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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일치와 선교 (요 17:9-13, 롬 12: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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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번에 종교개혁 제 477주년을 맞아하면서 "교회갱신실천 결 의"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뜻 있는 사건이고 우리 향린교 회의 역사는 물론 한국교회사에 기록될 일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 다. 이것은 갱신위원들의 헌신적 수고 없이는 실현되지 못했을 것입니 다.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를 우리 교우들은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 다. 작년의 선언은 교회갱신에 대한 원칙적인 선언이었고 금년의 선언 은 실천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교회갱신실천 결의도 대외적으로 널리 알렸습니다. 이 렇게 한 데에는 우리가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고 다만 안으로 우리 자신이 교회갱신을 실천할 것을 스스로 에게 다 짐하는 동시에 밖으로 그리스도 안의 지체들인 다른 교회들과 그리스도 인들에게 이 일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는 동기에서였습니다.

이 선언에 대한 반응에 대하여 지난 주 설교때에도 조금 소개했습니 다만, 지난 한 주간 동안 다른 교계신문들이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 도하였습니다. 한 교계 주간신문은 오늘 날짜의 신문에서 그 실천결의 의 내용을 그대로 다 게제하면서 이렇게 평했습니다:"지난해 신앙고백 선언 및 교회갱신 제안을 발표해 한국교회 개혁의 길잡이 역할을 한 바 있는 향린교회(담임목사 홍근수)가 또다시 교회갱 신 실천결의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주1) 향린교회가 "한국교회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평가는 다소 과찬이 라 생각합니다만, 우리 교회가 그동안 관심해 온 교회갱신실천 결의가 이렇게 큰 평가를 받았습니다만, 이것은 작년의 선언이 그러하듯이 완 전한 것도 아니고 우리 교우들의 모든 뜻을 다 담는 것이 될 수도 없었 음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 선언들이 어떤 교우에게는 과격하고 비 현실적인 것으로, 또 어떤 교우에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 하고 진부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이 결의를 채택하는 과 정에서 나타났기에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갱신실천 결의가 채택된 후 갱신위원들 가운데, 또 청년신도회들 가운데 이번 교회갱신 실천 결의의 수준이나 채택절차에 있어서 불만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이 미 교우들 가운데 알려진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교우들이 이 사실을 익 히 알고 계시리라 짐작합니다. 지난주의 '청년공동체'(청년신도회 주간 지)는 그 시평에서 교회갱신에 대하여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피력했습니다:"지난 주의 실천 방안에서는 목회위원회(설치)를 제외한 장로 임기 제와 목회자 임기제가 연구과제로 돌려지고 말았다......이 교회갱신 실천결의가 우리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향해 동참을 촉구하는 선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장로 임기제와 목회자 임기제의 실시는 지금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푸는 핵심적인 내용이므로 꼭 교회 갱신 실천 결의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지난 주의 공동의회에서는 목회자 임기 제 외에도 공청회때는 별 반대가 제기되지 않았던 장로 임기제 마저 실 시를 연기하자는 당회의 실천방안이 상정되었는데, 공동의회 자리에서 는 당회에서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청년신도들의 아쉬움과 실망은 이번 교회갱신실천 결의에 장로와 목 회자의 임기제, 특히 장로의 임기제 실시가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었 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한국교회의 현 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 대 응에 대한 방법론의 차이의 반영일 뿐 다른 것이 아니라는것, 당회는 당회 나름대로 이 문제를 한국교회의 현실과 우리 교회 교우들의 다양 한 구성과 다양한 의견들을 다각적으로 고려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여, 문제를 은혜롭게, 또 중재적으로 생각하여 최선의 결정을 하였다고 생 각합니다. 이번 갱신실천 결의에 장로 임기제나 목회자 임기제가 유보 된 것은 결코 우리 교우들 가운데, 또는 장로님 가운데 보수적이거나 갱신을 반대하는 분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아실 것으로 믿 습니다. 또 교회의 총화와 일치를 관심하는 당회의 입장도 이해해 주시 리라 믿고 또 기대합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번 갱신실천 결의는 오늘의 우리 향린교회 교 우들이 다 같이 합의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향린 공동체를 하나로 세우고 오늘의 시대에 우리 교회에게 부여된 선교적 사명을 다하자는 충정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고 생각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인식할 것은 앞에서 교계신 문의 평을 소개했습니다만, 우리의 기대에 차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선 언은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과 제로 남겨놓은 문제들은 때가 성숙되어 적기라고 판단될 때 우리가 다 시 제안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제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는 갱신실천 결의에 포함되어 있는 제안들 가운데 아직 우리가 실천에 옮기지 않고 있는 것들을 조속한 시일 내에, 그리고 충실히 실천에 옮기는 일입니 다.우리는 이 일에 한 마음이 되고 우리의 기도와 결의와 잠재력을 총 동원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가 선언한 갱신실 천 사항들은 지금 우리 교회의 역량으로는 벅찬 것이라 하지 않을수 없 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언한 것은 조속히, 그리고 성실히 실천에 옮 겨야 할 것입니다.

