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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망의 밤에 본 비전3 (겔 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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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사역, 그 사역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 사역의 본질에 관해서 하나님이 에스겔 서 3장에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1. 서론

우리는 흔히 목사와 전도사만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들은 전(全) 시간을 들여 특별한 의미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사역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넓은 의미에서 모든 그 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전 시간을 들여 사역하든 아니면 평신도로서 사역에 동참하고 있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철학 사조는 실용주의입니다.

특별히 미국 사회는 실용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어떻게 하면 모든 일을 좀더 나은 방법을 통해서 좀더 나은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인가에 사람 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비즈니스에서도, 장사에서도, 정치계와 교 육계에서도 삶의 모든 영역마다 이 실용주의적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좀더 나은 방법을 통한 좀더 나은 결과를 얻는 데 주의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것이 우리들의 신앙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는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방법을 사용해서 교회를 발전시키고 또 좀더 나 은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 동기 자체가 결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 엇 때문에 사역을 하고 있는지 그 사역의 진정한 목적을 망각한 채 방법론 에만 몰두할 때에는 그 방법 자체가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 역의 동기나 목적을 상실한 채 방법론에만 몰두하는 것, 이것이 현대 교회 안에 밀려들어오고 있는 세속화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어떤 자세로 감당 해야 하는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 또 어떤 방법으로 하나 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있든 사역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 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본문 연구

사역의 본질 사역의 본질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역은 순종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곧 주님께 순종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 리는 한 순간도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역은 곧 순종입니다. 반 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 데 사역의 목적이 있지는 않습니다. 또 사람들의 좋 은 반응을 얻는 데 그 목적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결과를 얻지 말라는 것 이 아닙니다. 또 좋은 반응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역 의 일차적인 목표가 결과를 얻거나 혹은 좋은 반응을 얻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가 이 일을 하도록 부르셨고 그 일을 우리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 에 대한 순종, 이 순종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에 몰두하고 시간을 바치고 우리의 땀을 드리는 중요한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지나치게 실용주의적 영향 아래 있어서, 우리는 결과가 없거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또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쉽게 사역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사역을 하다가 금새 지 쳐 버리는 이유는 그 사역에 발을 들여놓게 된 동기나 목표가 처음부터 잘 못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그리고 좋은 반응을 얻을 수도 없는 일을 하도록 소명받았습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 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하나님은 에스겔의 사역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을 아셨습니 다. 그들이 에스겔의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며 에스겔을 통해서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도 받지 아니할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님은 이 일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에스겔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없고 또 좋은 반응을 얻을 수도 없는 일을 하도록 소명받은 것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이런 일이 맡겨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미칠 지경일 것입 니다. 저라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별로 소득도 없는 일이 라고 생각할 때, 제가 아무리 열심히 목회를 하고 멧세지를 아무리 열심히 외쳐도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고 또 아무 좋은 반응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 때 과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바로 그러한 일을 나에게 맡 기셨는데, 내가 과연 순종할 수 있을까요 이때 우리에게는 단 한가지 동기 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 다. 이 동기가 없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에스겔 선지자와 같은 과제를 부여받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 구상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모슬렘 교도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중동 지방과 같은 곳에서 결신자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입니다. 10년 동안 열심히 일해야, 10년 동안 죽어라고 전도해야 한 사람이 믿을까 말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곳에서 어려운 선교를 하고 있는 선교사 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에스겔과 같은 소명을 받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중동 지방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를 10년 동안 후원을 했 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가 한번은 귀국하여 우리 교회에 와서 그 10년간의 선교 보고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10년 동안 여러분의 후원으로 중동 지방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 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정말 죄송스럽게도 한 사람의 결신자도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실용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 들은 그런 결실이 없는 선교사를 더 이상 후원하지 말자고 결의할지 모릅니 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분들이 더 위대한 과제를 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들은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고 반응을 얻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그곳으로 보내셨다는 사실 때문에, 다만 주께 순종하기 위해서 거기 에서 끝까지 복음의 멧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독한 하나님의 사 람들, 그들은 사실 우리의 더 많은 위로와 더 많은 격려와 그리고 더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결과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결과 그 자체가 자기의 위로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결과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변화를 받습니다. 교인들의 숫자가 늘어갑니다. 이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습 니다. 그러나 나의 사역에도 불구하고 나의 땀 흘림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과가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그 자리에서 도피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이곳에 심으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이 일을 명하셨습니다. 이 사실 하나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고 고독한 순종입니다. 그 러나 위대한 순종입니다.

