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기적의 현장 (막 10:46-52)

첨부 1


본문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나타내신 기적의 현장입니다.
아무 쓸모없는 눈먼 소경이, 길가에 앉아 구걸이나 하며 생명을 연장하던 소경이, 평생 소원이었던 눈을 뜨게 되는 기적의 현장인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저는 실로암 이란 제목으로 또 다른 기적의 현장을 소개하였읍니다.
실로암 이란 기적을 일으키는 장소였읍니다.
기적을 일어나게 하는 주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이소경 바디매오의 어떤점이 기적을 일으켰는지, 소경 바디매오의 행동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다시말씀드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때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1. 제일먼저 기적을 일으킨 첫번째 원인은 바디매오의 관심이었읍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여리고성 성문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날도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한떼의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늘 지나가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냥 무심하게 구걸이나 할 수도 있었지만, 바디매오는 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물었던 것 같읍니다.
누가 지나가는 거요
본문 47절에보면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긍금해 하는 바디매오에게 예수님이 지나가신다. 고 말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때부터 바디매오는 예수님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에게 대한 관심 이 기적을 체험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관심으로부터 출발 합니다.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도 주인의 딱한 사정에 대한 마라아의 관심때문이었읍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야이로가 예수님의 능력에 관심을 가졌을 때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읍니다.
열두해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가나안 여인도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관심으로 부터 고침을 받았읍니다.
그렇읍니다.
믿음도 신앙생활도 관심으로부터 출발 되는 것입니다.
관심이 씨가되어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의 회심이 그러하였읍니다.
예) 올더스게잇의 체험, 모라비안 집회에 대한 관심.
평안감사도 제싫으면 할 수 없다는 우리 속언이 있읍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관심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우리가 기적에 대한 관심이 있을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믿음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은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은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능력도 마찬가지 입니다.
능력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의 세상은 무관심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읍니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무관심입니다.
내게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늘 있는 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왠만한 일에는 자극을 받지도 않읍니다.
좀 지나치게 충격적인 일아라야 조금 생각해 봅니다.
그런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라다보니 점점 자극적인 것만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음악도 다 부수는 것같은 움악만 좋아하게 됩니다.
영화도 자극적입니다.
생활도 난폭해 집니다.
예) 몇해전 한강에 투신을 하려는 청년 왜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기 때
문..
믿음생활도 그렇읍니다.
평범한 신앙생활은 신앙생활 같지않고, 미지근한 신앙처럼 생각 됩니다.
요란하고, 무언가 자극적인 신앙 생활을 찾는 것입니다.
말씀에 서는 믿음이 아니라 감정에 서는 광적인 신앙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결코 바른 신앙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이럴 때일 수록 점점 신앙에 예민해지고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갖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읍니다.

2. 두번째로는 간구한 것입니다.
본문 47에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이란 말씀이 있읍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것을 알게 된 바디매오는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38년된 병자도 고치시고, 죽은 나사로도 살리시며,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일으키신분, 더우기 바디매오와 같은 소경을 고쳐주신 능력의 예수님이 자기 앞을 지나가신 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간절히 소리질렀읍니다.
이 간구의 소리가 주님께 들렸고 그 응답을 받아 눈을 뜨게 되는 기적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기적을 체험하는 방법은 간구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읍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걱정이 있읍니까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환란이 있읍니까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간절한 간구가 응답을 받은 것처럼 우리가 간구하는 것도 응답을 받게 될 줄로 믿읍니다.

3. 세번째는 시험을 이겨낸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간구할 때, 소리치며 매달리려 할 때, 어처구니없는 방해를 받았읍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먼저 따르던 사람들에게 잠잠하라 는 꾸짖음을 들은 것입니다.
시끄럽다는 것입니다.
이 소경이 자기의 한 많은 한평생을 마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찾아서 매달리는 데, 시끄러우니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을 먼저 따르던 무리에게 들은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살아가다보면 이런 시험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있읍니다.
나는 사생결단을 하는 마음으로 매달리는데,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는 데 그런 나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더우기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당할 때, 그런 시험을 당하는 경우도 있읍니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 시험과 방해가 먼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에게서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거기에 굴하지 않았읍니다.
지지도 않았읍니다.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48)
목이 터져라 더 간구한 것입니다.
이 간구가, 이 시험을 이겨내는 기도가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우리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또는 먼저 된 신앙인들 때문에 시험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읍니다.
그러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바디매오처럼 이 시험을 이겨 낼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네번째로 기적을 이룬 비결은 믿음입니다.
5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는 말씀이 있읍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의 믿음을 칭찬하셨읍니다.
저는 처음 이성경을 읽을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이 말씀이었읍니다.
아무리 읽어봐도 바디매오의 믿음을 찾아 볼 수 있는 구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묵상하고 기도하는 중에 두곳에서 바디매오의 믿음을 찾아 낼 수 있었읍니다.
처음은 47절입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분명히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들었는 데,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여 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 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야, 구세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다윗의 자손이란 바로 메시야를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말을 다른 말로 풀어보면,
구세주여, 나를 구하시러 오신 메시야여, 나를 불쌍히 여거 주소서 라는 말인 것입니다.
제자들도 쉽게 고백하지 못했던 그말, 에수님을 먼저 따르던 사람들도 나사렛 예수라고 말했는 데, 바디매오는 그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소리 질렀던 것입니다.
두번째는 51절입니다.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바디매오는 자기의 평생 소원을 말합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말은 그냥 듣기에는 그것이 뭐 믿음을 말하는 것이냐고, 소경이 보기를 원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읍니다.
만약에 바디매오가 예수님께서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실 때, 그분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결코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대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바로 자기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는 그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바디매오의 믿음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믿음이 되었고 결국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는 자기의 구습을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엡 4:22-24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고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고 말씀하셨읍니다.
본문 50절에 보면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이란 말씀이 있읍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갔읍니다.
여기에서 겉옷은 바디매오가 구걸하는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입니다.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하나 뿐인 재산입니다.
그것을 내어 버렸다는 것은 거지 생활의 청산을 말하는 것이고, 이제 껏의 삶을 내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결단입니다.
이렇게 전적으로 매달리는 바디매오를 주님을 기쁘게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있을 수 없는 기적을 베풀어 눈을 뜨게 해주셨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영광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맛보지 못하는 또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과거에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걸친 발을 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뒤에 두고온 소돔성을 바라보고 싶었던 롯의 아내처럼, 세상을 향한 끈끈한 미련이 우리로 기적의 인생을 맛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습을 내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끊을 것은 끊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여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디매오는 비록 소경이요 거지였지만, 우리에게 훌륭한 신앙생활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1. 주님께 대한 관심

2. 간절한 기도

3. 시험을 이기는 인내

4. 칭찬받는 믿음

5. 구습을 정리한 결단과 각오
이 말씀을 거울삼아 바디매오와 같은 훌륭한 신앙으로 기적을 체험하시는 온 성도들이 다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