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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출 02:2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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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출애굽 역사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모세를 부르신 사건입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 권념하셨습니다(2:24,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작정하시고, 구체적으로 모세를 부르시고 출애굽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새롭게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3:1-12)

1,2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호렙산은 모세가 나중에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을 가리킵니다. 지금도 이 산은 모세의 산(Jebel Musa)이라 불리며, 옆 계곡은 이드로의 계곡이라 불립니다. 이 땅에는 물이 많았으며, 목초 지대로서 양무리를 먹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때는 모세는 광야 생활을 한 지 40년이 지났습니다(행 7:30).모세는 십보라와 결혼하고 자식들도 낳았습니다. 양치는 생활도 익숙해졌습니다. 과거의 상처도 아물어 갔습니다. 모세는 가끔 황태자 시절의 추억에도 잠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모세는 여느 때와 같이 양무리를 치기 위해 호렙산으로 왔습니다. 이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떨기 나무는 일종의 아카시아나무입니다. 그러므로 불이 붙으면 일시에 타오르고 꺼져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보니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애굽의 쇠풀무불 속에서 온갖 고생을 하지만 망하지 않고 번성하는 이스라엘과 같았습니다(신 4:20). 모세의 마음에 호기심의 불이 붙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모세는 몸을 돌이켜 그 기이한 광경을 보려고 가까이 갔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시고, 떨기 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께서는 친밀한 음성으로 모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모세를 물에서 건지신 섭리의 하나님이시요, 40년 동안 궁중교육을 시키시고, 또 40년 동안 광야 훈련을 시키신 소망과 인내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궁중 생활이 몸에 밴 모세가 광야 생활을 하느라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으며, 얼마나 괴로운 나날을 보내었는가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도 모세와 함께 고통하며, 괴로워하시며 모세를 훈련하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이제 때가 되어 모세를 찾아 오셔서 인격적으로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는 불꽃 가운데서 자기 이름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모세가 가까이 오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모세는 아직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할 마음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계시하신 땅입니다. 모세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곳이요, 부르심을 받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은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 산소에 가면 무덤 앞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신을 벗고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면 세속에 때묻은 마음이 사라지고, 경건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조상의 뜻을 기리고 가문을 빛내고자 하는 소원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처럼 신을 벗는다는 것은 첫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세속에 때묻은 마음을 버리고 경건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둘째,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발의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세속적인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사명을 영접하도록 마음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당시 모세는 평범한 목자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어둡고 비참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40년 동안 양을 쳐야 했습니다. 그의 광야 생활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 동족을 구해야겠다는 의욕도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젊은 날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벌써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떤 소망도 없었습니다. 애굽에서 탄식하며 고통 당할 동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운명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무엇보다 모세의 내면에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신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서 있는 이 땅은 운명의 땅이요, 모세의 젊음을 낭비한 땅이요, 저주받은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명하셨습니다. 이 말은 모세가 세속에 물든 마음과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질 것을 요구하시는 명령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결코 실패가 없고, 운명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크신 뜻과 섭리 가운데 훈련하시고 키우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 받으려면 먼저 마음에 있는 불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버려야 합니다. 섭리의 하나님을 믿는 믿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6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조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과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큰 민족을 이루실 것,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천하 만민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 12:1-3). 이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100세 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낳게 하셨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애굽에 보내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 이제 그들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무엇보다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언약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고, 이삭과 함께 하셨고,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지금 모세와 함께 하십니다. 조상들에게 말씀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지금 모세와 말씀하고 계십니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모세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십니다. 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렸습니다. 모세가 얼굴을 가리우자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며, 그들에게 두신 소망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난 동사들을 살펴 보십시오. ‘보고’, ‘듣고’, ‘알고’, ‘내려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이르려’ 한다고 했습니다. 이 동사들의 뜻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친 자식과 같이 돌보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라고 하시고, 그들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고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 고통 당할 때 함께 고통 당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당하는 고난을 함께 당하시고, 그 백성이 겪는 아픔을 함께 겪으시고, 그 백성이 당하는 슬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 젖이 흐르는 땅이란 목축을 하기에 합당한 땅이라는 뜻이요, 꿀이 흐르는 땅이란 비옥하여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땅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실제로 아주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이었습니다.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에 메고 와야 할 만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민 13:23,27). 또 당시 여섯 족속이 살고 있을 만큼 그 땅은 광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사람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창 15:13,14, 24:6, 46:3,4). 또 그들을 세계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고 온 천하 만민을 구원코자 하셨습니다(출 19:5,6).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며, 그들에게 두신 소망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게 하셨습니다. 이는 출애굽의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40년 전에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지식이 없었습니다. 과거에 모세는 출애굽의 역사가 자기 역사인 줄 알았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출애굽해야 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 역사 편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두신 소망이 얼마나 원대하고 큰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온 천하만민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단순히 자기 동족이니까, 자기 동족이 학대를 받는 것이 너무 불쌍하고, 억울하니까 그들을 구해 보려고 겁 없이 덤벼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가 단순한 사건이 아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요,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역사요, 천하만민을 구원하는 역사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하나님의 복음 역사를 섬길 때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이 길이 우리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저 자신이 선구자와 같이 뜻 있는 삶이 라고 생각하고 열심을 내었습니다. 목자가 된 후에도 몇 년 동안은 민족주의적인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여 세계 선교 역사를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믿음이 성장하면서 이 역사 나의 역사도 아니요, 우리 민족을 위한 역사도 아니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하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랬을 때 저의 일생을 다 바쳐 이 사명을 감당케 되었습니다. 한국과 세계 캠퍼스 선교 역사는 결코 우리의 동정심이나 인간적인 꿈과 이상으로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좇은 우리들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시고, 천하만민을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신 후 모세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사명을 주셨습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애굽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이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모세는 과거에는 “내가 아니면 누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스스로 자원하여 이스라엘을 구출하겠다고 나섰을 때는 출애굽의 사명을 맡기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통해서 젊은 시절의 뜨거운 열정이 식어지고, 성숙해졌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해졌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위대한 사명을 모세에게 맡기셨습니다. 모세 자신이 생각할 때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때 모세를 부르셨고, 그에게 출애굽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사명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결국 감정과 혈기를 부리게 되고,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훈련이 끝난 모세를 부르시고 거룩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자기 불의를 주장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약속을 하셨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주장하는 모세에게 반드시 함께 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후에 바로 이곳에서 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시며, 그의 모든 연약함을 감당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자들과 정녕 함께 하시며 위대한 구속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마 28:20).

