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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원하노니 (마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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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회에서 나병은 가장 무서운 질병 중의 하나입니다.
이 병은 처음에 작은 반점으로 시작하여 썩고 고름이 나며 얼마 안되어 눈썹이 빠지고 모든 모습이 일그러져 갑니다.
고리도 거칠어지고 먼저 손발이 썩고 점점 몸에 퍼져 갑니다.
이 병의 평균 기한은 9년인데 마지막에는 병균이 뇌에 침범해서 정신을 잃고 혼수 상태에 빠져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병입니다.
처음에는 감각을 상실하고 신경에 영향을 주어 살은 떨어지고 힘줄은 오그라들어 손이 갈쿠리같이 되어 버립니다.
손과 발이 썩고 떨어져 나가 마침내는 몸 전체가 썩어버리는 진행성의 죽음으로 몸이 점점 죽어가는 무서운 병입니다.
본문은 바로 이 문둥병이 걸린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유대나라에서는 문둥병이 걸린 사람은 병자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취급되었고, 불결하고 부정한 것으로 격리시켜 사회로부터 소외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나병이 걸리면 병의 무서움보다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소외감과 외로움이 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율법으로는 죽은 시체 다음으로 불결하다 하여 문둥병자가 집안에 머리만 들이밀어도 그 집은 대들보까지 불결하다고 하였고 아무도 그들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문둥병자가 지나간 거리의 계란도 안 사먹을 정도로 철저하게 격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불결하고 부정하다 하여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고 재수없다고 피하여 지나갈 정도의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셨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이처럼 놀라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서슴지 않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두가지 놀라운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그처럼 멸시받고 천대받으며 사람들 곁에 올 수 없는 문둥병자가 감히 예수님께 접근했다는 사실과 또 한 가지는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냄새나고 더러운 문둥병자에 손을 대시기까지 사랑으로 응답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 아침에는 이 두가지 놀라운 사실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예수님께 나아왔던 문둥병자는 기적적으로 그 몸의 병이 낫는 역사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예수님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먼저 그 문둥병자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자기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기관, 제사장, 바리새인들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종교의 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에게 이 사람은 가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가면 돌에 맞거나 악대를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쳐다보지도 않고 부정하다고 비위가 상해 고개를 외로 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나아왔습니다.
그는 마음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저분만은 나를 악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어떤 사람도 나를 환영하지 않고,나를 싫어하지만 저 분만은 나를 박대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돌을 던지지 않으실 것이다.
내가 아무리 추하고 더러워도 예수님만은, 예수님만은 기꺼이 영접해 주시고 박대하지 않으시리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람은 이 확신때문에 문둥병에서 놓임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누구도 나아올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죄인도, 실패하고 좌절하고 예수님의 곁을 떠났던 사람도, 씻을 수 없는 잘못 속에 방황하는 사람도 예수님에게는 나아올 수가 있습니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언제나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기다리고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응답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 나아올때 육신이 너무 추해서, 더러워서, 죄를 지어 나아올 수 없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예) 현대판 탕자의 비유
언제나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어떤 상황에 있더라고 예수님께 나아와 사랑을 위로로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2절 말씀에 “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이까짓 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내가 믿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셨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사랑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그는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왔습니다.
그 문둥병자는 만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손가락질을 받고, 멸시와 천대 속에서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이 하실 수 있나이다.“
썩고 문드러져 가는 손을 들어 다 일그러진 흉한 얼굴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소리쳤습니다.
그 장면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은 두렵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하지만 그 눈총 속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보려고 간절한 마음으로 계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주여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죄인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보고 피하고 욕하고 나와는 상종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갈 곳이 없습니다.
희망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같은 죄인도 원하시면 깨끗히 하실 수 있습니다.
애원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굵은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며 겸손하고 간절한 모습으로 나아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아 왔을 때 그는 사랑의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셋째, 그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나아왔습니다.
성경에 그는 “ 절했다 ” 고 말하였는데 이말은 헬라어 PROKUNEIN(프로스 쿠네인)이라는 말로 썼는데 이는 신에게 경배할 때만 사용하였던 말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아왔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아왓을 때 예수님께서는 즉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응답은 바로 사랑이셨습니다.
율법에는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의 2m이내로 접근한다면 무서운 불결죄로 걸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자기 손을 펴서 대셨습니다.
오늘 날 의학자라면 그 무서운 병이 감염될 무서운, 무모한 짓을 했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병은 접촉성 전염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손을 펴서 이 사람에게 대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둔 규례와 율법을 선행하는 것입니다.
의사에게 전염병 환자는 위험적인 존재가 아니라 도와 주고 치료해 주어야 할 환자인 것처럼 예수님깨도 그 사람은 바로 사랑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노니 ” , “ 내가 원하노니 ”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즉시 그 문둥병자는 깨끗하여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문둥병자의 평생의 고민을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피눈물나는 고통과 뼈를 깎는 아픔 속에 눈물로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던 한 죄인이 놀라운 주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런 교훈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어떤 문제, 어떤 죄, 걱정, 근심, 시험, 환경) 주님 앞에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나아올 때 , 주님은 언제나 그 크신 사랑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
오늘 여러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이런 사랑의 응답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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