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 (창 45:3-11, 고전 15:35-38, 눅 06:27-38)

첨부 1


지난 1월 26일과 27일 양일간,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는 아우슈비츠 해방 5 0주년을 맞아 〈죽음의 행진〉을 재현함으로써,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 인들이 가스실로 끌려가던, 그 때의 그 고통스러운 과거를 되새기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유대인들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 나님, 유태 어린이들을 학살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소서. 이곳을 만든 자들에 대해서도 자비를 베풀지 마시고, 이곳에서 학살을 저지른 자들을 용서 치 마소서.」 그 때 그 죽음의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도를 올리면서, 수용소에서 겪었던 악몽을 되새기며 몸을 떨었다고 합니다. 600만이 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고 하 니,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도 자기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를 구별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수용소에 끌려갔던 사람들은 영락없이 다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손톱만큼의 예외가 전혀없이 유대인들을 무조건 가스실로 집어넣어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들로서는, 그러한 기도를 올리고도 남음이 있는 일입니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고 고통스러운 과거 50년의 세월이었 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여, 제발 유대인 학살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아달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무 슨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유대 민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 했 으니, 그 억울함과 분통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어린이 들까지 모조리 무자비하게 학살을 했다고 하니, 그 비정함과 잔인함은 극에 달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악독해지기 시작하면 그 끝이 없는가 봅니다. 요셉의 형들이 또한 그러했습니다. 비록 배는 다르지만, 다같이 야곱을 친아버지로 하는 같은 형 제인데,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너무 몰인정했던 것입니다. 이상한 꿈 이야 기를 잘하는 요셉이 아무리 밉다손 치더라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들의 동생 을 우물에 빠뜨려 죽일 생각을 했을까요 다행히 네째형 유다가 꾀를 내어서 죽임을 면했지만, 결국 애굽 상인에게 팔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후 요셉은 몇번의 위기를 넘기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영광까지 누 리게 됩니다만, 그동안 요셉이 겪은 마음 고생이나 고독한 인생살이는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정든 고향과 부모로부터 강제로 이별당하고, 낯선 타국에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던 그의 삶은 참으로 슬프고 괴로운 나날 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느 사람같으면,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에 대한 원 한이 태산처럼 쌓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형들로 말미암아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그였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형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모두 사 그라뜨리고 말았습니다. 눅 6:36에서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이미 요셉은 실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요셉의 사랑의 실천이 창세기 50장 전체의 결론이자, 성경 66권의 중심 내용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하는 분들을 위하여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 해 드릴까 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위의 열번째까지 형들은 다른 어머니가 낳은 자식들이고, 자기와 동생 베냐민은 '라헬'이라고 하는 야곱의 두번째 부인이 낳은 자식들입니다. 야곱은 이 두번째 부인을 사랑 했고, 자연히 그 아들인 요셉을 다른 열 아들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자 위의 열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요셉은, 이상한 꿈을 꾼 다음에 형들에게 들려주는데, 그 꿈 이야기가 형들을 기분 나 쁘게 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을 치는 형들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게 됩니다. 그동안 벼르고 있던 형들이, 요셉이 나타나자 그를 죽이기로 모 의를 합니다. 그러나 르우벤이 말리고 유다가 말리는 바람에 죽음은 면하고 애굽 상인에게 팔려가는 신세가 됩니다.

몇 사람을 거쳐 요셉은 애굽 왕실의 경호실장인 보디발의 집 종이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요셉은 죽을 고비를 겪게 됩니다. 성실한 요셉이 보디발의 눈에 들어 그 집 총무가 되는 행운을 얻었으나,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철창 신세를 지고 죽을 날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 우심으로, 그는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는 기회를 얻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일약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 때 중동 지방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대단한 가뭄이었습니다. 애굽은 요셉의 지혜로 양식이 비축되어 있어서 염려가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 의 부모와 형제가 있는 유대 나라는 먹을 양식이 없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야만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갑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요셉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네 보통 사람 같으면,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요셉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께로부터 쓰임을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기 회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가 원수를 갚았더라면, 일순간은 승리의 쾌감을 누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곧 자기는 물론이요, 그의 가족 모두가 멸망하는 슬픔을 맛보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진정한 승 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형들을 용서함으로써, 그는 믿음의 승리를 하게 되었고, 그의 가족 모두를 살리는 대승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그렇게 함으로써 그동안 여러번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요셉을 건져내 주 시고, 지혜를 주셔서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물질을 드리는 것도 아니요, 교회 안에서 큰 소리를 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용서와 사랑의 삶, 곧 화목을 도모하는 일인 것입니다.

