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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부르심과 아브라함의 반응 (창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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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은 세 가지 행위로 구성된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 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족장에게 나타나신 행위 중에서 가장 먼 저 된 것으로(17:1; 18:1; 26:2, 24; 35:9; 48:3) 하나님께서 시내산과 성 막에서 나타나실 것을 예견하고 있다(출 3:2, 16; 16:10; 레 9:4). 이 구 절은 다음에 제시되는 약속의 주체가 초월적인 분임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둘째는 여호와께서 축복을 약속하신 것이다:'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베스터만은 이 가장 간단한 약속이 족장 이야기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 의 약속이 실현된 것은 그보다 훨씬 후대라고 간주했다. 이 절에서 소개 되는 세번째 행위는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주시고 시시때때로 축 복을 약속해주시는 것을 깨달았을 때, 즉시 단을 쌓았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벧엘, 헤브론, 그리고 모리아 산에서도 계속되었다(12:8; 13:18;22:9). 아브라함이 단을 쌓은 행위가 구체적으로 제사를 포함하는 것인지에 관해 학자들의 견해가 갈라지고 있다. 벤함은 22장의 예를 들면서 제사가 포함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야콥, 카주토, 베스터만 등은 아브라함이 단을 쌓은 것은 그가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언젠가는 그의 자손들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단을 쌓은 것으로 이해한다. 논자는 본문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언급이 없기 때문에 후자들의 견해를 따른다. 뿐만 아니라 족장 시대에는 단을 쌓는 초보적인 예배 행위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 음이나 그분을 신뢰하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충분했기 때문이다. 보다 발전적이고도 체계화된 제사 행위는 모세 시대로부터 강조되고 있다.

 < 8절 > 아브라함은 세겜을 떠나 벧엘의 동편 산으로 옮겼다. 벧엘은 루스라고 불 리우기도 했다(28:19). 이곳은 오늘날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17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베이틴 Beitin 으로 간주된다. 아이 Ai 는 베이틴에 서 약 2km 동쪽으로 떨어져 위치한 ㅇ-텔 Et-Tell 로 간주되고 있다. 고 대 가나안의 두 도시인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아브라함은 다시 여호와께 단을 쌓는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다는 구절의 의미에 대해 벤함은 정규적인 예배 형식에 맞추어 예배를 드 린 것으로 이해한다(4:26; 21:33; 26:25). 한편, 베스터만은 이 구절이 간단한 형식 하에 진행된 예배 중에 하나님께 말씀을 아뢰는 것이라고 이 해하면서, 단을 쌓는 예배 행위와 보완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 9절 >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원어적으로 볼 때, '점점 네겝으로 옮겨갔더 라' 라고 번역할 수 있다. 네겝은 '마른 땅' 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유다의 언덕들과 가데스 바네아 사이에 위치하는 지역이다. 그곳은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지역으로 기원전 이천년 경에는 인구들이 거의 없었던 지 역이다. 아울러 가나안의 남쪽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 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의 경계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알려준 다. 5절부터 9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의 북쪽 경 계 지역으로부터 남쪽 경계 지역까지 직접 걸었다. 그리고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면서 그분께 단을 쌓았다. 그리하여 상징적으로 그 땅을 차지했다.

 IV. 설교를 위한 메시지

1. 아브라함 이야기의 발단 부분이 되면서 또한 요약 부분이 되고 있는 이 본문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성품과 활동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이 본문의 바로 앞에서 아브람이 데라의 자손이요(11:26), 데라는 셈의 자손이며(11:10), 셈은 아담의 자손인 것을 읽게 된 독자들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다름 아닌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분께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셨다. 이러한 하 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행위에 대해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오 히려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일만이 우리가 할 일이다. 만물의 창조주 가 되시며, 자신의 주권에 따라 그의 백성을 택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 로 하여금 믿음의 여행을 떠나도록 명령하신다. 그리고는 그 명령에 순종 하는 자들을 전적으로 축복하신다. 12장 2절과 3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축 복은 오중적이다:(1)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2)네 이름을 창 대케 하리라; (3)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4)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 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 (5)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수천 년 전에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삶의 여행을 떠나도록 명령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그분의 주권 가운데서 하나님 의 또 다른 백성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 라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다양한 축복들을 제 공하신다. 인간 역사의 흐름 속에서 꾸준히 자신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축 복을 약속하시는 성실하신 하나님을 소개하는 일이 모든 설교자들의 책임 일 것이다.

 2. 본문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그리고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 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라는 그분의 궁극적인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 님의 말씀을 좇아갔고, 가야 할 최종 목적지도 모른 채 갔으며, 시시때때 로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면서 단을 쌓으면서 갔다. 비록 주위의 친척들 은 현실의 생활에 만족하여 안주하고자 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 을 받들어 힘든 여행길을 떠난 것이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순종의 모습은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된다. 수천 년 전에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향한 자신의 사랑과 은혜를 전 세계적으로 전 하는 주체들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신다. 하나님의 이러한 부르심 에 아브라함처럼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뿐만 아니 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준 행하며 살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시시때때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살 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부르심에 대해 긍정 적인 반응을 보이며 살아야 한다.

 3.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고,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지니고 있는 중차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진공상태에서 살도록 계획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 속에서 그들을 위하여 살게 되어 있다. 그 러므로 이미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한 자들은 이제 그 축복을 다른 이들에 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영적인 축복이든, 물질적인 축복이든 상관 없이 말이다. 이스라엘의 통일왕국 시대의 역사가 증거하는 바는 하나님 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축복을 다른 민족들에게 베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압제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멈추게 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 의 기독교회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물량적으로나 영적으로 크게 성장 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누리는 축복들을 우리의 가난한 백성들 이나 이웃 나라의 종족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을 때, 우리는 '복의 근원"으 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4. 7절에서 언급되는 '땅의 약속"을 포함한 하나님의 축복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부터 그 이후에 계속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온 인류에게도 간단 없이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다윗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름 을 존귀케 하실 것과(삼하 7:9) 그의 나라가 영원히 보전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삼하 7:16). 뿐만 아니라 시편 47편 9절은 열방의 백성들이 아브람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고, 이사야서 19장 24절은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런데 신약성서에 이르면 사도행전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을 언약의 자손들로 간주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 함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이 그들에게까지 이르게 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행3:25 ; 갈3: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 의 후손이 되고 그에게 약속된 모든 축복을 자신들에게 적용시키게 된 그 리스도인들은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본을 받아 살아야 한다(롬 4장). 특히 히브리서의 저자가 소개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한 모델로 하 여 살아야 한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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