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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에베소 전도 (행 1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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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요한 계시록에 소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형편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에베소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은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주님을부터 받은 칭찬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01,실제적인 믿음의 행위가 있었읍니다.

02,기진맥진하기까지 땀을 흘리는 수고가 있는 교회였읍니다.

03,어떠한 어려움에도 인내로 신앙을 지켜가는 교회였읍니다.

04,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은 건실한 교회였읍니다.

05,영적인 식별력이 있는 교회이었읍니다.

06,주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은 교회였읍니다.

07,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할 줄 아는 교회였읍니다.

 에베소가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칭찬을 받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에베소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그렇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되게된데는 물론 주님의 은혜가 첫째입니다만 그 이면에 사도 바울과 같은 훌륭한 복음 정도자의 눈물이 잇었기 때문임을 오늘 본문은 증거를 하고 있읍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위하여 얼마나 피눈 물 나는 헌신을 했는가를 보여줌입니다.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을 두루다니면서 많은 전도를 했읍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서처럼 3년이 넘도록 장기간 체류한적은 없었읍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고전16;8절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그렇게 오래 머물러 있었던 이유를 밝히고 있읍니다.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함은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으라"고 했읍니다.

 이 구절들이 바울이 에베소에 전 생애를 걸었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울이 에베소에 오래 머물렀던 것은 거기에 전도할 대상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더라"고 한것은 전도의 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그 전도의 문이 열려졌을 때 사도 바울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도 바울은 놓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열심히 전했던 것인데 그 결과 가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에베소 교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8절을 다시 봅니다.

"...석달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 석달동안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만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지혜로 정할 수 있는 주제중에서 이 주제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못숨을 걸고 자기 자신을 투자 하기에 가장 적합한 주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제는 자기를 사랑하시는 주님게서 주셨음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비울은 이 한가지 일에 전 생애를 걸고 뛰어가고 달려가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 이 한 주제를 놓고 날마다 하루에 무려 다섯시간씩이나 강론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언듯 느낀 것은 오늘날 내노라하는 복음 전도자는 많은데데 과연 사도 바울과 같은 전도자는 얼마나 될까 하고...

 바울이 이렇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말씀의 지식을 가지고있었던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불붙는 신앙의 열정 때문입니다

오느날 정말 바울과 같은 전도자가 있을까...

 바울의 이런 믿음과 열정과 말씀의 지식이 한테 어울려 이런 놀라운 역사를 에베소 교회에 심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무었일까 큰 교회를 짖는 것일까요 땅땅거리며 큰 소리치기 위하여 땅투기하는 것일까요

예! 다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아닙니다.

 바울과 같은 열심쟁이가 필요합니다.

바울과 같은 믿음의 전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확신에 넘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2,담대히

9절에 보니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에베소에 오래 머물렀던 것은 복음전도의 방해군들이 없었기 때문 이 아닙니다.

 조금 전에도 소개를 했읍니다만 고전 16;8절에 "내게 광대하고 공효하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 했음 같이 여전히 에베소에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극성스러운 반대 는 여전했었읍니다.

 에베소에도 대적하는 자가 많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새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왜 반대하는 무리가 없겠읍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 나는데 왜 마귀가 잠잠하겠읍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다 이런 마귀의 역사가 함게 하고 있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더우기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이니만큼 전례 없이 사탄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8절의 말씀 그대로 담대히 복음을 전했읍니다.

 구데기 무서워 장 못담겠읍니까 마귀들의 장난이 무서워 믿음의 행진을 멈출 수는 없읍니다.

 믿음의 행진에 어떠한 어려움이 닥친다 할지라도 우리는 조금도 지체하거나 중단할 수 없읍니다.

 바울은 매우 담대 했읍니다.

그 담대한 믿음을 바울의 서신인 로마서를 통해서 알 수 있읍니다.

 바울 사도는 롬 8;38-39 에서 그의 믿음을 이렇게 고백을 했읍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내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들에게 이런 사도 바울의 믿음이 있읍니까 그 어떤 것과도 나의 믿음을 바꿀 수 없다는 확신이 굳게 서 있읍니까

사도 바울에게 이런 믿음의 확신이 사선을 수 없이 넘으면서도 그는 담대할 수 있었읍니다.

 말에만 담대하지 말고 삶과 생활에 담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희한한 능력

바울은 누가 반대하면 할수록 더 담대해는 것입니다.

