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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가 됩시다 (요 1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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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면적에 비해 자동차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이라고 합니다. 그 리고 세계에서 교통사고가 제일 많은 나라도 한국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주한 외국인이 한국에서 운전하는 법을 소개해 화제를 모은 일이 있었습니다(미국 자동차 잡지 오토모티브 뉴스특파원).

 첫째 파란불은 자동차 경주의 출발신호다. 파란불이 켜지는 순간 반드시 뒷차의 경적이 울릴 것이다. 그 전에 나가라.

둘째 차간거리는 1인치의 틈도 두지 말라. 그 틈을 메우지 않으면 뒷차가 매울 것이다.

셋째 시원하게 달릴려면 레미톤 차를 사서 타라. 모든 차가 길을 비켜줄 것이다.

넷째 모든 차선을 헤집고 다녀라. 주행차선만 골라서 다니면 앞으로 가기 어려울 것이다.

다섯째 차가 막힐 때마다 경적을 길게 울려라. 스트레스도 풀고, 건강에 좋을 것이다.

여섯째 손을 흔들어라. 마구 끼어들고도 손만 흔들면 된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까>..

 한마디로 우리의 자동차 문화를 비아냥댄 글이었습니다.

교육부는 금년 9월부터 유치원에서는 한해 40시간, 국민학교와 중학교는 20시간 이상 도로교통법과 경범죄 처벌법 등을 가르치도록 의무화했다고 합 니다.

그것은 잘못된 운전습관이나 비뚤어진 운전문화를 어려서부터 바로 가르치 자는 때늦은 발상인 것입니다.

누구에게엇 배우느냐, 어떻게 배우느냐,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그 사람 의 인격과 인생과 신앙이 결정되는 것이빈다.

훌륭한 스승에게서 바른 삶을 배우면 인격인이 됩니다. 위대한 스승에게서 참 도를 배우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잘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 끝을 보면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 리가 예수님의제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자가 될 수 있으며 제자가 할 일은 무엇인가를 본문 속에서 찾아보겠습니다.

 1. 제자는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7절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부부입니다. 그래서 '무촌'이라고도 합 니다. 그리고 부인을 [안사람]이라고 부릅니다.여기서 말하는 [안사람]이란 집 안에 있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사람, 그래서 언제나 함께 있는 사람,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4절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나와 함께 살자. 내 집에 들어와 살자, 나와 함께 일하자는 것입 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친구들 몇 사람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의 꽃을 피우느라 식사시간이 길어져 저녁 10세가 넘었습니다. 식사 후에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한잔씩 하기로 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집에 전화를 걸더니 부인이 몸살기가 있으니 빨리 약을 사오란다면 먼저 자 리를 떴습니다.그러자 3년 전에 부인이 세상을 떠난 친구가 "우리는 천천히 일어섭시다. 집에 가봐야 기다릴 사람도 없는데.."라며 천정을 바라보았습 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시한부 존재들입니다.

늘 언제나 기다려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가끔씩 지방집회를 마치고 돌아 오면 새벽 2시나 3시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집에 도착해 보면 아이 들은 잠에 골아떨어져 있지만 제 아내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밖에서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 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두번 세번 울려도 대답이 없자 섭섭 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기 혼자 잠을 자다니..." 그러나 만일 입장이 바뀌어 내가 기다렸다면 나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 [안에] 거하는 것이 부부입니다.

이 원리가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 거하면 '원하는대로 이루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바꾸면 예수 밖에 거하면 원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부림처도 안되고, 안간힘 써도 안되고, 발을 동동 굴러도 안되는 이유는 내가 예수안에 거하지 않고 예수 밖에 살기 때문인 것입니 다.

 우린 자칫 잘못하면 예수 안에 산다든지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을 부자유자 나, 속박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예수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안되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뜻을 이루려면 행복을 잡으려면 진실한 성공을 이루려면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5절을 보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2.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8절을 보면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 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의 비유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과실 을 맺지 않는 가지는 재해 버린다"고 했고, 4절에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 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했고, 8절에서는 "과실을 많이 맺어야 제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관상수가 있고, 유실수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관상수에게서 과실 을 찾지는 않습니다.그러나 유실수라면 당연히 과실이 있어야 합니다. 포도 나무는 과실을 맺는 유실수입니다.

