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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 관용을 알게 하라 (빌 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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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의 말씀은 양적으로는 매우 짧지만 질적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내용을 가지고 있는 말씀이다.

 너무도 많은 교훈을 하고 있는 말씀이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이라면 깊이 묵상을 해야할 말씀이다.

 크리챤이라면 마땅히 이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1,관용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했다.

 관용이란 말이 있다.

이 관용이란 원래의 말에는 "양보하다" "점잔타" "친절하다" "유순하다" "참을성이 있다" "합리적이다" "용서하다" "관용하다"

너무도 좋은 내용의 많은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말에는 적당한 한마디가 없어 "관용"이란 말로 표현을 했 던 것이다.

 우리는 관용이란 단어를 보면서 양보, 점잔음, 친정,유순함, 인내, 용서와 합리적이란 내용을 맣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2,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여름에 많이 나는 과일 중 제일로 가장 큰 과일이 무었인지

예, 수박이다.

 그런데 수박을 살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박을 의심하게 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속을 보기 위하여 아에 칼로 삼각형을 도려내어 속을 보고서야 마음 을 놓는다.

 그렇다 수박은 사과나 딸기나 도마도와 달라서 겉 모양 만 보아서는 그 그 속을 알기가 무척이나 힘이든다

그런데 수박만 그런게 아니고 사람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게 불신자라도 큰일날 인인데 그게 불신자가 아닌 에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 수박처럼 겉만 보고서는 알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사도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명령조로 말한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한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여기 알게 하라는 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을 잘 못 들으면 뭐 예수 믿는 사람이 꼭 관용을 알려야 하는가하는 반문이 있을가바서 하는 말이다.

 여기에 알게 하라는 말은 P.R. 즉 선전이나 광고한다는 말로 들려지면 곤 난하단 말이다.

 여기에 알게 하라는 말은 자기를 나타낼려고 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 알게 하라는 말은 명령법 수동태로 쓰여 있다.

 수동태로 쓰여 졌다함은 나의 관용을 나타냄으로 광고함으로 알려지는게 아니라 내가 참된 관용의 삶을 삶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그것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나타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양보할수 있는 상황이 못되는데... 양보..

꼭 받아야할 것이지만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친절할 수 없는데... 친절하고...

내가 내려다 보아도 한참 볼수밖에 없는 신분의 사람에게도...

 인내할 수 없는 힘든 일인데... 인내하고...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온갓 모욕을 당하면서도 ...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 지시고 올라가시면서...

 용서못할 사건인데 ... 용서하는 ...

스데반이 돌아 맞으면서도 돌로 치는 자들을의 용서를 하나님께 부탁한 것 처럼...

 이런 광용의 일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절로 절로 내게서 흘러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들은 우리들의 권리들의 일부를 포기함으로 나타나지는 그런 관용 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권리, 나의 입장, 나의 체면같은 것들을 주장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지극히 제한된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수도 있고 또 친절과 용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사도 바울이 발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5절을 다시 보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니라"

어떤 친한 사람 또는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관용하라는 게 아니고 나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관용함을 알게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라면 그 모든 사람들 속에는 나를 미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를 사사건건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를 원수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4절의 말씀같이 우리가 주 안에서 항살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능히 가능한 일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일 보다는 나의 권리를 포기함이 쉽지 않을까 성도라는 이름을 욕되게함 보다는 차라리 내가 양보함이 낳지 않을가

거룩한 삶을 그릇 살기 보다는 바당함을 견딜줄 아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 관용은 갖가지 일을 체험하는 중 어떠한 사람들 속에 항상 평정과 인내를 잃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업 관계에서 성실함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권력을 행하데 있어서의 공평과 자비로 나타나기도 하고 고귀한 양보와 기쁜 기증과 느긋한 참음과 용서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3,주께서 가까우니라 예수 믿는 사람도 사람이다.

우리 모두들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게 없다.

다 같은 사람들이다.

 관용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예수를 밉는 신앙의 사람들이지만 관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주님 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이이기에 우리들이 관용할 수 있는 방법을 관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말해주고 있다.

 5절 하반절에 "주께서 가가우니라"

그렇다.

그냔은 감당할 수 없는 어렵고 무거운 일들이다.

그러나 주께서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면 우리는 할 수 있다.

주께서 가깝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능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종말이라는 사실을 믿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운 것을 믿는가

이 진리를 믿는다면 여러분은 관용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관용할 수 있다.

 주께서 가깝지 않더라도 마땅히 관용해야할 사람들이 우리들이 아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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