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의 재림 (벧후 03:1-9)

첨부 1


거짓 선생들의 말은 매우 그럴듯합니다. 그들은 논리적인 ‘사실들’과 과학적인 데이터를 놓고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관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누가 과학적인 연구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의 실체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원리는 ‘보라 그러면 믿게 될 것이다’가 아니고 ‘믿어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은 하나님을 믿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철저한 삶의 개혁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의 생활 스타일이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면 생활을 고치든지, 아니면 성경 말씀을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려고 시도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적당히 해석해 버리거나 아예 무시해 버립니다. 그들은 성경의 진실성을 믿지 않으며 성경 말씀을 고칠 경우에 당하게 될 무서운 결과들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계22:18-19).

우리는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수신인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가장 즐겨 쓰는 문구로서 베드로전서 2:11절과 4:12절에서 사용했었는데 본 장에서 다시 나옵니다.
(벧후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베드로는 지금까지 거짓 선생들에 대해서 혹독한 비판을 하였습니다. 3장에서는 베드로가 이 일로 혹시 수신인 성도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까 봐 염려하는 듯한 어조로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그의 수신인 성도들을 계속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인 듯합니다. 베드로는 둘째 편지를 쓴다고 1절에서 밝혔습니다. 그런데 첫째 편지가 베드로전서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바울의 경우에서처럼 베드로의 서신들도 아마 우리들에게 전수되지 않은 것들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베드로 서신들의 목적은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3:1)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수신인 성도들이 건전한 사고를 하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불건전한 사상들이 사회에 범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사고방식으로 거짓된 이론들을 마치 증명된 확정적인 정설인 양 생각합니다. 진화론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쁜 사상들은 거의 학교 교육이나 기타 대중매체를 통해 펴지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대중매체들은 매우 큰 영향력이 있습니다. 교인들은 세속의 그릇된 사상과 성경 말씀에 배치되는 자유주의적인 해석들을 더욱더 경계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건전한 사고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됩니다. 말씀의 묵상은 눈을 감고 상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체계적으로 일정한 분량의 본문을 읽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 성도들을 어떻게 보살피시며, 어떤 뜻과 성품을 가지신 분인지를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주는 교훈을 찾아야 묵상이 됩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신관이 깊어질수록 우리 자신들의 세속적이고 이교 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나게 되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3:2)해야만 성경을 날마다 대하는 자세가 보다 진지해집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사도 중의 한 사람이라고 당연히 전제하고서 그의 수신인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그들의 메시지가 지닌 권위를 다같이 인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하나의 답변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와 예수님의 명령들과 지신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회개와 믿음의 촉구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로부터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감금된 후에 예수님은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막1:14-15)고 선포하셨습니다. 바울도 역시 같은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17:30).