이러한 에스겔을 당신은 성공하지 못한 선지자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성공은 순종에 있는 것이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좋은 결과를 얻었는가' 우리는 결과로 그 사람의 성공 여부를 말하려는 유혹을 항상 받습니다. 그 러나 에스겔은 주님 앞에 서는 날,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결과보다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범위를 좁혀서 말하자면, 교회 안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때때 로 내 일에 대한 결과가 없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위로와 박수 갈채와 인정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에게 이 일 을 부탁하셨고 명령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성실하게 그 일에 수종들기 원한다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순종이며 사역입니다. 사람들이 격려하 니까 이 일을 한다면, 그 사람들의 박수와 갈채 때문에 일하는 것이지 하나 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으로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역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역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한다 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본문처럼 명쾌하게 사역의 본질을 파헤치고 있는 곳도 없습니다. 사역은 본질적으로 순종입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 오.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 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그들이 듣든 안 듣든, 사람들이 돌아오든 안 돌아오든 결과에 구애받지 말고 내가 너에게 부탁한 이 말씀을 그대로 증거하라, 곧 순종하라는 말 씀입니다. 이처럼 사역은 곧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왜 결과도 없는 일을 하도록 에스겔을 보내셨을까요 반응도 없 는 대상들에게 이 말씀을 외치도록 에스겔에게 명령하신 이유는 도대체 무 엇일까요 나중에 그 이유가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어도 심판의 날에 핑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핑계대지 않도록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서 하실 일을 다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인 깨우침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 이 고난을 베풀 고 계신 것입니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바벨론이라는 이방의 강대국 을 들어서 유다 왕국을 침범케 하셨습니다. 그것은 유다 민족을 깨우치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징계를, 이 고난을 하나 님으로부터 받고 있으면서도 유다 백성들은 고난의 의미를 각성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고난이 주어질 때 어떤 사람들은 그 고난의 의 미를 깨닫지 못하고 고난 속에서 더 강퍅해집니다. 하나님, 나에게 어찌 하여 이러한 고난을 주십니까라고 외치며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고난 속에서 더욱 강퍅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이 이러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본문 7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 니 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 함이니라.

하나님의 멧세지가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음이 강퍅해지고 이마 가 굳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마가 굳다는 것은 고집이 센 사람들을 가 리키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나를 깨우치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 고난 속에서 고난의 의미를 깨우치는 사람들은 고난을 받고 나면 그 인격이 향상되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부드러워지고 주 님이 쓰실 만한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런 사람들 에게 고난은 아름다운 고난일 수가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그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반대를 받았습니다.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 이 이미 아시고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반대와 핍박과 고난을 경험했 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더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시면서 그에게 능력을 부여하시고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기쁨으로 이 고난을 수용할 수 있었으 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역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때에 주의 신(神)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

성령님의 인도가 함께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그를 사로잡아 인도하시기 시작합니다. 꿈을 보이시고 그를 인도하십니다. 14절을 보십시 오.

주의 신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행하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있게 나를 감동하시더라.

이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에 그는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인 간적인 힘만 가지고는 사실 버티기가 힘듭니다. 결과 없는 일, 아무런 대가 를 받지 못하는 일을 혼자 해 나가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성령 의 위로와 인도와 도우심이 함께하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제가 미국 교회의 사역에서 가장 힘든 것이 수요일 저녁 예배 시간입니다.

한국에서 사역할 때는 삼일 저녁에 한 자리도 빈 자리를 본 적이 없었습니 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 처음 와서 수요일날 저녁 예배를 인도했을 때 너무 나 많은 빈 자리를 보고 저는 암담함을 느꼈습니다. 빈 자리를 상대로 설교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러나 지금까지 계속 예배를 인도할 수 있었던 것 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에스겔을 조 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사역이 때때로 고난을 동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역 을 계속할 수 있는 가장 원천적인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성령의 임 재와 동행하심과 격려하심에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자나 그리스도 인들에게 동일한 경험이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십시오. 마태복음 10장에는 주께서 제자들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내보내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는 제자 들이 이 전도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고난에 직면할 것을 미리 알고 계 셨습니다. 16절 이하를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 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 령이시니라(16-20절). 같은 사실이 누가복음 12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 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전도할 때에, 어려움에 직면할 때에 그때마다 성령 께서 멧세지를 허락하시고 우리들의 발걸음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리라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제자들의 전도 행적을 통해서 거듭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십시오. 8장의 전반부에서 빌 립은 사마리아에서 큰 부흥을 일으키며 전도에 큰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 홀연히 하나님은 빌립을 광야로 옮기십니다. 8장 26절을 보 십시오.

