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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살아갈까 (전 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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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구약의 전도서는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까 하는 것을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주는 삶을 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9절을 보십시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그러면 네게 어느 날 반드시 보상이 되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애굽에서는 보통 농사를 할 때 흔히 봄철에 나일강이 범람하면 그 범람한 물위를 곡식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후에 나일 강의 물이 다 갖은 다음에 그곳에서 곡식이 나서 많은 수확을 거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물위에 곡식이 나서 많은 수확을 거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물위에 곡식을 던지면 없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가을에 많은 수확을 거둔다고 하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때, 좋은 일을 할 때, 친절한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 어떤 사람은 그것은 고맙게 받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물위에 양식을 던지는 것처럼 그리 무심하고 감사히 여길 줄 모르고 받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받는 사람이 어떤 태도로 받든지 그런 것 상관하지 말고 내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게 되면 지금은 깨달을 수 없지만 나중에는 좋은 결과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뜻인 줄 생각합니다.
아라비아에 이런 이야기가 속담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바그다드에 어떤 사람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하나를 왕에게 입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이 아들을 데려다가 자기가 낳은 아들처럼 사랑과 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아이가 점점 자라서 17,8세쯤 되어서 강에 목욕을 하러 나갔다고 그만 세찬 물살에 떠내려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다
죽은 줄 알고 이 왕이 널리 광고하기를 이 아이의 죽은 시체라도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많은 상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군대를 동원해서 찾아보기도 했으나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레 만에 어떤 사람이 그 바그다드에서 멀리 떨어진 강에서 내려가서 어떤 산골짜기를 지나가다가 강 가운데 있는 바위위에 이 아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기적이 아닙니까 왕이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왕은 아이를 만나자마자 “너 7일 동안이나 물 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으니. 배가 고파서 어떻게 지냈느냐 무엇을 먹고 살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때 이 아이가 하는 말이 물에 떠내려가다가 바위에 걸려서 그 바위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니까 이상하게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빵이 한 덩이씩 떠내려와서 그것을 먹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빵이 한 덩이씩 떠내려와서 그것을 먹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빵이 담겨져 있던 가죽 주머니를 내놓았는데 보니까 거기에 이름이 적혀 있더랍니다. ‘모하메트 벳핫산’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자기 나라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서 수색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강 상류에 정말 그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아침과 저녁으로 가죽주머니에 빵을 담아서 강 하류로 떠내려보낸 것입니다.
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아침과 저녁으로 빵을 떠내려보냈소” 그의 대답이 “우리 나라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빵을 물 위에 던지라. 그러면 너에게 어느 날 반드시 보상되리라.’ 그래서 이것이 사실 맞는 말인가 맞지 않는 말인가 알아보려고 그면 정월 초하루부터 오늘까지 아침과 저녁에 한 개씩의 빵을 강물위에 던졌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물위에 떠내려보내는 이 빵조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한 선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대하지 않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왕은 너무 기뻐서 “너 때문에 우리 귀한 아들이 살았다”고 하면서 많은 상금을 주고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벼슬을 주었다고 하는 사실담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기회를 당하던지 좋은 일을 하게 되면 그 당시는 무슨 기쁨이 없지만 여러 날 후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보은의 원리를 가르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원리는 옛날부터 우리 동양의 성현들도 가르쳤습니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고, 선을 쌓는 집안에 반드시 여경이 있고, 음덕(陰德)이 있으면 반드시 양보(陽報)가 있다고, 숨은 덕이 있으면 반드시 밝은 데서 보답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우주 안에는 보응의 원리가 어디든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을 붙들고만 있지 말고 던져야 합니다. 그것을 물위에 던질 때 우리는 낭비한다고 생가합니다. 그러나 가치 있는 목적과 귀한 동기를 가지고 아름다운 일을 위해서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을 던질 때 그것은 결코 낭비가 아닌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눠 줄 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가진 모든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을 받은 자부심입니다. “내가 일생을 사는 동안 최소한 일곱사람이나 여덟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 사람들에게는 이런 잠언이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잃어버린다. 주는 것이 남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내손에 쥐고 있을 때 그것을 소유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썩어버리고 맙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재물, 그것도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젓가락 하나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애굽 사람의 속담처럼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남에게 주면 그것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4절에 뭐랬어요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원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날씨를 보니까 씨뿌리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오늘은 거두기에 적합하지 않은 구름이 낀 날입니다. 