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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싸움.마지막 승리 (계 1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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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9월 독일에서는 역사적인 평화 회담이 열렸습니다. 그 리고 그 회담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 평화 회담에 참 석했던 각국 대표들 중에 챔버레인이라는 유명한 영국 수상이 있었 는데, 그는 회담을 마치고 영국에 돌아와서 많은 의원들 앞에서 저는 우리 시대에 평화를 분명히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목격했습 니다라고 연설했습니다. 그가 연설을 마치면서 우리 시대에 평 화를!이라는 구호를 제창하자, 의원들과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 던 온 영국 국민들이 열광적인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들의 시대에 찾아올지도 모르는 이 평화에 대한 갈망을 끌어안고서 말입 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꼭 일 년이 지난 후 1939년 9월 3일, 역 사적 평화 회담이 열렸던 바로 그 독일에서 히틀러가 폴랜드를 향 한 침략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독일을 향해서 선전 포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평화를!이 라는 챔버레인의 선언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평화에 대한 인간의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후로 나라와 나라 사이에 혹은 민족과 민족 사이에 맺어진 기억할 만한 평화 조약은 1만 번 이상 된다고 합 니다. 평화 조약을 그렇게 많이 맺었다는 말은 그만큼 평화가 없 었다는 뜻입니다. 담배 끊는 사람들이 밤낮 담배를 끊는 것처럼 말입니다.

왜 인류는 평화에 대한 꿈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정치가들 의 역량 부족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맥아 더 장군이 남긴 통찰력 있는 명언이 있습니다.

전쟁이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크게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일어나는 전쟁, 아주 작게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분열과 시새움, 이런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영적인 것이라는 사 실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말씀 을 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血)과 육(肉)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영들에게 대함이라.

인간의 갈등의 배후에서 영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바울은 지 적합니다. 야고보도 야고보서 4장 1절 이하에서 인간의 마음 속 에 있는 욕심과 이기심이 인간의 모든 갈등의 밑바탕에 숨어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약 4: 7).

인간의 싸움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이며, 배후에 숨어 있는 사단 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성경 기자(記者)들은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 습니다.

 이번 과에서는 개인적인 갈등과 세계적인 전쟁의 배후에 숨어 있는 영적 전쟁의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비밀을 살필 것입니다. 또 마지막 전쟁이 눈앞에 와 있다는 사실 에 대해서도 보겠습니다.

 영적 전쟁의 근원 본문이 시작되는 요한계시록 12장 7절 첫 부분을 보십시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땅에 전쟁이 있기 전에 먼저 하늘에 전쟁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싸움은 미가엘과 용으로 상징된 마귀의 싸움입니다. 미가엘은 천사장이고, 용은 마귀 혹은 사단으로서 그 본래의 정체는 천사장 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단의 이름을 루시퍼(계명성)라고 말합 니다. 인간 이외에 하나님께로부터 자유로운 의지를 선물로 받은 또 하나의 존재가 천사들인데, 천사장 루시퍼가 그 자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맞먹으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저주 속에 떨어졌습니 다. 그런데 루시퍼와 함께 하나님을 반역했다가 저주를 받은 다른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여기에 나오는 사자들입니다.

 용과 그의 사자(使者)들도 싸우나(7절).

성경에서 마귀는 항상 단수로 쓰입니다. 그러나 그를 따라다니 는 타락한 천사들은 항상 복수로 쓰입니다. 악령들 혹은 귀신들이 라고 불리는 자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사단이 자기 부하들을 데리 고 있는 것처럼, 미가엘도 부하들이 있습니다. 미가엘은 아마도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천사장으로 세웠을 가능성 이 많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같은 자가 도대체 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심과 전능하심을 찬양하 는 이름입니다.