Ⅱ. 자기 이름을 계시하신 하나님(3:13-22)

13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모세는 하나님께서 정녕 자기와 함께 하시며 출애굽의 사명을 다 감당케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큰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마음 속에는 40년 전 동족으로부터 배척받은 사건이 마음에 앙금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또 그들에게 불신을 당하고 배척을 받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속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에게 너를 보내신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의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유대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그대로 발을 하기를 꺼려하여 그 이름을 첫 자음만 따서 YHWH(야웨)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 ‘주’라는 히브리말 아도나이의 모음을 첨가하여 부른 이름이 “여호와(Jehovah)”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누가 있게 해서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십니다. 이 하나님은 초월자시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존재와도 비길 수 없는 절대자시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계 1:8).”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영원토록 살아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말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인격적인 동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요, 영원한 분이요, 창조주라고 하여 우리 인간과 상관이 없는 초월자는 아닙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삭을 축복하신 하나님이시요, 힘든 야곱을 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죄로 병든 인생을 구원하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탄식하며 고통하는 이스라엘을 권념하시고,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모세에게 계시하신 것은 물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답할 말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모세를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해 풀리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과연 지금도 살아 계시는가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학대를 받아야 하는가 왜 유능한 자기를 폐인이 되게 하셨는가 이름은 그 분의 본질과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어떤 분이신가를 깊이 알고 싶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본질은 무엇인가”“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여기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중차대한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요, 우주의 근본이 되시는 분이심을 마음으로 깨닫게 될 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온 마음을 다하여 감당할 수 있습니다.

16-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백성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두신 소망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전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절망 가운데 탄식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심어 주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전하도록 명하셨습니다.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18).” 그러나 바로가 순순히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과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친 후에야 이스라엘을 보낼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바로가 항복하고 많은 금 은 패물을 주며 이스라엘을 보내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21,22). 하나님은 모세의 약점을 다 아시고 아주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과 할 말을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명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들과 정녕 함께 하시며, 섬세하게 도와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결론.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모세를 물에서 건지시고, 80년 동안 훈련하신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을 구원코자 하십니다. 이 구속의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신을 벗고, 주님의 부르심에 절대적인 자세로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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