누가 나가서 거두는 일을 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전도서 기자가 왜 이 말씀을 우리에게 던집니가 “이것을 하면 안된다. 손해다. 낭비다.”라고 계산합니다. 주님 앞에 시간을 드리고 젊음을 바치는 것을 모두 다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교훈합니까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시선을 환경에만 두지 마세요. 구름 낀 저하늘에만 두지 마세요. 날이 맑을 때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우리가 흔히 “날이 좋아지면 가야지. 내 형편이 나아지면 해야지. 내 집만 장만하면 나도 교회를 위해 봉사해야지.”하는 이런 마음 때문에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위의 하늘이 구름으로 덮였어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내게 불리하게 보여도, 이런 것들이 하나님과 내 이웃을 위한 봉사에 제동을 걸어도 그것이 바른 길이고, 바른 일이고, 가치있는 일이고, 보람된 일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역이라고 마음 속에 믿어지시면 그대로 하세요. 타산에 의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던진 식물을 언제 찾습니까
여러날 후에 찾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행동입니다. 믿음없는 사람의 눈으로 볼때 그것은 시간의 낭비고, 재물의 낭비고, 청춘의 낭비라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의 식물을, 그들의 재산을, 그들의 소중한 젊음을, 그들의 열정을 지금 물 위에 던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여러날 후에 찾습니다.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이 말씀을 믿습니까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반드시 거두리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믿음으로 주는 삶을 사십시다.
둘째로, 책임있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 7절을 보세요.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을 사는 동안 즐겁게 살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창조하신 다음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빛을 주셨습니까 우리가 즐기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왜 아름다운 자연을 주셨습니까 인생을 즐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즐긴다고 하면 믿음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생각하는데 전도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정당한 범주 안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삶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금욕주의적인 삶은 아닙니다. 자신을 학대하는 것만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 가운데 첫번째 고백이 “인간의 제일되는 고백이 무엇입니까” 하는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기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그를 즐기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 사실 예수 믿는 생활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을 주심과 동시에 책임을 주셨습니다. 특권은 책임을 수반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9절을 보십시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며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젊은 때를 즐거워하며, 마음에 기뻐하며, 원하는 길을 걸으며,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고 했습니다. 마음껏 삶을 즐기십시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할 것은 내 모든 행동이, 내 모든 삶의 결과가 내가 뿌리는 모든 씨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즐기라는 말입니다. 내가 이것을 즐기고 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시면 부끄럽지 않을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심판하시는 그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14절을 보세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요사이 수요 기도회 때마다 강해하는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내용도 그렇습니다마는 한 순간도 우리가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이 내 삶을 심판하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말, 내 행동, 내 삶의 모든 흔적에 대해서 마지막 날 결산서를 써야 할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심판의 날은 나쁜 날이 아닙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선악간에 심판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선에 대해서는 칭찬과 상급의 날이 될 것이고 악에 대해서는 보응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 날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섬겨온 사람들에게는 “내 눈물을 씻기시고 내 가슴을 위로하시며 내 땀을 닦아주시고 그리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주시는 날” 입니다. 이 날을 기다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12장 1절을 보십시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
청년의 때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오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전도서 기자는 권면합니다.
우리 영혼에 참 만족을 주지 못하는 세상 것을 위하여 힘쓰는 것 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조물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어떤 청년은 “그러면 다른 일은 언제 합니까” 라고 마음으로 물으실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절대로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밝혀주고 인생의 맛을 내게하는 역할을 합니다.
전도서 12장 1절 말씀은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 결산의 날이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아주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늙어 갑니까 2절을 보세요.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했습니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다 희미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곤고함이 계속됩니다. 신경통이 좀 낫는 것 같으니까 두통이 생깁니다. 두통이 멎는가 했더니 치통이 생깁니다. 치통이 그치니까 요통이 생깁니다. 하루도 맑은 날이 없이 항상 찌뿌둥합니다.
늙어지면 건강하다해도 젊어서 감기든 것만 하다고 합니다.