 이렇게 미가엘과 마귀는 근본적으로는 모두 천사들입니다. 성경은 이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과 대결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서 유다서 9절을 보십시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 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천사장 미가엘이 마귀와 더불어 모세의 시체를 앞에 놓고 다투었다 는 내용입니다. 미가엘과 마귀는 항상 경쟁자의 관계입니다. 하나 님께서 본래 그를 지으실 때 허락하신 능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 귀는 대단한 지혜와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앞의 인용 구절에서 보면 미가엘조차도 직접적으로 마귀와 대결하는 것을 피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직접 대결하기보다는 주님이 너를 잡기를 원하노라 하면서 주님의 능력과 권위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제 추측이긴 하지만, 아마도 마귀가 과거에 미가엘의 상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미가엘이 천사장의 자리에 있지만, 과거에 자기 상관이었 던 자를 보니까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유다서 9절 이 이런 배경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새롭게 세우신 천사장 미가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역을 하고 있으며, 마귀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마귀에 대한 세 가지 다른 표현을 볼 수 있습니 다. 용, 옛 뱀, 사단이라는 이름입니다. 처음에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7절)라고 했는데, 이 용의 정체가 옛 뱀, 마귀, 사 단으로 설명된 것입니다. 왜 옛 뱀이라고 했을까요? 성경 기자는 어떤 생각에서 이 표현을 썼을까요? 여자들은 뱀이라는 말을 들 으면 징그럽다는 생각부터 합니다. 그러나 뱀은 원래 매우 지혜로 운 피조물입니다. 뱀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마 여자들의 가장 친 한 친구가 되어서, 시장 바구니에 항상 애완용으로 담겨져서 여자 들과 같이 다녔을 것입니다. 타락한 후에 원수가 되어서 모두들 뱀을 피하지만, 본래는 아주 지혜로웠다고 성경(창세기)은 말합니 다. 옛 뱀은 간교한 지혜를 가진 자입니다.

 다음에 곧바로 이 용을 마귀라고도 한다고 말합니다. 마귀란 말의 본래 뜻은 이간한다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devil이라고 하고 희랍어로는 『diabolos』로, 『dia』는 betwee n, 『bolos』는 th­row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둘 사이를 파고들어가서 갈라 놓는다 하는 것이 마귀의 뜻입니 다. 그래서 마귀를 이간자 혹은 참소자(accuser)라 고도 합니다. 형제와 형제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성도와 성도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사람 과 사람 사이에 의심이 생기는 이 모든 상황의 배후에는 마귀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한테 왜 당신은 밤낮 나를 의심하느냐 고 비난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그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 사이 를 갈라 놓는 마귀의 역사가 있는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그럴 때는 남편하고 싸울 것이 아니라 마귀야 물러가라 하고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마귀라는 표현에 이어서 사단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이것은 반대 자, 적대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 그리고 하 나님의 백성을 반대하는 자가 바로 사단입니다.

 옛 뱀, 마귀 혹은 사단이라고도 하는 자와 하나님이 부리시는 천 사장 미가엘과의 사이에 영적인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역사의 모든 갈등의 근원적인 뿌리 가 하늘의 전쟁에 있습니다. 전쟁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어떻게 됩니까? 8,9절에 보면 큰 용이 내 어쫓긴다고 말합니다. 미가엘이 이긴 것입니다. 미가엘 자신의 힘 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천하를 꾀 는 자, 천하를 속이는 자 마귀는 그의 사자들과 함께 하늘에서 땅으로 내어쫓겼습니다. 이제 하늘의 전쟁이 땅으로 온 것입니다.

그때부터 땅에서 아우성을 치고 난리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마귀 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결정적으로 쫓김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가 패배한 적임을 보여 줍니다. 마귀는 굉장한 힘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두려워할 존재는 아닙니다. 이미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메시지는 이 사단의 패배와 영적인 승리를 찬 양하는 찬송의 기록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의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 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참訴)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마귀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때가 언제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는 성경학자들 사이에 이견(異見)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단의 결정적인 패배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때에 시 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 사건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의 성취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뱀)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자의 후손은 메시야,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이 뱀의 머리 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은 사단이 결정적으로 패배한다는 의미입 니다. 그러나 거기서 사단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단은 그때 패배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돌아다닙니다 . 사단의 패배를 십자가 사건에 부합시키는 이유는 십자가 사건 이후로 죄사함과 구원의 위대한 승리가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패 잔병인 사단이 우리에게 입히는 상처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패배한 적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단의 권세 에 대해 승리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이어지는 찬송 가사 속에 서 소개됩니다.

