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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말론적 삶1-유무상통 (행 0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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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설교로 삼천 명이 회개함으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왜 교회의 처음 설립의 특징이 유무상통과 빈민구제 쪽으로 간 것일까
교회는 종말론적 성격을 갖는다. 우리는 죽은 뒤에 천국에 가지만 우리가 지금 여기 서 있는 곳으로부터 천국을 향해 가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종말이라는 말은 끝이란 뜻인데 이 세상의 가치와 체계가 끝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종말론적이다’라는 말의 또 다른 뜻은 교회와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이라는 것이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마 16:16-20)”
주님은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기초로 하며 성령강림을 기초로 출발한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 결과라면 이때 이미 선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출발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 완성되고 난 다음에야 교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끝이 아니다. 끝이 언제인지는 로마서 8장을 보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5-17)”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이다. 후사란 상속인을 뜻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다. 그것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준비되고 있고 그 나라를 바라보고 있고 그 나라를 약속받고 있다. 이것이 교회가 갖는 종말론적인 성격이다.
그래서 교회란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과 그 목표를 향하여 지금 어떻게 달려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 대표적으로 증거되어야 하는 곳이다. 본문을 다시 보면 베드로의 설교로 삼천 명이 회개했다고만 기록하고 있지 않고 바로 이 기록들 다음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아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겠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의 설교로만 인하여 삼천 명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 신앙인들의 자세와 삶의 모습과 원리와 목표로도 매일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셀 수 없게 일어나는 것이 교회가 갖는 성격이고 원리이며 분위기이고 증거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선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가 선교적이라는 말은 나가서 한 영혼을 불러다가 구원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의 원리를 이웃 사람들이 보고 예수를 믿고 진리에로 돌아오는 결실이 된다는 의미에서 선교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중에 대표되는 것이 사도행전은 서슴지 않고 물질이라고 한다. 왜 성경이 초대교회에서 물질을 교회가 갖는 종말론적인 성격, 선교적인 사명을 대표적인 핵심으로 꺼낼 수밖에 없느냐 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추적해봐야 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성경이 초대교회 종말론적 신앙의 핵심의 모습을 물질로 꺼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돈으로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돈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돈은 신앙으로 할 수 없다. 오죽하면 주님께서 부자가 천국 가기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겠는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며 이 세상의 실력과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다.
이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추구한다. 진리와 생명과 하늘나라의 영광을 사모하며 그것을 준비하는 자라는 표현을 지금 모두가 개인적인 세상의 욕심과 세상의 싸움에서 벗어난 것으로 증명해낸 것이 본문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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