주의 사자(使者)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 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빌립은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광야 길에서 만난 어떤 한 사람에게 전도를 합니다. 이 한 사람을 상대로 전도하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 습니다. 이 일이 바로 아프리카 선교의 기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사도행전 8장 39절을 보십시오.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 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주의 영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할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을 견디게 하십니다. 우리 의 사역이 때때로 당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많은 고난과 어려움 에 직면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 상황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주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 다. 이 주님의 임재와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행 진을 계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역의 본질은 순종입니다. 순종 다음을 걱정할 필요는 없 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순종하기를 원하시면, 순종할 수 있는 힘과 상 황을 예비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기꺼이 순종하기를 원하는가에 있 습니다. 사역은 본질에서, 어떤 결과를 노리거나 어떤 좋은 반응을 얻기 위 해서 시작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본질상 주께서 나 에게 이것을 명하셨기 때문에 하겠습니다라는 순종입니다.

 둘째로, 사역은 사역자 자신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역자의 존재 의의는 사역을 하는 데 있습니다. 사역을 포기하는 것은 바 로 죽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참으로 깨달은 사람들이라면, 사역의 포기는 바로 죽음인 것을 압니다. 사역자의 존재 의의는 바로 사역 그 자체 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역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 차적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살기 위함입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역자를 무엇이라고 묘사합니까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

파수꾼이 자기의 책임을 다할 때, 그가 지키고 있는 그 성읍 전체가 다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도 삽니다. 파수꾼은 위험을 경계합니다. 그것을 통 해서 그는 그가 경계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할 뿐 아니라 자기 자 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그에게 어떻게 하시겠다고 경고하십니까 피의 값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 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19절).

책임을 다한다면, 적어도 너의 생명은 보존할 것이며 삶의 보람과 그 보상 을 얻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역은 나 자신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역의 대상이 만일 복음을 받아들이 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나는 내가 할 바 책임을 다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적어도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내어 복음을 전하고 그들 앞에 있는 위험을 경계하기를 요 구하십니다.

피 값을 네 손에서 찾겠다.

만약 우리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그 대가를 찾겠다는 하나님 의 선언입니다. 우리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우리들 자신의 존재의 의의요, 보람이요, 나 자신의 구원을 든든하게 만드는, 또 나의 구원을 영광스럽게 만드는 사건입니다. 이처럼 사역은 바로 나 자신을 살립니다.

 셋째로, 사역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일입니다.

사역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수고하는 것이므로, 사역에서 우리는 자칫 우리 스스로를 주장할 수 있는 위험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 역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을 하되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적어도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의 중요한 본질 가운 데 하나입니다.

사역자에게 가장 큰 위험이 있다면, 여전히 자신을 의지하며 일하고 싶어 하는 유혹입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그 사역을 통해 내가 주목받고 싶은 유 혹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셨을 때, 에스겔에게도 그런 위험이 있을 수 있 음을 아시고 에스겔에게 아주 이상한 역사를 한 가지 행하십니다. 본문 25 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25절을 보면 그가 사람들에 의해서 핍박과 곤 란과 어려움을 당하는, 아마도 감옥에 갇히고 또 자유를 잃어버리는 그의 고난을 하나님께서 예시하시고 있습니다.

인자야 무리가 줄로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것 이라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 그들의 책망자 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25,26절).

아마도 에스겔은 벙어리 된 상태에서 사역을 계속했을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역자에게는 언어가 가장 중요한 소통 통로입니다. 사역자에게 멧세지는 생명입니다. 그 멧세지를 전달해야 하고 선포해야 하는 중요한 책 임을 맡기면서도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벙어리 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요 이상한 일입니다.

 한편 그는 언제까지 벙어리인 채 있었을까요 33장 21절까지입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십이 년 시 월 오 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그 도망한 자 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 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임시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21, 22절).

