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의 열매-오래참음 (히 12:1-2)

첨부 1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특히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 한 신앙의 요소를 한가지 들라고 한다면은 그것은 아마도 인내일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라고 하는 사회의 구조자체가 너무나도 인내와는 거리가 먼 사회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요 이런 사회적인 구조는 우리 교회내에 침투되어져서 뿌리 를 깊숙히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 한가지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시대는 과학이 너무나도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들이 그 문제가 일어난 그 즉시에 처리되고 해결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할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면 주민등록초본이나 등본같은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이름과 생년월일만 일러주면 그것이 컴퓨터에 입력되고 그 즉시로 전산 처리되어서 나옵니다.

호적초본이나 등본도 복사를 하면 그 즉시에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옛날처럼 신청을 해서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기다리고 그 내용을 동서기나 시청서기 가 일일이 다시 베껴 쓸 필요가 없어진것입니다.

라면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라면이 나왔을때 그 인기가 어떠했습니까 5분안이면 끓여 먹던 라면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 맛도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뜨거운 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3분 이면 라면이 나오고 그것 도 부족해서 이제는 1분 라면이 나와서 마음만 먹으면 그 즉시에서 먹을수 있는 시대 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들 주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이 앞에서 말한 내용과 유사 하게 우리들에게 많은 편리함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모습들을 두고 우리는 참으로 살기좋은 스피드의 시대 ,인스탄트의 시대, 컴퓨터 시대를 살아간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한가지 문제점이 제기 됩니다.

특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이런 문제점은 더욱더 크게 접근해 오고 있습 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도 너무 조급하게 처리해 버릴려고 하는 경우가 농후해져 버렸습니다.

어떤일이 생기면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시간을 투자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병이 들면 당장 안수기도를 받아서라도 그 병에서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무 데나 가서 머리를 들여됩니다.

어떤 사업을 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봇물쏭아지듯 쏭아져서 당장에 큰 성공을 하기를 원합니다.그래서 소위 예언자들이라는 기독교 점장이들을 찾아갑니다.

공부를 하면 당장에 목표한 그 목표가 달성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 과연 이런 현상이 성경적이라고 볼수 있겠습니까 옳바른 신앙의 모습이라고 볼 수 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살아있는 말씀 생명의 말씀은 우리들이 인내할것을 요구하고 있습 니다.

약 2: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 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이외에도 성경 여러곳에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인내할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 다.

그런데 이런 성경의 요구앞에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성경이라는 거울을 통해 어떻게 비취어 집니까 앞에서 말씀드린데로 초 스피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우리 역시도 우리의 삶 의 모든 영역속에서 인내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경우는 친구를 대할때 , 아내를 대할때 ,남편을 대할때 , 자녀를 대할때 가정의 일을 할때 , 사회의 일을 할때 ,교회의 일을 할때 여러가지 일의 영역속에서 이런 모습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모습의 인내하지 못하는 삶에 대해 반성해야 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그리고 이런 잘못된 모습을 고쳐 나아가야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잘못된 모습을 교정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하면 오래참는 신앙의 사람이 되겠습니까

1. 모든 시간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시간 계획표에 따라서 일하고 계십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이런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때가 차매(갈4:4),때를 따라(마24:45),때가 이르매(갈6:9), 전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룰때가 있나니 하나님께서는 임기응변식으로 우연의 방법을 통해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 분은 정확하게 주어진 시간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시간의 일정을 포기하고 우리들 자신의 시간내에서 일하시도록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애씁니다.

하나님을 상대로해서 변명도하고 협상도하고 여러가지 약속도 하고 어떤 때는 협박도 합니다. 다 부질없는일입니다.

이제 10월 28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10월 28일을 기다리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어 떻습니까 세상의 종말은 분명 성부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입니다. 그런데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이런 절대적인 원칙을 깨뜨렸습니다.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가 9월 29일을 예수님의 재림의 날로 잡았던 서머나교회는 그날에 아무런 일도 없이 지나가 버리자 날을 잘못잡았다고 변명을 했고 10월 10일로 잡았던 하방익이라는 소년 선지자가 이끄는 디베랴선교교회의 경우도 그 날에 아무런 일도 벌 어지지 않자 결국에는 그 소년의 아버지가 일간 신문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과의 광 고를 내고 저들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주장들은 하나 둘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다 어디에서 나온 발상들입니까 인간의 시간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그 원칙을 깨고 하나님의 시간을 자기들의 이익 과 논리속으로 끄집어 들이자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게서 우리들에게 주신 시간속에서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사는것입니다.

그렇게 될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보시기에 가장 알맞은 시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 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두고 요셉의 경우를 두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요셉의 경우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때 바로의 술맡은 관원장과 떡맡은 관원 장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그 결과 떡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꿈 해석대로 사형을 당하고 술맡은 관원장은 석방이 되고 복권이 됩니다.