 1.우리는 마음이 옹졸해서 원수를 자꾸 맺고 미워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유대인의 입장이라면, 그와 같은 기도를 올렸을지 모릅니다.

아니 우리 민족도 일본에 의해서 그와 비슷한 수치와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라면 이(齒)를 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미움, 분쟁과 다툼도 나름대로 의 이유와 원인이 있습니다. 갑돌이 엄마가 을순이 엄마를 미워한다든지, 김 서방이 박서방을 싫어하는 것은, 괜스레 미워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 대면하는 것조차 싫어서 멀리서 그 사람을 발견하면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속 좁은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 내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6장 27절에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미 워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다면 몰라도 예 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 말씀이 믿는 자의 대강령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다른 형제를 비난하고 헐뜯는 다면, 그는 예수쟁이가 아니라 사탄의 자녀라 그 말입니다. 물론 저도 사탄의 자녀 노릇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믿음의 형제가 잘되는 것을 배아파하고, 안 되는 것을 좋아할 수가 있을까요 자기 자신에게 잘해 준다고 무조건 좋아하거 나 편든다든지, 자기 편이 아니라고 전후사정 살펴보지 않고 무조건 비난하는 것 또한, 바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물론 누구든지, 요셉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 기를 원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살지 못할까요 오늘의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그것은 ①거듭나지 못하고 썩을 몸을 지닌 채 살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15:38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하나님께서 원 하시는 뜻에 따라 그 사람에 합당한 새로운 몸을 주셔서 부활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썩어질 몸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되 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42).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고 또한 새 사람으로 거 듭나야, 썩어질 것을 위한 헛된 삶을 버리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참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썩어질 육신을 보전하기 위하여 애굽에 왔다가, 그들은 요 셉으로부터 육의 양식뿐만 아니라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게 됩니다. 곧 영원 히 사라지지 아니하는 '용서와 사랑'이라고 하는 큰 선물을 제공받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로부터 이 양식을 제공받아야 참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을텐데, 우리가 하나님께 썩어질 것을 구하고 있기 때문에 거듭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충성과 봉사와 헌신, 그리고 용서와 사 랑이라는 귀한 가치를 구할 수가 있고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건 만, 엉뚱하게도 명예를 구하고 권위 의식을 찾기 때문에, 미움과 다툼, 분열 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②그렇게 되면, 죄와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 결과,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결과, 죽이려는 음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리고 끝내 애굽 상인에게 자기들의 친동생을 팔아먹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그들의 마음이 편치 못했 것은 틀림 없습니다. 더군다나 애굽 의 국무총리가, 자기들이 팔아먹은 요셉인 줄 알았을 때에는 얼마나 불안했을 까요 사람이 잘못을 범하게 되면 말이 많아지는 법입니다. 자기 변명을 하기 위 하여 없는 말까지 지어내어서 떠벌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심중을 꿰뚫 어 보시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은 죄에 죄를 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 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37장 3절에서 「이 땅에 살며 진실을 소중히 간직하라」고 했 습니다. 진실은 떠들지 않아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 은 아무리 떠들어대도 소용이 없습니다. 거듭되는 자신의 거짓된 행동은 자 기 자신에게 불안과 걱정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 야곱이 죽자, 하지 않은 아버지의 유언을 요셉에 게 들려 줍니다. 「형들이 네게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이제는 형들의 허물을 너그러이 덮어 주어라」고 했다고 말입니다(50:17). 왜 그 말을 야곱이 요셉에 게 직접 하지 않고 형들에게 했을까요 이와 같이 금방 드러날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요셉의 형들입니다.

요셉은 이미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 형들을 용서하고 있 건만, 형들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된 행위로 말미암은 불안과 죄의식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살기 원하는 사람에게 부활의 몸을 허락하셨습니다.