이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입이 얼어붙은 벙어리 같은 삶을 살게 하 셨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벙어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말을 자 유롭게 할 수 없는 어떤 질병을 앓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초 자연적인 이적이었을지 모릅니다. 그 정확한 현상은 우리가 추측하기 어렵 지만, 어찌 되었든 에스겔이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어떤 곤란한 상태를 지속적으로 경험했던 것입니다. 말이 생명인 예언자가 말에 어려움을 느끼 는 곤란을 계속해서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꼭 필요할 때에만 하나님이 입 술을 열어 주셨습니다. 십이 년의 기간 동안 꼭 필요할 때에 몇 번만 입술 을 열어주셨다가 그 십이 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완전히 입술을 열어 주셨 습니다. 언제 입술을 여셨을까요 11장 25절, 14장 1절, 20장 1절 등에서입 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갑자기 언어를 잃어버립니다. 말의 부 자유를 느낍니다. 이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멧세지를 전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충격이 대단히 클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입만 열면 멧세지가 술술 나온다고 말합니다. 제가 설교 준비를 하지 않아도 단에 서서 입을 열기만 하면 멧세지가 저절로 나오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느 날 언어를 잃어 버린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래서 말없이 한 4년간을 지냈다고 생각해 보 십시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또 곤 란한 세월을 살겠습니까 그런데 몇 년 후 어느 날 갑자기 제가 교회당에 서는 순간 입술이 열렸습니다. 그날 설교는 당신이 항상 듣던 설교와 얼마 나 다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 못하게 하셨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말씀을 전파 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멧세지가 너무 흔하면 사람들이 그 멧세지의 진귀함을 망각할 가능 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희소가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적은 것일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말씀의 홍수 시대 속에서 자유롭게 말씀을 접하고 마음대로 성경을 사 볼 수 있고 마음대로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이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태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참으 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말씀을 세상의 잡소리와 구별하여, 결정적인 시기 에 영광스럽게 그분의 말씀을 받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이 선지자를 통해 서 이 신기한 기적을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임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벙어리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입을 엽니다. 그들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합니 다.

`아하, 이것은 저 사람의 생각이나 철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 로부터 나오는 말씀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벙어리로 만드시는 등 그에게 고난을 주신 것은, 그가 전하는 멧세지가 자신의 멧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멧세지임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입니다.

 셋째, 에스겔 선지자의 입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달하도록 하기 위 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여 에스겔의 멧세지를 성별(聖別)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은 그런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사실 지금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밤낮 헛소리만 하고 다니면, 내가 어느 날 입술을 열어 예수님의 복음을 전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헛소리라고 착각할지 모릅니다.

 과거 코미디언이었던 여자 한 분이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가 다시 무대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말씀을, 생명을 좌우하는 말씀을 전하다 보니 까 더 이상 무의미한 코미디를 할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골로새서 4장 4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 도를 통해 에스겔과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하나님의 의도를 볼 수 있습니 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는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그의 멧세지를 한층 더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우리 주변에 고난에 처해 있는 이웃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팔자가 좋아서 예수를 믿지.

그러나 우리가 고난 속에서, 어려움과 질병 속에서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 도를 증거할 때, 사람들은 내가 가진 신앙의 진실을 신뢰하기 시작할 것입 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쓰는 이 편지를 통해서 자기의 단 하나의 소원은 전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 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골 4:3,4).

내가 이 감옥 속에서도 마땅히 해야 할 말로써 복음의 비밀을 나타내기를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외인(外人)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5,6).

우리는 말에도 소금을 쳐야 합니다. 소금을 치면 어떻게 됩니까 부패하지 않습니다. 내 말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바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되게 하려면 거기에 소금을 쳐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존하고 성별된 복 음의 멧세지를 전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를 옥에 가두고 말이 부자유스럽 도록 이런 기적적 고난을 그에게 허용하셨습니다.

 3. 결론

우리는 이 과에서 사역의 본질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역이란 무엇입니까 사 역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께 성별된 도구가 되는 것이 사역입니다. 우리는 사역의 본질을 세 가지로 살 펴보았습니다.

첫째, 사역은 순종입니다.

둘째, 사역은 나를 살리는 일입니다.

셋째, 사역은 참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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