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섬김의 생활화 (막 10:35-45)

첨부 1


88올림픽 때에 3만여 명의 자원 봉사자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올림픽 준비 위원장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사 람에게 일을 맡겨야 자율적인 기초 위에 올림픽이 치러질 수 있다 고 했습니다. 이런 원리를 두고 자원 봉사자를 찾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큰 국가적인 일을 자원 봉사자들에게 맡길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 한 반대를 무시하고 처음에 계획했던 원칙대로 추진했는데, 12만 명이 자원 봉사자로 나섰다고 합니다. 3만 명을 모집했는데 1 2만 명이 왔으니, 한국은 봉사하기도 힘든 나라입니다. 많은 봉 사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한국 사람의 좋은 정신을 말해 주는 것 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외적으로 표출함으로써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은 섬기는 생활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시간이든 지 물질이든지 힘이든지 재능이든지 기술이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자기 가족을 위해서 쓰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이 섬기는 것을별로 좋아하지 않고 섬김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성 경은 섬김을 받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실상 섬김을 늘 받고 사는 사 람은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밤이나 낮이나 계속적으로 섬김을 받는 사 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아기들입니다. 아기들은 늘 어른이 섬겨 주어야 합니다. 엄마의 섬김을 받습니다. 언니가 섬겨 주어야 합 니다. 할머니가 섬겨 주어야 합니다. 항상 섬겨 주어야 합니다.

이 아이들은 꼼짝 못합니다. 날마다 드러누워서 먹여 달라, 입 혀 달라, 기저귀 갈아 달라, 자다가 깨서까지도 어머니 아버지의 섬김을 받습니다. 이렇게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섬김을 받으려 고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들은 섬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섬김은 위대한 것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 고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입니다. 섬기기 시작하면, 그것은 벌써 성숙하 다는 표시가 됩니다. 마가복음 10장 42절에 집권자들이 나 오는데, 이들은 섬김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바깥 사회에서 언제나 나를 섬기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데리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섬겨 주 는가를 기준으로 해서 그 사람의 위대함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정 말로 위대한 사람은, 자기를 섬기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데리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기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 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마가복음 10장 4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

참으로 이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많이 섬기는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사업가가 됩니까? 많 은 손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아이언 사이드라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무디 목사님의 후 임자였습니다. 그 분이 어렸을 때 구둣방에 나가서 구두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구두를 만들 때, 가죽을 잘라서 물에 담갔다가 꺼내서 바짝 마른 다음 두들긴 후 탄탄하게 해서 구두창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가죽에 물이 다 마르거든 두들기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오래 기다리기 귀찮아서 젖은 가 죽으로 구두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얼마 안 있어서 손님들이 그 구두를 가지고 와서 불평을 한답니다. 그러면 구두를 다시 만들어 주어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언 사이드 목사님이 일할 때에 주인이 와서 이런 말 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구두 한 켤레를 팔아서 50센트나 75센트를 받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네. 나는 손님들에게 얼마나 충성하고 그들을 섬겼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께 보상을 받으려고 일하는 것이지.

 우리 교우 가운데에도 양복을 만드는 집사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 분이 쓴 간증을 읽고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손님 의 옷을 맞추면서 예수님의 옷을 맞추듯이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를 믿어서 예수님의 섬김의 태도를 배운 사람과 안 배운 사람은 다릅니다. 손님이 들어올 때 돈 벌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과 예수 님이 오신 것처럼 섬기는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 있습니까?

섬긴다는 것은 신앙인들에게 위대한 일입니다. 당신은 오늘까지 섬 김을 받으면서 살아 왔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살아 왔습니까? 미국에서 여러 해 살면서 미국 사람들이 왜 사업을 잘하나 보았더니, 그들은 섬기는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씨어즈라 는 회사는 손님이 물건을 사서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바꿔 줍니 다. 왜 바꿔 달라는지 물어 보지도 않습니다.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바꿔 주고, 싫다면 돈으로 돌려 줍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 게 장사가 되냐고 물으니, 안 되는 것 같아도 지난 100년 동 안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장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섬기는 태도입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갈 때 시장에 가서 물건을 하나 샀는데, 저는 마음이 약해서 깎지를 못하고 그냥 부르는 대로 주고 샀습니다.

물건을 사고 돌아서는데 저 병신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깎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다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 에 가니까 정반대의 섬기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최근에 저희 집에서 보험 든 것을 써야 될 일이 생겼습니다. 그 래서 국제 전화를 미국에 있는 집에다 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보험회사 사람들이 달려와서 사정을 전부 알아보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그 회사 직원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걱정하지 마십 시오. 저희가 전부 돌봐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해 드리면 좋겠습니 까? 말씀하시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손님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섬기는 자의 태도냐 권 력자의 태도냐에 따라서 손님이 받는 인상이 많이 좌우됩니다. 사 업을 성공시키는 사람들은 손님에게 만족을 주고 손님을 지극히 섬 겨 주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만족한 손님들이 어디 가겠습 니까?