차제에 제가 언급하고 지나가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이번에 교회의 갱신의 실천에 관해서 선언을 했습니다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 는 사회개혁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우리 교회의 갱신실천 결의를 게제한 그 교계신문은 그것과 나란히 "사회개혁 교회가 책임지 자"는 기사를 역시 보도했습니다. 그 기사의 내용은 보수적인 교회연합 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임옥 목사)"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한국사회의 도덕적 위기와 교회의 책임", "현 사회적 위기와 사회 경 제적 원인과 대책"등의 강연이 있었다는 것을 보도하였습니다. 우리는 민족의 구원을 관심하여 분단민족의 화해와 통일과 평화를 위해 교회적 으로는 통일공화국헌법(초안)을 발표한 바 있고 또 이 일을 위해서 교 우들 각자가 여러가지 모양으로 활동을 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 사회변혁을 위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을 교회로서 하지 못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한 지역교회의 역량으로는 교회개혁 에 관한 모든 문제를 관심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더구나 사회개혁에 대 한 모든 문제를 관심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을 우리가 당연히 수행해야 하는 문제라고 믿지만, 우리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량의 한계를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것들도 착수하지 못 한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향린교회 창립 40주년 기념교회인 강 남향린에서는 농어촌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이것이 신문에 널리 알 려졌습니다. 우리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것은 곧 우리 향린이 하는 선교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인정해야 할 일은 우리가 교회갱신과 사회갱신을 관 심함에 있어서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모든 갱신과 선교를 관심하고 수행해야 하는 주체인 우리 교회의 총화와 일치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 회의 총화와 일치없이 교회개혁이나 사회개혁이나 선교는 어렵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하나로 든든히 서고 그 다음에 남을 세우는 일, 곧 선 교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상식이라 할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가 되지 못하면 교회공동체는 부재하게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합니 다. 그러나 교회의 총화와 일치는 그런한 상식적인 이유로 요청되는 것 이라기 보다 더 깊은 교회론적 신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또 이것은 예 수님의 계명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본문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에 그의 제자들을 위해 드린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그가 떠나간 후에 이 세상에 남아 있을 그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고 일 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을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는 부분입니 다. 우리는 교회의 일체성에 대햐여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일 체성은 사실은 교회가 교회 되는 근본적인 요소중 한가지입니다. 금세 기의 순교자 독일의 본훼퍼는 "우리는 진정으로 한 교회가 되어야 한 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주2)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는 교파의 차이 에 불구하고 모두 한 하느님의 교회라는 의미에서 물론 교회는 하나이 고 일체라는 것을 우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교회 의 일체성과 일치성은 더 근본적으로는 개 교회공동체가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 없이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세계적 공교회됨과 하나됨은 바로 이 개 교회의 일치에 근거하 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총화와 일치성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사실을 교회가 세상에 증언하는 메시지가 되고 선교의 내용이 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가 되어 그것을 세상에 보이는 것은 세상도 이렇게 하나의 인간 공동체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있는 산 위에 세운 동네라는 말의 적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중국인 신학자는 오 늘 요한복음의 본문을 고찰하면서 교회의 일체성의 선교적 중요성에 관 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르쳐서 세상 믹 사람들을 구원(win)할 수 있기 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우리(Christian fold)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를 그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주님이 이 지 상에서 짧게나마 체류(sojourn)한 의의는 많은 다른 것들 중에 친교의 지고(supreme)한 가치와 필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것이었다고 생 각된다. 그의 제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는 그들 개인적 성공이나 개인적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제자)집단의 일치와 사랑을 위한 것이었다. 교회는 사랑과 일치는 진정으로 기독교 교회의 두개의 모퉁 이 돌들이다. 교회는 친교에서 부터 자랐다. 교회는 사랑으로 지속되어 왔다."주3) 그러나 교회의 일치성은 부단히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위험은 외부 에서도 올 수 있고 내부에서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것을 최근 우리 교회의 역사에서 우리가 뼈저리게, 아프게 직접 경험한 바 있지 않습니까 호주의 챨스 링마(Charles Ringma)는 교회의 일치에 관련하여 매우 중대한 경고의 말을 했습니다:"기독교의 친교를 파괴하는 것은 세계도 악마도 아니고 바로 우리들이다. 교회친교를 무너지게 하는 한가지 길 을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비전과 세계에서의 우리의 과제를 보지 못 하게 하는 자아영상(self-reflective)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섬기는 손을 열고서 붙잡고 있어 야지, 우리가 손을 아문채 있으므로서 우리가 붙잡고 있으려는 바로 그 것을 결국 놓치게 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주4) 교회의 친교와 일치가 손상될 위험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온다기 보 다 우리 내부에서 자신의 입장을 절대화하고 폐쇄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데에서 올 수 있다는 것을 챨스 링마의 경고를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 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고정관념이나 집념 때문에 그리스도 비전을 가리우거나 우리 공동체의 존재의 기반 그 자 체를 위험케 하는 일이 없는가 부단히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의 친교 공동체입니 다. 이 성도들의 친교는 다른 어떤 것으로 손상이 갈 수 없습니다. 이 번 교회갱신실천 결의문 채택 과정에서 행여나 우리 교회 공동체의 총 화와 일치에 손상이 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향린교회가 전 제적으로 지켜야 할 중요한 사실이라는 데 대햐여 우리 교우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주1) 복음신문. 11월 6일(일요일), 14면. "향린교회 교회갱신 실천 결의." "편집자 주." 주2) Dietrich Bonhoeffer. No Rusty Swords.

