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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항하는 청소년 (눅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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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한 곳을 더 보겠읍니다. 신명기 21:18 21절 말씀 을 제가 봉독해 드리겠읍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 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 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 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 라." 즉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반항아가 있으면 그 가족들은 그를 그 마을 사람들에게 내어주어 돌로 쳐 죽일 수 있는 법이 있읍니다.

실제로 자기 자식을 내어주어 죽게 한 부모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 읍니다. 그러나 적어도 복종하지 않는 반항아를 죽일 수 있다는 법 은 실제로 젊은이들의 범죄를 어느 정도 억제시킬 수 있었을 것입 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옛날 출애굽 시대와 가나안 정복 시대에도 반항하는 청소년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입 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가정, 가족의 화목과 즐거움에 대한 말씀 도 많지만 또한 가정의 어두운 면에 대해 하신 말씀도 많이 있읍니 다. 그런 말씀들은 지금 우리에게 우리의 가정 상태를 돌아보고 가 정의 화목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기도 합니다.

잠언 17:25절에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령저 의 고통이 되느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미련한 아들이란 어떤 자식 을 뜻하겠읍니까 신체부자유아나 정신박약아를 뜻하는 말씀인가 요-아버지의 근심이 되고 어머니의 고통이 되는 미련한 아들 이란-세상적으로는 똑똑해 보여도 가족 전체와 믿음이나 생각 면에서 전혀 다른 자녀가 있다면-문제가 됩니다. 가족 전체가 일 정한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함께 노력해 가고 있는데 자녀 중 하나 가 이에 반대하고 엉뚱하게 행동해 나간다면 다른 가족들의 마음은 어떻겠읍니까 그 가정 전체가 화목하게 평안 막X 쟁 생활해 나 갈 수 있겠읍니까 아주 어린 자녀들의 반항은 그리 심각하지 않고, 아버지의 위협 만으로도 잘못된 버릇이 고쳐질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한 자녀, 청소년들의 반항은 가정 안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 되게 됩니다.

어릴 때는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칠 수 있지만, 이젠 때리기에는 너무 컸거나, 또는 너무나 변덕스러워서 위협해도 소용이 없거나, 경고를 해도 너무 완강하게 버티는 청소년들의 반항은 부모님들의 근심과 고통이 될 수 있읍니다. 나이든 자녀의 반항이 거칠어짐에 따라온 가족들은 상처를 받게 되고 가정의 조화를 깨뜨리면서 괴 로움과 두려움과 좌절감들이 건전한 가정 생활을 위협합니다.

청소년들은 왜 반항하는가 때로 그것을 이유없는 반항이라 고 하지만 실제로 청소년 당사자에게는 어른들이 알 수 없는, 또는 옳든 그르든 이유가 있읍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다윗을 미워할 동안 사울의 아글 요나 단은 다윗의 친구로 아버지 사울 왕 앞에서 다윗을 변호해 줍니다.

아버지인 사울 왕의 입장에서 볼 때 아들 요나단은 어리석고 불효 한 자식이라 생각되어질 것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아들 요나단은 오히려 왕위를 넘 보고 있는 다윗을 좋아하다니, 만일 다윗이 왕이 되면 우리 집안을 몰살할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미련하게 아버지인 내 말은 안듣고 다윗을 돕다니 사울의 입장에서 볼 때 아들 요나단은 아버지 생각은 조금도 해줄 줄 모르는 반항아이며, 불효자이며, 아버지의 적을 이롭게 하는 배반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떻습니까 아무리 아버지이시지만 아버지께서 하나님 앞에서 명백하게 잘못을 저지르는데 아무리 아버지일지라도 잘못 을 따를 수 없다고 판단했겠지요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에게 수 차례에 걸쳐 설득시키려 애썼고 다윗을 변호해 주었읍니다. 아 버지 사울 왕은 아들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단창을 던지기까지 했 읍니다. 결국 요나단은 아버지를 더이상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해 서 친구 다윗을 멀리 피하도록 도와줍니다.

청소년의 반항은 때로는 어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 하고 어른들을 무시하면서 격한 행동으로 나타나질 때가 있읍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순종치 않는 것을 좋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 다. 이치에도 맞지 않는 편협한 생각으로 어른들의 기존 질서를 따 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려는 청소년들의 행동은 때로 커다 란 사회문제로까지 번져 갈 수 있읍니다. 이러한 불행을 막기 위해 서는 가정교육이 그만큼 중요해 집니다. 어릴 때부터 자녀를 어떻 게 키웠는가가 그 자녀가 컸을 때 그의 삶의 모습이 어떨지 결정지 워 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 누가복음 15:11 32절 말씀은 주로 인간의 타락 과 죄,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예수님의 말 씀이지만, 오늘은 우리가 이 말씀 속에서 가정의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해 봅시다.

첫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갔다는 것 입니다. 좋게 말하면 분가이고, 부정적인 용어로는 가출이라고 생 각해 봅시다. 왜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가기로 결심을 했을까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반항입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 불현듯 싫어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형님의 우월성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읍니다. 무슨 일을 하든 형님이 우선이라는 가정풍 토가 싫어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이 둘 째 아들은 열등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을 하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들 행동 하나 하나에 아버지와 형님으로부터 간섭을 받아야 한다면 뭔가 견딜 수 없 는 상황들이 "집을 나가자"고 결심하게 했을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보통 18세 전후로 집을 나가 독립적으로 생활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혼자 집을 나가 옳바른 방법으로, 해야 할 공부 다해가며 살 수 없는 사회인 데, 이것이 서양과 우리의 다른 점을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머리는 좋을런지 몰라도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자립 심이나 판단력에서 서양 사람들에 비해 꽤 처지게 됩니다.

