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꿈속의 전화벨

첨부 1


가끔 잠든 사이에 전화벨이 울릴 때가 있다.
막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엔 짜증도 나지만 겁도 난다.
밤늦게 걸려온 전화 중엔 안 좋은 소식도 있으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개는 잘못 걸려온 전화이거나 그리 급하지 않은 안부 전화, 또는 장난 전화인 경우가 많다.
장난 전화인 경우에도 나는 여간해선 짜증을 내지 않는다. 친절하게 응대하다가 적당히 끊어버리곤 한다.
내가 성인 군자에 버금가는 인격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추억 한 토막이 아직까지도 나의 꿈 속에서 가끔 전화벨을 울려대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기다리고 있던 1983년 가을 무렵이었다.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하루는 잔뜩 술에 취해 들어와 막 잠이 들려는 순간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친구는 잠에 빠져드는 내게 아무런 설명 없이 당장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처럼 술에 취했던지 전화기 건너편의 친구 음성은 약간 혀가 꼬부라진 채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몹시 술에 취했던 나는 귀찮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해 만나고 싶지 않다고 딱 잘라 거절하곤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이번엔 다른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 00인데, 지금 빨리 XX네 집으로 와. 간밤에 XX가 자살했대….”
나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간밤 그 친구는 자살을 하기에 앞서, 그래도 뭔가 미련이 남아 내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마지막 희망이었을지도 모르는 나는 잠시의 귀찮음 때문에 친구의 요청을 매몰차게 뿌리쳐버렸다. 나는 친구를 죽인 거나 다름없었다. 죽이지는 않았더라도 친구의 죽음을 방치한 것은 분명했다. 친구가 간 뒤, 나는 전화벨이 어느 때 울리건, 그게 잠결이건 꿈 속이건 가리지 않고 수화기를 든다.
행여 죽음을 앞두고 울먹이던 친구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하여….
/한수빈/여의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