탐스럽게 잘 익은 포도는 포도주의 원료가 되는가 하면 과실로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강조되고 있는 포도나무가 가지는 우리 그리스도인입니 다.

그리고 과실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당연한 본분을 의미합니다. 과실 은 나무의 결과이며 평가기준입니다.

포도가지가 제아무리 무성해도 과실이 없으면 포도나무 가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가지가 좋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영양공급이 중당됐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6절을 보면 "과실이 없으면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고 했습니다.

 나에겐 과실이 있습니까 일년동안 뭘했습니까 단 한 알의 과실도 맺지 못한 채 잎떨어진 앙상한 가지만으로 금년을 마무 리할 생각입니까 제자는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금년 봄 유치부에서 아이듬에게 호박씨를 나눠주면서 집에 가져다가 심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 머리통보다 더 큰 호박 한 덩이를 가져온 아이가 있었습 니다. 자기집 아파트앞에 심었더니 호박이 열렸다는 것이빈다.

1년 동안 교회를 들락거리면서 신앙생활하면서 호박 한덩어리도 맺지 못했 다면 그는 호박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제자는 열매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열매, 기도의 열매, 봉사의 열매, 성령의 열매들 가운데 다는 맺지 못했다 하더라도 몇가지는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매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3.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9절을 보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했고, 10절을 보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라히라"고 했습니 다.

예수님의 제자는 스승인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여러가지 면에서 사표가 됩니다.

예를 들면 청빈, 검소, 절제, 근면,관용,진실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본받 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희생과 사랑입 니다.

 만일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라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외면 한다면 그는 제자도 아니고,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한마 디로 자기를 희생하신 사랑입니다.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문법을 연구해 보면 명사의 종류가 여러가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명사,인칭대명사,추상명사 등 명사의 종류가 여러가지 입니다. 사랑은 추성명사도 아니고, 형용사도 아닙니다.

 사랑은 사건이며, 역사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뭔가를 골똘히 추상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 다. 사랑은 행동하고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사랑을 추상화하고, 형용사화하고, 소설화화고,드라마화 하고,작품화해버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은 죽어가는 자식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고 밤새 뜬눈으로 눈물을 쏟으 며 지켜보고 있는 어머니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로 죽어가는 인간을 멀고 먼 하늘에서 지켜보며 관조하 고, 사색하고, 명상한 하나님의 명상록이 아닙니다.

친히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매맞고, 찢기고,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몸으로 고난의 사건인 것입니다.

 제자는 그 사랑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신장기능이 약화돼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찰결과 건강한 사람의 신장을 이식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문제 는 누가 신장을 기증하느냐였습니다.

 어느 주일날 임시로 강단을 맡아 설교를 하게된 유명한 목사님이 전후사정 을 설명한 후 아무래도 교인들 가운데서 신장기증자가 나와야 될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기증자의 조건을 이야기한 후 고통받는 주의 종을 위 해 신장을 기증할 뜻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잠시후 여 기저기서 두 손을 들기 시작하더니 거기 모인 천여명이 거의다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설교를 맡은 목사님은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신장은 한 사람의 것이 면 되기 때문에 손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이처럼 주의 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 놀랐습니다.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사람을 지적하겠습니다"라며 오리털 하나를 꺼내 입으로 불었습니다.

"이 오리털이 머리 위에 내려앉은 사람을 선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의 뜻을 기다리기 위해 조용히 기도하며 기다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드 디더 오리털이 강단을 떠나 회중석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오리털이 가까이 날아오면 사방에서 주여, 할렐 루야, 아멘 소리가 입바람에 섞여 나오고 그와 동시 오리털은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오리털은 그 누구 머리 위에도 내려앉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을 위해 신장을 바칠 사람을 결정하는 오리털이 내 머리 위로 날 아오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제자는 주님의 사랑을 배우고,따르고,실천해야 합니다. 제자가 지킬 게명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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