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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끔직이도 아껴주는 사랑 (삼하 01:1-11, 고후 08:7-15, 막 05: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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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 북한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것 같 습니다.먹을 것이 없어서,하루는 밤낮 할 것 없이 누워있고 그 다음 날 하루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하루 종일 누어 있으면,먹는 걸 적게 먹어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월간 조선 7월호에는,정치범 수용소에 있다가 탈출하여 중국에서 숨어 살고 있는,한 청년의 수기가 실려 있습니다.그들이 하루 동안 먹는 식량 은 강냉이 500g에,반찬은 소금에 절인 배추와 무우를 넣은 소금국만을 1 년 내내 먹는다고 합니다.그래서 그들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풀과 나무 껍질,벌레,잠자리,메뚜기,개구리,쥐 같은 것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다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생각다못해,배불리 먹고 싶은 나머지,이틀은 굶고 사흘치를 한꺼 번에 먹기로 하고,5 명이 한 조가 되어 한 사람이 사흘분을 먹는 동안 다른 네 사람은 굶는 식으로 해서,몰아치기로 먹고 죽는 일도 있다는 것 입니다.

고성일이라고 하는 청년이 있었다고 합니다.이 사람은 게걸병에 걸려서 제 정신이 아닌사람처럼,먹을 것만 찾아다녔답니다.그러다가 눈에 띄는 것은 무조건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입니다.한 번은 작업장으로 가는 길에 죽은 쥐를 발견했습니다.차에 치여 죽은 것을 관리원이 길가 풀섶에 발 로 차버렸던 것입니다.때는 여름철이었는데,쥐의 배에는 구더기가 우글거 렸습니다.그것을 고성일이라는 사람이 관리원 모르게 잽싸게 주어서 몸 에 숨겼다가,탄광 갱도 안에 흐르는 물에 씻어서 껍질을 벗겨내 먹었다 는 것입니다.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죽는 것도 힘들고 사는 것도 힘든 그들로서는,하 루를 보낸다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개똥껌이 라는 것을 씹어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달래고 있는 것입니다.개똥껌이란, 신발 안쪽의 고무를 잘라내서 불에 조금 그을린 다음 말랑 말랑할 때 껌 처럼 씹는다는 것입니다.처음에는 시커먼 침이 생겨서 몇 번 침을 뱉어 내다 가,나중에는 침까지 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엊그제 서울에서 오는 중에 읽었습니다.제천에서 영춘 오 는 차가 두 대나 걸르는 바람에,제천에 도착하기는 4시 30분이었는데 7 시 10분 차를 타고 오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이 차는 오는 중에,여유롭게 기름까지 넣는 것이었습니다.나는 집에 빨리 와서 해야 할 일이 태산 같 은데,버스는 여유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거기에다가 유행가를 시끄럽게 틀어대는 것이었습니다.괴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그러나 저는 참았습니 다.책을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실컷 운 다음이었기 때문입니다.제 고통이 란,북녘의 동포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너무 호사스러운 고통이었던 것 입니다.

우리는 정말 북한의 동포들을 생각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기도하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어떤 방법으로든지 도울 길 을 찾아야 하겠습니다.월간조선 7월호에는,고무풍선 속에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수신기와 껌,그리고 알사탕을 넣고,성경 귀절을 적은 전도지를 함께 넣어보내는 선교 단체가 소개되고 있습니다.이러한 일에는 많은 돈 이 들어간다고 합니다.우리와 같은 피를 가진 북한 동포들을 사랑하는 애절한 마음으로 이 일에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바울 선생은 고후 8:8에서 「여러분도 헌금을 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여러분의 사랑이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는 참된 것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그렇습니다.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이 아니고 바로 우리 형제임을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만 있다면,그래서 그 형제들로 하여금 어서 속히 그 고난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하겠다는 간절 한 마음과 사랑이,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조금이라도 움트고 있다면,그 사 랑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옳은지 가르쳐 주고 있 습니다.「나는 여러분의 고귀한 헌금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좀더 편 안하게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다만 여러분이 왜 그들을 도와야 하 는지를 알려 공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지금은 여러분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습니다.그리고 훗날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다시 그 들이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이렇게 되면 서로 필요한 것을 함께 나누 는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성경에서도 많이 거둔 자도 남는 것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나누십시오(고후8:13-15)」 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가슴 속에 사랑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그래서 우리 성도는,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 풀어 주시는 사랑을 깨닫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임을 세상 사람 들에게 밝힐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무슨 핑계를 대는 사람도 없지 않으나,대부분의 경우는 함께 동참하고 있습니 다.

하지만 우리는 좀더 진실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내 가족 이나 자식만이 아닌,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웃들과 이웃교회,그리고 나 아가서 북한의 동포들에게까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바울 선생은 「여 러분에게 참다운 열의만 있다면 얼마나 바치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그는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가 지고 있지 않은 것을 바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여러분이 가진 것을 바치기를 원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1.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그래서 진정한 구 원을 이루어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한 미국 대사인 <레이니>씨 는 감리교 목사입니다.우리 나라에서 선교사 겸 연세대 교수로 있다가,귀 국해서 에모리 대학 총장을 지내던 중,이번에 주한 미대사로 오게 된 것 입니다.