바로 이때 요셉은 석방되는 술맡은 관원장에게 부탁을 합니다.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참으로 간곡한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요셉이 인간의 방법으로 감옥에서의 시간을 단축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경우 요셉이 이런 인간의 방법으로 석방이 되었다면 과연 어떠한 앞날이 요셉이의 앞에 펼쳐졌겠습니까 물론 누명이야 벗어지겠지만 여전히 종의 신세는 면치못했을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속에서 펼쳐진 요셉이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이번에는 죄지은 바로의 신하가 아닌 그 나라의 최고 통치자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석방이 됨과 동시에 종이 아닌 전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대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인간의 방법 ! 그 결과는 잘되어야 고작 종의 신세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 ! 그 결과는 종이 아니라 애굽에 있는 종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과 고관 대작들을 다스리는 총리대신이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인내하고 오래참아야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때가 하나님의 시기가 우리들에게 펼쳐질것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들에게 주어진 상황속에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것 이 오래참는 비결입니다.

 이런 경우는 다윗의 경우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삼하 16장에 보면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도망을 하는 다윗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다윗에게 저주하고 돌을 던지고 티끌을 날렸습니다.

이때 다윗의 신하 아비새가 말하기를 "저 죽은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합니까 청 컨데 나로 건너가서 저놈의 머리를 베게하소서"라고 합니다.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그 말에 위로를 받고 신이나서 그렇게 하라고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가만두어라 하나님이 시키는지 누가 알겠느냐 "라고 하면 서 오히려 만류를 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하기 어려운 인내의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인내를 하게된 그 배경이 무엇입니까 다윗의 말대로 그런 상황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줄도 모른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경외심이었던 것입니다.

시험당함의 대명사인 욥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는 그의 전 재산과 10명의 자녀들을 다 잃었을때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 참으로 놀라운 인내의 모습입니다.

이런 인내의 모습 역시 하나님의 뜻에 그 모든 상황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내하는 성도들을 두고 약 5:11에서는 말씀하십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또 주께서 주 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

3. 이렇게 우리가 인내하기 위해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속에서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게 된 다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입니까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인내하 는 실천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딤후 3:16에서는 말씀하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의 힘으로 인내하지 못하는것 , 우리의 의지로 오래 참지 못하는것 우리의 능력으로 억누르지 못하는것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보다 더 쉽게 인내하는 삶에 접근을 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우리 인간들이 도저히 이룩할수 없는 경지의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속에서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신앙의 선조들이 우리보다도 더 어려운 상황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인내하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욥의 경우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최악의 경우에 처한 욥이 자녀를 잃고 , 재산을 잃고 , 건강을 잃고 , 아내와 친구들의 조롱과 멸시속에서 욥이 무슨말을 했습니까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히12:1-2은 또한 이 인내의 부분에 대해 더욱 더 확실하게 우리들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 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하시는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오직 인내함으로서 신앙생활을 했고 만왕의 왕이요 주이신 우리 예수님 역시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 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인내의 경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얼마나 참고 견디느냐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결국은 궁극적인 구원입니다.

마 24:13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온전히 참고 기다리는 중에 소망한 기쁨과 영생을 소유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참고 견디면 에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게 될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런 참된 도를 배우고 참는 은혜를 받아서 빛나는 모범된 생활을 영위해야 됩니다.

폴록이라는 시인은 어렸을때에 그 성미가 참으로 고약해서 화를 내기 시작하면 격한 감정에 빠져버려 그 누구도 말릴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15살 정도가 되었을때 그의 성격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놀라운 변화였 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을 주시해 오던 한 친구가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렀습니다.

그때에 폴록은 대답했습니다.

"나 스스로 성경을 읽어 나가는 동안 박해를 받으면서도 온화하고 침착했던 주님의 기 품에 놀라고 말았네. 나는 그때 부터 나의 성격을 억제하기로 결심했내 그 후에는 내 게는 화내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이 나를 흥분하도록 하지는 않았네." 성도 여러분 ! 오직 하나님의 말씀 살아서 움직이고 생명력이 있는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 리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도저히 인내할수 없는 우리를 인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 친구 목사가 부목사로 시무하는 교회에서 101일 성경 통독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길 래 제가 새벽 시간에 차를 타고 그 교회에 참석을 해 보았습니다. 주일 낮 예배시에 약 850명 출석하는 교인중에 약 300명 가량이 새벽시간 성경통독시간에 참석을 해서 약 45분 가량 주어진 범위의 성경을 열심히 통독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인상 깊은 장면이었습니다.그래서 제 친구 목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참석하는 인원이 처음 시작할때와 한달이 지난 지금과 얼마나 차이가 나느냐고 말입니다. 제 친구 목사가 어떤 대답을 했겠습니까 별로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 1독을 해야 되겠다는 집념이 그런 열심과 인내를 주었겠지만 만약에 그 새벽시간에 다른 소설책을 그런 방식으로 읽는다면 어떻겠느냐를 생각해 볼 때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는 인내의 신앙을 가지게끔하는 원동력이 된다 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 오래참음의 삶이라는 설교를 마치면서 저는 서정주라고하는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한편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 그것이 비록 단순한 식물이지만 그 꽃이 피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밟습니까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 먹구름속에서 천둥이 치고 ,아쉬움으로 가슴조이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내리는 과정이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이 피기까지 이런 과정이 필요할찐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고의 작품 , 온 천하보다도 더 귀한 우리 성도님들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케하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하겠습니까 그 과정은 우리들에게 인내를 요구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리할때 그 과정을 겪고 나올때 우리는 우리의 삶은 하나님보시기에 최고의 걸작품이 되어질것입니다.

아무쪼록 신앙안에서 오래참음으로 그 옛날 욥과 같이 요셉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것을 받아누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