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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눅 04: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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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보면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 나님의 신, 성령께서 수면에 운행하셔서 위대한 창조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흑암을 광명으로, 무질서를 질서로, 사망 을 생명으로,무에서 풍요한 세계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어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충 만함을 받으시기 전에는 아무런 일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이 계신 것조차 세상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광야에서 40주 40야를 금식,마귀를 이기고 나오셔서 성령의 권능 으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하자 가는 곳마다 위대한 변화와 창조가 이 루어졌습니다.

 죄는 용서받아 의로움으로 변하고 더러움은 깨끗함으로,병은 치료로, 혼돈은 질서로, 배고품은 풍요로, 죽음은 삶으로, 절망은 소망으로,변 화의 역사가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오순절에 성령께서는 교회 위에 강림하여 계시면서 오늘날에도 교회를 통해, 여러분을 통해 창세기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적인 모든 일들을 운행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운행 하실 때는 반드시 새로운 창조와 질서가 이루어집니다. 이제 주님의 몸된 교회에 임하신 성령께서는 지체인 우리들을 통하여 어떠한 역사 를 베푸시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가난 대신에 복된 소식을

옛날 창세기에 임하셔서 가난 대신에 축복의 세계를 만드시고 또한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가난 대신 축복을 가져온 성령은 오늘날도 주의 몸된 교회와 여러분 가운데 임하셔서 가난 대신 축복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가난은 타락이 가져온 공허와 혼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져버리고 떠난 이후 인간에게 다가온 것은 영육 간의 무서운 가난입니다. 영적인 공허와 혼돈이 꽉 들어찼습니 다. 그리하여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곧 영 적으로 죽어서 영생도 성령도 없고 하나님과의 교통도 없는 공허와 혼 돈으로 꽉 들어차고만 것입니다.

 또한 심적인 공허와 혼돈이 사람의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믿음도, 소 망도 없고 사랑도, 평안도 사라졌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분노와 질투 와 공포와 절망이 마음을 회오리바람처럼 휘어잡았습니다. 마음 속에 공허와 혼돈과 가난이 꽉 들어찼습니다.

 그리고 환경적인 공허와 혼돈을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이 후 땅은 공허하고 혼돈해졌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비참 한 가난인 것입니다.

 가난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을 말하는데, 영적으로 심적으로 있 어야 할 것이 없고 또 환경적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있어야 할 것 이 없어졌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고 마는 것이빈다. 이 가난한 인간과 환경속에서 성령이 운행하는 이유는 복을 가져오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에게 전파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영적인 공허와 혼돈 속에 영생과 성령 충만과 질서가 들어오게 합니다. 또한 마음 속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과 희락과 믿 음,소망, 사랑이 가득차게 합니다. 우리의 생활 속의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역사를 베 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면,영적, 심적,환 경적으로 가난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의 영인 성령께서 그리스 도를 통하여 있어야 할 것을 모두 다 갖다 놓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무슨 장식물로 임하여 계신 분이 아닙니다. 땅에 혼돈하고 공 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수면에 운행하셔서 부요하고 아름다 운 세계를 지으신 것처럼,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임재하셔서 가시는 곳마다 흑암과 무질서, 절망과 가난을 내어쫓고 부요를 가져온 것처럼 성령님은 오늘날도 우리가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며 하나님께 기 도드리면 우리의 삶과 사회, 국가와 세계 속에 운행하여 기적적인 역 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2.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성령은 언제나 자유의 영입니다. 원수 마귀는 사람을 도적질하고 죽 이고 멸망시키며 포로로 만들지만 성령은 언제나 꽁꽁 묶여 있는 사람 들을 풀어놓아 해방을 시키시고 자유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심령이나 생활이나 사회 제도나 정치 할 것 없이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귀신의 포로된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더러운 귀 신은 사람의 생각과 말과 생활을 더러움으로 묶어 놓습니다. 그리하여 전체가 더럽고 추함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이곳에 서 풀려나오려고 애를 써도 안됩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악한 귀신들에게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도적 질하고 분열시키고 해를 가합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형제가 원수가 됩 니다. 나라가 분열됩니다. 악은 언제나 됩니다. 나라가 분열됩니다.

악은 언제나 우리를 분열시키고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 입니다. 이 악한 귀신에게서 놓여나야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평안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악한 귀신에게서 쉽게 풀려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귀신을 쫓아낼 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짓 말하는 귀신 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아무리 거짓말을 안하려고 해도 입에서 거짓 말이 술술 나옵니다. 세상은 거짓말로 가득 찼습니다. 개인과 개인이, 형제와 형제가, 나라와 나라가 서로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하는 귀 신에게 묶인 것입니다.

