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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것을 준비하신 하나님 (렘 2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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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즉 두려움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말하기를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시작하려면 결과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가 실패로 끝이 날 까봐 두려워 하게 됩니다. 두번째는 사람들은 환난을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오는 환난은 수 없이 많습니다. 질병으로 오는 환난이 있고 사고를 당하므로 또한 경제적으로 환난이 올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개인적인 환난 외에도 국가적으로 당할 수 있는 환난이 있는데 전쟁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늘 전쟁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 왔는데 지금도 전쟁의 두려움이 얼마나 크게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까 세번째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게 됩니다. 죽음은 사람하는 가족들과의 이별이요 죽음은 나의 인생의 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지금 길을 가다가도 불현듯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하고 싶을 전도로 불안한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수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이 없고 염려와 근심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어느 누구나 평안하고 늘 감사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미의 어는 노 부부가 은퇴를 하고 낙원과 같은 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계획을 세우고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이사를 한 곳은 남미의 아르헨티나 남쪽에 있는 포클랜드 섬이 였습니다. 아주 조용한고 낙원과 같은 곳이 였습니다. 그 노 부부는 그곳에 정착을 하여 전에 다니던 교회 목사님들에게 낙원과 같은 곳을 찾게 되여 이곳에서 평안한 여생을 마치려 합니다. 라는 글과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 지상과 같은 곳에서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전쟁을 일으키게 되였고 그 노 부부는 전쟁을 피하여 그곳을 떠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목사님께서 그 노 부부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라는 요14:27 말씀을 기록하여 보내 였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이 땅에서 평안하기를 원하고 모든 일이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찾으려는 평안은 사실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이 주는 평안과 만족은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들이 이 조선 땅을 떠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든지 호주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서 산다고 하여도 우리들에게는 늘 두려움이 따라 다닐 것이며 염려와 근심은 우리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 방대로 행하지 못하고 늘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바꾸는 간단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우리들의 두려움과 고통과 염려와 근심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증거로 요16:33을 보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평안을 얻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환난과 고통을 이기며 담대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례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것은 심판이나 재앙이 아니요 평안과 소망을 주시려 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 재앙을 준비하시고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 반대로 좋은 것을 준비하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 마음에 평안과 소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가장 좋은 것인 평안과 소망의 은사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우리들이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살아 갈 때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8:11절 말씀을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계획하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으로서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위하여 계획을 세워 놓게 계시는데 우리들에게 번영과 희망을 주시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으로 삽니까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정신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모하는 소망 중에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칼라일은 말하기를 “인간은 소망에 기초를 둔 존재이다. 내 소유를 다 빼앗긴다 할 지라도 나는 오직 희망만을 가지기를 원하다” 하였습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어도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사람이고 소망을 잃은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하여도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고 필요한 것이 바로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지난번 성지 순례에서 이스라엘을 보고 느낀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2천여동안 나라를 잃고 유랑 민족이 되어 살았고 또한 독일의 히틀러에서 600만망이 살해되었으며, 또한 스탈린에게도 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나라를 다시 세우고 지금도 많은 위험한 여건속에서도 당당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를 말씀을 드리자면 소망을 잃지 않고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도 모진 역경과 고난속에서도 민족의 혼을 지킨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울 것이며 이스라엘에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다스리는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는 소망하나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끈질기게 살아 온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에 가면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 기슭기에는 수 많은 유대인들의 무덤이 있는데 그 무덤하나를 쓰려면 2만달러 우리 나라 돈으로 천육백만원인데 자리가 없어서 무덤을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 많은 돈을 드려서 감람산 기슭기에 자신의 몸을 묻으려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그것은 메시야가 감람산에 임하실 때 자신들이 제일 먼저 부활하여 메시야를 만나겠다는 소망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진 민족은 위대한 민족이 되지만 소망을 잃은 민족은 수치스러운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김구 선생과 같은 분들은 이 나라의 독립을 소망하고 온 정열을 받쳐 독립을 위하여 싸웠지만 그러나 일제 말엽에는 많은 지식인들이 우리 나라는 영원히 독립이 되지 못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소망을 잃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의 앞잡이로 변하여 수치스러운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소망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1) 소망을 가진 사람은 역경을 이기는 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의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한다면 독일의 나치들이 유대인들을 잡아다가 수용소에 가두고 수 많은 사람들을 개스 실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유대인의 수용소 관찰 기록인 프랭크 박사의 저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 이라는 책에서 보면 수용소에 있는 사람을 이렇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쇠약해져서 금새 병에 걸리게 되고 독일인들은 이 쇠약한 사람을 먼저 개스 실로 보내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기 자신만 소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절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까지 용기를 주며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오는 고통스러운 역경을 이길 뿐만 아니라 절망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의 마음도 몸도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시련이 닥치고 역경이 있다고 하여도 마음에 늘 소망이 넘치고 평화를 얻고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놀라운 복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2) 소망을 가진 자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며 정결 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소망은 장래를 믿고 기다리는 것을 말하므로 우리는 장래에 하나님께로부터 상급이 있을 것을 믿고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장래의 징계의 뜻도 있는 것으로 우리들이 정결 되게 살지 못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책망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한달란트 받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어두운 밖으로 쫓겨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3) 소망은 우리들에게 오는 두려움의 공포를 몰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요14:1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하셨습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염려하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고 평안을 얻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소망을 가진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4) 소망을 가진 사람은 오래 참는 인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고 오래 참음으로 25년만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는 오래 참음으로 아들을 얻은 것입니다. 인내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중에 하나로 소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오는 은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래 참고 기다리고 더 많은 수고를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힘들다고 중단하지 마세요! 용기를 가지시고 소망을 가지세요 하나님께서 인내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히12:1-2을 보면 “인내로서 달려가며 믿음의 주요 또한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자!” 하였습니다. 인내로 달음질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내로 달음질하자 하였는데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완전군장을 등에 지고 철모를 쓰고 총을 메고 10키로 미터를 구보합니다. 그 달음질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없습니다. 금방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또한 흐르는 냇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인내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달리면 종점이 있습니다. 결국 골인 점에 들어온 나는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나도 할 수 있고 해낸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중단하면 안돼는 것입니다. 기도생활도 중단하면 안되고 우리가 십일조를 건축헌금을 드리며 주님께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을 중단해서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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