이분이 에모리 대학 총장 되기 이전의 이야기입니다.이웃집에 외로운 노 인 하나가 살고 있어서 오가면서 늘 보살펴드렸다고 합니다.그분의 과거 이력과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치 않고,단지 노 인네가 고 독하게 지내는 것이 안스러워서,관심을 기울였던 것입니다.정 말 순수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무슨 댓가를 바라지 않고, 외로운 노인네 하나를 보살피는 심정으로 돌봐드렸던 것입니다.

그분이 돌아가실 때쯤 되어서야,그분의 신분을 알 수 있었습니다.그는 그 유명한 코카콜라 회사 회장이었습니다.그의 유언장에는 회사 이익금의 일정한 액수를 무조건 레이니 씨에게 지급하라 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는 레이니 목사가 그 돈을 선한 일에 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 니다.레이니 목사는 그 돈을 에모리 대학에 기부했습니다.그리고 그 학교 의 총장까지 되었습니다.

레이니 목사는 돈을 바라고 그 노인을 돌본 것이 아닙니다.총장을 하고 자 해서 돈을 기탁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레이니 목사가 올바르게 사니,그에게 더 큰 일을 맡기셨던 것입니다.레이니 목사 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도 본받 아야 할 사랑의 모델입니다.

하지만,오늘 우리 주변에는 ①즉흥적이고 감각적인,그래서 값싼 사랑이 범람하고 있습니다.어떤 충동 에 의해서 사랑하기로 맘을 먹지만,나중에 후회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바울 선생도 고후 8:11에서 「자원(自願)하여 시작한 사랑의 운 동이라면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그러니까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일시적인 흥분이나 감정에 이끌려 일 을 저질러 놓고 그 뒷감당을 하지 못한다면,그처럼 무책임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온전한 사랑을 할만한 인격적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즉흥적이거나 감각적인 사랑에 빠지지 않습니다.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향한 참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기에,언제든지 그 사랑의 능력이 나타났습 니다.잠시 사람을 흥분시키는 사랑이 아니라,사람을 온전히 변화시키는 사랑이었습니다.

반면에,온전한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표출되는 사랑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젊은 남녀간에 벌어지는 이 러한 사랑을 불장난이라고 합니다.그리고 일반 사회에서 이러한 사랑이 많아지면,화 평이 아닌 갈등과 시기를 낳습니다.이처럼 사려(思慮)깊지 못한 사랑의 행위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입니다.

②이러한 사랑이 많아지게 되면,세상은 평화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이란 몸과 마음,물질과 시간을 서로 나누어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 래서 서로 평형을 이루는 것입니다.세상의 어느 쪽으로 그러한 것들이 치우치지 않게끔 서로 나눌 때에,형평을 이루어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 니다.어느 한 쪽으로만 모든 것을 다 풍성히 갖고 있도록 하나님께서 는 허락치 않았습니다.그것을 서로 나누어 부족함을 메꾸어 살도록 하나님 께서는 섭리하고 있습니다.강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도 록 성령으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거스리는 것이,인간의 욕심이요 감각적인 사랑인 것입니다.상대의 부족함을 보고 애틋한 마음이 생겨서 내게 있는 것을 나누어 주는 사랑이 아니라,내 필요성에 의해서 상대를 이용할 생 각으로 사랑하는 척하는 거짓 사랑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평화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거짓되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 방의 거짓을 누구보다 쉽게 눈치 챕니다.아니,상대가 진실하게 사랑을 하 려고 해도,자신이 거짓되기 때문에 상대방도 거짓되리라고 판단해 버리 는 경우가 많습니다.그 결과,서로 의심하고 미워하면서 갈등과 다툼을 일 으키게 되는 것입니다.애시당초부터 우리 인간은 너무도 허물이 많고 부 족한 존재입니다.그렇기 때문에,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그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하나님 또한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계시기 때문 에,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사 여러 가지 방 법으로 사랑을 베풀기를 원 하십니다.이러한 하나님의 의도와 사랑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그래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2.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을 온전케 하는 크신 능력이 되고 있습니다.

마가5장에는,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예수님의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이 어느 불쌍한 여인에게 전달되는 과정은,그 여인의 손끝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껴안거나 키스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은,예수님의 옷자락에 여인 의 손끝이 닿는 것만으로 충분히 전달되고 남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인의 손끝을 통과하여 전달된 예수님의 사랑은 그 여인을 온전케 했습 니다.그만큼 예수님의 사랑은 흠이나 티가 없는 순수한 사랑이었기 때문 에,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인의 온 마음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은,그동안 상처입었던 그 마음과 병고로 시달렸던 그 몸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습니다.사실 하나님 이신 예수께는 피조물된 우리 인간의 모든 것을 온전케 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딸아,네 믿음이 너 를 구원했다.안심하고 가거라,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게 살아 라(5:34)」 수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속아온 여인의 일생이었습니다.