 영적 승리의 비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단의 역사에 대항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 11절 말씀에 나옵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 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 였도다.

여기 승리의 병기 두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이 무기를 사용할 줄 모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계속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이 승리의 비밀, 그것은 어린양의 피와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여러 형제가 십자가의 주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실 때 흘리셨던 피와 그분을 증거하는 말씀 을 인하여 사단, 마귀를 이기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성도의 병기 두 가지를 각각 살펴봅시다.

 첫째 병기/그리스도의 보혈 왜 어린양의 피가 사단을 대항해서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됩니까?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가장 큰 유익이 있다면, 우리를 양심의 정죄에서 해방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마귀라는 명 칭을 설명할 때 이간자 혹은 참소자라고 했는데, 바로 앞 절인 10절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밤낮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라고 마귀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사단이 하나님 의 보좌 앞에서 뭐라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저 꼴 좀 보세요. 저게 그래도 당신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그 영향력이 즉각 우리에게 옵니다.

맞어. 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야.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이 모양으로 패배하면서 무슨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어. 다 때려 치자. 신앙이고 뭐고 다 그만두자.

이것이 바로 양심의 정죄, 죄의식입니다. 마귀가 이런 식으로 우 리를 참소해서, 우리가 신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 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주장해야 할 것이 바로 예수님의 보혈입 니다. 바로 이러한 나의 연약함 때문에 예수께서 보혈을 흘리셨다 는 말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을 보겠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의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 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계속해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잘 아는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깨끗함받기 위해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자백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 것은 주님의 용서하심이 있으니까 계속 죄를 범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이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나를 사랑하시는 분, 그분을 의지하면서 죄를 범치 않는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 게 하려 함이라(요일 2:1).

 그러나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죄를 범치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 지만 그리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우리가 가진 연약성 때문 에 죄를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代言 者)가 있기 때문입니다(1절). 어떤 현대어 번역에는 이 대언 자라는 말을 아예 변호사라고 했습니다. 아주 적절한 번역입 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변호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순간, 마귀는 법정에서 검사 자리 에 앉아서 하나님, 보시라고요. 저 녀석이 죄를 범했어요. 저 런 인간이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까?라고 정죄를 합니다. 그 러면 옆에 변호사 자리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 이렇게 변호하십니다 .

하나님, 그래서 제가 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를 대신해서 제 보배로운 피를 흘렸나이다.

그러면 재판 끝! 그것이 바로 로마서 8장 1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보혈이 승리의 무기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양심의 정죄에서 해 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가서, 보혈은 우리로 하 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아가서 그분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 히브리서 9장 11절 이하를 보십시오. 구약 시대에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백성들의 죄를 속(贖)했습니다. 이렇게 일시적인 대속(代贖)의 방편으로도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깨끗함을 얻 을 수가 있었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14절).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을 보십시 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 력을 얻었나니.

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 가서 설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죄를 범하면 기도할 용기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주님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담력이란 말을 원색적 으로 표현하면 배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범죄에도 불 구하고,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 어갈 배짱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20절을 보십시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옛날 지성소에 나아려면 그 앞에 휘장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 휘장이 열려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 런데 예수께서 자신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 님이 죽으시는 순간,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주께서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죄인인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새롭고도 산 길이 열렸습니다.

바로 이 새롭고도 산 길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 님 앞에 나아가서 감히 영광의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이것이 다 보혈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양심의 정죄에서 우리를 해방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로 하나님 앞에 배짱 있게 나아가 그 분과 교제할 수 있게 합니다. 사단이 우리를 정죄하려고 할 때 사단아 물러가라 하면서 보혈의 능력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둘째 병기/증거하는 말씀 말씀 자체가 예수님을 증거하지만, 본문에서는 우리가 실제로 그 말씀을 증거할 때 사단이 도망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왜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사단을 이기는 것입니까? 우리가 말씀을 전하면 죄인들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죄인들이 구원받을 때마 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갈수록 사단의 영역은 점점 좁아집니다. 하나님의 승리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보혈의 능력과 함께 이 말씀의 전파가 사단을 이기는 비밀입니다.

