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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허다한무리와 나의제자 (눅 14: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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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1무릇 내게 오는자는..........--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우리가 이해하려면,앞에 나오는 말씀들을 살펴 본 후에야 가능합니다.

허다한 무리가 누구인가를 우리가 잘 알아야 오늘 말씀의 핵심을 우리가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소위 종말론적 잔치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 하시면서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렸음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제자도에 관하여 교훈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 앞에 나옵니다.

그러나 허다한 무리가 있지만,--1과연 제자가 누구이겠느냐--0 는 것입니다.

허다한 무리! 오늘날 정말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허다한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습니다.

그들은 어떤 유익을 기대하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두를 제자 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많은 비유를 말씀 하셨는데, 알곡과 쭉정이의 비유가 있습니다.

좋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모든것들이 제자도를 설명하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허다한 무리로 남아 있겠습니까 제자가 되겠습니까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못하리라.

26절 말씀은 능동적으로 부모,처자,형제,자매, 그리고 자기 목숨(Y V x h )까지도 미워해야 하고,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워하다의 μi σ∈i 는 현재능동태 직설법 3인칭 단수이다) 그리고 27절은 역시 능동적으로 자신을 죽이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제자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나의 제자>라고 해서 주님이 의식주문제,처자식,부모문제까지 모든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육신의 문제를 내가 해결한다고 해서 또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임명하신다고해서, 오늘날 처럼 정규신학교육과정을 마쳤다고 해서 제자가 되는것도 아니요 괜찮은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다고 해서, 목회에 성공을 했다고 해서, 교단에서 고위직책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제자가 되는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자가 된다고 하는 의미는 미워한다는 현재동사 안에 다 포함 되어 있습니다.

<미워한다>라는 현재동사는 <사랑했다>는 과거동사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과거에 사랑하지 아니했다면 현재 미워하고 말것도 없습니다.

나의 제자가 되는 자격은 과거에는 사랑했었는데,나의 제자가 된 후에는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 대상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독점적인 특성을 가집니다.

특히 관계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여자들이 서로 친구관계에 있는데, 그 친구에게 어떤 다른 친구 가 생기게 되면 미워하게 됩니다.

이것을 질투라고 하는데,질투는 사랑의 한 속성인 것입니다.

여자들이 질투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형제와 친척과 부모와 재물 이런 것들이 나의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할 정도로 사랑하게 된 새로운 대상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주님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의 조건입니다.

후에 다시 말씀 드리겠지만 제자의 조건은 자기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것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허다한 무리로 남아 있을수도 있고, 허다한 무리 가운데서 제자로 승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본문의 능히라는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능히(δV n αταi )라는 말은 <억지로>,<죽을 힘을 다해>, <겨우>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쩔수 없이 끌려가서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마지못해 해서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기꺼이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어렵고,고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하면 즐겁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특권입니다.

날마다,신나고 즐거워 견딜수가 없을 때 감사가 넘치고,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을 꼭 미워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 꼭 그렇게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1제자가 된 자는 그럴수 있다는 것입니다.--0 그것도 억지로가 아니라, 능히 그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땅에서는 나그네와 외국인으로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온 길을 뒤돌아보고,또 돌아 보았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가 백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셨을 때에도 능히 바쳤으므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는 사흘길을 그는 되돌아가고,또 되돌아가고 그렇게 했다는 법도 없습니다.

그가 아들 이삭을 번제하기 위하여 칼을 빼었다,꽂았다했다는 말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는 다만 순종하는 믿음으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능히 입니다.

그는 능히 아들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고, 능히 알지 못하는 길로 인도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하여 28절 이하에 나오는 두가지 교훈적 예를 주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망대를 세우는 자는 먼저 준공하기까지의 비용을 예산해 보고서 그 후에 착공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누구의 도움이나 막연한 기대만을 가지고서는 이같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나의 제자는 적어도 막연한 어떻게 되겠지의 심정으로 재산을 삼는 자들이 아닙니다.

나의 제자는 확실한 사람들입니다.

