을 할까요 책망할까요 칭찬 할까요 책망하겠지요. 바로 살라고 하겠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금방 오시리라고 확신하고 아예 귀를 꽉막고 있는 사람이 그 예언하는 사람의 충고를 듣겠어요.안 듣지요. 어떻게 해 버리겠습니까 무시해 버리지요. 듣기 좋은 말을 하면 다 듣지요. 그러나 자기에게 좀 비위 상하게 책망을 하면 잘 안듣는 것이 인간 아닙니까

여러분, 믿음이 좋으면 성경의 말씀을 항상 바로-거져 듣는 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에 골치 아픈 사람 중의 하나가-자기 믿음이 좋아서 자기 믿는 것이 절대로 틀림없다고 고집하는 옹고집-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예수님이 당장 오신다. 이런 생각-그거야 잘못 된 것이 없지요. 당장 오시지요. 그렇지만,가정생활을 다 팽개치고, 일손을 다 놓고 그렇게 이상한 생활을 할 정도로 당장 오시는 것은 아니쟎아요.
그런데 이들은 당장 온다는 거에요.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이런 사람에게 충고를 한다고 들어요
과거에 우리나라에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주일날 밥을 해 먹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런데 불을 때는 것은 일하는 것이니까 안된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그래서 당신 너무 그러면 율법으로 돌아 가는 것입니다. 하면 들어요 안들어요 안들어요. 자기가 무조건 옳다는 것에요.
지금도,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거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먹는 것이 믿음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말하면 듣겠습니까 오히려 뭐 이상한 벌레를 보듯해요. 오히려 비판하고 무시해 버립니다. 저거 믿음 없는 소리한다 고 말입니다.
그런 비슷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고 말합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 당시의 형편으로 보아서 예언의 은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예언의 은사를 잘못하면 소멸할 수도 있고, 또 멸시할 수도 있는 위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성도들 만이 성령을 소멸할 수 가 있고, 오늘의 우리는 성령을 소멸 할 수 있는 위험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까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말씀을 어느날은 꼭 읽도록 내 마음에 충동을 합니다. 너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3일 동안 못 읽었어! 그러면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그래. 오늘은 꼭 시간을 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도록 해. 누구의 소욕입니까 성령의 감동입니다. 그럴때에, 예 알았습니다. 주여, 내가 세상 일에 바빠 가지고 주의 말씀을 너무나 멀리했군요. 오늘은 시간을 내어서 읽겠습니다. 하고 무릎 꿇고 시간을 내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참으로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납니다. 마음에 기쁨이 찾아 오고, 답답하던 마음이 후련해 지고, 믿음이 흔들리던 마음이 다시한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분명히 성경 읽으라고 했고, 기도하라고 했는데,이 핑계하고 저 핑계하고 안 해 버리면, 성령을 소멸하는 것! 성령의 불을 훅 불어서 꺼 버리는 것! 입니다.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하다가 갑자기 성령께서 자기가 읽은 말씀 아니면 들은 말씀이 생각 나게 합니다. 누가 주시는 은혭니까 그러면 그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통해서 아, 그 말씀이 그렇구나. 이 말씀에 비취어 보면 이 일은 안해야 돼. 이 일은 할수가 없어. 벌써 성령께서 주시는 음성 아닙니까 그러데 그것을 그저 모른체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 버리면 성령의 소욕을 어떻게 해버리는 것입니까 훅 불어서 꺼버리는 것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는 예언을 멸시하는 것이지요.

설교 시간에 성령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하나 감동시켜서 어떻게 하든지 많은 설교 말씀, 30-40분의 말씀을 가운데서 특별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가를 귀담아 들으면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속에 잡념이 일어 나면서 하는 식으로 늘 생각을 해 가지고, 말씀을 자꾸 거부하는 마음이 생겨요. 예언을 멸시하는 태도지요.
얼마든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지끔가지 신앙생활 하면서, 성령을 소멸하고 예언을 멸시하면서 내 마음대로 살았던 생활의 흔적이 점철 되었다면,오늘 이 시간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대로 하나하나 찾아서 회개하고 다시 한번 성령의 뜻에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불이라고 비유한 데는 참으로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불은 환하게 밝힙니다. 성령이 불입니까 어두운 우리의 마음을 말씀을 통해 밝혀 줍니다. 그 성령의 빛에 따라서 우리 마음에 어두움을 말씀을 쫒아 내고, 항상 내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할 수 있는 밝은 마음으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성령을 불이라고 합니까
불은 차가운 것을 따뜻하게 녹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냉냉해 졌나요 우리의 마음이 식어졌나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나요 차가운 마음이지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말씀을 통해서 이 마음을 녹여 줍니다. 그래서 따뜻하게 뜨겁게 만들어 줍니다.
언제! 내가 성령을 소멸하지 아니할 때!
언제! 내가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멸시하지 아니할 때!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새롭게 해 줍니다.

성령을 불이라고 했나요 불은 더러운 것을 태우고 정하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내 마음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하나하나 태워 주십니다. 전부다 제련 시켜 주십니다. 나쁜 불순물은 전부다 제거 시켜줍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해서 하나님의 뜻을 항상 분별할수 있는 맑은 거울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찬성하면서 따를수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언제! 내가 성령을 소멸하지 아니할 때!
언제! 내가 하나님의 예언을 멸시치 아니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게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자신을 한번 돌이켜 보세요.
내 마음이 어두운 데가 있습니까
내 마음이 차가운 데가 있습니까
내 마음에 부정한 것이 아지도 많이 쌓여 있습니까 웬일이지 성령이 내 안에서 마음대로 일하지 못하는 증겁니다.
왜 내가 성령을 소멸하고 있기 때문에!
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한구석이 있기 때문에! 성령이 마음껏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거에요.
이런 일이 우리에게 있으면, 손해는 우리가 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이 슬퍼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오, 성령이시여,성령이 과연 불과같이 내 마음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생명이 되어,내 마음을 비취어 주시고, 내 마음을 녹여 주시고, 내 마음을 깨끗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항상 나를 성령이 뜨겁게 불타는 여혼이 될수 있도록 만들어 주옵소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 오늘까지 내가 성령을 소멸한 것이 있으면 주여, 생각나게 하고 회개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것이 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마음껏 내 안에서 일할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마음껏 역사할 수 있도록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옳바른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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