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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로운 삶으로써 준비하자 (사 40:1-11, 벧후 03:8-15,막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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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 첫번째 주일은 ‘준비하라’ 라고 하였비요, 오늘 대강절 두번째 주일은 ‘예비주일’ 이라고 일컬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고 영적인 다짐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대강절은 마지막 날에 약속된 주님의 재림을 인정하면서부터 시작 됩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지금도 재림의 사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 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기도와 말씀을 중심으로 한 의로운 삶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구약성경에서 가장 친숙한 말씀으로 시작하십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바벨론 유수(깊은 근심, 마음속에 깊이 품운 수심) 후에 그들의 회복의 관하여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이 예언을 볼 때 이사야 선지자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의 사자(전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은 지금까지 좌절되고 황량한 백성들에게 황폐되어 버린 나라를 회복하는 희망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진실로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여호와의 영관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그들의 위로이며 회복을 경험하게 하시는 존재입니다.

 이사야가 이러한 말씀을 외쳤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마음속에 있던 것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조와 예표는 특히 대강절 주일을 위해 가장 적합한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8-15 (벧후3:8-15)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원하시느니라,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헛된 교리를 반박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으로 부터 성장을 촉구합니다.

거의 한세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사건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시기로 약속한 그 분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돌아오심의 소망은 차차 희미해져 갔으며, 그 분의 돌아오심의 가능성을 의심했던 사람들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거짓 선지자들을 바로 잡아주고 시편 90편 4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3장의 첫 일곱절은 마지막 때에 함부로 강림을 부인하는 태도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본문은 구원의 시간과 강림의 약속을 일치시켜 주면서 주님의 재림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외면할 수 없는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함을 지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회개함으로 오늘 재림의 사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지구 위에서 인간생활을 개선하는 인간의 노력과 발명에 의한 것이 아닌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이 마지막 중재로 ‘새 하늘과 새 땅 의 소망 안에서 사는 생활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음으로 시작되는 삶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1-8 (막1:1-8)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4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6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예수님의 탄생과 초기 생애가 생략된 것은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 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말3:1)세례 요한은 부정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예비자였습니다. 그는 성경에서의 예언을 외쳤고, 하나님의 중계 자로서 영원히 인간의 신분을 바꾸어 놓게 되었다고 말 하였습니다.

이러한 예고는 세례 요한의 참된 회개의 소명과 죄사함의 세례에 의해 보충되어지는데 그는 진실로 주님의 오심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확실히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라고 외쳤습니다.

세례 요한은 또한 그 뒤에 오시는 ‘능력 많으신 이’ 라고 했고 그들의 사역과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는 물론 세례를 주었지만 ‘능력 많으신 이’ 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길을 예비하는 존재요,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로 보면서 추종하는 자로서의 역활을 스스로 이해, 수용했습니다.

요한의 사역은 세상의 심판을 가져오는 일이나 예수님의 사역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예수님의 사역에 시작인 세례에의 참여를 보았습니다.

 1.외치는 삶 세례 요한은 대강절의 외침이며 소리 그 자체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을 위해 중보자로서 이 땅 위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마가를 통해 첫 단어로 예수님의 복음을 말씀하시는데, 단순히 예수님의 대햇 언급하지 않고 세상을 위한 좋은 소식의 시작인 복음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앞길을 언제나 소리와 외침으로 예비되는 것입니다.

 로마 남부 근교에 있는 성 베드로, 바울의 교회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오순절에 설교하는 베드로의 모습과 아덴에서 설교하는 바울의 모습을 설교단 앞면에 조각해 놓았다고 합니다. 또 이탈리야 플로렌스에서도 세례자 요한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막1:7)“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이것은 각각 선지자와 사도로서의 역활을 충성스러운 임무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밝혀 줍니다.

말씀을 온몸으로 외치는 일, 그것이 바로 의로운 삶이라는 뜻입니다.

 2.세례받은 삶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의미입니다.(롬6:3-4)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영원히 인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세례를 받는 일은 준비되고 무장된 복은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으로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 안에서 신성한 삶과 십자가로 인친 예배에 참여한 것입니다.

 대강절을 선포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서 주님의 현존을 선언함으로 (눈앞에 있음, 현재 살아 있음, 현재 존재함. 실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3.화목된 삶 우리는 요한과 함께 복음과 주님의 종들입니다.

대강절은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삶이 함께 조화해 나간다는 것을 기억시킵니다. 주님은 사실을 우리에게 새롭게 보이십니다.

그 분은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하셨고 우리들에게 고통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시므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롬0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 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졌으며 잃어버린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주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주님이며, 좋은 청지기로서의 그리스도는, 그의 양을 먹이시고, 구속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그리스도인인가 1).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것을 그가 말씀하신 대로 믿는가

2).우리는 진실로 주 예수을 믿는, 거룩하고, 신성한 삶을 구하며,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는가

3).우리는 죽음과 부활을 깨닫고, 세례를 통해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하며, 부끄럼 없는 의(義)의 삶을 살고 있는가

설교 후 기도 십자가를 통해 끊어졌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해 주신 예수님,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였던 세례 요한의 겸손한 사역을 본받게 하시며,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소망하고, 기다리는, 부끄럼 없는 의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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