씨름선수가 상대방을 이기려면 힘이 더 좋던가,기술이 더 좋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상대방이 제풀에 걸려넘어져 이길 수 있겠지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28절은 분명히 자기 가진것이 준공하기 까지 족할른지 먼저 앉아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뇨라고 적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의 도움으로가 아니라, 자기의 가진 것으로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맹목적인지 오늘 이시간에 살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받는 우리가 잘못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전인수격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좋아 합니다.

이 말씀이 무슨 은행 통장이나 되는 것 처럼, 무모한 짓을 감행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데, 먼저 생각할 것은--1 내가 능력 주시는--0--1자 안에 있느냐--0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으면, 그 때 부터 능력 주시는 자이시며,능치 못함이 없는 그분의 능력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준공하기까지의 비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소유나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그러한 것을 소유했다고 생각되는 누구를 찾아가고, 그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그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관계입니다.

한번 따라 하십시다.

-y1 믿음은 관계이다.-y0 엔 크리스토스(그리스도 안에) 이것은 바울신학의 주제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내가 저안에 저가 내 안에 있으면 이것은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이같이 주님과 관계를 가진 사람,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능히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므로 그같이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고, 여호수아도 그같은 관계에 있었으므로 이스라엘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끌 수 있었고, 삼손도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 안에 있을 때는 능 력의 사람이었으나, 관계가 끊어졌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 비극의 사람이었으며,사울도 선택 받았으나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 자기 를 더 사랑하고 높이는 교만에 빠졌으므로 실패한 인생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나의 제자란 결코 자기 목적과 의지로 따라나서는 허다한 무리만은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은 일평생 열심을 낸다 할지라도 자기 열심으로 그칠 뿐이며,자기 만족을 얻는 허다한 무리로 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 가운데 비용을 말씀 하는 비유가 둘이나 나오고, 그리고 소금의 비유를 말씀 하심으로서 그리스도인 다시 말하면 제자의 역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비유를 더 자세히 살펴봄으로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멧시지를 듣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 하시면서 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셨는데, 어찌 오늘 처럼 제자와 허다한 무리를 나누는 이런 어려운 겁주는 말씀을 하는가 생각하지 마십시요.

오늘 주시는 말씀의 의미를 잘 이해 하신다면,정말로 주님과 함께 메는 멍에는 쉽고 가볍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망대를 건축하고자 하는 사람을 보십시요.

그가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비용이 충분해야 합니다.

충분한 비용은 능히 망대를 건축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왕을 보십시요.

그가 적군의 수효와 자기 나라의 군사력을 잘 비교하여 작전을 세우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소금의 비유를 보십시요.

우리는 소금의 비유에 대하여 생각할 때 소금이 남에게 베풀 어떤 역할에 관하여 주로 관심을 가집니다.

즉 짜게 한다든지,맛을 낸다든지,부패를 방지한다든지 하는 방향으로만 해석하려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맛을 잃는 것은 소금 자체의 문제요,무엇으로 짜게 할 것인가도 소금의 문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1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0 왜 이 말씀을 하실까요 현대인이나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나 사람들은 문제의 근원을 자기에게서 보지않고,밖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는 선언을 하셨음에도 그 역할을 감당하려고는 하지않고,소금 되는 일과 빛이 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기는 틀려먹은 일입니다.

나의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비용은 충분합니다.

세우려는 것을 세울 수 있습니다.

싸우려는 싸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new 기도/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며,우리가 바른 삶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주님! 주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새로운 각오로 믿음생활하게 하옵소서. 언제나 허다한 무리로 있지않게 하시고,정말로 제자의 삶을 사는데 우리의 생을 바치게 하옵소서.

억지로가 아니라 능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잊지말게 하사 우리의 관심이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고,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경천교회 성도들로 삼으시옵소서.

우리가 언제까지나 나의 생각에 그리스도의 뜻을 보충하려 하고,나의 힘에 나를 돕는 조력자로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우리 모두가 허다한 무리일 수 박에 없음을 알게 하옵소서.

전적으로 우리의 모든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 시키고,주님의 뜻에 나의 삶을 맞추게 하옵소서.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며, 이것이 능히 제자되는 일임을 이 시간 믿음으로 고백하오니,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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