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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가정 (창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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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House는 많으나 Home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즉 Family 부재 시대에 우리들이 살고 있다.

 오늘도 곳곳에는 고급 맨션에다, 고층 A.P.T.다, 연립주택이다, 개인 단독주택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많은 집들이 지어져가고 있다.

 그 많고 많은 집마다 다 행복할까

괴테는 "가정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자가 가장 행복하다"라고 했다.

 1,하나님이 세우신 기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은 가정과 교회이다.

 가정은 에덴동산보다도 좋은 곳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실 때마다 "좋았더라" "좋았더라"고 했지만 사람을 지었을 때에는 "심히 좋았더라"고 했었다.

 Adam 과 Eve가 처음 가정이었으며 심히 좋은 사건이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셨고 간섭하셨고 주례를 하셨기 때문이다/.

 이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은 곧 가정이다.

 여러분들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어떤 가정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집 속에 어떤 사람들이 결속되어 살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2,영적사역의 기초 여러분들이 영적인 사역을 더 잘 감당하실려면 가정의 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디모데전서3:1-7절에 보면 감독의 자격이 있다.

이는 교회의 감독을 맡을 사람이 지녀야할 자격을 열거하고 있다.

 거기에는 교회에관한 말을 없고 전부 가정에서 어떤 사람인가를 묻고 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가 제일 먼저 나온다.

4절에는 "집을 잘 다스리며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하는 자라야 할지며" 5절엔는 "사람이 자기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라고 되어 있다.

 이는 감독의 자격만 말하고 있는게 아니다.

12절에 집사의 자격을 말할 때에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지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벧전3;7절에도 "남편된 자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유업으로 함께 받을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무슨말인가 가정을 잘 다스려야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도는 탄원과 원망이 아니다.

기도의 본질은 감사와 찬송인 것이다.

 올바른 가정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일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3,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가정에서 진정한 만족과 평안과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패배자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어떻게 기독교적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1),집을 세울 터 예수님게서 어느날 집짓는 비유를 일러주신 적이 잇다.

한 사람은 반석위에 또 한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었다.

드디어 어느날 두 집이 완성을 보게 되었다.

 아마 이 두 집은 매우 비슷했으리라 믿는다.

문, 지붕, 집의 내부구조, Style...

그런데 어느날 두 집의 차이를 가름하는 중대 사건이 생겼다.

 폭풍우가 시작되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창수가 났다.

모래위에 세운 집이 와르르 무너졌다.

반석위에 세운집은 견고하게 그대로 있었다.

무었이 그 두 집의 차이었는가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자마다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그렇다.

무너져버린 그 집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인 말씀위에 세워진 집이 아니었다.

 대문이나 A.P.T.문에 교패를 붙였다고 다 그리스도인의 집은 아니다.

그 집의 식구가 다 구주를 연접하고 사는 가정이 그리스도의 가정이다.

 2),집을 버틸 기둥 예날 하나님의 집인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는 두개의 큰 기둥이 있었다.

야긴과 보아스라는 기둥이었다.

 기독교인의 집인 우리들의 집에도 두개의 기둥이 필요하다.

그 하나의 기둥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둥이고 또 하나님의 기둥은 숭종이라는 이름의 기둥이다.

 성경이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말할때마다 가르친 교훈이 있다.

"아내여 남편에게 순복하라. 남편이여 아내를 사랑하라' "부모여 자녀들을 사랑하라, 자녀들아 부모를 순복하라"

사랑과 순종의 두 기둥이 필요하다.

 어떤분이 이렇게 반문을 하신다.

왜 아내들만 자꾸 순복하라고 하시는가고 원망을 하신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것과 순복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쉬울가

여기의 사랑은 보통 사랑이 아니라 아카페의 사랑임을 아셔야한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과 같은 사랑으로 사랑을 해야한다.

 3),집에는 두개의 큰 창을 내자 창문이 없는 집은 감옥뿐이다.

큰 창문, 더 큰 창문, 아름다운 창문을 내자.

 창문을 내셨으면 그 창에는 꽉차게스리 "이해"라는 글을 쓰자.

또 하나님의 창에는 큰 글씨로 붉게 "용서"라고 쓰자.

 기독교적 가정이라면 이해와 용서가 있는 가정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고해서 거기에 완저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인들 중에 너무 완전주의를 원하다보니 웬만한 잘못은 아에 잘못으로도 잊정하지 않을려고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은 전혀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실수를 했을 때 정직하게 상대방을 향하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요서와 이해를 함께 가지고 살아야 한다.

 본래 Hebrew 말 중에 "이해"라는 말은 뭐냐하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사고한다" 라는 뜻이다.

 남편은 아내의 입장, 아내는 남편의 입장에서 부모는 자녀의 입장, 자녀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사는 가정!

서로 바꾸어 생각하는 이런 이해가 용서를 낳는다.

그리고 그 용서가 불멸의 행복을 만든다.

 4),이제는 지붕을 씨우자 지붕이 없는 집은 있을 수 없다.

지붕이 있어야 밖으로부터 오는 눈보라나 비람에서 우리들의 가정을 보호할 수 있다.

 지붕 때문에 우리들의가정은 아늑하고 행복한 피난처가 되는 것이다.

 그럼 이 지붕에는 무엇이라고 쓸까 이렇게 쓰자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 경건생활이 없는 가정은 시험을 감당할 수가 없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방법을 알고 있고 있고 또 철학과 기술을 습득했다할지라도 그 가정에 경건의 생활이 없으면 곧 모래위에 세운 집이되고 만다.

 5),이젠 대문을 달자 그 대문에는 "이욱과 함께"라는 글자를 크케 쓰자.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해졌다면 대문을 활짝 열고 이 기쁨을 이웃과 함께 하셔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이웃들이 여러분의 가정을 찾아와서 여러분 가정의 행복을 보고 그리워하면서 "아-예수 때문이군요"라고 감탄하면서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살아야한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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