불쌍한 이 여인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그런데 예수님만 은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으로 믿어졌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진실됨이 감지되었던 것입니다. 굳이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껴안아 주지 않으신다 해도 예수님의 그 진실된 사랑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예 수님만은 자신의 상처를 더 깊게 하지 않고 오히려 아물게 해 줄 수 있 으리라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 곧 주님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그 믿음이 예수님 과 연결되는 고리가 되었던 것입니다.이러한 관계 속에서 예수님은 여인 의 인생을 180。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다시 말하면,세상을 향 한 여인의 모든 의심은 그 몸과 맘을 병들게 하고 그 생활을 타락시켰으 나,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그 마음을 새롭게 하고 그 생활을 건강하게 했 던 것입니다.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새로운 생활은, 평화 의 삶이요 건강한 생활입니다.

①평화의 삶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불신은 두려움과 갈 등을 가져오지 만, 믿는 믿음은 자신의 마음을 평안케 하고 다른 사람하고도 평화를 이 루게 해 줍니다.「딸아,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안심하고 가거라.」이 얼 마나 평범하면서도 깊고 오묘한 진리 말씀입니까 우리 자신을 온전케 하고 평안케 하는 것은,바로 우리들 자신의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 니다.

②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이 말씀은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축원이 기도 하지만,한편 명령이기도 한 말씀입니다.건강케 하는 것은 분명 주님 이시지만,그 건강을 유지하도록 할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아무 리 예수님이 우리 병을 잘 고쳐주셔도,우리들 자신이 건강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일입니다. 근본적으로,부 족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어야 온전하게 살 수 있음을 이 미 말씀을 드렸습니다.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덧입고 살 수 있으려면,물론 하나님의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 다.그러나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우리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 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없는 것을 주라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을 주라는 것입니다.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척하는 것은 하나님께 안 통합니다.오히려 우리는,예수님처럼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 랑을 베풀 수 있어야,건강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3.끔찍이도 아껴주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길보아산 전투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다윗은 다음과 같이 애도했습니다. 「나의 형 요나단! 나의 가장 좋은 친 구 요나단! 형 생각에 나는 메어지는 가슴으로 울고 있소. 형의 우정은 나를 무조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었소. 어느 여인이 사랑하여도 형이 나를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하지는 못할 것이오(삼하1:26)」라고 말입니 다.

정말 그러했습니다. 요나단은 사적인 감정에서 아버지 편을 들지 않고 다윗을 아꼈습니다. 아버지가 단순히 질투심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한다 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요나단은 여러번 죽을 고비에 서 다윗을 구출해 주었던 것입니다.참으로 끔찍이 아껴주는 사람이었습 니다.자기 자신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자하는 욕심이 없지 않 아 있었을 텐데,그 경쟁 상대인 다윗을 미워하지 않고 진정으로 사랑했 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러한 사랑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능합 니다.우리의 능력이나 지혜로써가 아니라,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러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그런고로 우선 우리는 ①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넉넉하고 크신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영국 수상 처어칠의 아버지는 너무 엄격하고 무서웠다고 합니다.그래서 처어칠은 아버지를 증오까지 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골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를 듣고 가까이 가 보니 그 무서운 아버지가 무릎 꿇고 기도를 하고 있 었습니다.처칠은 너무나 크게 놀랐습니다. 아니,아버지가 무릎 꿇고 기도 하는 그 대상은 대체 어떤 분이시기에,평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우리 아버지께서 저토록 눈물 흘리며 기도하신단 말인가 그 때부터 처 어칠은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게 되어, 그처럼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라도 끌어안을 수 있는 넉넉한 사랑의 소 유자입니다.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으면 그 사랑을 누 릴 수 있습니다.

②우리 또한 우리의 가슴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그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가슴이 되도록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아야 합니다. 이 일이 당장 쉽게 이루어질 수 없지만,꾸준히 주께 매달리면 주님의 능력 으로 가능할 줄 믿습니다.그렇게 되면,내가 도와 주고 보살펴 주어야 할 사람이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물론 도와줄 수 있는 힘이 내게 있음도 주 안에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참 사랑이란,받는 쪽이 의심없이 그 사랑을 믿는 것이요,주는 쪽에서 자랑하거나 공치사하지 않는 것입니 다.

③그렇게 되면,그 사랑의 나눔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원래 순수하고 진실한 것이기 때문에.우리가 거짓없는 사랑을 나누게 되면 그 곳에 주님이 오셔서 같이 하십니다. 아무쪼록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안심하고 가거라」고 선언하신 주님의 음성을 늘 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그래서 주를 향한 믿음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어려운 내 이웃 형제를 끔찍이도 사랑하며 사는,건강한 믿음생활이 되기를 축원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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