그래서 제가 그 보험회사에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돌보아주겠다고 하니 참 감사하 군요. 당신의 전화 목소리까지도 나에게 포근함을 주고 나를 안심 시켜 줍니다. 당신의 회사는 참 좋은 회사인 것 같습니다.

이런 편지를 받으면 그쪽에서도 더 잘해 주지 않겠습니까? 서로가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섬겨 주는 사람에게 악수는 못해 줘도 멀리서 편지로라도 섬김의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합니 다. 서로간에 섬기는 모습은 위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섬김은 위대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섬김을 받고 통치를 하는 것보다는 섬기는 자가 더 위대한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왜 섬긴다라는 단어를 썼느냐 하면, 종이라는 단어를 쓰면 기분 나쁘게 생각할까봐서입니다. 우리는 종이라는 말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격이 떨어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섬긴다는 단어가 바로 종이라는 단어입니다. 종이 얼마나 좋은 건지 성경을 보십 시오. 성경은 종이라는 단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세를 보 고도 종이라고 했고, 사무엘 보고도 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마가복음 10장에 서 내가 섬기러 왔노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내가 종이 되러 왔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종을 싫어합니다. 무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앉아서 섬김을 받는 사람들을 위대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그 사람을 위대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다른 점입니다. 이 나라가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이하 모든 관리와 모든 지도자와 모든 국민들이 섬기는 멋을 알고 생 활한다면, 이 나라는 굉장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참으로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신문을 보면서 속상해 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정치계를 보면서 속상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국민의 어려움과 국민의 슬 픔과 이 모든 혼란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들의 이기적인 권력욕 만을 내세우려 하기 때문 아닙니까? 무엇을 위한 정치이고 누구를 섬기는 정치인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살면서도 마치 국민이 자신들을 섬겨야 하는 것처럼 하니까 속이 상하는 것 입니다.

섬기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도 섬기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고 내가 무엇 이 필요한지를 알고 거기에 맞게 섬겨 주는 사람은 또 한번 만나 고 싶습니다. 맨날 목을 곧게 하고 섬기라고 하는 사람은 사람들 이 피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제가 어느 장관 한 분을 만났는데, 그 분에게서 기꺼이 섬기려는 모습을 보고 이런 사람이니까 장관까지 되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 니다. 섬기는 것은 참 위대한 것입니다.

 섬김은 고상한 삶의 목적 예수께서는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삶의 목표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목표가 그러할진대, 그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고상 한 삶의 목표가 되겠습니까! 사업을 해도 손님을 잘 섬기고, 선 생님을 해도 학생들을 잘 섬기고, 다른 어떤 일을 해도 섬기는 태도로 한다면 아마 좋은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는 데는 끝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찾아서 할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만 없으면 말입니다. 많은 사 람들이 왜 선행을 하지 않습니까? 선행을 한 번 했다가도 누가 칭찬을 해 주지 않으면 낙심해 버립니다.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선(善)이,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섬김이 나타나겠습니까? 섬김은 고상한 삶의 목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섬겨야 합니까? 갈라디아서(5:13)를 보니까 서 로서로 섬기라고 했습니다. 한쪽만 계속 섬기면 피곤합니다. 서로 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저녁에 제 아내에게 이리 좀 와서 앉으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하길래 일단 앉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와서는 발을 담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왜 이러느냐 고 해서 발을 씻어 줄 테니까 기분이 어떤지를 좀 경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저 혼자 발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람의 지체 중에서 발이 제일 피곤합니다. 손이 일하지 않을 때 에도 발은 일해야 합니다. 입이 일하지 않을 때에도 발은 일해야 합니다. 발은 하루 종일 일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얼굴이나 귀를 씻어 주지 않고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저는 여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수고하고 제일 고통당하면서도 제일 인 정받지 못하는 것이 발입니다. 발에다가 로숀 발라 주는 사람 보 았습니까? 그 발을 예수께서 씻어 주셨던 것입니다. 피곤할 때는 발을 만져만 줘도 좋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처음으로 그렇게 해 보았는데, 다 씻어 주고 나서 기분이 어떠냐고 하니까 발을 만져만 줘도 기분이 좋은데 씻어 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가끔 좀 이렇게 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습 니다.

 동양적인 사고 방식에 의하면, 남자는 절대로 섬기면 안 되게 되 어 있습니다. 남자들은 섬김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데 예수님은 서로 섬기라고 했습니다. 남자도 섬겨야 합니다. 대 부분의 남편들이 안락의자에 앉아서 여보, 신문 가져와라고 하 는데, 신문은 남편이 직접 가져올 수 있지 않습니까? 꼭 앉아서 가져오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남편들이 부엌에 들어가서 설거지를 해 준 적이 있습니까?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합니다.

