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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일을원망과시비가업게 (빌 02: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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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간곡히 권하고 있는 말은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업없게 하라"는 것이다.

 이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고전10;10-11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쎄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이 말은 오늘 말세를 살아 가는 전세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부탁하는 권면의 말씀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하시고 있는 권고이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는 말씀에 귀를 기우리자.

 그러면 원망과 시비가 무었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원망 = "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으로 투덜거리다, 또는 불평하다.

정강한 요구라고 생각되는 것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다 란 뜻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말을 할 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다음에 광야길을 갈때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엇던 일을 상기하면서 권하고 있는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을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했었다.

 그 원망과 불평을 하던 그 사람들은 누구였나 얼마전에 애굽나라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종놈질을 하던, 참아 눈뜨고 볼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 저들을 구원해주시었던 것이다.

그것도 저들이 구원받을만한 어떤 일을 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었다.

 또 저들에게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었고 그 가나안 땅에 가는 동안에 지나야하는 광야 길에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 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했었다.

 그뿐인가 매일 매일 정확하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어서 먹게 하시었고 반석을쳐서 생수를 내어 이스라엘을 먹이셨다.

 생수 !

또 저들이 광야 생활하는 40면동안 의복과 신발이 헤어지지 않도록 특별한 배려를 해 주었었다.

 그런데 저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을 했다.

이는 곧 하나님을 대항하여 원망한 것이엇다.

 그때 하나님께서 땅에 염병을 내리시어 14,700 명이 죽은 일이 있었다.

(민14;26-35, 16;41-60)

어떠한 경우에도 원망은 내게 해로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시비 = " 이 말은 "따진다. 의심한다, 언쟁한다, 악한 생각을 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도 마찬가지로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 고라의 자손들이 하나님 사람 모세와 시비를 하다가 250명이 땅이 갈라져 빠져 죽는 불상사가 있었다(민16;21-22)

요즘 사람들은 심사숙고하는 것을 별로로 또는 귀찬케 생각하는 것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또 어떤 일에 오래두고 기다리는 것을 현명하지 못한 처사처럼 행동하는 것을 많이 보게된다.

 물론 즉석에서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서 좋을 때도 있다.

그러나 오래 기다려 보면 생각지 못했던 좋은 결과들이 만들어 질때가 왕 왕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더 좋은 것은 시시비비를 만들지 않는 것은 몇배나 더 좋은 것이다.

 이조 초기에 황희라는 정승이 있었다.

황희정승 집안에서 일어낫던 일화이다.

 두 종녀석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서로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황정승에게로 시비꺼리를 가지고 왔다.

갑의 말을 들은 정승은 "그래 네 말이 옳다" 라고 대답을 했다.

다음 을의 말에도 역시 "네 말도 옳다"라고 대답을 했다.

 이 판결를 곁에서 보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 갑은 이렇고 을은 저렇고" 라고 명확한 판결을 해야지 모두를 향하여 옳다만 하시면 어쩝니까 라고 할때 황정승은 그 아들을 보고 "네 말도 옳다"라고 했다.

 이 때 안방에 있던 부인이 "여보 그게 뭐요 아들의 말아 맞지 않소" 그랬 더니 정승은 그때도 "당신말도 옳구려" 라고 하는 바람에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바탕 웃고 말았다는 것이다.

 원망은 의지적인 행동이고 시비는 의지적인 행동의 수단이다.

 그럼 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는 것일까

1,흠없이 빛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15절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으로 나타내며"

너희가 순전하여 즉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사람이 되어 어그러지고 거스리 는 세대 즉 외고집적이고 괴팍하고 탈선과 변질과 곡해와 부패한 세대에서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그들 앞에 빛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인 것이다

이 것이 오늘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바램인 것이다.

 여기에 빛이란 1),착한 행실 2),의로운 삶 등을 말한다.

3),진실한 삶

우리들이 순전하게 살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돌려진다.

우리들이 빛으로 살때 세상은 빛을 보고 예수를 믿게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때 흠없고 순전한 것을 드렸다.

우리를 대신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흠과 티가 없으신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하나님께 받쳐지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흠과 티가 없는 제물을 받으시길 원하신다.

 흠과 티가 없다는 것은 원망과 시비를 모르고 산다는 말이다.

원망과 시비거리를 만들지도 않고 나 스스로도 원망과 시비거리가 되는 일에 서게되지 않도록 사는 것을 말한다.

 혹시 원망과 시비거리를 만났을 때에도 원망과 시비대신 찬송과 기도가 되도록 믿음을 쌓아야 한다.

 2,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하기 위하여 16절에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함이라"

여기 그리스도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를 말한다.

우리의 주님 우리의 신랑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으로 구름을 타시고 다시 오시는 그 날을 말한다.

 그 복되고 영광스러운 날에 어떤 사람은 생명의 면류관을 어떤 사람은 의의 " 어떤 사람은 금면류관을 어떤 사람은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에 어던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사람들도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요일2;28절에서 사도 요한이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 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날에 우리 중 한 사람도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이가 없어야 하겟다.

 그날에 우리모두가 영광된 구원의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16절의 말씀대로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밝힌다는 말은 앞으로 높이 받드는 것을 말한다.

말씀 부끄러워하지 말고 믿음생활 부끄러워하지 말고 주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을 하시라는 말이다.

 그래야 우리들의 달려감도 헛되지 아니하고 우리들의 수고도 헛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우리들은 자랑할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 받드는 생활을 하자.

그리고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게하여 흠과 티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자.

 그래서 주님 오시는 날에 많은 자랑거리를 가지 마중나가실 수 있는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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