주3) Timothy T. Lew. The Student World, XX. 105(The Speakers Bible, John 2, 145에서 중인).

주4) Charles Ringma. "Destroying the fellowship"(July 21) in Seize the Day with Dietrich Bonhoeffer (An Albatross Book,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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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듣고 응답하는 교우의 기도 주님! 오늘도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십자 가를 높이 세워갑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 자처하기에는 너무 많은 상처를 싸메고 신음하는 오류들을 고백하오니 주님 무서 운 불효령으로 진노하시며 곳곳마다 새로이 오시옵소서.

노란 머리 푸른 눈 낯선 모습이 아니고, 구린 빛 낯익은 이 민족의 얼굴로 온 누리에 새롭게 오셔서 아픈 상처 말끔히 씻고 낡은 옷깃 활활 털고 거듭거듭 새로 나게 하시옵소서 나의 믿음만이 온전하다는 교만, 나 혼자 주님을 독차지하려는 탐욕, 나의 손길이 바로 선행이라는 독선, 가슴 에이는 이웃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눈 어두운 무관심을 용서하시옵소서.

이제는 이웃교회들과 더불어 화해와 통일을 향하여 어깨 걸고 나아가되 향린 안에서 하나이기를 갈망하는 저희 결단이 좋은 계절 알차게 익어 가는 실과처럼 달디단 주님의 향기 물씬 풍기는 사랑의 열매로 익어가도록 축복하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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