썩어질 몸을 지닌 채 썩어질 것을 위하여 살다가, 썩어질 것 때문에 진 실한 삶을 살지 못하고 거짓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살 수 있 는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죽게 하고 다시 부활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부활의 삶이 없다면, 우리는 참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 입니다. 목사요 장로라고 하는 거룩한 이름과 모습을 지니고 있으나 부활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낱 벌레만도 못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흉칙한 미움, 더 끔찍한 거짓말을 함으로써, 하늘나라에 서 아주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말 이 벌레만도 못한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시사 썩지 아니할 새로운 몸을 입혀 주셨습니다. 바울 선생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한 대로, ㄱ.썩어질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42) ㄴ.병들고 죽어짐으로 욕된 존재가 되고 말 우리 몸이, 영광에 가득 찬 몸 이 될 것이며(43) ㄷ.죽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몸이 굳센 몸이 되고(43) ㄹ.지금은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의 몸이지만, 장차 신령한 몸을 입음으로써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44).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러한 부활의 몸을 입을 수 있을까요 ①원수를 사랑하며 그에게 선한 일을 베풀 때에, 상을 베푸시고 자녀삼으신 다고 했습니다.

물론 원수 사랑이 쉽지 않습니다. 우선 비난하고 헐뜯는 일부터 삼가야 합 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해롭게 하고 자랑인 양 떠드는 행위는 이제 그만합시다. 오히려 부끄럽 게 여겨야 합니다. 원수를 맺고 살면, 본인 자 신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서 미운 사람이 사라질 수 있도록 몸부림 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서 원수가 사라지고, 나를 해롭게 하는 자를 위하여 기 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 생기게 될 것입니 다.

②여호와의 이름만 들어도 기뻐하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의 소원은 잘 들 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어쩐지 좋고, 믿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 는, 그런 심정의 소유자를 말합니다. 목사와 장로, 또는 권사와 집사 할 것 없 이, 믿는 성도가 잘 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며, 교회가 발전하고 부 흥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목사나 다른 성도에게 뭘 더 주지 못해서 안달인, 그런 사랑의 소유자를 말합니다. 말씀을 들으면 귀와 눈 이 번쩍 뜨이고, 더러운 말을 듣거나 못된 짓을 보면 귀와 눈이 저절로 감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 속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고, 시편 37편의 기자는 4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거듭난 자입니다. 새롭 게 변화된 사랑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3.주님만을 굳게 믿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편 37편 1절에서 「못된 짓만 일삼는 자들이 잘 산다고 걱정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주님만을 굳게 믿고 바르게 살면, 그래서 진실을 소중하게 간 직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4).

나를 해꼬지하고 괴롭히는 사람을 정죄하거나 심판할 필요 없습니다. 주님 께서 어련히 아셔서 심판하시리라 믿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를 위하여 기 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상급이 크다고 했습니다. 미워하면서 기도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6장 36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사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그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①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화목을 도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옹졸한 마음을 갖게 되면, 크신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 오실 수가 없습니다. 어느 틈이든지 비집고 들어가 이간시키고 분열을 조장하 는 사탄의 세력이 그 좁은 마음을 파고들 것입니다.

누구 때문이든지간에 시련을 겪게 되면,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 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시련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기회 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넓은 마음으로 모든 형제를 받아들임으로써 화목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자기 자신이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②신령한 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썩어질 이 세상 것에 관심을 두면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자비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명예나 자존심을, 하나님 뜻보다 앞세우가 되면, 그는 어디 가든지 다툼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부질없는 것들입니 다. 영원한 것은 형제 사랑이요, 봉사요 헌신입니다. 형제를 위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마음의 여력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값진 인생의 초석이 됩 니다.

요셉이 형제에게 준 먹을 양식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양식이 형들의 마 음을 평안케 해 주지 못합니다. 정말 요셉이 형들에게 준 값진 선물은 용서와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은 받는 사람도 영광이지만, 베푸는 사람은 더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 크나큰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런 사랑의 소유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옹졸한 마음으 로 남의 흉이나 보고 헐뜯는 그런 비참한 인생이 아니라, 우리 모두 요셉처럼 넓고 자비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 진실로 멋있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