제가 결혼을 해서 미국 들어가기 전에 처가에서 며칠 지낸 적이 있는데, 마당을 쓸려고 부엌에 빗자루를 가지러 들어갔다가 제 장 모님께 혼이 났습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남자가 들어오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빗자루를 내어 주셨습니다. 요즘은 부엌 구조가 달라졌으니까 남자들도 부 엌에 들어가서 얼마든지 설거지를 할 수가 있습니다. 남자는 설거 지를 못한다는 법칙이 어디 있습니까? 남자도 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이 놀랄 정도로 한번 섬겨 보십시오. 오빠가 동생을 섬기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오빠이기 때문에 여동생의 섬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타당합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늘 섬김을 받는 사람은 아이들입니다. 어 른은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엔 여자들만 어른이지 남자 는 어른이 희소합니다. 언니이기 때문에 동생의 섬김을 꼭 받아야 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한국의 전통인지는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서로서로 섬기라고 했습 니다. 믿는 우리는 남자들도, 어른들도, 아이들도, 오빠도, 언 니도 섬기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기는 모습도 반드시 보여야 합니다. 서로서로 섬기는 은혜가 우리들 가 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섬김의 보상 첫째로, 자신에게 섬김의 기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4절에, 내가 주(主)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는 말씀이 있씁니다. 서로서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하면 행복해진다고 했습니다(17절). 섬기는 사람은 섬 김의 기쁨을 압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 주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이야말로 예수 님을 닮는 길이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지, 누가 알아 주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골로새서에서도 사도 바울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고 권면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섬기듯이 자기의 가족도 섬기고 이웃도 섬기려 할 때, 거 기에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전에 어느 집사님 댁에서 많은 성가대원을 대접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대접하느라 얼마나 수고하셨겠습니까? 또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렸겠습니까? 섬김의 위대함을 인식하지 못하면, 어떤 때는 섬기는 것 때문에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섬기는 사람을 볼 때마다 기도합니다.

주님, 이 가정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는데 이 가 정에 섬김의 기쁨을 주옵소서.

자기의 몸도, 마음도, 시간도, 재주도, 재물도 남을 섬기는 마 음으로 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기쁨을 맛봅니다. 그리 고 섬김의 기쁨은 행복을 안겨 줍니다.

 둘째로, 자기 만족이 있습니다.

자진해서 선을 행했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어떤 의무 때문이 아 니고 내가 원해서 남을 도와주었을 때에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섬기는 마음으로 일한 사람들에게는 자기 만족이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인정(認定)을 받게 됩니다. 어느 젊은 피아니스트가 오랫동안 훈련받고 연습을 한 끝에 드디어 음악계에 데뷰하는 콘서 트를 갖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왔고, 젊은이는 열심히 피아 노를 쳤습니다. 다 끝나고 나니까 사람들이 기립 박수를 하고 고 함을 지르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객석에 있는 어느 나이 많은 할 아버지 한 분은 다른 사람이 다 일어나는데도 그대로 앉아 있었습 니다.

무대 뒤로 들어가니까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 니다. 이때 이 젊은 피아니스트가 말하기를 저는 잘한 게 아닙 니다. 저는 실패했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일어나지 않은 그 할아버지가 제 선생님입니다라고 대답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칭찬하고 잘한다 고 해도 그 선생님이 칭찬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교회에서 봉사하며 생활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너는 그동안에 참 수고했다. 이웃을 섬기고 나를 섬기고 가족을 섬기느라고 애 많이 썼다 하는 주님의 말을 들 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섬기는 생활을 한 사람들은 성숙 해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상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섬김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각 집마다 섬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빠는 엄마를 섬기고, 엄 마는 아빠를 섬기고, 아이들은 부모를 섬기고, 부모는 자식을 섬 겨야 합니다. 서로간에 섬길 때에 섬기면 행복하게 된다는 예 수님의 말씀대로 가정에 행복이 깃들게 됩니다. 서로 섬기지 않을 때에는 한쪽만 피곤해집니다. 당신의 가정에서 서로서로 섬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신 앙을 생활화하여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나에게 맡겨진 일만 겨우 해 놓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손대지 못하는 것들도 동료들을 위해 서 섬기는 태도로 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이 당신 을 만나면 푸근한 마음을 갖게 되고 당신 역시 기쁨을 맛보게 됩 니다.

 섬김의 위대함과 고상함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섬김이 얼마나 중요 한 삶의 목적인지 이해하면 다른 사람을 기꺼이 섬길 수 있습니다 . 다른 사람의 삶을 풍족케 해 주고 돌보아 주는 직장인이 되어 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에 당신은 직장에서 인정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가 부르는 것을 보면 참 감사합니다 . 지금은 목소리가 잘 나옵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때가 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베이스만 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한 음성을 주셨을 때 주님을 섬기십 시오.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지원하십시오. 한국 역사 속에서 이 시대처럼 사람들이 교육을 많이 받고 열심히 공부하는 시대가 어디 있습니까? 이제는 누구든지 자격이 있습니다. 섬김의 즐거운 삶 을 살기 원하면 얼마든지 섬길 일이 있습니다.

위대한 나라는 공부 많이 한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나라나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많은 나라를 도와줄 수 있는 나라가 위대한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도 섬길 줄 아는 위대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 지역 사회에서 섬김 의 멋을 아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상급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섬김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에 반드시 성장이 있을 수 있도록 모두 최선을 다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