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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신 28:1-6, 엡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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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한 생애는 내 의지나 계획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섭리 경륜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뚜니다. 결혼한지 50년이 지나온 동안 결혼 뒤안길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넘치는 은혜에 감사를 느낍니다. 바울처럼 내가 나 된것은 순전히 하 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고백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를 확증해 줍니다. 믿는 자들의 구원은 인간의 의지 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늘 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누리게 하시려고 베푸신 사랑의 결과입니다. 이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아가페)입니 다. 따라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주어진 믿는자들의 구원은 인간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인하여 동요되거나 소멸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또한 어 떤 방법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성서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 실하신 약속은 하나도 땅에 떨어진 것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미 우리의 구원의 계획이 창세 전에 세워졌다고 하였습니 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따르면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의 마음의 원대로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뜻에 따라 자유롭게, 장차 될 일을 불변하게 정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즉 구원은 하나님께서 경 영하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시는 것이지 믿는 자들의 주관적인 자격에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예정을 나타내는 헬 라어 '프로오리조'는 '미리 결정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구원을 미리 결정하였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이 용어는 부정과 거형으로 사용되어 한번 예정하신 바는 영원한 예정임을 나타냅니다.

인간의 자구적인 노력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교만한 일입니다. 창세 전에 이미 세워두신 구원의 계획과 그 은혜는 우리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죄인의 구속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 사역적인 예정, 구속, 인치심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이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은혜입니 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지은 주여호와 나를 도 와 주시네 너의 발이 실족잖게 주가 깨어지키며 택한 백성항상 지켜 길이 보호 하시네 도우시는 하나님이 네게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너를 상 치 않겠네 네게 화를 주지 않고 혼을 보호하시며 너의 출입 지금부터 영영인도 하시리' 예정 가운데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세심한 배려는 세 월이 흘러 과거지사를 돌아볼 때 믿음으로 감사함이 넘치게 합니다.

인생의 소용돌이에서 시달렸을 때, 내 모든 소유를 잃고 낙담했을 때, 바로 그 때 받은 바 축복들을 세어보면 지나온 동안 하나님께 받은 축 복의 무한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지난날 우리의 생애는 부부됨의 생활로 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힌두교의 창세기 설화가 생각납니다. 그 설화에 의하면 신이 남자를 만들어서 이 세상에 내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남자는 쓸쓸해 못견디어 하므로 여자를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여자를 어떻게 만들까 궁 리하다가 꽃의 아름다움, 새의 소리, 무지개의 빛, 미풍의 부드러움, 물결의 웃음, 들에 노니는 양의 온순함, 여우의 교활, 구름의 방탕, 소나기의 변덕 등을 여자의 몸에 넣어 아내로서 남자에게 제공하였습 니다. 아내를 얻은 남편은 한동안 행복했습니다. 남녀는 지상을 낙원 으로 알고 그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서 남자는 여자 가 싫어졌다고 신에게 그 여자를 데려가 달라고 호소하므로 신은 남자 에게서 여자를 거두어 버렸습니다. 그런 후 또다시 얼마 안되어 남자 는 신에게 다시 그 여자를 달라고 애원하므로 신은 다시금 그 여자를 내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또 얼마 안가서 여자를 신에게 쫓았 다가 다시 찾아갔다 하기를 네 차례나 반복하였습니다. 이래서 신은 최후에 남자에게 약속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마음이 변치말 것, 둘째 는 좋든지 나쁘든지 그 여자와 운명을 같이 할 것, 세째는 일생동안 함께 지상에서 마칠 것 등을 약속시키고 여자를 남자의 품안으로 돌려 주었다는 설화입니다. 인간들의 부부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교훈으로 생각됨니다. 일남 일녀가 짝이 되어 부부를 이룸이 인생의 순리요, 서 로 좋아서 결혼을 하고 검은 머리가 하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변치 말자고 약속을 하지만 살아보면 생활이 속이고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아서 남녀가 헤어져서 살아 봤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그런데도 헤어지지 못한 채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다 보면 자녀들이 생기고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이제야 진미가 돋는가 보 다 하고 깨달았을 때에는 어느덧 지금처럼 황혼이 깃들고 죽음이 문앞 에서 손짓하는 것이 인생의 부부생활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회고하건 데 살아 온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살았던 것이 중요합니 다. 어디서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 합니다. 무엇을 말하고 살았느냐가 아니고 무엇을 행하고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오래토록 사는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보람있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난날을 돌이키면서 이제 어떤 태 도로 하나님 앞에 설까,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 어떤 마음으로 생활 속에서 주의 영광을 위해 살까, 생의 보람과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이러한 인생의 근본문제를 명확히 짚고 서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 아링톤국립묘지의 푸른언덕에서 영원히 잠자는 자들을 생각하 면서 J.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마사츠세츠주 상원에서 연설을 하 였는데 그것은 "우리는 훗날 역사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때 역사는 우리에게 네 가지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첫째는 당신은 용감 하였습니까, 둘째는 당신은 총명하였습니까, 세째 당신은 성실하였 습니까, 네째 당신은 헌신하였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우 리 생의 좌표를 제시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되 용감하고 떳떳하게 살아야 하고, 총명하고 지혜 롭게 살아야 하며, 또 성실하게 헌신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헌신은 봉사와 똑같은 말입니다. 나는 가족을 위하여, 나의 교회를 위하여, 나의 직장을 위하여, 나의 지역을 위하여, 나의 민족을 위하 여, 나의 조국을 위하여, 또 인류와 세계를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치 고 무엇을 봉사 했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물어 보아 야 합니다. 이만큼 살아온 지금 우리는 넘치게 받은 은혜 앞에 주의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직접 간접, 음으로 양으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 섭리와 경륜, 역사하심에 감사하면서 남은 여생을 주를 위한 삶으 로 고락을 같이 한 부부는 손잡고 기원할 뿐입니다.

 장로교 소요리문답 제1문에 보면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이 냐'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대답은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 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 다'. 또 성서에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은 비단 먹고 마시는 일뿐 아니라 그 밖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의 궁극적인 목적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 라는 것입니다. 먹고 마심으로 육체의 건강을 보존하고, 그 육체는 심 령을 건전케 하며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데 힘쓸 때에 가치있는 생활이 됩니다. 즉 우리 모든 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따 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하여 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모든 것을 형통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께로부터 넘치게 받은 은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우리 남은 여생을 창세 전에 세워 두신 구원의 계획과 그 은혜에 감사하며 오로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 가기를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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