누가복음의 둘째 아들은 그러나 그의 나중 생활을 보면, 뚜렷하 게 어떤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분가해 나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 읍니다. 왜 아버지는 이러한 둘째 아들의 분가를 허락했을까요 둘째 아들이 분가해 나가서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서 인가요 아니면 둘째 아들의 요구가 너무나 완강하고 계탔휘 수 없는 뭔가가 있었을까요 두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이러한 아버지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순수하게 한 집안의 아버지라고 볼 때 혹시 이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어쩔 수 없는 약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일 자녀가 부모의 약점을 알고 있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 지 생각해 보셨읍니까 우리 아버지는 회사 사장인데 기회만 나면 사기치고, 탈세하고, 회사 직원 봉급도 제 때에 안주고, 그러면서도 회사 돈으로 외국여 행이나 다니고, 그런 사실을 자녀가 알고 있을 때 아무리 아버지꿸 서 위엄을 세우려 한들 통하겠읍니까 우리 아버지는 공무원인데 아무든 가서 뇌물만 주면 쓱싹 옳지 않은 일도 슬쩍 잘 해주는 공 무원이라고, 자녀가 자기 아버지에 대해 이처럼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면 그들이 아버지를 집에서 어떻게 대하겠읍니까 또 그 자 녀의 앞으로의 생활태도가 어떻게 바뀌어질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렇지만 오늘 누가복음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약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둘째 아들이 너무 나도 막무가내로 졸라대니까 어쩔 수 없이 내 보내지만 결국은顔 다 시 돌아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세상에 나가서 고생 좀 하다가 돌아오면 나아지겠지, 인간이 되어서 돌아오겠지, 하는 기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둘째 아들을 내보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세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둘째 아들의 외지 생활과 회 개입니다. 먼 나라로 떠났읍니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 고 작정을 하고 떠났을 지도 모릅니다. 맨날 아버지와 형님의 간섭 에 기도 못펴고 눌려 지냈지만 이젠 아무도 나의 행동에 간섭하는 사람없이 내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처한 대로 잘 해 나갈 수 있었읍니다. 돈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떻게 되었읍니까 유대인으로서는 할 짓이 못되는 천하 고도 천한 돼지치는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었읍니다.

인간은 정말 묘합니다. 어느 정도 일이 벌어져 가는 것 을 보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 하는데도 혹시나 혹시나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 일이 흔히 있읍니다.

좀더 일찍 깨달을 수도 있는데 마지막까지 가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그 극한 상황에서 돌아설 때,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엄청나게 큰 것이고, 죄인 인 나로서는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거저 무릎 꿇고 완전히 항복해 버리고야 마는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종종 일어나 고 있읍니다.

네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돌아온 아들에 대한 아 버지의 태도입니다.

아들의 심경변화를 다시 한 번 살펴 봅시다.-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가서 종으로 라도 써 달라고 말씀드리자, 여기서 굶어 죽는 것 보다는 낫다하 는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주목 해야 할 것은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아버지 께서 나를 다시 내어 쫓으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요즘은 신문에 그런 광고가 잘 나지 않지만 10년 전, 20년 전에 는 집나간 자녀를 찾는 광고를 보면 "아무개야 우리가 잘못했다. 무조건 돌아와라. 다 용서해 주마."하는 내용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광고 를 보고도 거짓말이라고, 끝까지 부모님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청소년들이 많았읍니다. 또한 자기 잘못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께서 난리치시고, 어쩌면 정말 아버지께서 내 다리를 부러뜨 리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주저하는 청소년들 도 있었읍니다.

십대들의 쪽지라는 것이 있는데 집나온 청소년들이 맞는 것이 무서 워서 이젠 집으로 갈 수도 없다고 체념한 고백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버지께서 거절하실 것이라는 염려를 한 것 같지 않습니다. 이를 볼 때 평소 아버지의 생활 태도가 어떠했을 것인지를 알 수 있읍니다. 위엄있으시면서도 온화하신 아버지의 모 습, 거절은 않으시지만 그래도 감히 아들이 돌아왔다고는 할 수 없 고, 종으로 써 달라고 말씀드리면 들어주시는 분으로 아마 그 아버 지는 평소에도 어려워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품군으로 일을 시키곤 했을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이처럼 반항하는 것입니다. 크게 두 가지의 원칙으로 생각해 봅시다.

우선 첫째로, 잘못을 저지르는, 불순종하는 자식은 꾸짖어서라 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꾸짖는 방법에는 여러가지 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과 3장을 통해서 보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에 대 한 사실이 말씀되어져 있는데 여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 스는 이유있는 반항이 아니라 불경하고 고집스러운 반항으로 결국 엘리 집안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는 비극적인 사건의 주인공입니 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제물을 중간에서 가로채고, 회막 문에서 일하는 여인을 범하는 죄악을 저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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