 9절에 유대인이 반대하고 조롱하자 바울은 따로 제자들을 선별하여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다고 했읍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끈질김이 있어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나와서 뭐 자기 마음에 좀 거슬린다고 삐지기도 잘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 일에 눈물을 잘 흘리는 사람이 있읍니다.

 눈물은 그렇게 흔하게 흘릴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 귀한 눈물을 복음을 위하여 흘리고 삐지기 제끼고 하는 것도 마귀를 향해서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을 빌렸는지 전세를 내었는지는 모르지만 본격적으로 열심히 강론하기 시작을 했읍니다.

 이게 신학교의 시발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10절에 "이 같이 두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을 듣더라"

여러분!---------두해 동안을 끈기 있게 강론 했더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바울의 강론함을 듣더라고 했읍니다.

 열심히 전하노라면 듣는 자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의 대상을 정하고 몇번 마지 못해 전해 보다가 쉽게 뒤 돌아서는 분이 많은데 전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처럼 석달을 해보고 또 두해를 더 해보면서 끈기 있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두해 동안에 입으로만 전했겠읍니까

아닙니다.

두해라는 표현 자체가 여기에는 사도 바울의 생활이 함께 담겨 있음을 보여 줌입니다.

 전도는 말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과 함께 전하는 자의 행위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제 아는 사람 중에 예수 믿으라고 하면 믿고는 싶은데 자기 동생이 예수 믿는데 자기 동생처럼 될까바 믿을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자기 마느라 같을까바 겁이나서 믿지 못하겠다는 분들도 보았읍니다.

 믿음의 생활은 오래 했는데 내게서 진정한 전도의 열매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들의 삶이 찹으로 성경적이었나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두란노 서원에서 본격적으로 제자 훈련을 했읍니다.

남들이야 비방을 하던지 핍박을 하던지 관계하지 아니하고 끈기 있게 열심이 자기에게 주어진 주님의 일에 전력을 했더니 11절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 났던것입니다.

 11절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바울의 손에 하나님께서 희한한 능력을 주셨읍니다.

 반대와 조롱이 극심했지만 하나님만 믿고 열심히 전하기만 했더니 어느날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에 희한한 능력을 더해 주신 것입니다.

 그 희한한 능력이 12절에 설명 되 있읍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능력은 이렇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능력은 어떤 기도원의 전매 특허가 아닙니다.

그 어떤 사람의 전유물도 될 수 없읍니다.

 바울처럼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사람이 또한 믿음을 가지고 들을 때 믿음과 믿음이 마주치는 그 곳에 주님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는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4,흥왕하여 가더라

주님의 능력의 역사가 있는 곳에 마귀 사탄의 역사도 함께 있읍니다.

13절에서 1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세상적인 요술쟁이와 마술을 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도용하여 못된 짓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당시에 유대인의 제사장의 직책에 있었던 스게와와 그의 일곱 아들들도 이런 언뚱한 짓을 하고 있었읍니다.

 이런 유들을 보아서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이 귀신을 쫓아낸답시고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도용한 무리들이 많았음을 보게합니다.

 그러나 15절을 보십시요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16절에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군위 고로 화산의 신 집사의 사건)

이런 일이 에베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짐으로 말미암아 자복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 나게 되었읍니다.

 그 회개의 증거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잘못된 곳에 사용했던 수 많은 세상적인 책을 모아다가 다 불살라 버렸읍니다.

 그 책을 값으로 환산을 하니 은으로 오만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값을 오늘의 단위로 계산을 해 보았읍니다.

은이 약 746,48Kg 이었읍니다.

 이를 더 쉽게 말씀 들이면 한 사람의 노동자가 137년 3개월을 벌어야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거액의 책이었읍니다.

그러나 저들은 과감하게 회개했고 또 불살라 버렸읍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회개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마땅히 불태워 버려야 할 것을 아직도 불태우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회개한 사람은 버려야할 것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있었던 고약한 습성들을 이젠 하나 하나 내 던지면서 살아야합니다.

 미워하던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랑스러워져야 합니다.

 그럴때 내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20절의 말씀과 같이 임하게됩니다.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아멘

주의 말씀이 내게 힘이 있게 살아 역사 할 때 내가 흥왕하여집니다.

내 가정이........ 내 교회가 점점 흥왕해 집니다.

 우리 모두가 주의 말씀에 바울처럼 굳게 서서 힘있게 살아서 가정을 복음화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능력의 사람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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