 또 점치는 귀신이 이 세상을 미혹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 이 자기의 지혜와 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는 것을 이용, 미혹하여 점치 는 귀신에게 자기 운명을 맡기게하는 것입니다. 또 허약을 가지고 오 는 귀신이 사람들을 묶습니다. 마음이 허약해지는 것입니다. 육신이 허약해 집니다. 용기를 잃고 신념을 상실합니다.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속의 노예가 되게 하는 마귀는 와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 님을 떠나 세속을 따라가게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 상 자랑을 따라 세속으로 흘러가게 합니다. 하늘나라와는 담을 쌓고 세속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멸망의 자리로 가게 하는 이 귀신에게 포로 된 자신들의 힘으로는 놓여남을 받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면 이 귀신에게 묶인 사슬은 순식간 에 끊어지고 맙니다. 성령은 귀신의 밧줄을 끊는 불입니다. 영과 마 음, 육신을 묶고 생활과 환경을 묶는 이 귀신의 밧줄들은 성령의 불이 임하시면 다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 로 되지 않고 나의 신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씀 그대로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임재하심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생활이 언제나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한 시간 이상 기도드려 서 성령이 늘 충만히 임하시도록 하면 성령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자유 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3,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아담은 원래는 눈이 멀지 않았습니다. 영안도 육안도 열려 있었습니 다. 아담은 하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날이 서늘할 때 하나님이 찾 아오시면 하나님과 손을 잡고 에덴 동산을 거닐었습니다. 그는 육안도 열려서 에덴 동산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인본주의에 서자마자 영이 죽었습니 다. 영안을 잃어버린 것이빈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인 우리들은 영 적으로 죽은 상태로 잉태되고 태어납니다. 영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 래서 태어나면서부터 물질적인 세계밖에 보지 못합니다. 육으로 태어 나서 육을 쫓아 살다가 육으로 망합니다. 천국도 지옥도 모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영안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 서 육의 눈을 밝힐 수 있을런지 몰라도 죽은 영안을 열수는 없는 것입 니다. 오직 성령께서 임하셔야만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결과로 영안을 잃은 인생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함으로 인본주 의적인 무신론자가 됩니다. 우연히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보이니까 없다고 말하는 것이고 자기가 영적인 존재임을 보지 못함으로 유물론자가 되는 것이빈다. 자기가 영적인 존재인 줄을 모르고 육으로 태어나 육으로 살다가 육으로 죽는 것이 되는 것이빈 다.

 따라서 하나님이 안계시니 천국도 없고 삶의 의미를 알 도리가 없어 부귀 영화 공명만을 좇아 삽니다. 이러한 세상 괘락을 누리다가 죽으 면 그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상황 속에서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감각없이 물질만 좇다가 세상을 하직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 해 영을 살리고 영안이 열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려야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 구주되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려야 비로소 내가 육적인 존재만이 아니고 내 영혼이 육체를 옷입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집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무신론자가 아닌 유신론자가 되고 유물론자가 되지 않 고 우리가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시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 하셔서 하나님을 믿고 알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의 사는 의미와 가치 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다 가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그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 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길 잃은 나그네가 되지 않고 삶의 방향이 뚜렷해 지;빠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한 성령의 능력으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영원한 고향으로 가 는 것을 압니다.

 또한 왜 사는가를 압니다. 이 땅에 사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아넹 서 더욱 신령하게 자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임을 아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위, 명예, 돈을 얻으면 먼저 그리스도의 영 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눌린 자를 자유케 함

하나님을 떠난 삶의 종의 삶, 즉 눌린 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안에서 만이 우리는 참자유를 얻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마귀의 종, 죄의 종 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 못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곧장 불안, 공포, 절망이 다가오며 한시도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 우리 를 죄악의 눌림과 양심의 가책,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주셔서 낙심과 좌절, 절망의 눌림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마귀의 눌림에서 오는 여러가지 마음 의 병, 육신의 병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을 해방 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을 뛰어넘는 마음의 평안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 름붓듯 하셨으매 저가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 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었 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마귀의 눌림을 내어쫓고 치료를 가져다 주며 모든 사 회의 부조리와 불의가 사라지고 정의와 질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 령이 오셔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서 려고 노력하게 만들어야 하나님의 정의와 질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 다. 자유케 하시는 운동력이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의 모든 눌린 심신에 해방과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5. 은혜의 해

'은혜의 해'라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희년을 말하는 것입니다. 희년은 하나님께서 유대민족들 간에 세워놓으신 엄한 법입니다. 그 법은 그들 이 살다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집이나 전토를 팔고 또 종으로 팔려가 기도 하나 안식년인 7년이 일곱번이되는 49년이 되면 큰 속죄제사를 지낸 다음 50년째되는 해를 희년이라 하고 그 해에 나팔을 불면 모든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집이나 전토를 도로 찾고 자유를 얻게 되 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집이나 땅, 종을 샀어도 50년밖에는 소유하지 못합 니다. 아울러 이상의 것들을 판 사람, 종으로 팔려간 사람들도 50년이 되면 모두 원상복귀됩니다. 이것이 희년입니다. 이 희년의 나팔이 불 면 모든 사람들은 얼싸안고 춤추며 눈물은 기쁨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의 전환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신 것은 이러한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한 후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셔서 나팔을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희년의 나팔인 것입니 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영도 육도 삶도 모두를 팔아버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희년을 주님께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된 삶, 절망적인 삶에서 놓여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를 마음 속에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로 성령이 오셔야 우리 심 령이 희년의 나팔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비로소 우리가 탕자의 생활을 버리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 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어떤 종교적인 지혜나 의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바 람과 같습니다. 성경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자도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거나 잡히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며 또 끊임없 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잡지 못해도 우리 심령에 예수님을 통해 끊임없이 운동력을 발휘하고 계십니다. 그 리하여 창조적인 위대한 역사와 변화를 일으키심으로 예수믿고 난 다 음 성령으로 말미암은 변화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크리 스천이 아닌 것입니다. 성령은 창조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는 역사를 베푸는 영이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만이 우리에게 참된 구원 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종교나 제도가 아니라 성 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의 깊음 위에 있 을 때'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자마자 질서와 광명, 부요로 변화된 것같 이 성령이 오시면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충 만하여 복음을 전파하시자 죄가 물러가고 의가, 병이 물러가고 건강이 왔습니다. 귀신이 물러가고 성령이, 불안이 물러가고 평안이, 사망이 물러가고 생명이 왔습니다.

 예수님 위해 운행하시는 성령은 가는 곳마다 위대한 변화의 역사를 베풀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 오늘날 우리 가운데와 운행하고 계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릴 때 충만히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역사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성령이 오 셔야 예수님이 살아나고 창조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이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령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러 므로 우리가 매일 같이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 하며 성령충만한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에 계시면 우리의 삶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승리에서 승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 안에서 여러분에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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