 이 말씀의 능력과 보혈의 능력을 아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어떻 게 말씀을 증거했습니까? 다시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 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말씀을 증거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자기 목숨 안 아까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 들은 이 말씀이 영혼들을 구원하고 사단의 역사를 패배시키고 하나 님의 승리를 이 땅에 나타내는 놀라운 능력의 말씀인 것을 알기 때문에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이 말씀 증거의 맛을 본 사람은 결코 이 일을 중단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이 전도하지 않는 원인은 아직 전도의 맛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구원받고 사람이 변하고 인생이 달라지고 운명이 달라지고 나 자신이 하늘의 기쁨을 얻고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고….

이렇게 전도의 맛을 일단 보았으니까 순교하면서까지도 복음을 증 거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 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증인의 본래 뜻은 순 교적 증인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입은 사람들, 주님의 심 정을 이해하기 시작한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본 사 람들, 그들은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죽기까지 말씀을 증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두 가지는 십자가의 보혈을 증거하는 것과 전도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였던 스펄전 목사님에게 어떤 젊은이가 찾아와서 목사님, 제가 이사를 갑니다. 이사 가서는 어떤 교회를 가야 할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스펄전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말하는 두 가지 요소를 갖춘 교회를 찾아가면 된다네. 첫 째는 십자가를 증거하는 교회여야 하고 둘째는 전도하는 교회여야 하네. 만일 이 두 가지가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닌 셈이지.』

그렇습니다. 아무리 교회 간판이 붙어 있다 해도, 십자가의 보혈 이 증거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복음이 증거되지 않는다면 그곳은 죽 은 교회입니다. 새 교회를 선택해야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십자가를 증거하는 교회인가 또 계속적으로 전도하고 있는 교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가 정말 십자가의 보혈 을 증거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전도하기 시작하면, 사단이 그 교회 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사단에게 별 위협을 주지 않는 교회들은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사단의 공격을 받는다 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전쟁의 도래 본문은 영적 전쟁의 근원과 승리의 비밀을 밝힌 후에, 이제 마지 막 전쟁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는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에게 내려갔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 로 이제 전개되는 시기는 사단의 최후의 발악기입니다. 13절에는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 즉 메시야를 낳은 주의 백성인 교회를 핍박한다고 했습니다. 메시야 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증거하고 있는 교회를 향해서 사단 의 가장 격렬한 도전장이 날아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환난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어 떻게 하시는지 보십시오. 14절입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 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하나님께서 이 복음 증거의 공동체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친히 지키 십니다. 3년 반이 문자 그대로 3년 반이든지 아니면 예수님 재 림 직전의 일정한 시기이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그 환난의 때에 우리는 계속 복음을 증거할 것이며, 교회를 향한 세상의 계속적 인 공격에도 두려워하지 말 것은 이런 교회를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16절을 보십시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 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에게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 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여기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자이고, 둘째로 그리스도의 증거 를 소유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다 모래 위에 쫙 서 있습니다. 그들 앞에서 사단은 최후의 도전장을 내놓고 교회와 주님의 백성을 향한 마지막 공격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 이 마지막 결전은 어떻게 될까요? 다 음 장에서 이 싸움의 구체적 모습을 지켜보십시오.

 고마우신 아버지 하나님, 사단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이 마지막 때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말씀을 통해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단이 역사의 마지막에 아무리 어두움을 가져 온다고 할지라도, 그가 이미 패배한 적임을 알려 주심을 또한 감 사드립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죄 사함 받아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서 하나님과 교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 니다. 오 주님,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복음을 증언하며 역사의 이 어두운 밤에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증 언하는 백성들을 지키셔서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의 삶을 허락해 주 시옵소서. 그리고 각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들이 전도의 비전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들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가 십자가 중심의 교회, 전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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