베드로의 메시지도 회개와 믿음에 대한 것이며(3:9). 복음을 믿지 않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3절에서 언급된 “말세”는 오순절에서 시작되어 주님의 재림 때까지 계속되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 세대가 이 말세에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지상으로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 교리는 시대와 역사적 상황에 따라 강조되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재림 교리는 교파나 특정 학파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혼란을 야기시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을 때 벌써 재림하셨다고 말하면서 마태복음28:20절을 인용합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어떤 이들은 오순절에 성령께서 큰 능력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강림하셨을 때에 주님의 재림 약속은 육체적인 지상 재림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학자들 중에서도 재림의 형태와 시기에 대해 의견이 크게 다릅니다. 어떤 학파에서는 예수님이 ‘공중에서’모든 신자들을 이끌어 올리시고 그 다음 지상에서는 7년 대환란이 따른다고 가르칩니다. 또 다른 학파는 예수님의 재림이 7년 대 환난 이후에 있고 그 다음 주님의 지상 왕국이 건설되어 1천 년간 존속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가 하면 7년 환난이나 1천 년의 지상 통치에 대한 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우주적 통치의 왕권을 가리키는 영적이고 상징적 언어라고 해석하는 무리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 사건을 놓고 왈가왈부합니다. 신학자와 목회자들도 재림의 순서나 전후 사건들을 상세히 설명해 보려고 부질없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재림 시기를 정확히 예고하거나 알아 맞추겠다고 시도하기도 하고 건전하지 못한 위기의식을 조장하여 성도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흥분하게 하는 불순 사역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것도 나쁘지만,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에서 밝히지 않은 재림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 무슨 환상이나 계시를 통해 깨달았다고 발표하는 따위의 행위들도 커다란 잘못입니다. 우리는 2천 년간의 기독교 역사에서 그런 오류와 오행들이 반복되어 개인과 교회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재림 사건에 대한 이견(異見)을 극대화시키거나 예수님의 재림 시기를 놓고 전혀 보장될 수 없는 무근한 주장들을 하면 결국 사단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결과가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간단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이끌려 올라가셨을 때, 제자들이 천사들로부터 무슨 말씀을 들었습니까 (행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둘러싼 상술 내용과 시기를 놓고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기보다 분명한 이 근본적인 진술에 더 마음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주께서 우리들에게 재림 계획을 다 알리고 싶으셨다면 일체의 재림 사건들을 하나씩 세밀하게 설명하시고 도표까지 아름답게 그려서 우리들의 손에 쥐어 주셨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주님의 재림에 비추어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야 하는가” 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벧전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벧전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 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재림 교리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비웃게 합니다(3:3-4). 그러나 베드로는 이 가르침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신약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언급이 수시로 나옵니다.(참조, 딤후3:1-4, 막13:7).

거짓 선생들은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지만, 그들의 반론은 틀린 것입니다.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3:4). 그들의 말은 결국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는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 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시간이 시작된 이래로 이 세상 일에 간섭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이 현재나 미래에도 세상사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거짓 선생들의 주장들은 오류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였습니다. 창세기 1:7절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노아 시대에 홍수가 나서 모든 악인들이 죽은 사건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언급하고 있는 기롱자들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그리스도의 재림을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옛 세상을 물로 멸망시켰다는 것을 믿지 않는 입장이므로 앞으로 있게 될 불의 심판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벧후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활동을 인간들이 부정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못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인간들이 악하기 때문에 (노아의 때처럼) 심판의 날을 정해 놓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원치 않습니다. 자기들의 죄가 심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자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처럼 시간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시간은 우리들의 활동을 통제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일 저 일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 “내가 시간이 날 때 그 일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주 놀란 목소리로 ”벌써 시간이 됐어요“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3:8)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 말씀은 시편 90:4절의 반영입니다. 본 절의 의미는 하나님이 시작에서부터 마지막을 보고 계시며 마지막에서 시작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하고 영원한 현재입니다.
기롱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은 무능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자기의 약속을 이행하려고 했다면 벌써 옛날에 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의 말을 반박하였습니다.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한편 우리들이 모두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요항들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모두 죄인들이며 누구도 핑계를 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성경에 기록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잘 명심한다면 거짓 선생들의 꾀임에 넘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 거짓 선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롱할 때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을 배격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어떤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거나 예수님이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등의 이론들은 거짓입니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어리석은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비하지 못한 채 세월을 허송해서는 안 됩니다.(마25:1-13).

넷째, 모든 사람들에게 닥칠 대심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 속해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거나 못 받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들은 천국이 아니면 지옥으로 가도록 운명되어진 존재들입니다. 심판날이 되면 누가 하나님께 소속된 자이며 누가 아닌지가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그냥 기다려 보겠다는 자는 가장 큰 바보입니다. 우리들은 갖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지금 현재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비교 겔18:23, 32).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의 구원을 원하시지만, 만인 구원을 작정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을 구별합니다.

다섯째, 모든 사람들을 향한 구원의 초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구원에로의 초대는 자기의 죄를 내던지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자들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독생자를 갈보리의 십자가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최후의 심판을 지연시키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심판의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히9:27). 그 날이 이르면 은혜의 시기는 끝나고 맙니다. 그 때에는 누구도 회개의 기회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단12:10). 예수님의 경고를 들어보십시오.
(마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마13: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누가 감히 이 엄숙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을 불신하겠습니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