“그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을 집에 비유 했는데 손발이 떨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진다”는 말은 사람이 힘쓰는 부분이 허리인데 허리가 구부러진다는 말입니다.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이므로 그칠 것이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치아를 맷돌질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늙어지면 이가 빠져서 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삼킬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창들로 내어다보는 자가 어두워진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우리 육체의 창인 눈을 말합니다. 창이 점점 어두워가는 것처럼 우리의 눈은 어느새 희미해져 갑니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볼 수가 없게 됩니다.
“길거리의 문들이 닫혀진다”고 했는데 이것은 우리의 듣는 귀를 말합니다. 귀가 들리지 않아 딴 대답을 하기가 일수이고 들리지 않으니 사람이 멍해 집니다.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라”는 말은 식욕이 떨어지게 되고 무엇을 먹을 때 우물우물 하다가 삼켜 버리고 맙니다.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밤중에 폭풍우가 일어나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그러나 사람이 늙어지면 잠이 없어서 새의 소리만 들어도 일어나게 됩니다. ‘바삭’하는 소리만 나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노인들입니다.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음악하는 여자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성대를 말합니다. 사람이 늙게 되면 그 목소리가 점점 낮아집니다. 젊어서는 성대에 탄력이 있어서 소리가 아름답고 기름지지만 늙어지면 성대에 탄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팽팽한 소리가 아니라 축 늘어진 소리가 납니다. 아무리 늙은 것을 나타내지 않으려 해서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의 주름살은 없이 매끈하게 할 수 있을른지 몰라도 목 부분이 늙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5절에서는 뭐랬어요.
“그런자들은 높은 것을 두려워 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젊어서는 무서운 것 없이 힘있게 일하던 사람도 늙어가면서 모험심이 없어지고 범사에 주저하고 소심해지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소위 노파심이 생깁니다. 높은 곳에 대한 공포증이 마음속에서부터 생기기 시작합니다. 뿐만아니라 ‘놀랄 것이라’고 했는데 길을 가다가도 계속 놀랍니다. 80이 넘으신 부모님은 60이나 된 자녀에게 뭐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애야, 길 조심하고 차조심해라” 하십니다. 늙어서 그럽니다.
그리고 “살구나무는 꽃이 필 것이라”고 했어요. 이것은 우리의 머리를 말합니다. 우리의 머리는 세월과 함께 어느새 살구나무가 하얗게 꽃이 피듯이 희어져 갑니다. 그러고 보니 제 머리도 어느새 살구나무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거울로 제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진리를 깨닫습니다. “왜 살구나무가 앞에 있는 것부터 꽃이 필까” 보고서 알라고.
메뚜기도 짐이 됩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집니다. 메뚜기도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원욕이 그칩니다. 그렇습니다. 식욕이 떨어집니다. 의욕이 없어집니다. 젊어서는 아무것도 아닌게 척척 해내던 일이 늙어지면 부담이 됩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기전에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이는 사람이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조만간 내 초상집, 내장례식장을 향해서 내 자녀들과 사랑하는 친구, 사랑하는 성도들이 나를 조문하기 위해 찾아 오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6절에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아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진다”고 했습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그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전도서 기자는 어떻게 결론을 맺습니까
우리의 삶이 마지막으로 붙잡아야 할 최후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12절 13절을 다같이 읽었으면 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젊음이 계속된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머지않아 여러분의 머리에도 살구나무 꽃이 피듯이 하얀 백발의 신호가 찾아올 것입니다. 똑같은 시간인데 20대엔 손수레를 끄는 것처럼 느리게 가는 것 같고, 40대에는 자동차를 타는 것처럼 달려갑니다. 60대가 되면 비행기를 가는 것처럼 날아갑니다.
제가 20대에 목사가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좀 나이가 들어보일까 하여 애썼습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 새크라멘토에서 집회를 인도하는데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 “멀리서 연로하신 몸을 이끄시고 이곳까지 오셨는데...”저는 아주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늙는 것 아닙니까.
바이올린의 마지막 현이 끊어지듯, 최후의 숨결이 끊어지는 순간이 다가옵니다. 주님께서 내게 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이 생명을 다시 불러 가시는 마지막 음성이 들려 올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다 돌아가야 합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너는 청년의 때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에 나는 아무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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